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큐베이터 학살 사건의 교훈 중매媒 몸體 (Media)

취재원이 의도적으로 잘못된 정보를 흘리고, 이것이 언론에서 확대 재생산되면서 사실로 굳어져가는 사례는 국내외 언론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다. 이 경우 가장 염려해야 할 것은, 이같은 잘못된 정보가 언론을 거쳐 대중의 의식에 고착되는 것이다. 한 번 달라붙은 잘못된 정보는 따로 검증될 기회도 없이 대중 사이를 떠돌면서 사이비 사실로서 굳어진다. 그리고, 이렇게 잘못된 정보를 흘린 쪽은 대중의 왜곡된 의식을 활용하여 이루고자 하는 목적을 달성한다. 나중에 잘못이 밝혀져 언론에서 정정 보도를 내더라도 이미 게임은 끝나 있는 경우가 다반사다. 과거는 돌이킬 수 없다.




1990년 이라크가 쿠웨이트를 침공했을 때다. 유전이라는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서 벌어진 이 전쟁에 개입하기 위한 명분을 찾고 있던 부시(아버지) 행정부에 무릎을 칠 만한 일이 벌어졌다. 10월10일, 나이라흐(Nayirah) 라는 15살짜리 쿠웨이트 소녀가 미국 의회 인권소위원회에 나타나 다음과 같은 충격적인 증언을 한 것이다:

"저는 지금 막 쿠웨이트를 빠져나왔습니다. 쿠웨이트에 있는 동안 저는 제가 자원봉사자로 일하고 있던 알 아단 산부인과병원에 이라크 군인들이 총을 들고 병원으로 난입하는 것을 목격했습니다. 그들은 인큐베이터 안에 있던 미숙아들을 꺼내 병원 바닥에 내던진 뒤 인큐베이터들을 가져갔습니다. 아무런 보호 없이 차가운 바닥에 누워 있던 갓난아이들은 죽어가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너무나 무서웠습니다. 저는 이 아이들처럼 똑같은 미숙아로 태어난 제 조카도 이렇게 죽어가고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몸이 부들부들 떨렸습니다."

혹시 이 이야기를 아직 기억하고 계신 분이 있는지 모르겠다. 쿠웨이트를 침공한 후세인의 병사들이 인큐베이터의 미숙아 갓난아이들까지 참혹하게 죽이는 만행을 저질렀다는 이야기.

나이라흐의 증언이 끝난 뒤, 인권소위에 참석하고 있었던 하원의원 존 포터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하원에 인권소위가 생긴 지 8년째입니다. 그동안 우리는 세계 여러 곳에서 자행되는 인권 탄압과 비인간적인 행위에 대해 수많은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러나 오늘 이 이야기처럼 참혹하고 잔인하며 끔찍한 예는 일찌기 없었습니다. 전세계 모든 나라가 나서서 이런 잔악무도한 일을 자행하고 있는 이라크를 응징하고 쿠웨이트 국민을 구하기 위해 가능한 모든 일을 해야 할 때입니다."

10월16일 CNN의 "래리 킹 라이브" 에 나온 주미 쿠웨이트 대사는 의회에서 증언한 소녀 나이라흐의 예를 들며, 이라크가 쿠웨이트에서 저지르고 있는 잔혹 행위에 대해 수많은 증인들이 있다고 강조했다.

부시는 처음 이 이야기에 대해서 신뢰할만한 증언이 아니라고 조심스럽게 이야기했으나, 며칠 뒤 태도를 바꿔서 이를 기정사실화했다. 뿐만 아니라, 기회 있을 때마다 이 사례를 단골로 써먹으며 대중을 자극했다. 이 인큐베이터 학살 이야기는 미국 정부에게 매우 중요한 사례였는데, 이를 통해 '후세인=히틀러' 라는 등식을 대중에게 설득할 수 있었고, 미국이 이라크에 개입하는 것은 석유때문이 아니라 인본주의적인 동기라는 점도 아울러 선전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이라흐의 생생한 증언은 일반 미국인뿐만 아니라 상하원 의원들까지 크게 자극했다. 이라크 침공에 부정적이었던 많은 의원들이 찬성으로 돌아섰다. 미국 상원은 52대 47로 부시의 이라크 침공을 승인했다. 적어도 7명의 상원의원이 이 인큐베이터 사건을 투표에 중요한 요소로 활용한 것으로 분석됐다. 이 증언이 없었다면 이라크 개전안은 상원에서 부결됐을지도 모른다는 말이다. 미국은 이라크에 폭격을 시작했으며, 수많은 희생을 남긴 채 전쟁은 미국의 일방적인 승리로 끝났다.

걸프전이 끝나고 나서 얼마 뒤, 충격적인 사실이 폭로되었다. 쿠웨이트를 탈출한 한 소녀의 생생한 증언으로 시작되었으며, 미국의 이라크 침공을 정당화하는 상징으로 작용했던 인큐베이터 학살 사건은 새빨간 거짓말이었음이 드러났던 것이다. <하퍼스 매거진> 의 존 맥아더에 의해 밝혀진 바에 따르면, 당시 의회에서 증언을 했던 15세 소녀 나이라흐는 다름아닌 "래리 킹 라이브" 에 나왔던 주미 쿠웨이트 대사의 딸이었으며, 쿠웨이트 왕족의 한 명이었던 것이다. 말하자면 이라크의 침공으로 정권이 흔들리게 된 쿠웨이트 정부가 거짓말을 지어내어 미국에 퍼뜨림으로써 미국의 개입을 이끌어내려 했고, 이것이 미국의 이익과 딱 맞아떨어지는 바람에, 거짓말은 아무런 의심 없이 사실로 굳어져 사이비 진실이 되어버린 것이다.

애초에 거짓 증언이 나왔을 때, 소문을 옮기는 증언들만을 토대로 하여 쿠웨이트의 미숙아 312명이 살해당했다고 성급하게 발표했던 국제사면위원회는 논란이 일자 자체 조사에 들어갔다. 곧 위원회는 이라크군에 의해 인큐베이터에서 쫓겨난 갓난아이는 한 명도 없었음을 확인했다. 사면위원회는 이같은 재조사를 근거로 하여 자기네 발표를 철회하며 사과했다.

전쟁이 끝난 1991년 3월15일, ABC 방송의 존 마틴 기자는 인큐베이터 학살 사건이 벌어졌다는 쿠웨이트의 알 아단 산부인과병원을 직접 찾아가 관계자들과 인터뷰한 뒤, 그 이야기는 거짓말이었음이 확인되었다고 보도했다. 병원에서 근무하던 직원들은 나이라흐를 본 적조차 없으며, 인큐베이터 사건 같은 것은 들어보지도 못했다고 증언했다. 뒤이어 언론들은 앞다투어 이 전대미문의 사기의 진상을 보도했다.

쿠웨이트를 탈출한 왕족과 고위층에 고용되어, 이 사기 사건을 미국 정부와 언론에 전달하여 이슈화하는 데 앞장섰던 워싱턴의 홍보 회사인 '힐 앤 놀튼' 의 관계자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는 지금도 나이라흐를 믿어요. 그녀를 믿지 않을 이유가 없거든요. 내가 처음에 나이라흐를 만나 이야기를 나눌 때, 그녀는 조금도 의심할 바 없이 진실을 말하는 것처럼 보였어요."

그가 나이라흐의 증언의 사실 여부를 판단하기 위해 기대고 있는 것은 정말 그런 일이 벌어졌나 아닌가가 아니라 관계자(여기서는 나이라흐)에 대한 인상이었다. '거짓말할 사람처럼 보이지 않는다' 는 것과 '그가 실제로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는 것은 전혀 다른 말이다. 오히려, 거짓말 잘하는 사람일수록 그 속성상 (by definition) 거짓말은 절대 하지 않을 사람처럼 보이게 마련이다.

나이라흐의 충격적 증언이 나온 뒤, 미국 언론은 이를 검증할 수 있었던 수많은 기회를 모두 외면한 채, 그 증언을 기정사실화하여 보도하는 데 급급했다. 하다못해 나이라흐의 가족관계만 조사해 보았더라도 매우 의심스러운 점을 발견했을 것이다. 이러한 태만의 결과는 컸다. 학자들은, 나이라흐의 거짓말에 놀아나 흥분하고 분노한 언론과 대중의 비이성적인 반응이 아버지 부시의 이라크 침공을 가능케 한 중요한 요소였다고 분석하고 있다.

인큐베이터 학살 사건의 진상과 거짓 증언을 최초로 폭로한 <하퍼스 매거진> 의 존 맥아더는 이 보도로 1993년에 Free Press에서 수여하는 멘켄 언론상을 수상했다.


※ 그림: Wiley Miller

 

덧글

  • 덧말제이 2005/12/18 07:50 # 답글

    에효...
  • deulpul 2005/12/18 07:59 # 답글

    정말 바쁘신가보네요. 일요일 아침인데 일찌감치 나오셨군요.
  • 마르스 2005/12/18 10:38 # 답글

    영화 <웩더독>이 생각나네요.
  • 쉰바람 2005/12/18 13:18 # 삭제 답글

    항상 좋은 글 잘 보고 있습니다.
  • Charlie 2005/12/18 18:51 # 답글

    그래서인지, 이젠 어떤 뉴스의 진실성에 대해, 무엇을 믿어야 할것인가, 도데체 어떻게 그것이 진실인지 아닌지, 주어진 상황만 가지고 판단하기가 힘들어 집니다. 그래서 음모론이 창궐하는지도 모르지요.. 빨리 긴 스텝롤과 NG모음이 다 끝나고, 다음엔 좀 더 희망적인 작품이 나왔으면..합니다.
  • deulpul 2005/12/20 12:49 # 답글

    마르스: 아, 그 꼬리가 개를 흔들던 영화 말씀이죠? 하하-

    쉰바람: 고맙습니다.

    Charlie: 꼭같은 마음입니다. 역시, 주어진 것만 받아먹고 그것밖에는 보여주지 못하는 언론 탓이 큰 것 같네요. 예전엔 정권의 압력 때문에 기사를 마음대로 쓸 수 없어 그 행간을 읽어야 했는데, 이제는 언론사의 의도까지 짐작해가며 보고 읽어야 하는 판이 됐군요. 어쨌든 그걸 아는 국민들이 늘어가고 있으니 조금씩 달라지지 않을까 싶기도 합니다.
  • issuelit 2005/12/22 01:26 # 답글

    몰래 몰래 좋은글만 보다가 댓글 남겨봅니다.
  • deulpul 2005/12/23 06:10 # 답글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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