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랄을 한다, 지랄을 해

만원으로

가끔, 우리 매체는 너무 잔인하다는 생각을 한다. 우리 주변의 불우한 이웃들에 너무 무신경하다. 단지 그 숫자가 작다는 이유만으로 고려와 배려의 대상이 되지 않아도 되는 경우는 없다. 모든 사람을 다 끌어안을 수는 없고 모든 사람을 다 배려할 수도 없지만, 모든 사람을 끌어안을 수 없기 때문에 그늘 속에 있는 사람부터 끌어안아야 한다. 소외된 이웃에 대한 대한 따뜻한 시각은 시청률보다 훨씬 중요하다.

오래 전에, 텔레비전에서 충북 어디 쯤의 수몰 지역을 취재한 프로그램을 본 적이 있다. 댐을 건설하는 바람에 상류 지역에 물이 차게 됐다. 마을 몇몇이 통째로 물 속으로 들어갔다. 주민들은 조상의 무덤이 있고 자기가 태어나 자란 정든 고향을 버리고 낯선 곳으로 뿔뿔이 헤어졌다. 프로그램은 수몰 지역의 주민들이 어떤 어려움을 겪고 있는지를 보여주었다.

농사를 짓던 주민들은 대부분 이주 보상비 같은 것을 손에 쥐고 인근 대도시로 나왔다. 번화하긴 했으나, 사람 살기는 예전보다 훨씬 어려워졌다. 변두리에 조그만한 구멍가게라도 하나 차리면 크게 성공한 것이고, 대부분 날품팔이 노동자가 되었다. 수몰 지역에서 낯선 도시로 이주한 주민들은 도시의 가장 하층으로 밀려들어갔다. 뿌리를 잃은 그들의 삶은 고향에서의 그것과는 비교되지 않게 곤궁하고 고달팠다.

아이들도 마찬가지였나보다. 도시로 전학온 아이들은 도시 아이들의 텃세와 다른 부모들의 치맛바람, 정든 친구들과의 이별 같은, 그 나이 깜냥에 감당하기 어려운 여러 문제를 동시에 떠안게 됐다. 텔레비전의 카메라가 학교를 끝내고 돌아오는 한 이주민 출신 아이를 만났다. 카메라는 어른의 눈높이에서 아이를 비추고, 화면에는 나오지 않는 기자인지 피디인지가 아이에게 질문을 몇 가지 던졌다. 길바닥 인터뷰가 이루어졌다. 아이는 얼마간 망설이고 얼마간 저어하면서 쑥스럽게 대답하다, 시골 친구들이 보고싶지 않냐는 질문을 받더니 결국 눈물을 흘렸다.

아이는 한참을 울었다. 잠깐이었는지도 모르겠지만, 그렇게 느껴졌다. 아이가 느껴 우는 동안, 카메라는 여전히 어른의 눈높이에서 아이를 가만히 비추고만 있었다. 아이의 울음소리 말고는 아무런 소리도 나지 않았다. 바로 그 때다. 갑자기 화면 한 쪽에서 어른 손이 불쑥 나오더니, 아이의 머리를 매만졌다. 두툼한 어른 손이, 아이의 머리를 한참 쓰다듬었다. 그 동안에도 아이의 울음소리 말고는 아무런 소리도 나지 않았다.

이 장면은 나에게 많은 생각을 안겨주었다. 그 기자인지 피디인지의 두툼한 손은 텔레비전이나 언론 매체가 떠안고 살아야 하는 중요한 원칙 하나를 소리없이 알려주는 것 같았다. 내가 비록 밥을 배불리 먹을 수 있고 따뜻한 잠자리에 몸을 눕힐 수 있다고 하여도, 내 주변에 소외되고 그늘진 곳이 있음을 항상 잊지 않는 마음은 누구나에게 중요하겠지만, 특히 매체에서 밥을 먹는 사람에게는 더 중요한 것 같다. 힘과 영향력이 있기 때문이다. 그 두툼한 손의 임자는 그러한 뜨거운 가슴의 소유자인 것 같았다. 삶에서 고통받는 사람에게 따뜻한 손을 내밀 수 있는 그의 마음가짐이 그 두툼한 손의 투박한 놀림 속에서 물씬 배어나왔다.

나의 아버지가 정년퇴직을 하고 집에 잠깐 계실 때다. 텔레비전 코메디에서 실직자를 소재로 한 내용이 그렇게 많다는 것은 그 때 처음 알았다. 아버지와 함께 텔레비전을 보다가, 아버지가 헛기침을 하시며 밖으로 담배를 피우러 나가시는 일이 잦아졌다. 그 걸 깨닫게 된 뒤, 우리 가족은 프로그램을 보다가 갑자기 리모콘을 눌러 다른 방송으로 돌리는 일도 잦아졌다.

재미도 중요하고 시청률도 중요하다. 유명 연예인을 섭외하여 프로그램에 끌어내는 것도 중요하고 기발하고 독창적인 게임을 보여주는 것도 중요하다. 어차피 오락 프로그램이니까 그냥 열심히 웃고 즐기다 끝내면 된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그러나 그 웃음 뒤에서 울고 있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다는 점까지 잊어버려서는 안된다.

지랄을 함부로 하여서는 안되는 것이다.

덧글

  • 랑새 2006/02/28 15:31 # 답글

    ㅋㅋ 세상에!
    안그래도 저 프로는 최근 비난을 몰매로 맞고 있더라구요 :)
  • 은소 2006/02/28 15:36 # 답글

    만원의 고통이에요. 보는 사람이 너무 괴로워서 견딜 수가 없어요.
  • laystall 2006/02/28 15:37 # 답글

    http://kr.blog.yahoo.com/siyoon00/folder/3118998.html?fid=3118998&m=lc&sk=0&sv=%B8%B8%BF%F8

    윤서인님의 작품입니다. 사용하신 이미지는 세이클럽 미니홈피에 게재되었던 것이고, 지금은 위 주소의 야후 블로그를 사용하고 계십니다.
  • 나카스키 2006/02/28 15:53 # 삭제 답글

    남의 고통을 웃음거리로 삼는짓은 정말 나쁜짓이에요.
  • Charlie 2006/02/28 15:59 # 답글

    어떤 여자 연애인이 분식점에 가서 공기밥 100원어치를 사먹는다고 공기밥을 10등분해서 먹는걸 봤던적이 있어요.. 그게 저 프로그램이었군요.
  • 크로워 2006/02/28 16:27 # 삭제 답글

    만원의 행복에 나온 출연진이 하나 같이 하는 말
    '방송 끝나면 정말 신나게 먹을꺼예요.'
    대체 이 프로그램의 기획의도는 뭐였나요.
  • 플라피나 2006/02/28 16:37 # 답글

    확실히 비난을 받을 만 하군요.
  • 익명 2006/02/28 16:37 # 삭제 답글

    지하철 결혼 연극도 비슷한 맥락에서 참 불쾌했습니다. 정말 고아에 돈이없어서 결혼식을 못한 사람들이 그걸 보면 어떻게 생각할지 말입니다. 달동네에 살아보지도 않고서 그곳의 멋과 정취를 논하는 사진작가들을 보면 혐오감이 치솟구요. 시골에 구식 화장실. 도시 사람들에겐 그저 독특한 것으로 보이지만 그게 생활인 사람들에겐 좋은게 아니죠. 그러니 빚을 내서라도 수세식으로 고치길 원하고 그게 또 편하구요.
  • deulpul 2006/02/28 16:48 # 답글

    laystall님, 알려주셔서 고맙습니다. 다른 분들은 모두 좀 있다가 뵈어요-.
  • 입명이 2006/02/28 17:42 # 삭제 답글

    본래 취지를 필두로 하여 속내는 참 보기 언짢은 방송이 많은 것 같아요.
  • DynO 2006/02/28 17:54 # 삭제 답글

    만원의 행복? 저거 연예인 홍보로 밖에 안보이는 프로내요.
  • 덧말제이 2006/02/28 21:58 # 답글

    드라마에 말기 환자나 불치/난치병 환자 많이 나오는 것도... 병원에 입원한 환자들과 보호자들은 질색을 한답니다.
    천사같은 모습의 환자라니요... -_-;
  • codeinz 2006/03/02 20:36 # 답글

    지랄은 함부로 하면 물론 안되지만 함부로 하기 때문에 바로 지랄이죠. 지랄이 있기 때문에 언제나 항상 이미 지랄이 아닌, 아니라고 생각하는, 지랄의 반대편이 있고 또 있어야 하는 것이죠.
  • neoni 2006/03/04 12:32 # 답글

    결국 상대방을 이해하려는 것이 아니라 동정하려는 것이기에 저럴 수 있는 거겠죠, 같은 사람으로써가 아닌 불쌍한 사람들로 보기에...
  • deulpul 2006/03/06 14:24 # 답글

    랑새: 그... 그랬던가요.

    은소: 가학의 코드가 숨어있는 프로그램인지도 모르겠네요.

    laystall: 알려주셔서 고맙습니다.

    allthat: 너무 거창한 취지를 가지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쓸 수 있는데 안쓰면서 느끼는 고통(?)과 없어서 못쓸 때의 그것은 하늘과 땅 차이겠죠.

    나카스키: 네... 좀더 세심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Charlie: 역시 현실과는 동떨어진 오락거리일 뿐이란 말이겠죠.

    크로워: 그냥 극기 프로그램인지도...

    플라피나: 그렇게 볼 수도 있지 않을까 합니다.

    익명: 전적으로 동감합니다. 그 속에 사람이 살고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될 것 같습니다.

    TinMerits: 절약은 아닌 것 같구요... 아무래도 무모한 도전 쪽이 가깝지 않을까요?

    입명이: 네, 취지는 뻑적지근한 게 많으니 그나마 그 취지라도 제대로 지켜주면 모르겠습니다만... 명랑 오락 프로를 교양이라고 우기는 분들이니.
  • deulpul 2006/03/06 14:24 # 답글

    Dyn0: 연예인이야 자꾸 얼굴 내밀고 홍보하는 것을 운명으로 하는 존재라고 치고, 방송 제작자들이 좀더 조심해야 할 것 같고 시청자들의 역할도 중요하리라고 생각합니다.

    덧말제이: 그게 한계인 것 같습니다. 엄청나게 비싼 출연료를 주고 연예인을 써서 꿈과 환상을 주는 극을 만드는데 리얼리티가 가능하겠어요? 그 점이, 아무리 인기몰이를 하고 시청률이 높아도 결국 작품이 되지 못하는 한계를 만드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codeinz: 날카로운 관찰이십니다. 말씀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neoni: 좋은 말씀이네요. 상대를 올바로 이해하려면 그 사람이 처한 상황뿐 아니라 그 배경을 폭넓게 살펴봐야 하는 피곤한 일이 따르겠죠. 그러기 귀찮으니, 가장 편한 일은 이해를 가장하여 간편하게 동정하는 것이 되버리는 모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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