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지는 내리고! 치마는 올리고! 섞일雜 끓일湯 (Others)

송년회 시즌입니다.

"김대리, 건배사 좀 해봐"… 송년회가 두려운 직장인

기사에 나온 '직장인이 송년회가 두려운' 이유는 두 가지다. 식당 예약하는 일이 만만치 않고, 또 상사 마음에 드는 건배사를 준비해야 되기 때문이다.

자아 실현은 둘째치고 생계 유지를 위해 직장 다니면서, 참 여러 가지 해야 한다.

조직 생활에서는 상호 소통, 화합, 단결 같은 것이 중요한 요소이고, 또 누군가는 조직이 벌이는 일을 돌보아야 하지만, 그런 일을 구성원의 일부인 하급 직원만이 당연한 듯 감당해야 하는 것은 공정하지 않다. 얼마 전 화제가 되었던 검찰 조직의 '밥 총무' 사례도 그렇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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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배사는 두 가지 형태다. 길게 주저리주저리 하는 축사형이 있고, 단순명료하게 하는 구호형이 있다. 구호 건배사의 경우 '위하여!' 처럼 아무 데나 갖다 붙여도 덕담이 되고 그래서 두루두루 오랫동안 애용되어 온 범용형이 있는가 하면 '진달래!' '사이다!' 같은 축약형도 있다.

이런 유치한 걸 왜 하나 싶은 사람도 있고, 어쨌든 술자리에서 분위기를 북돋우는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하겠다는 사람을 말리긴 어렵다. 특히 상급자라면 말이다. 좋든싫든 건배사는 끈질기게 유지된다.

그런데 말입니다.

축사형이든 구호형이든, 일차 목적은 모임 전체를 대상으로 하여 덕담을 하고 분위기를 띄우는 것이다. 따라서 이왕이면 재미있고 독특한 내용을 통해 눈길을 끌고 공감을 얻어내려 한다. 그러다 보니 오바가 벌어지고 삑사리가 발생한다.

"바지는 내리고! 치마는 올리고!"

한 친구가 식당 옆자리에서 회식을 하는 모임으로부터 들었다고 한다. 요즘 세상에 저런 위험한 말을 할 수 있을까 의아해했는데, 나중에 인터넷으로 찾아보니 의외로 자주 쓰이는 건배사인 모양이다.




이 구호는 대개 '물가는 내리고! 경제는 올리고! 바지는 내리고! 치마는 올리고!' 와 같은 연원을 가지는 것 같다. 앞쪽은 그야말로 무난한 덕담이지만, 뒤는 발언자의 양식을 의심케 하는 내용이다. 우리 사회 곳곳에서 무딘 성적 감수성의 증표를 쉽게 찾을 수 있다.

나에게 이 이야기를 해 준 친구의 경우, 옆자리 모임에서 이런 건배사를 우렁차게 외친 사람은 중년 여성이었다는 것이다. 누가 해도 문제는 여전히 문제다.

얼마 전 송영무 국방장관이 공동경비구역 병사들과 식사를 하는 자리에서 "식사 전 얘기와 미니스커트는 짧으면 짧을수록 좋다고 한다"라고 농담을 했다가 구설에 올랐다. 그는 평생 그와 같은 농담을 해왔을 것이다. 이런 농담은 그 발언자를 화통하고 활달하며 서민적인 사람처럼 보이게 하니까.

하지만 그는 앞으로 비슷한 말을 하려 할 때면, 한 번 더 생각해 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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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의 한 친목 모임 송년회에서 뜨거운 이슈는 성희롱이었다. <타임>이 뽑은 '올해의 인물'에 성추행 피해를 드러낸 '침묵을 깬 사람들(the silence breakers)이 뽑혔을 정도니 놀라운 일도 아니다. 모임 참석자 대부분이 성희롱, 성추행을 당하기보다 범하기 쉬운 집단에 속해 있어서, 서로서로 앞으로 주의하고 행실을 경계하자는 다짐이 이어졌다.

한 친구 말에 따르면, 어떤 노교수는 최근 자기 연구실에 카메라 설치를 검토하고 있다고 한다. 정년퇴직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성 추문에 휘말려 막판에 패가망신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그런 피해의식이 뜬금없기는 하지만, 우리 사회 구성원들, 특히 힘과 권한이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 언행을 조심해야 한다는 인식이 생기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또다른 친구는 술자리를 최대한 피하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한 조사에 따르면 직장 내 성희롱의 70% 가까이가 회식, 워크숍 같은 행사, 개인적 술자리 등 술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으니, 근거 있는 주장이다.

이러한 말들을 들으면, 성희롱 가해자들과 같은 인구학적 집단에 속해 있는 사람들의 고민이 읽힌다. 전쟁을 겪은 세대가 평화와 화해 시대에 적응하기 어렵듯, 학위 논문을 쓸 때 표절을 당연하게 하던 세대가 엄정한 연구윤리 기준 앞에 당혹해 하듯, 부동산 투기를 재테크로 알던 세대가 윤리적인 비난 앞에서 곤혹스러워 하듯, 과거에는 문제되지 않았던 일들이 그야말로 치명적인 범죄가 되어 턱턱 들이밀어지는 상황에 곤란과 혼동을 겪고 있는 듯하다. 한쪽에서는 반성과 경계의 목소리가 높으면서도, 다른 쪽에서는 '치마는 올리고' 같은 건배사가 여전히 외쳐지는 것은 이러한 집단적, 세대적 혼동의 반영인 것 같다.

분명한 것은 이러한 사회적 반성의 과정을 통해 인간 세상이 한 단계 업그레이드되고 있다는 점이다. 인류 역사가 진보의 과정이라는 것을 믿지 않는 사람이라도 이런 점을 부정하기는 어렵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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