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널리스트의 신조 중매媒 몸體 (Media)

저널리스트의 신조(Journalist's Creed). 복도 게시판 한 구석에 이런 제목을 단 레터지 크기 게시물이 하나 붙어 있다. 게시판에 붙은 역사가 꽤 오랜 듯, 종이 색이 바랬다. 그 내용이 범상치 않다.

이 신조는 1908년부터 1935년까지 미주리 주립대 저널리즘스쿨 학장을 지냈던 월터 윌리엄스(Walter Williams)가 저널리스트들이 지켜야 할 가치를 제시하기 위해 만든 조항이다. 자신이 신문 편집자로 일하는 동안, 전문적인 저널리즘 직업 교육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낀 그는 최초의 저널리즘 스쿨을 미주리에 설립한 인물.

윌리엄스의 시대, 20세기 초의 저널리즘은 그 형식상으론 현대 저널리즘의 모양새를 갖추고 있었지만, 여전히 공공성을 띤 전문 직업이라기보다는 상거래에 가까운 것이었다. 그가 신조의 첫째 항목으로 '나는 저널리즘이라는 직업을 믿는다'라는 선언을 올린 이유도, 뉴스와 보도가 사사로운 이익을 위해 거래되어서는 안되며, 저널리스트는 분명한 직업관을 가진 전문 직업인으로서, 스스로 자부심을 갖고 사회적으로 존경받도록 처신해야 함을 강조하기 위해서였다.

교육과 실천을 통해 윌리엄스는 저널리즘을 상거래에서 직업 윤리를 가진 사회 제도로 바꾸는 데 공헌했다. 백년 가까이 지나는 동안 사회가 많이 바뀌고 저널리즘 영역도 크게 변했지만, 그의 신조는 여전히 언론의 원칙, 가치와 규범을 명확히 표현하는 명선언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신조(creed)란 믿음과 원칙의 체계적 표현물이다. 신조를 가진 직업은 그리 흔하지 않다. 예컨대 의술을 행하는 의사들은 그들의 직업 신조,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갖고 있다. 어떤 직업에 신조가 따라붙는 데에는 그 이유가 있을 것이다. 왜일까.


저널리스트의 신조(Journalist's Creed)
  • 나는 저널리즘이라는 직업을 믿는다.

  • 나는 대중 매체란 다름아닌 대중의 신뢰임을 믿으며, 대중 매체와 관련된 모든 사람은 모든 책임을 걸고 대중의 신뢰를 위임받은 수탁인임을 믿으며, 대중에 대한 봉사를 다하지 못하는 것은 이러한 신뢰에 대한 배반임을 믿는다.

  • 나는 명쾌한 사고와 명쾌한 서술, 정확성과 공정성이 바람직한 저널리즘의 기초임을 믿는다.

  • 나는 저널리스트가 진심으로 사실이라고 확신하는 것만 써야 한다고 믿는다.

  • 나는 사회의 안녕을 위한 이유가 아닌 한 어떠한 보도의 규제도 받아들일 수 없음을 믿는다.

  • 나는 품위있는 신사로서 말해서는 안될 것은 저널리스트로서도 쓰지 않아야 함을 믿으며, 남의 부패를 지켜보듯 자기의 부패를 지켜보아야 함을 믿으며, 타인의 지시에 따랐다거나 타인의 영리를 위해서라는 이유로 스스로의 책임이 면제되지 않음을 믿는다.

  • 나는 광고와 뉴스와 칼럼들이 모두 똑같이 독자의 이익에 봉사해야 함을 믿으며, 진실과 투명성이라는 원칙이 이 셋 모두를 관철해야 함을 믿으며, 바람직한 저널리즘을 구분하는 최종 기준은 대중에 대한 봉사임을 믿는다.

  • 나는 우리 사회를 위한 최선의 저널리즘이란 신을 두려워하고 인간을 존중하며, 견고한 독립의 토대 위에 서 있으며, 오만한 의견이나 권력의 탐욕에 흔들리지 않으며, 건설적이며, 관용적이되 부주의하지 않으며, 스스로 통제할 줄 알며, 인내할 줄 알며, 언제나 독자를 존경하되 그를 무서워하지 않으며, 불의를 보면 신속히 분노하며, 특권층의 저항과 군중의 아우성에 똑같이 흔들리지 않으며, 누구나에게 기회를 주도록 노력하며, 법과 양심과 인류애에 대한 고려가 허용하는 한 그 기회가 동등하도록 노력하며, 한편 애국적임과 동시에 또 한편 국제적 이익을 촉진하고 세계 동포애를 강화하는 인본주의의 저널리즘임을 믿는다.


※ 이미지: 윌리엄스의 자서전 <내 직업을 위한 신조(A Creed for My Profession)>.

 

덧글

  • 메르키제데크 2006/06/04 02:56 # 답글

    저대로만 된다면 분명히 언론도 좋은 방향으로 갈수 있을텐데 말이지요...
  • 대나무 2006/06/04 04:28 # 답글

    "나는 사회의 안녕을 위한 이유가 아닌 한 어떠한 보도의 규제도 받아들일 수 없음을 믿는다." 문제는 언론 보도의 규제나 탄압을 위한 구실로 항상 사회의 안녕이라는 이 말이 쓰여져 왔다는 거지요.
  • Charlie 2006/06/04 05:25 # 답글

    ...히포크라테스의 선서도 있지만.. 휴우.. 과연 이런것들을 몇명이나 지키는걸까요? 그래도 '몇명'이나마 지키니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 덧말제이 2006/06/04 07:23 # 답글

    오늘은 저널리스트들이 한번쯤 다시 봐야 할 것이구나 싶네요.
    세월이 흘렀음에도 결코 낡지 않은 얘기들...
  • deulpul 2006/06/05 01:56 # 답글

    메르키제데크: 언론은 일반 기업과 같은 영리 추구 목적과 공공성을 동시에 갖고 있는 특수한 산업인 것 같습니다. 그 중간에 끼어 있는 종사자(저널리스트)의 역할이 갈수록 중요해지는 것 같아요.

    대나무: 맞습니다. 전두환이 언론 통폐합하고 군인들이 언론사 편집국에서 가위 들고 검열할 때도 그런 명분을 동원했죠. 다만, 그 판단이 언론(인) 측에서 내려진다면 사회 안녕이나 복지를 거짓으로 내세운 보도 통제가 설 땅이 훨씬 좁아질 것 같습니다.

    Charlie: 모든 이상적 신조는 지키기 어렵기 때문에 존재 의미가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이런 내용을 마음에 담고 살고 계시는 언론인들이 많이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덧말제이: 현명한 사람들이 고민해 만들어 낸 고전이란 항상 그런 것인가봅니다. 그래도 이런 것들은 이제 좀 낡은 이야기가 되었으면 싶기도 하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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