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 흐름에는 매듭이 있을 수 없다. 저 홀로 쉼없이 흘러가는 시간에 매듭을 짓는 것은 오로지 사람의 일이다. 그리고 때로, 이 매듭은 그것을 묶는 사람이 원하는 대로 자의적으로 묶이기도 한다.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과 레바논에 대규모 공세를 벌여 민간인이 희생되기 시작한 이래 나온 기사들을 보면 시간의 흐름에 매듭을 짓는 사람의 작업이 얼마나 제 편한 대로인가를 잘 알 수 있다. 서구 언론은 이스라엘의 침공과 관련한 기사에서, 이 비극의 시작점을 6월25일 팔레스타인의 하마스가 이스라엘 병사 한 명을 납치하고 뒤이어 레바논의 헤즈볼라가 역시 이스라엘 병사 둘을 납치한 데로 잡고 있다. 자국 병사 한두 명이 납치된 데 보복하는 것이 민간인 수백 명을 도륙하는 이스라엘 공격의 원인이 되었다는 것이다. 이런 기사를 보면, 이스라엘이 지나치게 보복하고 있긴 하지만, 사태의 원인은 하마스나 헤즈볼라가 제공한 것 같다.
그럼 하마스나 헤즈볼라는 왜 이스라엘 병사들을 납치하는 것인가. 누구처럼 몸값 몇십만 달러를 받아내기 위해서인가. 잡아다가 참수하고 동영상을 찍기 위해서인가. 그 답은 멀리도 말고 6월25일에서 며칠만 거슬러올라가면 쉽게 나온다.
6월20일, 이스라엘 전투기는 하마스의 지도자를 암살하기 위해 가자지구 근처의 팔레스타인 영토를 달리던 자동차에 한 발 이상의 미사일을 발사했다. 미사일은 빗나갔으며, 목표했던 요인 대신 어린이 세 명의 목숨을 앗아갔고 15명이 부상했다.
또 며칠만 더 거슬러올라가면, 6월13일에도 이스라엘 전투기에서 발사된 미사일이 팔레스타인의 밴 자동차 하나에 적중해 민간인 아홉 명이 죽었다. 6월9일에는 베이트 라히야 비치에 폭격을 가해, 민간인 여덟 명이 숨지고 32명이 부상했다.
이스라엘 병사 한 명이 납치된(납치라기보다 포로가 되었다고 해야 정확한 표현일 것 같다) 시점으로부터 불과 두 주일 남짓만 거슬러올라가는 동안에만도 이스라엘의 공격으로 팔레스타인 사람 20명이 죽고 47명이 부상당했다. 모두 민간인이며, 그 대부분은 여성과 어린이들이다. 이 지경에서 대체 보복은 누가 누구에게 해야 하는 상황인지 아리송해진다. 다시 말해, 하마스나 헤즈볼라는 이스라엘 병사를 포로로 잡을 명백한 나름의 이유가 있는 것이다. 그런데도 언론은 이스라엘의 전면 침공의 원인을 하마스나 헤즈볼라에게 떠넘긴다.
서구 언론, 특히 미국 언론을 외신 보도의 주요 소스로 삼는 한국 언론도 비슷한데, 한 신문에 실린 기사들만 예로 보면 다음과 같다.
이처럼 대부분 이번 사태가 헤즈볼라, 하마스의 이스라엘 병사 납치로 시작된 것이라는 인상을 준다. 이스라엘의 침공 배경이나 흐름, 이 지역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상적인 폭력과 증오까지 짚어내고 있는 기사는 보기 어렵다. 특히, 아래와 같은 연합뉴스 기사는 이번 사태를 보는 미국의 시각이 그대로 반영된 대표적인 기사다. '아랍, 이슬람권이라는 증오의 바다에 고립된 섬, 이스라엘'이라는 표현은 정말 기막히다. 왜 그런 증오가 나왔는지는 물론 드러나 있지 않다.
이런 보도는 서구, 특히 미국의 시각을 그대로 전달해 준다. 전쟁의 중요한 한 영역은 선전전이다. 분쟁 지역에서 아득히 떨어져 있는 동아시아의 한 신문에 실리는 글에서 '납치 공격을 자행한 헤즈볼라' 같은 말이 쏟아져 나오는 상황을 고려하면, 기껏해야 참혹한 민간인 피해자 사진을 올려둔 웹사이트나 운영할 수밖에 없는 레바논이 불쌍해질 지경이다.
자기네 무차별 공격으로 민간인이 죽어나가는 데 대해 이스라엘은 별로 미안해하지 않는다. 그 흔한 유감의 뜻 하나도 내지 않는다. 대신 이스라엘은 헤즈볼라나 하마스를 지구상에서 쓸어버려야 한다는 각오만 공공연하게 강조하고 있으며, 이런 각오는 그 대상자로 하여금 거꾸로 이스라엘을 이 세상에서 쓸어버려야 한다는 생각을 갖게 만든다.
이스라엘은 1982년 레바논을 침공해 베이루트까지 함락시킨 적이 있다. 이 때 사망한 레바논 사람은 2만 명에 이르는 것으로 집계된다. 이스라엘은, 자기네 침공으로 자극받은 레바논의 기독교인들이 레바논 난민촌에 들어와 있던 팔레스타인 난민 수백 명을 학살하는 것도 방조했다. 급기야 레이건 당시 미국 대통령까지 나서서 말리고 국제 사회가 평화안을 촉구하는데도 이스라엘은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폭격을 계속했다. 포연이 걷히고 나서 보니, 이스라엘은 유엔의 해결안을 무시하고 레바논 영토 십여 킬로미터 안쪽에 새로 벙커를 건설해 두고 있었다.
학살과 정복은 자연스레 저항을 불러온다. 레바논의 헤즈볼라는 결국 이스라엘을 영토 밖으로 밀어냈으며, 이 과정에서 레바논 사람은 헤즈볼라를 해방자로 인식하게 됐다. 헤즈볼라가 극악한 테러 집단의 대명사처럼 들리는 것은 미국과 이스라엘의 선전이 아무런 여과 없이 먹혀들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서남아시아 갈등의 역사를 되돌아볼 때, 어디에다 매듭을 지어야 할 것인가는 어려운 문제다. 2006년 6월25일로 잡을 수도 있고, 6월20일로 잡을 수도 있고, 6월13일로 잡을 수도 있다. 하마스가 집권 세력이 된 올 초를 잡을 수도 있고, 1982년으로 잡을 수도 있고, 1~4차 중동전쟁이 벌어진 시점을 잡을 수도 있고, 이스라엘이라는 나라가 생긴 1948년으로 잡을 수도 있고, 예언자 마호메트가 계시를 받은 610년으로 잡을 수도 있고, 더 올라가 2천년 전으로 잡을 수도 있다. 그만큼 갈등은 뿌리깊다. 이번 이스라엘의 무자비한 침공이 '테러 집단'인 헤즈볼라나 하마스가 이스라엘 병사들을 무단 납치해서 벌어진 것으로 보는 것은 이런 수많은 선택 중에서도 가장 최근의 것에만 주목하는 것이며, 아울러 가장 잘못된 해답이다.
지난 7월 초부터 이스라엘이 무차별 공격을 개시한 이래, 팔레스타인과 레바논은 모두 무고한 민간인 희생을 줄이기 위해 휴전을 제의하고 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들은 척도 하지 않는다. 오야붕과 꼬붕이 모두 무슨 다른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닌가 염려될 정도다. 미국 언론이 나팔을 부는 방향을 가만히 보면, 꼭 9/11 이후 애먼 이라크를 슬금슬금 꺼내는 것과 기가막히게 닮았다.
사람의 목숨이 중요하다면, 이것은 이스라엘 병사의 그것이나 팔레스타인/레바논 어린이의 그것이나 똑같다. 설령 하마스나 헤즈볼라의 지도자들이 정말 극악한 흉악범이라 하더라도, 이들을 처단하기 위해 수많은 무고한 민간인을 죽이는 일이 합리화될 수 없다. 이것은 오로지 상대의 씨를 말려버리려는 증오로서만 합리화되는데, 이러한 증오는 똑같은 증오를 불러일으킬 수밖에 없다. 이스라엘이 하마스나 헤즈볼라를 없앤다며 폭격하면 할수록, 하마스와 헤즈볼라는 글자 그대로 눈덩이처럼 불어난다.
한국 신문들은 이번 사태로 빚어진 레바논의 민간인 사망자 수는 현재까지 최소 437명, 실종자까지 합치면 600명 이상인 것으로 보도한다. 지금까지 이스라엘측 민간인 사망자는 19명이라고 한다.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과 레바논에 대규모 공세를 벌여 민간인이 희생되기 시작한 이래 나온 기사들을 보면 시간의 흐름에 매듭을 짓는 사람의 작업이 얼마나 제 편한 대로인가를 잘 알 수 있다. 서구 언론은 이스라엘의 침공과 관련한 기사에서, 이 비극의 시작점을 6월25일 팔레스타인의 하마스가 이스라엘 병사 한 명을 납치하고 뒤이어 레바논의 헤즈볼라가 역시 이스라엘 병사 둘을 납치한 데로 잡고 있다. 자국 병사 한두 명이 납치된 데 보복하는 것이 민간인 수백 명을 도륙하는 이스라엘 공격의 원인이 되었다는 것이다. 이런 기사를 보면, 이스라엘이 지나치게 보복하고 있긴 하지만, 사태의 원인은 하마스나 헤즈볼라가 제공한 것 같다.
그럼 하마스나 헤즈볼라는 왜 이스라엘 병사들을 납치하는 것인가. 누구처럼 몸값 몇십만 달러를 받아내기 위해서인가. 잡아다가 참수하고 동영상을 찍기 위해서인가. 그 답은 멀리도 말고 6월25일에서 며칠만 거슬러올라가면 쉽게 나온다.
6월20일, 이스라엘 전투기는 하마스의 지도자를 암살하기 위해 가자지구 근처의 팔레스타인 영토를 달리던 자동차에 한 발 이상의 미사일을 발사했다. 미사일은 빗나갔으며, 목표했던 요인 대신 어린이 세 명의 목숨을 앗아갔고 15명이 부상했다.
또 며칠만 더 거슬러올라가면, 6월13일에도 이스라엘 전투기에서 발사된 미사일이 팔레스타인의 밴 자동차 하나에 적중해 민간인 아홉 명이 죽었다. 6월9일에는 베이트 라히야 비치에 폭격을 가해, 민간인 여덟 명이 숨지고 32명이 부상했다.
이스라엘 병사 한 명이 납치된(납치라기보다 포로가 되었다고 해야 정확한 표현일 것 같다) 시점으로부터 불과 두 주일 남짓만 거슬러올라가는 동안에만도 이스라엘의 공격으로 팔레스타인 사람 20명이 죽고 47명이 부상당했다. 모두 민간인이며, 그 대부분은 여성과 어린이들이다. 이 지경에서 대체 보복은 누가 누구에게 해야 하는 상황인지 아리송해진다. 다시 말해, 하마스나 헤즈볼라는 이스라엘 병사를 포로로 잡을 명백한 나름의 이유가 있는 것이다. 그런데도 언론은 이스라엘의 전면 침공의 원인을 하마스나 헤즈볼라에게 떠넘긴다.
서구 언론, 특히 미국 언론을 외신 보도의 주요 소스로 삼는 한국 언론도 비슷한데, 한 신문에 실린 기사들만 예로 보면 다음과 같다.
이스라엘의 가자지구에 대한 대공세가 민간인 희생자를 낳으면서 국제사회의 비난을 사고 있다. 이스라엘군은 지난달 25일 팔레스타인 무장세력에 의해 납치된 길라드 샬리트(19) 상병을 구하기 위해 가자지구에 대규모 공중 폭격을 하고 육상 진격 작전도 벌여 왔다. (7월10일)
▽무력 충돌의 원인=이스라엘이 레바논 공격에 나선 것은 12일 무장세력 헤즈볼라가 이스라엘 국경 초소를 공격해 병사 2명을 납치한 것에 대한 보복이다. 이스라엘의 공격이 집중된 레바논 남부지역은 헤즈볼라의 근거지. 헤즈볼라는 레바논 내에서 합법 정당으로 인정받고 있는 정치세력으로, 레바논 정당 가운데 유일하게 무장 민병세력을 거느리고 있다. (7월14일)
레바논과 가자지구에 대한 이스라엘의 대규모 군사공격이 국제사회의 거센 비난을 사고 있다. 앞서 이스라엘 군인 3명을 납치한 무장세력 하마스나 헤즈볼라가 이번 사태를 촉발시킨 책임이 있지만, 이스라엘의 강경 대응 방식에 오히려 비난의 초점이 맞춰지고 있는 것이다. (7월17일)
이스라엘은 헤즈볼라의 자국 병사 납치에 대한 보복으로 레바논 공세를 시작한지 나흘 째인 15일 베이루트 중심가를 처음으로 폭격하는 등 헤즈볼라 거점시설을 분쇄하기 위한 총공세를 펼쳤다. (7월16일)
이처럼 대부분 이번 사태가 헤즈볼라, 하마스의 이스라엘 병사 납치로 시작된 것이라는 인상을 준다. 이스라엘의 침공 배경이나 흐름, 이 지역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상적인 폭력과 증오까지 짚어내고 있는 기사는 보기 어렵다. 특히, 아래와 같은 연합뉴스 기사는 이번 사태를 보는 미국의 시각이 그대로 반영된 대표적인 기사다. '아랍, 이슬람권이라는 증오의 바다에 고립된 섬, 이스라엘'이라는 표현은 정말 기막히다. 왜 그런 증오가 나왔는지는 물론 드러나 있지 않다.
이스라엘 군은 12일 레바논 내 시아파 민병조직인 헤즈볼라가 자국군 병사 2명을 납치한 것에 대한 보복으로 육ㆍ해ㆍ공군 합동작전을 통해 레바논 남부를 공격한데 이어 13일에는 레바논 수도 베이루트 교외의 국제공항 활주로까지 폭격했다.
이스라엘 군은 지난달 25일 자국 병사 1명을 납치한 팔레스타인 무장세력을 압박하기 위해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 대한 공세를 계속해 온 터이다. 따라서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과 레바논 양쪽에서 2개의 전선을 만들어 자국에 적대적인 이슬람 세력에 맞서는 형국이 됐다.
◇레바논 공격 배경 = 이스라엘이 2000년 5월 레바논 남부에서 철수한 이후 최대 규모의 레바논 침공을 단행한 이유는 자국 병사 2명이 헤즈볼라에 납치된 것이 발단이 됐다.
헤즈볼라는 레바논에서 유일하게 민병조직을 거느린 시아파 정당으로, 이스라엘의 존재를 부인하면서 이스라엘에 대한 공격을 계속해왔다. 이 단체는 1982년 이스라엘 군의 레바논 침공 이후 이스라엘에 대한 끈질긴 저항공격을 이끌어 이스라엘군의 철수를 유도한 주인공이다. 이스라엘은 이 때문에 최대 우방인 미국과 함께 헤즈볼라를 테러단체로 규정하고 고사작전을 펴왔지만 큰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그런 상황에서 헤즈볼라는 팔레스타인 무장세력의 주장에 힘을 실어주기 위해 이스라엘 병사를 납치한 뒤 이들을 풀어주는 조건으로 팔레스타인 재소자의 석방을 촉구했다. 이는 아랍ㆍ이슬람권이라는 `증오의 바다'에 고립된 섬으로 불리는 이스라엘로서는 들어주기 어려운 요구이다. 이스라엘은 자국에 적대적인 세력에 조금이라도 밀리는 인상을 주게 되면 생존 기반이 붕괴될 수 있다는 위기의식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은 과거에 그랬던 것처럼 헤즈볼라의 자국 병사 납치에 맞서 헤즈볼라의 기반인 레바논을 침공하는 카드를 선택했다.
◇역내 전쟁으로 비화하나 = 이스라엘 군의 레바논 공격은 사실상 전면전에 가깝게 진행되고 있다. 현지 언론은 이스라엘이 육ㆍ해ㆍ공군을 모두 투입해 레바논 공격을 감행하고 있으며, 전선을 확대하기 위해 예비군에 대한 동원 명령을 내렸다고 전했다. 현재는 납치공격을 자행한 헤즈볼라 요원들이 이스라엘 공격에 맞서 이스라엘의 일방적인 공세가 펼쳐지고 있는 상황이다.
에후드 올메르트 이스라엘 총리는 12일 긴급 소집한 안보내각 회의에서 헤즈볼라의 납치공격을 전쟁행위로 규정하고 "이스라엘의 의지를 시험하려는 세력은 값비싼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자국 안보를 위협하는 모든 세력에 대한 무차별적인 보복대응을 경고한 것이다.
이스라엘 군은 지난달 25일 자국 병사 1명을 납치한 팔레스타인 무장세력을 압박하기 위해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 대한 공세를 계속해 온 터이다. 따라서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과 레바논 양쪽에서 2개의 전선을 만들어 자국에 적대적인 이슬람 세력에 맞서는 형국이 됐다.
◇레바논 공격 배경 = 이스라엘이 2000년 5월 레바논 남부에서 철수한 이후 최대 규모의 레바논 침공을 단행한 이유는 자국 병사 2명이 헤즈볼라에 납치된 것이 발단이 됐다.
헤즈볼라는 레바논에서 유일하게 민병조직을 거느린 시아파 정당으로, 이스라엘의 존재를 부인하면서 이스라엘에 대한 공격을 계속해왔다. 이 단체는 1982년 이스라엘 군의 레바논 침공 이후 이스라엘에 대한 끈질긴 저항공격을 이끌어 이스라엘군의 철수를 유도한 주인공이다. 이스라엘은 이 때문에 최대 우방인 미국과 함께 헤즈볼라를 테러단체로 규정하고 고사작전을 펴왔지만 큰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그런 상황에서 헤즈볼라는 팔레스타인 무장세력의 주장에 힘을 실어주기 위해 이스라엘 병사를 납치한 뒤 이들을 풀어주는 조건으로 팔레스타인 재소자의 석방을 촉구했다. 이는 아랍ㆍ이슬람권이라는 `증오의 바다'에 고립된 섬으로 불리는 이스라엘로서는 들어주기 어려운 요구이다. 이스라엘은 자국에 적대적인 세력에 조금이라도 밀리는 인상을 주게 되면 생존 기반이 붕괴될 수 있다는 위기의식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은 과거에 그랬던 것처럼 헤즈볼라의 자국 병사 납치에 맞서 헤즈볼라의 기반인 레바논을 침공하는 카드를 선택했다.
◇역내 전쟁으로 비화하나 = 이스라엘 군의 레바논 공격은 사실상 전면전에 가깝게 진행되고 있다. 현지 언론은 이스라엘이 육ㆍ해ㆍ공군을 모두 투입해 레바논 공격을 감행하고 있으며, 전선을 확대하기 위해 예비군에 대한 동원 명령을 내렸다고 전했다. 현재는 납치공격을 자행한 헤즈볼라 요원들이 이스라엘 공격에 맞서 이스라엘의 일방적인 공세가 펼쳐지고 있는 상황이다.
에후드 올메르트 이스라엘 총리는 12일 긴급 소집한 안보내각 회의에서 헤즈볼라의 납치공격을 전쟁행위로 규정하고 "이스라엘의 의지를 시험하려는 세력은 값비싼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자국 안보를 위협하는 모든 세력에 대한 무차별적인 보복대응을 경고한 것이다.
이런 보도는 서구, 특히 미국의 시각을 그대로 전달해 준다. 전쟁의 중요한 한 영역은 선전전이다. 분쟁 지역에서 아득히 떨어져 있는 동아시아의 한 신문에 실리는 글에서 '납치 공격을 자행한 헤즈볼라' 같은 말이 쏟아져 나오는 상황을 고려하면, 기껏해야 참혹한 민간인 피해자 사진을 올려둔 웹사이트나 운영할 수밖에 없는 레바논이 불쌍해질 지경이다.
자기네 무차별 공격으로 민간인이 죽어나가는 데 대해 이스라엘은 별로 미안해하지 않는다. 그 흔한 유감의 뜻 하나도 내지 않는다. 대신 이스라엘은 헤즈볼라나 하마스를 지구상에서 쓸어버려야 한다는 각오만 공공연하게 강조하고 있으며, 이런 각오는 그 대상자로 하여금 거꾸로 이스라엘을 이 세상에서 쓸어버려야 한다는 생각을 갖게 만든다.
이스라엘은 1982년 레바논을 침공해 베이루트까지 함락시킨 적이 있다. 이 때 사망한 레바논 사람은 2만 명에 이르는 것으로 집계된다. 이스라엘은, 자기네 침공으로 자극받은 레바논의 기독교인들이 레바논 난민촌에 들어와 있던 팔레스타인 난민 수백 명을 학살하는 것도 방조했다. 급기야 레이건 당시 미국 대통령까지 나서서 말리고 국제 사회가 평화안을 촉구하는데도 이스라엘은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폭격을 계속했다. 포연이 걷히고 나서 보니, 이스라엘은 유엔의 해결안을 무시하고 레바논 영토 십여 킬로미터 안쪽에 새로 벙커를 건설해 두고 있었다.
학살과 정복은 자연스레 저항을 불러온다. 레바논의 헤즈볼라는 결국 이스라엘을 영토 밖으로 밀어냈으며, 이 과정에서 레바논 사람은 헤즈볼라를 해방자로 인식하게 됐다. 헤즈볼라가 극악한 테러 집단의 대명사처럼 들리는 것은 미국과 이스라엘의 선전이 아무런 여과 없이 먹혀들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서남아시아 갈등의 역사를 되돌아볼 때, 어디에다 매듭을 지어야 할 것인가는 어려운 문제다. 2006년 6월25일로 잡을 수도 있고, 6월20일로 잡을 수도 있고, 6월13일로 잡을 수도 있다. 하마스가 집권 세력이 된 올 초를 잡을 수도 있고, 1982년으로 잡을 수도 있고, 1~4차 중동전쟁이 벌어진 시점을 잡을 수도 있고, 이스라엘이라는 나라가 생긴 1948년으로 잡을 수도 있고, 예언자 마호메트가 계시를 받은 610년으로 잡을 수도 있고, 더 올라가 2천년 전으로 잡을 수도 있다. 그만큼 갈등은 뿌리깊다. 이번 이스라엘의 무자비한 침공이 '테러 집단'인 헤즈볼라나 하마스가 이스라엘 병사들을 무단 납치해서 벌어진 것으로 보는 것은 이런 수많은 선택 중에서도 가장 최근의 것에만 주목하는 것이며, 아울러 가장 잘못된 해답이다.
지난 7월 초부터 이스라엘이 무차별 공격을 개시한 이래, 팔레스타인과 레바논은 모두 무고한 민간인 희생을 줄이기 위해 휴전을 제의하고 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들은 척도 하지 않는다. 오야붕과 꼬붕이 모두 무슨 다른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닌가 염려될 정도다. 미국 언론이 나팔을 부는 방향을 가만히 보면, 꼭 9/11 이후 애먼 이라크를 슬금슬금 꺼내는 것과 기가막히게 닮았다.
사람의 목숨이 중요하다면, 이것은 이스라엘 병사의 그것이나 팔레스타인/레바논 어린이의 그것이나 똑같다. 설령 하마스나 헤즈볼라의 지도자들이 정말 극악한 흉악범이라 하더라도, 이들을 처단하기 위해 수많은 무고한 민간인을 죽이는 일이 합리화될 수 없다. 이것은 오로지 상대의 씨를 말려버리려는 증오로서만 합리화되는데, 이러한 증오는 똑같은 증오를 불러일으킬 수밖에 없다. 이스라엘이 하마스나 헤즈볼라를 없앤다며 폭격하면 할수록, 하마스와 헤즈볼라는 글자 그대로 눈덩이처럼 불어난다.
한국 신문들은 이번 사태로 빚어진 레바논의 민간인 사망자 수는 현재까지 최소 437명, 실종자까지 합치면 600명 이상인 것으로 보도한다. 지금까지 이스라엘측 민간인 사망자는 19명이라고 한다.
자기 아이들이 떼죽음을 당하는데 세상 누구 하나 신경도 쓰지 않는 지경에 처한 사람이 갖는 절망감은 완전히 이성적인 정서 반응이다. 다른 말로 하자면 '정상적' 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다. 이러한 절망적 상황이 절망적 반응을 불러일으킨다는 것은 전혀 신비하지도 비이성적이지도 않은 당연한 일일 뿐, 광신적 믿음으로 만들어진 동기와는 전혀 다른 것이다. - 와드 처칠, <누군가는 반격한다: 보복의 정의에 대해서>
덧글
Charlie 2006/07/30 04:47 # 답글
마른미역 2006/07/30 05:56 # 답글
메르키제데크 2006/07/30 11:55 # 답글
김성안 2006/07/30 12:28 # 삭제 답글
편협된 시각을 가진 정보를 소스로 사용하니 편협된 시각만 보여주는 것으로 봐야 할 것 같아요.
직접 가서 보고 취재하고 느껴야 할텐데, 우리나라 사람들 문제도 외국에서 정보 얻어오는 마당에 무리겠져.
Jayhawk 2006/07/31 00:45 # 삭제 답글
네모스카이시어 2006/07/31 05:13 # 답글
라띠 2006/07/31 11:57 # 삭제 답글
force21 2006/07/31 17:00 # 삭제 답글
명랑이 2006/07/31 22:11 # 답글
deulpul 2006/08/02 15:05 # 답글
마른미역: 적어도, 복수혈전이 계속되는 뒤에서 무기 팔아서 돈 챙기면서 좋아하는 넘들이 있는 한 끝을 쉽게 보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메르키제데크: 지옥 같은 끔찍한 참상이 약한 자에 대한 연민과 강한 자에 대한 분노를 자연스레 불러일으키는 모양입니다.
김성안: 그렇죠. 외신은 거의 절대적으로 의존하고 있으니까요. 그리고도 거기서 한 발 더 나아가는 것 같습니다...
Jayhawk: 양측 간에 서로를 인정하는 두 나라 방안(two-state solution)식 접근이 우선 중요할 것 같은데, 양측 다 그걸 쉽게 인정할 수 없는 속사정이 있는 데다, 특히 한측은 죽어라 싫다고 하고 있으니 참 어려운 문제입니다. 말씀대로, 이제는 그저 서로 자극하고 반응하는 데 익숙해져 버리지 않았나 싶어 안타깝습니다. 분쟁의 빌미를 만든 서구 열강이 다시 원망스러워지는 대목이네요. 하긴 아직도 남북한을 공식 실체로 인정하지 않는 한반도 처지에서 별로 할 말은 없습니다만...
deulpul 2006/08/02 15:05 # 답글
라띠: 오타 난 건 아니죠? 하하-. 새파란 넘이 (고작 230살) 힘이 넘치니 여기저기 줘 패고 다니기 바쁘군요. 불행히도 미국 패권은 꽤 갈 것 같습니다...
force21: 그렇다고 합니다. 구체적인 자료도 언제 한번 찾아봐야겠군요.
명랑이: 그렇습니까? 그 쪽은 밝지 않은데, 대충 정리해 주셨으면 더 좋았을 뻔했군요.
말줄임표 2006/08/06 22:55 # 답글
명랑이 2006/08/06 23:10 # 답글
deulpul 2006/08/13 08:31 # 답글
명랑이: 욕 먹을 각오하고 시작했으니 무슨 끝이라도 봐야 그만두겠죠. 욕만 먹고 물러서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