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 1년부터 영어 교육을 한다네

5년 내 전 중학교에 원어민 영어교사

올해부터 5년간에 걸쳐 추진할 '국가인적자원 개발 기본계획' 에 따르면, 각급학교에서 영어 교육을 대폭 강화하기로 했다고 한다. 그중 한 방안으로, 현재 초등 3학년부터 하고 있는 영어 수업을 1학년부터 하는 것으로 내릴 예정이란다. 이유는 유치원 때부터 사교육을 통해 영어를 배운 학생들이 3학년부터의 수업에 흥미를 잃는다는 것.

영어 수업을 3학년에서 1학년부터로 내리면 사교육 영어는 유치원에서 서너 살로 내려가겠지. 지금도 말 처음 배우는 코흘리개들에게 가나다라보다 ABCD를 먼저 가르치는 세상인데, 어떤 판이 벌어질 것인지는 뻔하지 않나.
1997년에 조기 영어 교육을 한답시고 초등학교에 영어 수업을 들여올 때, 왜 하필 3학년부터라고 선을 그었나. 최소한의 기초적인 우리말을 습득할 시간을 주고, 너무 어릴 때부터 영어 사교육이 과열될 것을 막자는 취지로 그런 것 아니냐. 정식 학교 교육으로 시행한다면 사교육에서는 그 몇 배로 난리가 날 테니 조심스럽게 접근할 수밖에 없었던 것 아니냐. 그런데, 이런 고려는 다 어디가고 그냥 처음부터 하겠단다.

97년 영어 조기 교육을 처음 시행할 때나, 98년 초 김대중대통령의 정권인수위가 이 정책을 재검토한다고 했을 때는 많은 찬반 토론이 벌어졌었다. 이제는 국가 의무 교육의 출발점에서부터 영어를 가르친다는 중요한 결정을 놓고도 아무런 토론도 없는 것 같다.

기껏해야, 기사에서 나오듯 "핀란드는 초등 3학년부터 영어 중심 수업을 하고 TV 프로그램의 절반 이상을 영어로 진행하는 덕분에 국민의 77%가 영어를 유창하게 구사한다. 이는 핀란드가 국가경쟁력 1위인 중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라는 헛소리 정도다. 전국민이 영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는 필리핀이나 영어가 공용어인 라이베리아 같은 나라는 왜 국가 경쟁력이 세계 1위가 못되는가? 영국은 뭐하고 있고?

많은 국민이 영어를 구사해 국가 경쟁력이 1위라는, 개가 풀 뜯어먹다 웃을 소리가 어디서 나왔나 교육부 자료를 찾아보니 다음과 같이 되어 있다:


마. 핀란드의 영어교육
○ 국가경쟁력
- 1인당 GDP 35,669불(‘04 기준)
- IMD 세계 경쟁력 평가에서 1위 차지
※ 지난 10년간 유럽 주요국들보다 상대적으로 높은 경제성장 실현, 고품질의 인력양성이 경제성장의 중요한 요인이었다는 평가를 받음(주OECD 한국대표부)
○ 종족구성 및 공용어
- 핀란드인 93%로 구성, 핀란드어와 스웨덴어 공용어
- 영어는 공용어는 아니나 상용어로 일상화되어 쓰이고 있음
○ 핀란드의 영어상용화 현황
- 폴리테크닉 149과정 중 24과정을 외국어로 제공
- TV 프로그램 절반이 영어이며, 외국 영화를 원어로 방영
- 국민의 77%가 영어 구사


즉, 교육부 자료는 많은 핀란드 국민이 영어를 할 줄 알고, 이는 핀란드의 경제 성장을 낳은 요인이라고 암시하는 구조로 되어 있다 (핀란드 국민이 쓰는 핀란드어/스웨덴어는 영어와 같은 유럽어족이다). 신문 기사는 이 암시를 넘겨받아서, '국민의 77%가 영어 구사' 를 국민의 77%가 영어를 유창하게 구사한다' 라고 변조해 강조한 뒤, 아예 이것이 핀란드가 국가 경쟁력 1위인 중요한 이유라고 재해석해 못박았다. 참 용감한 기사 쓰기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같은 논리라면 '핀란드인이 93%인 것이 핀란드가 국가 경쟁력 1위인 중요한 이유다' 라고 하지 말라는 법도 없다.

한편, 교육부 자료를 보니 말레이시아가 초등 1학년부터 영어 교육을 한 것은 (영국) 식민지 시절부터라고 한다. 이런 경우를 빼놓고는, 영어를 공용어로 쓰는 나라가 아니면서 (즉 영어가 국어가 아니면서), 제 나라 말도 채 제대로 배우지 못한 초등 1년 전부를 영어 교육시키는 나라는 교육부 자료를 봐도 하나도 없다. 그래. 식민지나 되어야 그러는 거다.

또 한편, 교육부 자료를 보면 외국의 영어 조기 교육 현황이랍시고 늘어놓은 나라 중에는 싱가포르며 홍콩도 들어 있다. 어이, 거기서 영어는 국어 과목이라고. 외국어가 아니라.

또또 한편, 모든 중학교에 영어 원어민 선생을 두겠다는데, 원어민이든 원시인이든 간에 제발 교육자로 쓸만한 넘들만 좀 데려다가 학교에 집어넣기 바란다. 영어만 씨부렁거린다고 다 교육자가 될 수 있는 건 아니란 말이다.

덧글

  • yser 2006/01/16 09:12 # 답글

    영어 조기 교육을 할게 아니라 올바른 국어 교육과 바른 예절부터 먼저 잘 가르쳤으면 좋겠네요. 영어를 빨리 배운다한들 그것이 정말 중요한 것일지. 님아 라던지 말도 안되는 언어를 쓰는 애들이 많은데 국어 교육을 차라리 조기 교육 했으면 할 정도입니다.

    국어를 제대로 알아야 외국어를 알 수 있는 법입니다. 외국어 먼저 배운다고 해서 국어를 잘 하는 것도 아니며, 국어 바탕 없는 외국어 배움이란 있을 수가 없죠. 참 뭔가 교육이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가네요.
  • 지아쿨 2006/01/16 11:03 # 답글

    영어가 뭔지...;;
  • 알바트로스K 2006/01/16 12:34 # 답글

    조선일보 투고에 복거일씨가 쌍수들고 환영하더군요...-.-
  • joybro 2006/01/16 12:44 # 답글

    2005년 후반부터 계속 느끼는건데
    기자들 단체로 논리교육부터 시켜야할듯 합니다.. 쩝
  • deulpul 2006/01/16 16:07 # 답글

    yser: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당연한 상식인데, 그냥 무조건 달리다보니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가는 것 같아요.

    지아쿨: 신이지요... 신.. 하하

    알바트로스K: 아직 살아계시는군요, 그 분.

    joybro: 네, 정말... 논리 교육과 더불어 윤리 교육도...
  • Charlie 2006/01/16 16:44 # 답글

    수학을 영어로만 가르치겠다는 야심찬 계획도 어딘가의 뉴스에서 들은듯 합니다만..(카더라 통신일 확율이 큽니다) 과연 국민의 90%가 영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는 날이 오면 과연 그중 한국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는 비율은 얼마일지 참 궁금합니다. 아니 뭐.. 지금 그 비율을 따진다고 해도 상당히 재미있는 결과가 나올듯..
  • 쉰바람 2006/01/16 19:16 # 삭제 답글

    중학교마다 원어민 교사라...양공주들 많이 생기겠군요... 허허허
  • deulpul 2006/01/20 07:55 # 답글

    Charlie: 바꿔버리면 되겠군요. 국어 시간에 영어 배우고, 한국어 시간 새로 만들고.

    쉰바람: 어 뭐 그렇게까지야... 하긴 돼지 살갗 색깔에 눈 퍼런 백인만 사람으로 보는 시각으로 임용하지는 않았으면 좋겠네요.
  • verisimo 2006/01/20 08:11 # 답글

    .......방글라데시도 초등학교 1학년부터 영어 가르친다는 사실을 알았다면 저 기사를 쓸 수 있었을까요?
  • deulpul 2006/01/23 09:07 # 답글

    방글라데시 국민의 행복도가 높다는 걸 빌미로 해서, 일찌감치 영어를 가르쳐서 행복하게 느끼고 살고 있다고 주장하지 않은 게 다행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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