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 싼 종이에서 향내 나고 섞일雜 끓일湯 (Others)

향 싼 종이에서 향내 나고 생선 꿴 새끼줄에서 생선 냄새 난다는 말이 있다. <법구비유경> 제10장 쌍요품(雙要品)에 나온다.




부처가 번민하는 신참 비구들과 함께 길을 가다가 길에서 낡은 종이를 발견하고 물으니, 비구들은 종이에서 향기가 나니 향을 싼 종이였을 것이라고 말한다. 이번에는 새끼줄이 있어서 다시 물으니, 비구들은 비린내가 나기 때문에 생선을 묶었던 줄이었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자 부처님은 비구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모든 것은 본래 깨끗하고 정결하지만 인연에 따라 죄와 복을 얻는다. 착한 사람을 가까이 하면 스스로 착해지고, 어리석은 사람을 친구로 삼으면 재앙과 죄가 따른다. 마치 저 종이가 향을 가까이 하여 향내가 나고, 저 새끼줄이 생선을 꿰어 비린내가 나는 것과 같다. 결국 사람은 가까이 있는 것에 조금씩 물들어 가지만 스스로 그렇게 되는 것을 모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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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유경'의 비유란 직유, 은유 할 때의 그 비유다. <법구경>이 근본적으로 게송을 모아둔 시집이라서 쉽게 이해되지 않으므로 구체적인 사례를 비유로 들어 편찬한 책이라는 뜻이다.

나는 향 싼 종이에서 향내 난다는 말을 체험중이다. 비유가 아니라 글자 그대로다.

정신을 맑게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되리라 싶어 향을 샀다. 인도산 머스크향이다. 택배 상자를 열 때부터 은은한 향기가 났고, 향 봉지를 터뜨리자마자 좀더 강하게 퍼졌다. 아직 향을 피우기 전인데도 내 공간은 향내로 가득 찼다.

향 싼 종이에서 향내 나고, 향 담아 온 택배 상자에서도 향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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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구(비유)경>이 하고자 하는 말은 인연(즉 주변 사람들)에 따라 사람의 성정과 운명이 좌우된다는 것인데, 그것이 자신도 모르는 점진적 과정을 통해 그렇게 된다고 한 점이 인상적이다. 말하자면 자신은 아니라고 여기더라도 실제로는 그렇게 되고 있다는 뜻일 게다.

이러한 경계는 사상의 가름을 넘어 여러 문화에서 공통적으로 등장한다. 예컨대 <사자소학(四字小學)>에서도 우리가 잘 아는 말을 통해 똑같은 교훈을 일러준다.


근묵자흑 근주자적 거필택린 취필유덕
近墨者黑 近朱者赤 居必擇隣 就必有德

먹을 가까이 하는 이는 검어질 것이요, 인주를 가까이 하는 자는 붉어질 것이니
살 곳을 택할 때는 이웃을 살펴야 하며, 나아갈 때는 덕이 있는 이를 향하여야 한다.


<성경>에서도 "지혜로운 자와 동행하면 지혜를 얻고 미련한 자와 사귀면 해를 받느니라"(잠언 13:20)라는 부분이 있다. 영어 속담으로는 "If you lie down with dogs, you get up with fleas"라고 한다. 개와 함께 뒹굴면 벼룩을 덮어쓸 각오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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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선 꿴 새끼에서 비린내가 나는 것, 혹은 먹을 가까이 할 때 검어지는 것은 접촉으로 인해 냄새 분자나 색소 분자가 전이되는 자연스러운 현상이지만, 사람의 경우는 그렇게 간단하지는 않다. 새끼줄은 비린내를 싫어하거나 불편해 하지 않지만, 사람이란 옳지 못한 일, 난잡한 일, 악행을 대체로 경계하게 마련이기 때문이다(모든 사람이 그런 건 아니다).

사람이 비린내를 획득하는 과정은 용인과 역치의 매커니즘으로 이해할 수 있을 듯하다. 비린내를 처음 맡을 때는 역겹고 메스껍겠지만, 그런 냄새를 풍기는 사람과 함께 있다 보면 코가 점점 마비되어 그 냄새를 용인하게 되고, 더 강력한 비린내가 풍겨오기 전까지는 심상해진다. 말하자면 부정적인 것에 익숙해지면서 용인되는 폭이 커지고 윤리적 역치도 계속 상승한다고 하겠다.

거짓말을 밥먹듯 하는 사람을 친구로 두고 멀리 하지 않으면, 그런 거짓말에 상처를 받으면서도 자신도 거짓말의 비윤리성에 둔감해지고, 어느 순간부터 거짓말쯤 별것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폭력도 비슷할 텐데, 이를테면 가정 폭력을 겪으며 자란 사람이 가정 폭력을 반복하는 것도 똑같은 맥락이겠다.

해야 할 일을 팽개치고 나태한 사람을 친구로 두고 멀리 하지 않으면, 처음에는 한심하게 보이다가도 어느 순간부터 그런 것도 한 판의 인생이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하고, 이윽고 그러한 태도를 학습하고 동화되게 된다.

인간이 이렇게 비린내를 체득하는 과정에서 특징적인 것은 인간적인 선호가 작용한다는 점일 듯하다. 누구에게 호감을 갖기 시작하면, 그게 생선이든 먹이든 크게 중요해지지 않고 결국 자신이 비린내나 먹물을 덮어쓰는 일을 자초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스스로 그렇게 되는 것을 모를 뿐이다".

인사(人事)가 만사(萬事)인 것은 장관들을 임명해야 하는 대통령 당선자에게만 해당하는 말은 아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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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들의 조롱과 수많은 반증에도 불구하고 나는 인간이 본질적으로 선하다는 생각을 꺾지 않았다. 환경과 경험이 선한 인간들을 악하게도 만들 뿐이라고 믿어왔다. 부처 말로 하자면 "모든 것은 본래 깨끗하고 정결하지만 인연에 따라 죄와 복을 얻는다".

이런 생각은 변함이 없다. 그러나 말이다.

애나 어른이나 그런 환경과 경험이 일관적으로 부정적이어서, 향이란 눈씻고 찾아볼 수 없고 철 지난 어판장 구석에 내다버린 생선마냥 더럽고 냄새나는 것들로만 둘러쳐진 세상이라면, 그래서 환경과 경험이란 것이 늘 선한 인간들을 패악하게만 만든다면, 인간이 본질적으로 선하다는 믿음은 도대체 무슨 가치가 있는가. 현실에서 아무런 의미나 구체적 효용 없이, 그저 인간이라는 동물에 대한 환상을 갖고 그런 동물들을 믿었다가 손해나 보는 호구의 이데올로기가 될 뿐이 아닌가.

성선설을 입증하기 위해서 사회 정의부터 무자비하게 구현해야 하는 세태가 난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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