광화문에서 나는 슬프고 행복하다 때時 일事 (Issues)

옛날 꾼 꿈. 지금도 생생히 기억난다.

초저녁, 나는 시골 야산 중턱에 홀로 앉아 있었다. 사위는 점점 어두워지는데 먼 곳에서 온몸에 빛이 나는 용이 한 마리 달려오는 것이다. ㅡ 그렇다. 길몽 중의 길몽, 용꿈이다!

환하게 빛을 발하는 용은 구불구불한 시골길을 따라 빠른 속도로 다가왔다. 나는 신기한 마음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이윽고 용이 바로 내 앞을 지나가게 되었다. 아...! 나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가까이서 보니 용은 용이 아니었다. 아주 작은 사람들이 손에손에 횃불을 들고 달려가고 있다. 그 수효가 헤아릴 수 없이 많았다. 시골길을 따라 물흐르듯 흘러가는 이들의 행진이 어둑한 들판에서 용틀임을 하는 거대한 용처럼 보였던 것이다.

어쨌든 용은 용이다. 꿈을 깨고 나서 복권을 살까 하는 생각을 해 봤다. 그러나 이 꿈은 복권을 사기에는 너무 좋았다. 어디선가 보았던 말이 생각났다. 좋은 꿈을 꾸고서 그것을 헛된 일에 활용하는 것은 꿈을 모독하는 것이라. 복권은 이를테면 돼지꿈이나 똥꿈 같은 것에나 어울리지 않는가. 광채가 나는 용꿈은 너무 좋아서, 재물을 긁어들일 운수의 조짐으로 여기는 것은 어울리지 않아 보였다.

나는 아무 일도 하지 않았다. 실제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꿈은 그냥 꿈이었다.

얼마 뒤 한 친구에게 꿈 내용을 말했다. 그는 이게 태몽이라고 우겼다. 우리는 싱글이 태몽을 꿀 수 있는가에 대해 고민해 봤지만 뾰족한 답을 찾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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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나는 꿈을 믿지는 않는다. 그러나 이 꿈의 이미지는 너무나 생생하여, 오랫동안 그 의미를 곱씹어보곤 하게 되었다.

그리고 많은 세월이 지난 뒤 좀 깨닫는 바가 있었다. 꿈에서 본 장면과 아주 흡사한 이미지를 쉽게 만나게 되었기 때문이다.


11월 12일
11월 26일


용은 예로부터 국권, 왕권의 상징으로 여겼다. 사람이 하나 하나 모여 거리를 메운 저것이 용이 아니고 무엇이랴. 국민의 위대한 힘, 주권자의 엄정한 의지로 이루어진 두렵고도 상서로운 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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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초, 나는 오대산을 가보려고 했다. 오대산이 아니라도 어디에서든 노랗고 붉은 가을을 보고 싶었다.

10월 29일부터 토요일마다 광화문에 출석하느라 가을 산행은 무산됐다. 하지만 길에서 피어나는 감동적인 노란 촛불 물결은 산을 물들인 단풍보다 훨씬 더 아름다웠다. 상서로운 용이 노호(怒號)를 토해내고 꿈틀거리며 대한민국 역사에 굵은 발자국을 새기는 바로 그 현장에서 나는 많이 보고 많이 배운다.

첫주에 청계천에서 종각을 돌아 광화문으로 소박하게 진행하던 촛불 물결은 둘째 주에 광화문-종로3가-을지로3가-퇴계로3가-서울역-남대문-광화문으로 이어지는 거대한 행진으로 급성장했다. 6km가 넘는 장정이었다. 따라다니기도 벅찼으나, 지칠 때마다 끝도 없이 이어지는 촛불 물결이 다시 힘을 주었다. 주로 혼참러인 나는 광화문에 되돌아와서 옛 선배를 우연히 만났다.

참가자 100만을 넘어선 3주째부터는 시내 행진의 의미가 없어졌다. 가만히 있어도 거리가 꽉 찼다. 4주 때 가장 인상적인 것은 광화문에서 안국동 방향을 바라보고 있을 때였다. 이곳은 야트막한 언덕배기라서 군중의 행렬이 입체적으로 보인다. 끝도 없이 밀려 오는 촛불 물결은 한편 감동적이면서 또 한편 무서웠다. 만일 박근혜나 비선실세 친인척이나 문고리나 십상시나 이런저런 간신배 관료와 정치인들 중 누군가가 이 자리에 서 있었다면 간담이 서늘했을 것이다.

5주째는 평상시 혼자 걸어도 곧잘 검문을 받곤 하는 통의동 깊숙한 거리까지 분노의 소리가 넘쳤다. 잘못한 일이 없어도 늘 주눅이 들어서 다니기가 찜찜한 거리다. 이곳을 이렇게 맘 편하게 활보할 수 있다는 것은 꿈이 아닌가.

이번 주말쯤은 좀 쉴 수 있을까 싶었다. 박근혜가 국민의 뜻에 따라 대통령직을 당장 그만두겠다는 소식이 나왔다면 적어도 항의 시위는 중단되고 많은 국민은 편안한 토요일을 보낼 수 있을 것이다. 하는 꼴을 보니 그럴 가능성은 애초에 없다. 한 인간의 무지와 탐욕과 오기, 그리고 그에서 비롯된 범죄 때문에 수많은 동료 인간이 지속적으로 괴로움을 겪어야 한다는 것은 매우 부당하고도 슬픈 일이다.

한편 역사가 쓰이는 현장에 함께 할 수 있어서 행복하기도 하다. 구악과 부조리에 항거하는 꼬마 인간들의 거대한 용틀임을 목도하고 그 속에 묻힐 수 있다는 것은 분명히 행운이고, 그래서 나는 거리에서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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