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안느와 골든폰드 섞일雜 끓일湯 (Others)


대학로에서 성균관대로 넘어가는 대학로11길, 다른 이름은 소나무길. 밤 11시30분. 아는 분과 식당을 나선다. 길에 서 있던 한 여자분이 말을 건다.

"Excuse me, can you help me, please?"

휴대폰 화면을 보여준다. 어떤 장소의 주소가 떠 있다. 근처에 있는 게스트 하우스다. 그녀 옆에는 큰 여행가방이 있고 면세점 봉투도 있다. 외국인 관광객인 모양이다.

얼굴은 매우 난처한 표정이다. 벌써 한참 헤맨 기색이다. 하긴 이 동네에 게스트 하우스가 있는 줄은 나도 몰랐다.

네이버 지도를 열었다. 그녀 전화기의 영문 주소를 한글로 옮겨적어 지도로 찍어본다. 아주 가까운 뒷골목이다. 걱정 말아요, 바로 이 근처네요. 나와 지인과 관광객 셋이서 게하를 찾는다.

잠시 뒤 나는 깨달았다. 왜 그녀가 목적지를 코앞에 두고 낯선 사람에게 도움을 요청했는지. 게하는 바로 옆이다. 그러나 도무지 만나지지가 않는다. 마치 말코비치의 의식으로 통하는 7.5층의 사무실을 찾는 것 같다.

전화를 걸어본다. "지금 거신 전화는 없는 번호입니다. 다시 확인하시고 걸어주세요. The number you have dialed is not in service..." 안 된다.

하는 수 없다. 도움 요청을 받은 나도 도움 요청을 할 수밖에. 외국 관광객은 아는 분과 잠시 이야기를 나누도록 하고, 인근 맥주집에 들어간다.

"글쎄요, 저는 알바라서 근처에 뭐 있는지는 잘 몰라요."

그럴 것이다. 문 연 데를 찾아서 좀더 골목으로 들어간다. 한 여성의 지시에 따라 한 남성이 차를 옮기고 있고, 바로 옆에 아직 불이 켜진 카페가 있다. 들어갔더니 영업은 끝났고 한참 청소중이다.

"여기 골든폰드라는 게스트 하우스가 있나요? 아무리 찾아도 못 찾겠네요."

청소를 하던 직원은 친절하게도 일손을 멈춘다. 사장님이 밖에 있는데 아실지도 모른다고 하면서 나를 이끌어 사장님께 데려간다. 사장님이란 다름 아닌, 차를 옮기도록 지시하던 여성분이다. 그녀가 주차 위치를 정정하는 일을 마치기를 기다려, 내가 궁금한 것을 물어본다.

"아, 근처에 게스트 하우스가 하나 있긴 한데, 여기서 꽤 멀어요."

"지도에 나오긴 하는데 도무지 갈 수가 없네요. 외국인 관광객이 찾고 있는데, 저도 부탁을 받았어요."

"저런, 잘 못 찾으실 건데, 어떻게 하지? ...... 일단 같이 한번 가봐요."

그래서 둘이 다시 대로변으로 걸어나온다. 길 잃은 관광객과 나의 지인이 함께 기다리고 있다. 자정 다 된 시간에 외국인 관광객(나중에 중국에서 온 사람으로 밝혀졌다), 행인 두 사람, 카페 주인 등 네 명이 골든폰드를 찾아 성대앞 골목길을 누빈다.

게하로 들어가는 골목길 진입로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쪽에 있다. 대학로를 고향처럼 생각하는 나도 못 찾는 게 무리가 아니다. 익숙하지만 들어가보지는 않았던 진입로를 거쳐 골목길을 한참 들어간다. 드디어 '골든폰드 게스트 하우스'라고 영어로 쓰인 간판이 보인다. 어둑한 골목길에 비쳐나오는 따뜻한 불빛에 네 명이 안도하고, 그 중 한 명이 특히 반가워한다.



연신 고맙다고 이야기한 외국인은 가방을 끌고 게하 안으로 들어갔다. 한국인 세 사람은 그 모습을 본 뒤 골목길을 되짚어 빠져나왔다.

카페 사장님은 정말 고마운 사람이었다. 하루 일을 마치고 한참 가게 문을 닫는 피곤한 시간임에도 일부러 수백 미터를 걸어 행선지를 찾아주었다. 모른다고 해도 그만인 것을. 알아도 말로만 설명해도 그만인 것을.

한 달에 절반은 제주도에 내려가 있는다고 하는 이 분이 그날 밤 마침 서울에 있었던 것은 길 잃은 관광객에게는 작은 행운이었을 것이다. 이 분이 이곳에서 오래 카페를 해서 이웃을 잘 아는 사람이라는 것도 그렇다. 친절한 마음을 가진 씩씩한 주인과 직원이 운영하는 카페 마리안느.



나중에 이곳에 대해 찾아보다 나는 펄쩍 뛸 뻔했다. 마리안느는 종합문예인이라고나 할 소설가 이제하 선생이 운영하는 카페였던 것이다. 2003년에 평창동에 문을 열었고 2년 뒤에 이곳으로 옮겼다. 그동안 명륜동 골목에서 문화예술인들의 사랑방 역할을 해왔다고 한다. '카페 마리안느'라는 시까지 있다. 그러고 보니 홈페이지의 공간 소개에 나온 내부 사진에 찍힌 그림들은 이제하 선생이 그린 게 분명한 듯하다.

아는 사람은 다 아는 곳인데, 나는 몰랐다. 늘 다니던 길에서 조금 비껴 있다는 것만으로, 눈여겨 본 적도 없다. 대학로 일대를 잘 아는 곳이라고 말하던 오만이 부끄러워졌다. 앞으로 그렇게 말할 자신이 없다. 하지만, 사람이든 카페든, 그윽한 연원이 있는 것은 어떤 식으로든 그런 향기를 풍겨낼 수밖에 없다는 믿음을 확인한 것은 한없이 기뻤다.

카페 마리안느 앞의 새로 생긴 맛집들에 길게 이어진 먹줄 속 사람들은 그런 세상의 연원을 알까. 그들을 탓할 수 없다. 나도 몰랐으니까. 며칠째 찾아가는 마리안느는 계속 문이 굳게 닫혀 있다. 이제 골든폰드는 찾았으니, 마리안느를 제대로 찾을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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