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현직 블로거들과의 만남 섞일雜 끓일湯 (Others)

미국에 계시는 아거님이 한국에 오셨다. 아거님을 존경하는 민노씨가 작은 모임을 꾸몄다. 고맙게도 거기 끼이게 되었다. 덕분에 아거님은 물론이고, 평소 존경하던 블로거들을 한꺼번에 만날 기회가 되었다.

아거님은 실제로 뵌 적은 한번도 없다. 오래 전에 '곤조 저널리즘'과 관련하여 몇 번 글을 쓸 때 댓글로 가르침을 받은 바 있다. 전화나 이메일 등으로 인사를 나눈 적은 없다. 그래서 어떻게 생긴 사람인지 전혀 모른다. 나를 보는 아거님의 입장도 비슷할 것이다.

다른 분들도 마찬가지다. 이 날 자리에 나온 사람은 나 빼고 여덟 분이다. 그 중에서 만난 적이 있는 분은 세 명 뿐이다. <슬로우뉴스>에 관여하는 민노씨, 펄님, 김지영님 등이다. 그 분들도 만난 지 1년 안쪽이다. 이날 뵌 김성우님, 서울비님, 이철희님, 주낙현 신부님은 아거님처럼 블로그 등 글을 통해서만 알고 존경해왔을 뿐, 만나기는 처음이다.

외국에서 인연에 게으르며 중처럼 살 때는 생각도 못할 일이었으니, 내가 환국한 화냥남이라는 것을 실감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번잡한 서울의 가장 한복판에 어이없이 고요하게 존재하는 성공회 사제관. 주 신부님 덕분에 은은한 영기 넘치는 이 곳에서 밤늦도록 이야기를 나누었다. 의식의 집단적 흐름 기법... 에 따라 자유롭게 흘러가는 이야기들이었다. 대화 내용도 재미있었지만, 평소 글로 대하던 분들의 육성을 듣는 것 자체도 신선한 즐거움이 아닐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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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라는 형태로 뭔가를 줄기차게 쓰는 이들은 대개 자기 주장이 강한 사람들일 것 같다는 인상이 부여되는 모양이다. 당연한 일인 것 같기도 하다. 블로그란 뭔가 쓸 게 끊이지 않아야 유지되는 것이고, 그것은 대개 내외부의 상호작용에서 나온다. 이를테면 꾸준히 새로운 밥집을 찾아다니며 포스팅 거리를 만들지 않는 한, 자기 속에서 죽어라 퍼내야 하는 것이다. 게다가 경제적으로 보자면 무익하기 짝이 없는 짓이다. 그런 일을 미욱하게 지속할 수 있는 사람이란 편집증이나 중독증 환자까지는 아니더라도 남달리 강한 주장을 가진 스타일 정도로는 기대될 만하다.

또 인간 됨됨이가 날카롭고 분석적이며, 좋게 표현하면 사회비판적이고 나쁘게 표현하면 불평불만주의자라는 인상도 쉽게 부여되는 듯하다. 특히 나처럼 '이래서 좋았어요' 보다는 '이래서 나빴어요'를 주로 쓰는 사람은 더욱 그럴 것이다.

그런데 실제로는 의외로 수더분하고 여리고 열린 마음을 가진 분들이 많다. 내가 그렇다고 할 수는 차마 없으나, 적어도 이 날 뵌 분들은 다 그랬다. 세상에 대해 무언가를 끄집어 내어놓는 게 본질인 블로그 업계 종사자들임에도, 오프라인에서는 입보다 귀가 더 발달한 분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개솔새솔 눌변을 할 때조차 지긋이 미소짓고 들어주는 분들에게서 그런 느낌을 갖지 않을 수 없었다.

글에서 그랬던 것처럼 사람들에게서도 향기가 났다. 여름밤이 짧지 않을 수 없다. 게다가 우리가 사람을 만나 사귈 때, 주장만을 보고 그러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아거님과는 결국 세 시까지 소주를 마시다 아쉽게 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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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날 뵌 분들 중에서 상당수가 이제는 블로그를 하지 않는다는 게 조금 안타까웠다. 나쁜 짓조차 공범이 있어야 신이 나는 법인데, 갈수록 좀 심심해진다. 주 신부님서울비님이 꾸준히 블로그를 운영하시는 것 같고, 다른 분들은 SNS 같은 플랫폼으로 전화하셨거나 아니면 그냥 휴업하신 듯하다.

우리는 화려하였던 블로그 전성시대를 추억하기도 했다. 생각건대, 블로그에는 가벼운 부초 같이 떠다니고 일회용 밴드처럼 소모되는 SNS들이 채워주지 못하는 무언가가 있는 것 같다. 개인 매체로서 블로그는 140자 트위터 따위와는 비교할 수 없는 많은 용기를 필요로 한다. 심지어 개소리라도 블로그로 풀려면 논리적인 척은 해야 한다. 우리 주변에서 용기의 총량이 줄고 그 자리를 달달한 아포리즘이나 비겁한 선언들이 채워나간다는 것은 슬픈 일이다. 정체도 알 수 없는 익명의 누군가가 써제낀 블로그 포스팅을 우연히 발견하고 부러움과 질투심에 아파하던 아름다운 경험들이 점점 더 없어진다.


한편, 좋은 책은 한창 배움의 길을 걷는 작가들에게 문체와 우아한 서술과 짜임새 있는 플롯을 가르쳐주며, 언제나 생생한 등장 인물들을 창조하고 진실만을 말하라고 가르친다. 가령 <분노의 포도> 같은 소설은 신진 작가들에게 좌절감과 더불어 저 유서깊은 질투심을 심어주기도 한다. '나 같으면 천년을 살아도 이렇게 좋은 작품은 못 쓸 거야.' 그러나 이런 감정들은 더욱 열심히 노력하고 더 높은 목표를 갖게 만드는 채찍질이 될 수도 있다. 빼어난 스토리와 빼어난 문장력에 매료되는 것은 -- 아니 완전히 압도당하는 것은 -- 모든 작가의 성장 과정에 필수적이다. 한 번쯤 남의 글을 읽고 매료되지 못한 작가는 자기 글로 남을 매료시킬 수도 없기 때문이다. (스티븐 킹, <유혹하는 글쓰기>, 김진준 옮김, 178쪽)


그래서 도반들이 환속하거나 삶에 치여 은둔하는 게 두 배로 아쉽다. 그들을 위해서, 그리고 나 자신을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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