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하동문 말씀言 말씀語 (Words)



어릴 때부터 불만이었다. 사실 그때는 무슨 뜻인지도 몰랐다. 싫다는 느낌만은 분명했다.

초등학교를 다니다 보면 어쩌다 상을 받을 때가 있다. 여러 사람이 함께 그럴 때도 있다. 그때마다 나는 이름이 앞쪽에 불리기를 바랐다. 보통 중요한 상을 먼저 준다. 하지만 상 욕심이 있어서 그런 건 아니다. 그냥 도매금 취급을 받는 게 싫었다.

상이 똑같다면 가나다 순이다. 나는 허씨다. 중요한 상을 받지 않는 한, 나는 늘 뒤쪽이다. 뒤쪽의 나는 언제나 '이하동문'이다. 내가 상을 받는 이유는 이하동문 때문이다. 개근상도, 글짓기상도, 미술상도, 선행상도 모두 상을 주는 이유는 이하동문이다. 그게 무슨 말이기에 이렇게 만상(萬賞)통치약으로 쓰이나? 모르겠다. 하지만 불만스러웠다. 어째서 내가 상을 받는 자랑스러운 이유를 저 낯선 말로 뭉개버린단 말인가. 어린 마음에도 참 듣기 싫었다. 나의 꿈 같은 것이 흔해빠진 것으로 취급되는 느낌.

나이가 들고 나니 상을 받을 일은 별로 없다. 대신 상을 줄 일이 가끔 생긴다. 이하동문이 아주 오랜만에 다시 나오게 될 판이다.

어느 시상식 자리에서 사회를 봤다. 상장의 내용을 대독하는 것도 내 일이었다. 십여 명 상을 주는 자리. 나는 수상자 하나하나마다 상장 내용을 다 읽어주었다. 식장이 술렁거렸다. 시상식의 흔한 관례도 모르는 놈이 사회를 보다니. 급기야 한 동료가 쪽지를 건네왔다. '이하동문'을 쓰라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마지막 사람까지 상장 내용을 다 읽어주었다. 내가 싫어하는 말은 쓰기 싫다. 받을 때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주는 입장에서는 다르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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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동문, 배나무 아래에서 함께 자라난 어릴 적 친구(梨下同門)라는 아름다운 뜻을 가진 것 같다. 실은 아주 건조하고 사무적인 말이다. 以下同文, '아래는 같은 문장'이라는 뜻이다. 반복되는 내용을 생략할 때 쓰는 말이다.

시상식에서 이 말은 전적으로 상을 주는 사람의 관점을 반영한다. 수상자 개개인이 중요한 게 아니다. 자기네가 상을 준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따라서 구체적인 내용은 생략하고 넘어가도 상관없다. 시상식이라는 형식적인 자리에서는 진실한 감정 교류 같은 것은 원래 존재하지 않으니까?

세상 모든 시상식의 주인공은 주는 사람이 아니라 받는 사람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한 수상자는 단지 여럿 중의 하나가 아니라 개별적 존재다. 그가 상을 받는 이유는 여럿 중의 하나라서가 아니라 개별적으로 수행한 어떤 행위 때문이다. 단체상이 아니라면 말이다. 상을 줄 만큼 치하되는 개인의 행위다. 오로지 진행 편의를 위해 도매금으로 휙휙 넘어가도 좋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수상자마다 그가 받을 상장의 내용을 한 자도 빼지 않고 반복해서 읽었다. 하지만 관행의 압력이 느껴지긴 했다. 쪽지까지 받았으니 말이다. 말이 빨라지는 고질병이 나왔다. 또다른 형식적인 시상식이 되고 있었다.

지금도 반성한다. 꿋꿋하게 한 자 한 자, 정성들여 읽어줄 것을. 그렇게 그들의 노력과 성과를 진지하게 기리어 줄 것을. 이후로 누구도 나에게 시상식 사회를 맡기지 않더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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