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 포도 우화 (再) 섞일雜 끓일湯 (Others)

(2014년 11월, 텁텁한 책 냄새로 가득찬 도서관 서고에 앉아 쓴 글을 다시 읽어본다. 꺼내온 이유는 다음 회에~)


--- ** --- ** ---


배고픈 여우는 발이 닿지 않는 곳에 매달린 포도를 따려고 애쓴다. 결국 포기하면서, 이 포도는 시어서 못 먹는 것이라고 생각하기로 한다. 신 포도 우화는 자기 합리화, 심리적 방어기제 같은 주제를 떠올리게 하는 이야기다. 먹을 수 없는 것은 못 먹는 것이라고 생각해야 편하다.




그런데 더불어 생각해야 할 점이 하나 있다. 여우가 포기한 포도는 실제로 신 포도일 수도 있다. 여우는 포도를 따서 먹어볼 수 없었으므로, 이 포도가 신지 단지는 실증적으로 검증되지 않았다. 여우는 시다고 생각하기로 했는데, 이것은 비록 자기 만족을 위해 내려진 근거 없는 결론이긴 하지만, 다른 모든 조건이 같다면 50%의 확률로 사실일 수도 있다.

먹을 수 없는 것은 못 먹는 것이라고 생각해야 편하다.

뿐만 아니라, 실제로 못 먹는 것일 수도 있다.


--- ** --- ** ---


소설가 박태원은 열 다섯 살 때 친구의 누나를 짝사랑한 적이 있었다. 1934년에 그 자신을 주인공으로 하여 쓴 소설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에 나오는 이야기다.


열 다섯 살짜리 문학 소년은 그(친구의 누나)를 사랑하고 싶다 생각하고, 뒷날 그와 결혼할 수 있다 하면 응당 자기는 행복이리라 생각하고, 자주 벗을 찾아가 그와 만날 기회를 엿보고, 혹 만나면 저 혼자 얼굴을 붉히고, 그리고 돌아와 밤늦게 여러 편의 연애시를 초(草)하였다.


누나는 구보보다 세 살 위였다. 따라서 구보가 충분히 커서 사랑을 고백할 정도 나이가 되면, 누나는 이미 다른 남자의 애인이 되어 있을 것이었다. 구보로서는 이게 제일 걱정이었다.

그리고 실제로 그렇게 되었다. 불과 두 해 뒤, 구보 나이 17, 그녀의 나이 20에 친구 누나는 시집을 갔다.

몇 년이 지난 뒤, 구보는 친구와 함께 그녀를 찾아간 일이 있다.


이미 두 아이의 어머니인 여인 앞에서, 구보는 얼굴을 붉히는 일 없이 평범한 이야기를 서로 할 수 있었다. 구보가 일곱 살 먹은 사내아이를 영리하다고 칭찬하였을 때, 젊은 어머니는 그러나 그 애가 이 골목 안에서는 그중 나이 어림을 말하고, 그리고 나이 먹은 아이들이란 저희보다 적은 아이에게 대하여 얼마든지 교활할 수 있음을 한탄하였다.

언제든 딱지를 가지고 나가서는 최후의 한 장까지 빼앗기고 들어오는 아들이 민망하여, 하루는 그 뒤에 연필로 하나하나 표를 하여 주고, 그것을 또 다 잃고 돌아왔을 때 그는 골목 안의 아이들을 모아 그들이 가지고 있는 딱지에서 원래의 내 아이 물건을 가리어 내어, 거의 모조리 회수할 수 있었다는 이야기를, 젊은 어머니는 일종의 자랑조차 가지고 구보에게 들려주었었다.

구보는 가만히 한숨짓는다. 그가 그 여인을 아내로 삼을 수 없었던 것은 결코 불행이 아니었다. 그러한 여인은, 혹은 한평생을 두고 구보에게 행복이 무엇임을 알 기회를 주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골목에서 아이들이 딱지치기를 하는 룰은 대개 정해져 있다고 할 수 있다. 그것은 그들 나름대로 공정한 것이었으리라. 비록 나이 차이에 따른 핸디캡 같은 것이 고려되지는 않지만, 모두 그런 점을 알고서 게임에 참가한다. 그게 싫으면 참가하지 않으면 될 것이다. 다시, 딱지치기는 이미 정착되고 합의된, 나름대로 공정한 룰에 따라 진행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여자는 자기 아들이 어리다는 이유만으로, 이렇게 공정하게 진행된 게임을 무효화하고 다른 아이들의 성취를 강탈하여 온다. 그 심정 이해가 안 되는 것은 아니지만, 이것은 권력(여기서는 나이 권력)에 기대어 룰을 무너뜨리고 제 잇속을 챙기는 행위에 다름 아니다. 그 방법조차 얼마나 그악스러운가 말이다. 그런 일을 하고도 "자랑조차 가지고"...

구보가 밤을 새며 연애시를 쓰던 대상은 이런 여자는 아닐 것이다. 여자는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 기르는 세월 동안 변한 것일까. 아니면 원래 그런 사람이었음을 구보가 알아채지 못한 것일까. 어느 경우든, 구보는 그녀와 결혼하지 않은 것을 천만다행으로 여긴다. 구보가 가만히 내쉬는 한 줄기 한숨 속에는 실망, 원망, 안도, 회한, 우울 같은 많은 감정이 복잡한 타래로 뒤엉켜 있었을 것이다.


--- ** --- ** ---


그리워하는 데도 한 번 만나고는 못 만나게 되기도 하고, 일생을 못 잊으면서도 아니 만나고 살기도 한다. 아사코와 나는 세 번 만났다. 세 번째는 아니 만났어야 좋았을 것이다." (피천득, '인연')


구보도 결혼한 뒤의 그녀와는 아니 만났어야 좋았을 것이다.

피천득이 아사코를 세 번째 만난 일은 다음과 같이 묘사되어 있다:


아사코는 전쟁이 끝난 후 맥아더 사령부에서 번역 일을 하고 있다가, 거기서 만난 일본인 2세와 결혼을 하고 따로 나서 산다는 것이었다. 아사코가 전쟁 미망인이 되지 않은 것은 다행이었다. 그러나 2세와 결혼하였다는 것이 마음에 걸렸다. 만나고 싶다고 그랬더니 어머니가 아사코의 집으로 안내해 주었다.

뾰족 지붕에 뾰족 창문들이 있는 작은 집이었다. 이십여 년 전 내가 아사코에게 준 동화책 겉장에 있는 집도 이런 집이었다.

"아, 이쁜 집! 우리 이담에 이런 집에서 같이 살아요."

아사코의 어린 목소리가 지금도 들린다.

십 년쯤 미리 전쟁이 나고 그만큼 일찍 한국이 독립되었더라면, 아사코의 말대로 우리는 같은 집에서 살 수 있게 되었을지도 모른다. 뾰족 지붕에 뾰족 창문들이 있는 집이 아니라도. 이런 부질없는 생각이 스치고 지나갔다.


그러나 선생이 아사코와 함께 살았다면, 한 발 떨어져서 보기만 하는 사람은 알 수 없는 그녀의 그악스러운 성정을 체험해야 했을지도 모른다. 콩꽃처럼 귀엽고 목련꽃처럼 청순한 줄 알았던 아사코는, 선생에게 한 평생을 두고 행복이 무엇임을 알 기회를 주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세 번째로 아사코를 만났을 때, 그녀는 '아직 싱싱하여야 할 젊은 나이'임에도(30대 중반 정도가 된다) '백합같이 시들어 가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피천득은 이것이 그녀의 남편과 연관 있음을 은근히 시사하고 있다. 그러나 남편은 잘 나가는 진주군 장교였으므로, 남편 탓에 몸과 마음이 시들어간다는 것은 사실 억측일 수도 있다. 백합처럼 시들어간 아사코는, 말하자면 제 자식의 딱지에 연필로 표시를 하는 구보의 옛사랑 누나처럼 그녀 스스로 우려낸 모습일 수 있고, 이것은 선생과 인연이 되어 뾰족집에서 같이 살았을 때도 그대로 등장했을 수 있다.


--- ** --- ** ---


신 포도 우화의 교훈은 '손에 넣지 못하는 것은 흔히 폄하된다'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 우화를 사랑에 적용하면, 사람들은 반대로 생각을 하게 되는 모양이다. '단 포도 우화'라고나 할까. 이루어지지 않은 사랑은 왠지 훨씬 아름다울 것 같고 훨씬 소망스러울 것 같다. 저 포도는 너무 높아 내 손이 닿지 않았어. 틀림없이 맛있고 단 포도였을 거야.

하지만 상실은 당장은 아프더라도 궁극으로는 다행일 수도 있다. 단 포도라고 여겼던 것은 사실 신 포도인지도 모르니까. 목숨 걸고 좇았던 것들도 시간이 지나면 늦가을날 아침 안개만큼이나 덧없는 것이었음을 깨닫게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게 살다보면 그냥 또 살아진다.

알면서도 안 되니까 사람이고 사랑이긴 하지만.


※ 이미지: Illustration by Harrison Weir in Three Hundred Aesop's Fables by George Fyler Townsend, 1867.



Advertisement


 

1 2 3 4 5 6 7 8 9 10 다음



Adsense

Adsense2

구글 애널리틱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