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심한 연구들 갈硏 궁구할究 (Study)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으며, 이것은 공부하는 사람에게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할 일이 많다보니 쓸데없는, 혹은 쓸 데가 적은 일도 하는 모양이다. 예전에 <월 스트리트 저널> 과학담당 기자가, 대체 이런 공부는 왜 하는지 알 수 없다며 비꼰 공부들이다. 당당히 학술 저널들에 실리거나 학회에서 발표된 논문들인데, 대체로 연구의 결과 찾아낸 과학적 발견(finding) 이라는 게 상식의 범주를 뛰어넘지 못하는 것들이다. 그냥 읽다보면 좋은 말인 것 같지만, 자세히 보면 너무나 당연한 것을 다시 입증한 것이어서, 좀 허탈한 연구들이다. 따라서 저널리스트의 시각에서 보면 그런 걸 왜 하는지 이해가 안되는 모양이다.

예컨대 Journal of Economic Psychology 2005년 4월호에 실린 한 연구에 따르면, 충분한 준비와 검토를 거쳐서 직업을 택한 사람들이, 성급하게 되는대로 직업을 선택한 사람보다 직업 만족도가 훨씬 높았다고 한다. 또한 미래의 결과를 신중하게 고려하는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훨씬 더 직장을 선택하는데 심사숙고했단다. 참 놀라운 발견이다.

Archives of Internal Medicine 2005년 1월호에 실린 연구에 따르면, 자기가 복용하는 약의 부작용을 의사에게 호소한 환자들의 처방은 바뀌는 경우가 많았으나, 조용히 입닥치고 있는 환자들의 처방은 별로 바뀌지 않았다고 한다.

인간공학을 연구하는 한 학자는 손이 시려울수록 오타가 많이 난다는 놀라운 발견을 했다. 이 학자는 실험 대상자로 하여금 다양한 온도 상태에서 타자를 치게 한 뒤 발생한 타이핑 실수를 분석해 이같은 결론을 내리고, "직원이 추우면 사무 능률이 오르지 않음이 증명되었습니다" 라고 했다고 한다. 이 연구는 2004년 뉴욕에서 열린 인간공학학회 연례 학술대회에서 발표됐다.

흡연은 건강한 사람보다 천식 같은 기관지병을 갖고 있는 사람에게 더 해롭다는 놀라운 발견도 나왔다. 또 미국심장학회의 학술대회에서 발표된 논문 중에는 텔레비전 시청, 컴퓨터 게임, 인터넷 서핑 등을 즐기는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심장에 좋은 활동을 현저히 덜 하는 것으로 입증됐다는 연구도 있었다고 한다. 모두 그럴듯한 말이지만, 그 내용을 가만히 생각해보면 동어반복 같은 결론임을 알 수 있다.

WSJ 이 그 중 압권으로 들고 있는 연구는 '멀리 떨어진 사람일수록 눈으로 식별하기 어렵다'는 결론이 나온 Psychonomic Bulletin & Review 2월호의 논문. 가까이 있는 사람일수록 얼굴을 알아보기가 쉽고, 일정한 거리 이상 떨어지게 되면 알아보기 어렵다는 것을 발견했다고 한다. 너무 황당해서 논문을 찾아보니, 실제로는 조금 더 복잡하다. 논문 제목은 '왜 멀리 있는 사람보다 가까이 있는 사람을 알아보기가 쉬운가' 였는데, 제목 그대로 멀리 있는 사람의 얼굴을 알아보기 어려운 이유를 복잡한 이론과 실험으로 증명했다.

과학의 한 출발점이 상식이고, 상식으로 통용되는 것을 다시 검증하는 것도 과학의 중요한 임무이긴 하다. 그러나 이런 건 좀 심심하지 않은가. 어떨 때 보면 학술 논문이란, 쉬운 것을 일부러 어렵게 꼬아 학자들끼리만 만들고 즐기는 그들만의 리그가 아닌가 싶을 때도 있다.

(혹시 WSJ 이 저 논문들을 지나치게 가벼이 평가한 것이라면 알려주십시오.)


[덧붙임]

이 기사에 대한 좀더 진지한 논의는 아래 트랙백으로 달린 덧글제이님의 글에서 찾아주시기 바랍니다.

 

덧글

  • 2005/12/21 03:45 # 삭제 답글

    다른 저널들은 이름도 들어본 적이 없으니 그렇다치고 마지막에 PBB는 유명한 저널인데 설마 그렇게까지 터무니없는 논문이 실렸을까요. 하긴, 사이언스에 실리는 논문도 저 모양이니... --; 찾아서 읽어보고 트랙백 한 번 쏴보겠습니다. ^^
  • A-Typical 2005/12/21 07:27 # 답글

    제 친구가 "홍삼이 붕어의 간장에 미치는 영향"이라는 논문을 보고 붕어가 홍삼을 먹나 궁금해 하던데.. 이와는 좀 다른 방향에서 심심한 연구들도 많이 있었군요. ^^
  • Charlie 2005/12/21 07:44 # 답글

    월스트릿저널은 전체적으로 냉소적인 분위기가 돌긴 하더군요. 어디선가의 연구에서는 거미에게 각종 마약을 노출시킨 뒤에 어떤 모양의 거미줄을 치는가..에 대한 결과를 발표한적도 있었습니다만.. 가끔씩은 '당연한' 일들이 '왜' 일어나는가...가 중요한 경우도 있지요. (저 위의 예들과는 좀 거리가 있는 '당연한' 일들이긴 합니다.. :)
  • polarnara 2005/12/21 08:03 # 삭제 답글

    너무 당연해보이는 것도 막상 따지고보면 상식을 뒤엎는 결과가 나올 수도 있기 때문에 저런 연구들을 해보게되는 것 아닐까요. 상식이라는 단어는 근거없이 사용하기엔 너무 위험하잖아요. 뭐, 하지만 그렇다고해도 마지막 연구는 좀 압권이군요..(..)
  • deulpul 2005/12/21 09:23 # 답글

    귤: 하하- 터무니없다기보다, 연구 주제가 좀 흔한 내용이라서 WSJ에서 그렇게 본 모양입니다. 기회 되시면 좀 자세히 보고 알려주시면 고맙겠습니다-.

    A-Typical: 흐음... 대체 그건 왜 중요할까요. 홍삼을 먹은 붕어... 건강식품으로 붕어에게 홍삼을 먹인 뒤 그 붕어를 다려먹는다. 그런데 홍삼은 붕어의 체내에 들어가 부작용을 일으킨다... 이렇게 되는 걸까요?

    Charlie: 아, 그렇죠. 사람의 호기심은 무한하다는 쪽으로 이해해도 되겠네요, 정말.

    polarnara: 동의합니다. 다 상식이라고 믿고 살아도 한번씩 뒤집어볼 필요는 언제든지 있죠. 음... 마지막 연구는 아무래도 저 신문에서 너무 폄하한 것 같기도 하군요.
  • capcold 2005/12/21 14:21 # 삭제 답글

    !@#... 마지막 논문인 "왜 멀리 있는 얼굴은 알아보기 힘든 것인가"의 경우, 좀 오해를 살만 합니다. 논문의 핵심은 지각 심리 이론 중 하나인 "공간 주파수론"의 정당성을 증명하려는 것이지, 얼굴 알아보기 힘든 현상 자체를 이야기하려는 것이 아니니까요. 멀리 떨어져 있는 얼굴을 잘 알아보기 힘든 것은 단순히 작아서가 아니라, 공간 주파수의 디테일이 변하기 때문이라는 설명. 마치, "왜 하늘이 파란지 설명해주마" 하면서 빛의 굴절과 주파수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하늘이 파란 게 새롭단 말이냐?" 라고 조롱하는 격입니다.
  • 2005/12/21 15:44 # 삭제 답글

    오늘 아침에 프린트해서 대충 읽어봤는데 capcold님 말씀하신 내용이 맞습니다. 덧말제이님께 여쭤보면 자세한 해설을 해주시지 않을까요. ^^
  • 메르키제데크 2005/12/21 16:16 # 답글

    아. 그런거였군요.. 확실히 암흑물질의 구성을 밝히는 내용도 상식면에서 들고 보자면 우주가 왜 까만가? 까만색이니까 까맣지. 라고 받아치는 것도 비슷한걸까요?
  • 쉰바람 2005/12/22 02:49 # 삭제 답글

    저 기사 읽어 보려고 가봤더니 역시나 유료군요. -_-
  • issuelit 2005/12/22 21:06 # 답글

    읽다보니 웃음이 저절로 나오네요 하하하하;
  • deulpul 2005/12/23 05:54 # 답글

    capcold: 네, 역시 기자가 제목만 보고 과소평가한 모양이군요. 아니면 저 연구를 한 연구자와 앙숙인 다른 학자가 기자에게 왜곡된 제보 편지를 보냈든지 (음모론이 난무하는 세상). 할 수만 있으면 WSJ 기자에게 항의 편지라도 보내야겠어요, 하하.

    귤: 네, 역시 덧글제이님께서 구체적인 사항보다 폭넓게 봐야 하는 점을 지적해 주셨네요.

    메르키제데크: 비슷한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비과학적인 대응이란 건 메르키제데크님이 든 "까만색이니까 까맣지" 의 예에서 확연히 드러나는군요... 하하.

    쉰바람: 허탈한 링크 달아서 죄송합니다. 원하시면 전문 보내드려요~ 헷.

    issuelit: 아아 요즘은 왜이렇게 웃으면서 울고있다의 상황이 많은 걸까요...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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