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쑥 튀어나오는 동물 섞일雜 끓일湯 (Others)

지난 6월, 싱가포르의 한 대학에서 열린 컨퍼런스에 갔을 때. 대형 강의실의 뒷쪽 빈 자리에 앉으려다 깜짝 놀랐다. 의자 위에 낯선 무언가가 있어서, 막 내려놓으려던 엉덩이를 급히 멈추고 살펴보았더니 이런 것이었다:




동남아에서는 흔하게 보게 되는 도마뱀이지만, 이런 곳에서까지 만날 줄은 몰랐다. 멋진 AV 기기로 가득 찬 현대적인 강의실의 어느 구석에서 살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길을 잃어 여기까지 들어왔나. 도마뱀은 저렇게 의자에 붙어서 나랑 잠시 숨바꼭질을 하다가 마술처럼 순식간에 사라졌다. 뻔히 보고 있었는데도 어디로 사라졌는지 알 수 없었다.

한국에도 도마뱀이 있다. 사람의 영역까지 들어오는 일은 드물어서, 들에 나가야 볼 수 있다:




7월에 어머니를 모시고 파주 마장호수에 다녀오던 길에 주차장에서 만난 도마뱀이다. 꼬리가 아주 길어서, 동남아 도마뱀보다 좀더 원초적인 느낌이 든다. 위협을 느끼면 자르고 도망가는 바로 그 꼬리다. 꼬리 길이는 다르지만 손가락, 발가락 섬세한 양은 양자가 흡사하다. 이 도마뱀은 어릴 때 양평의 중앙선 기찻길에서 많이 보았다. 아주 오랜만이다.

6월에 사무실에서 청평으로 엠티를 갔을 때는, 숙소의 기둥에 붙은 사슴벌레를 만났다:




집게 때문에 위협적으로 보이지만 느리고 순한 곤충이다(라고 나는 기억하지만, 실제로는 좀 사나운 성격이라고 한다). 시골에서 초등학교 다닐 때, 산길 들길을 거쳐 오는 동무들이 사슴벌레를 잡아서 필통이나 작은 성냥곽에 넣어오곤 했다. 우리는 얘들을 책상 위에 올려두고 서로 싸움을 붙였는데, 집게를 벌리며 싸우는 시늉은 내면서도 잘 싸우지 않았다.

그래도 덩치가 크고 집게가 우람한 놈이 인기였으므로, 우리는 그런 놈을 잡기 위해 떡갈나무나 상수리나무 밑동에 설탕물을 발라두곤 했다.

며칠 전 저녁에는 교대역 근처 한 가게로 날아와 유리문에 머리를 '퉁' 부딪치고 떨어진 매미를 보았다:




신라시대 솔거의 노송은 그 극사실적인 완성도 때문에 새들을 곤란케 하였다고 한다. 대량 생산되는 현대의 유리가 솔거의 그림과 비슷한 역할을 한다. 매미는 부딪친 충격 때문인지 아니면 지상에서 보내는 날이 다 차서인지, 상태는 썩 좋지 않았다. 우화(羽化)는 이미 하였으니 이제 등선(登仙)할 차례다.

오늘 하루 동안 내가 본, 사람 이외의 동물은 무엇이 있나. 별로, 혹은 전혀 없다. 도시에서의 삶은 이 땅이 인간과 크고작은 동물이 공존하는 곳이란 생각을 잊게 만든다. 인간들만으로도 충분히 동물적이고 짐승적이니 따로 동물이며 벌레가 필요없는지도 모른다.

그러다 이렇게 갑자기 조우하게 되면, 우리가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된다.

그래도 불쑥 만난 놈들이 바퀴가 아니어서 다행이다. 동물 차별이 되어서 좀 미안하지만, 니들은 그냥 계속 안 보였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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