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의 어법이 이상해? 중매媒 몸體 (Media)

대통령의 이상한 어법

Mistiline님을 통해 본 기사. 대통령이 호주에 가서 한 말이 어법에 맞지 않는다고 지적한 기사다. 굉장히 고마운 지적이다. 바야흐로 이제 언론이 대중 정치인의 말과 어법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다는 점에서만 말이다.

여론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공인(公人)의 말은 우리네 것과 그 비중이 다를 수밖에 없다. 특히 국가 지도자의 그것에는 그가 정국을 보는 시각과 앞으로 추진할 정책 방향이 압축되어 들어있는 경우가 많다. 공인의 말이 오래 전부터 분석과 연구의 대상이 되어 온 것은 이 때문이다. 그 연원을 찾자면 아리스토텔레스에까지 올라가야 할 것이다. 오늘날, 정치 지도자가 쓰는 말, 그 속에 숨은 뜻, 그것이 상징하는 바, 말(글)의 맥락과 흐름, 대중에 미치는 영향 따위를 분석하는 것은 주요한 학문 분야이기도 하다. 예컨대 부시 같은 이가 텔레비전 연설을 하면, 그날 저녁에 NPR 같은 매체에는 스피치 커뮤니케이션이나 수사학 전문가가 등장해 연설 내용을 분석한다. 정치적인 내용을 분석하는 것이 아니라, 말과 수사, 단어 쓰임새, 그 상징을 주로 분석하는 것이다.

국정에 대한 정국 담당자의 인식과 정책 집행 방향을 시사하게 마련인 정치 지도자의 공공 발언은 분명 중요한 분석 대상이다. 그런 점에서, 대통령의 호주 발언을 지적한 저 기사는 기특하다고 할 수 있겠다. 그러나 욕심이 과했는지 아니면 사심이 끼었는지, 부적절한 비판을 하고 말았다.

1.

입말은 어법을 충실히 따르기가 쉽지 않다. 이것은 누구나 잘 알고 있는 상식이다. 정치인이 하는 말을 그대로 받아적고 나서 다시 들여다 보라. 어법에 완벽히 맞는 문장보다 제대로 맞지 않는 문장이 훨씬 많을 것이다. 이건 정치인들이 말을 못해서가 아니다. 오히려 정치인은 일은 못해도 말 하나는 잘하기로 유명한 사람들 아닌가.

정치인뿐 아니라 기업 CEO든 대학 교수든 9시 뉴스 앵커든 어떤 사람이라도, 원고나 프롬프터를 보고 읽지 않는 한, 어법에 맞도록 완벽한 입말을 구사하기는 쉽지 않다. 입말에서 어법이 완벽하게 맞기를 기대하는 넘이 바보다. 왜 그럴까? 대화란 음악처럼 시간의 흐름에 종속되는 소통 방식이기 때문에, 말하는 사람이나 듣는 사람이나 거꾸로 돌아갈 수가 없다. 글을 쓰는 사람은 문법에 잘 맞도록 고치고 또 고쳐서 퇴고할 수 있지만, 말이란 머리 속에서 떠오른 뒤 발성 기관을 통해서 나가면 끝이므로, 글에서와 같은 정교한 합법칙성을 기대하는 것은 애초 무리다.

또 대화자에게 중요한 것은 어법에 맞고 틀리고가 아니라, 의사 전달이다. 대화 과정에서 대화자가 온 신경을 쏟고 있는 것은 어법이 아니라 자신의 뜻을 효과적으로 전달하려는 것. 따라서, 신문기자가 어법에도 맞지 않는 실패한 커뮤니케이션이라고 주장하는 대화가 발언 당사자에게는 완벽히 성공한 커뮤니케이션이 될 수 있는 것이다.

2.

이런 이유로, 본인이 알든 모르든 어법에 어긋나는 입말을 구사하는 공인은 백사장의 모래알처럼 널려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왜 하필 노무현인가? 100단어를 쓴다고 알려져 있는 공주님의 어법도 조사해 볼 만하고, 꼭 5년 주기로 말 뒤집고 다시 등장하는 선수들의 어법도 들여다 볼 만하지 않은가. 국가 지도자의 발언이란 중요하게 마련이므로 분석과 연구의 대상이 된다고 했지만, 이것은 누구나 다 저지르는 어법 상의 실수를 시시콜콜 따지고 시비건다는 말이 아니다. 노무현은 대통령이지 국어학자나 한글학회 임원이 아니지 않은가. 이왕이면 어법마저 똑 소리나게 완벽하게 말하면 더 좋겠지만, 그럴 양이면 아나운서를 대통령으로 앉혀놓으면 될 일이다. 비판할 걸 안하고 엉뚱한 트집이나 잡으려고 혈안이 되어 있는 넘들 때문에 제대로 된 비판까지 소 귀에 경 읽기가 되는 거다.

3.

기사가 지적하고 있는 '어법상의 잘못'은 크게 세 가지다. 이번 호주에서 한 발언 중에서 1) "치명적인 상처를 입힐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이기지는 못한다"와 2) "정복은커녕 지배는 전혀 불가능하다"를 잡아 냈고, 과거의 예로 3) "미국인보다 더 친미적인 한국 사람"이라는 발언을 잘못된 것으로 지적했다. 우선, 저 세 경우 모두, 노무현이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지 이해 못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 말에 동의하든 하지 않든, 일단 뭔 말을 하려고 저렇게 버벅대는지는 누구나 쉽게 알 수 있다. 이것은 커뮤니케이션의 성공 여부를 판가름하는 기준이 된다.

4.

'치명적인'과 '이기지는 못한다'는 노무현 식으로 생각해도 어법상 아무런 문제가 없다. '치명적인 상처를 입힌다'와 '이기지는 못한다'는 서로 호응할 수 없다는 주장은 지나치게 트집을 잡은 것이다. 기자는 '치명적'이라는 단어에 올인하고 있지만, 치명적인 상처를 입으면 죽거나 패배하고 끝장이 나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유치한 억지다. 노무현의 저 말을 이렇게 읽어 보자. "(북한이) 설사 핵무기를 갖고 있다 하더라도 (남한에) 치명적인 상처를 입힐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전쟁의 결과 북한이 더 큰 피해를 당할 수 있으므로 결국 남한을) 이기지는 못한다." 내용의 옳고 그름을 떠나, 훌륭한 문장이 되지 않는가. 이렇게 괄호를 채워넣은 문장이 어법에 맞지 않다고 생각하시는 분이 몇이나 있는가. 괄호는 문장(글)이므로 채워넣은 것 이지만, 저렇게 생략하면서도 뜻이 통하는 것이 입말이다.

게다가, '치명적'이라는 말은 비유적으로도 널리 쓰이는 말이 아닌가. 비판을 위한 비판을 위해 억지를 부린 것임은, 예컨대 자기네 신문에 실린 다른 기사를 살펴보면 더 잘 알 수 있다.

"환자는 인체에 치명적인 유독가스인 질산과 불화수소에 3분 가량 노출돼 급성호흡부전 증상을 보였으며 응급실 도착 후 심장이 정지된 상태였"으나, "고려대 안산병원 신재승 교수(흉부외과)팀은" "체외순환 생명구조장치를 사용, 심장과 폐기능을 정상으로 회복시켰"다. (치명적인 사고도 정상으로 회복된다.)

"이 사건은 중국 정부의 치명적인 문제점을 함축적으로 드러낸 사례일 수 있다." (그러나 중국 정부가 무너진 것은 아니다.)

"교통사고로 치명상을 입어 보험사로부터 어마어마한 보험금을 받게" 된 사람은 "사고 뒤 의식을 잃었다가 회복했지만 목과 허리 등을 심하게 다"쳤다. (치명상인데도 죽지는 않았다.)

"검찰 수사, 그리고 정 회장 구속이란 사상 최대의 시련을 겪으면서 브랜드 인지도에서 치명상을 입었기 때문이다. 국내외 브랜드 인지도가 수직 하락한 만큼 이를 신속히 회복해야 한다는 판단이다." (치명상을 입었는데도 신속히 회복해야 한단다.)

이렇게, 자기 신문 스스로가 치명적이라는 말을 '죽거나 패배함으로써 끝장이 난다'는 뜻으로 쓰지 않고 있는 것이다. 자기는 그렇게 쓰지 않으면서 왜 남에게는 강요하는지 그 심리가 궁금하다.

그 밖에, 이 신문이 제공하고 있는 스포츠 기사 서비스를 보면 더 웃긴다.

"권투 선수에게 치명적인 교통사고를 당"한 홍수환은 "스스로 왼쪽 무릎 밑을 받힌 탓에 내 왼쪽 무릎은 선수 시절 내내 좋지 않았다. 이 사고는 아놀드 테일러전 이후 경기력이 떨어진 여러 요인 중 한 가지였다." (치명적인 사고였는데, 경기력이 떨어진 한 요인이 되었을 뿐.)

"<네버포에버>는 성공한 한국인 2세 변호사를 남편으로 둔 백인 여인 소피(베라 파미가)와 비밀스러운 거래를 하며 격정적이고 치명적인 사랑에 빠지는 한국인 남자(하정우)의 이야기를 그렸으며" (치명적인 사랑이란 대체 무엇이며, 치명적이라서 주인공들이 모두 죽어버리는 것인지 궁금.)

"로저 페더러(세계랭킹 1위·스위스)는 현재까지 1000일이 넘도록 랭킹 1위를 굳게 지키고 있는 '테니스 황제'다. 하지만 그에게는 두 가지 치명적인 약점이 있다. 하나는 클레이코트, 또 하나는 라파엘 나달(2위·스페인)이다." (치명적인 약점이 둘이나 있는데도 테니스 황제다.)

"이탈리아 출신의 카테리나 뮤리노는 '007 카지노 로얄'에서 치명적인 매혹을 지닌 솔랑게 역으로 출연했다." (치명적인 매혹이면, 매혹당한 사람은 다 "죽거나 패배해야' 하나?)

5.

마지막으로 기사가 든, '어법에 맞지 않는' 과거 사례인 "미국인보다 더 친미적인 한국 사람"이란 발언. 재미있으니 그 단락을 다 보자.

과거에도 "미국인보다 더 친미적인 한국 사람"이란 말을 한 적이 있다. '친미'의 비교 대상으로 직접 '미국인'이 될 수는 없다. 미국인이 아닌 지극히 친미적인 제3자가 나와야 한다. 명연설은 아니더라도 지도자의 말이라면 최소한 어법에는 맞아야 하는 것 아닌가.

친미의 비교 대상으로 미국인이 될 수 없다는 것은 무슨 근거인가? 세상에서 미국이라는 나라와 가장 친한 (혹은 친하기로 되어 있는) 국민은 당연히 미국인이 아닌가. 설령 기사가 기대고 있는 형식논리적 주장에 따라, 미국인이 친미의 비교 대상이 될 수 없다고 쳐도,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노무현이 말하고자 했던 맥락에서 보면 가장 완벽한 비유가 되는 것이다. 미국 안에 살기 때문에 친미의 잣대로 비교하는 게 부적절한 미국넘들보다 오히려 더 친미적인 한국넘들! 발언자의 뜻을 훌륭하게 전달한, 기막하게 성공한 레토릭이 아닌가. 이러한 수사적 비유를 형식논리로 따져 어법에 맞지 않는다고 시비하기로 하면, 앞으로 한국의 속담만 들여다보더라도 한 30년 우려먹을 시리즈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게다가... 기사가 주장하는 대로, 미국인은 친미의 비교 대상으로 적절하지 않다고 치고 제외하고 보자. 기자는 '미국인이 아닌 지극히 친미적인 제3자'를 골라낼 수 있겠는가. 이 세상 국민 중에서, 미국을 종주국으로 떠받들고 미국 국기를 우러르며 광장에서 울부짖고, 제 밥을 퍼서 미국에 충실히 안겨주고 미국을 천년왕국의 구현으로 인식하는 일부 한국넘들보다 더 친미적인 '제3자'를 찾아낼 수 있겠나 말이다. 미국인들 빼고 말이다. 미국인도 그러지는 않겠다.

"명연설은 아니더라도 지도자의 말이라면 최소한 어법에는 맞아야 하는 것 아닌가"라고 했지만, 사실은 명기사는 아니더라도 언론 매체의 글이라면 최소한 상식에는 맞아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의문이 더 시급하다. 이런 비판 때문에 노무현이 사는 거다.

 

덧글

  • 비단풀 2006/12/13 16:46 # 답글

    노무현이 산다지만, 생불여사겠지요.
    저런넘의 기사 때문에 들풀님도 훌륭히 사십니다.
    강산에 노래처럼 더 삐딱하고싶게 합네다.
  • 덧말제이 2006/12/13 17:56 # 답글

    눈에 뭐가 씐 상태니 어쩌겠나 싶네요.
    중요한 건 말보다는... 정치인들이 말 못해서 이 꼴인가요, 뭐.

    게다가 요즘은 아무나 기자가 될 정도로 기자가 넘쳐나서 그런지, 아니면 글 잘 쓰는 이들이 많이 드러나서 그런지(웹 같은 걸 통해서) 글 못 쓰는 기자가 너무 많이 눈에 띄어요.
  • 2006/12/13 17:57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가하 2006/12/13 18:58 # 답글

    대전제만 아주 옳은 말이고 나머지는 자기 멋데로 끼워넣어서 주장하는거 싫어요. 이런걸 보면 더 공부해야 한다는 생각과 쳐다보기도 싫다는 생각이 같이 들어요.
  • intherye 2006/12/13 19:25 # 답글

    깔깔깔. 읽는 사람이 다 통쾌합니다.
  • 기불이 2006/12/13 22:09 # 답글

    대단대단. 저도 저 기사를 봤지만 피식하고 말았을 뿐, 이렇게는 생각못해봤네요.
  • deulpul 2006/12/14 03:56 # 답글

    비단풀: 삐딱한 줄들이 바로 서 있는 척하면 바른 줄들은 삐딱하게 보이게 마련인 것 같습니다. 삐딱함을 권하는 사회입니다.

    덧말제이: 역시 의도가 문제인 것 같습니다. 이거야 훈련과 연습을 통해 쉽게 학습될 수도 없고... 노통 트집 잡기는 이제는 트렌드가 되어서, 특별히 의도라는 생각도 안드는 모양이에요.

    비공개님: 인터뷰 보고 싶어요-. 하하-

    가하: 그러게 말입니다. "그냥 나가세요!" 할 수도 없고... 짜증난다고 소리라도 빽 질러야 할 속이라도 편해질 것 같습니다...

    intherye: 넘 길어서 죄송-.

    기불이: 기불이님처럼 피가 되고 살이 되는 건 못하고... (털썩)
  • Jinny 2006/12/16 14:25 # 답글

    이 글 정말 재밌게 읽었어요^^ 특히 '치명적인'의 용례 분석은 멋지십니다!
  • deulpul 2006/12/17 06:34 # 답글

    '치명적인' 덧글이십니다... 하하-. 저도 Jinny님 댁에서 많이 배웁니다.
  • Elliott 2006/12/18 12:48 # 답글

    잘읽었습니다. 이른바 메이저 신문들의 대통령 발언 트집잡기의 대전제는 '무식하고 못배우고 교양없는 대통령'이라는 거죠. 한마디로 그냥 싫은거죠.

    한국의 사회적 의제를 장악하고 있는 이들의 유아론적 태도가 너무 불편합니다. 한국언론의 수준이 이렇다니 참.
  • deulpul 2006/12/18 14:16 # 답글

    권력 비판 자체는 언론의 숙명적 과제라고 생각합니다. 숙명적 과제를 희한하게 수행함으로써, 국민으로부터 존재 가치조차 인정받지 못하는 코믹한 한국 언론을 보면, 참 자해하는 방법도 가지가지다 싶습니다.
  • 보드라우미 2007/01/18 11:17 # 삭제 답글

    해를 넘기고 다시 보니, 한국 정치에서 어법은 문제가 아닌 듯 싶은데요......
    어법 갖고 늘어지는 기사 쓰는 기자도 있다니, 참 희한한 대한민국이군요.
    지금 핵폭탄에, 부동산에, 에프티에이(FTA)에, 노동권에, 대통령 연임제 개헌에, 전시작전권 환수 문제에, 군복무 단축안에, 문제 문제 문제...... 문제의 연속이건만, 시시하게 어법 갖고 기사 쓰는 기자는 할 일 되게 없는가 봅니다.
    노 대통령님의 말씀을 비판해보고 싶다면, "독도를 평화의 섬으로 부르면 어떨까요?"라든가, "별들이나 달고 거들먹거리고"라든가 이야기거리는 참 많고도 많잖아요.
    그런데 기껏 어법 갖고 트집이라니오...... 수준 미달 기사들을 종종 볼 수 있는 시대입니다.
    대통령 말씀은 충격적, 기사는 경악적...... 모두들 왜 이러는 걸까요?
    어법이 문제가 아니라 말의 내용이 문제이고 정서가 문제이고 실제 정책이 문제겠지요.
    어법은 얘기거리조차 안 되는 시대입니다.
  • deulpul 2007/01/18 12:28 # 답글

    맞습니다. 뭐, 한가하게 말 씀씀이 가지고 따질 정신이 어디 있습니까. 내용 가지고 다투기도 힘든 판에. 무슨 프랑스도 아니고 말이죠. 따지고 시비 걸자고 작정을 하니 내용이든 형식이든 모조리 걸고 넘어지고 싶은가 봅니다. 나름대로 일관성은 참 높이 사줄 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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