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계를 앞으로? 뒤로?

미국 의회에서 통과된 새 법 때문에, 올해는 예년보다 3주 일찍 일광절약 시간제가 시작됐다. 어제인 일요일 새벽부터 시작된다는 것을 미리 알고 있었지만, 오후에 영락없이 March fool이 되고 말았다. 시계를 돌려두지 않은 탓이었다. 아무 생각 없이 운동을 하러 나섰다가, 문 닫았다는 말을 듣고 한동안 멍한 채 서 있어야 했다. 이럴 때 기분 참 안좋다. 내가 얼마나 바보인가가 논란의 여지 없이 입증되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한 기사는 이런 상황을 놓고 you’ll be an hour late, wondering why the game began without you... 라고 말했는데, 정말 실감나게 멍청한 경험이 아닐 수 없다.

일광절약 시간제는 이날 밤에 나를 한번 더 바보로 만들었다. 친절한 deulpul씨는 혹여 누가 저 같은 실수를 할까봐, 저녁에 동료들에게 스팸 이메일을 보낸 것이다. 그 말고 누가 또 그러리요만은, 노파심은 노파만 가지는 것이 아닐지라.
"Don't forget to turn your watch one hour forward now, if you did not yet."

forward를 back으로 잘못 썼을지도 모르겠다는 것은 잠 자려고 누웠을 때 불현듯 든 생각이었다. 링 시리즈보다 무서운 공포가 밀려오니 잠이 안왔다. 일어나 이메일을 다시 열어보니 아니나 다를까, forward는 대체 어디로 가고, 떡하니 back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하이고, 참말... 잘못될 가능성이 있는 것은 언제나 잘못된다.

일광절약 시간제 때문에 봄, 가을에 시계 바늘을 한 바퀴씩 돌려야 하는 건 좀 귀찮다. 귀찮기도 하고 헷갈리기도 한다. 헷갈리는 분들을 위한 구호가 있다. "Spring Forward, Fall Back!"

조금 생각해보면 이치가 뻔한데, 그걸 헷갈려서 구호까지 등장해야 하나, 하고 비웃은 적도 있었다. 이젠 남이 나를 비웃어야 할 차례다.

그런데 변명할 구실이 하나 있다. 나는 영어로 뭘 쓸 때 이런 실수를 종종 한다. 너무나 뻔한 내용을 잘못 적는 것이다. 토끼는 거북이를 업고 용궁으로 신나게 헤엄쳐 갔다거나, 흥부가 떨어뜨린 박씨를 제비는 정성껏 뒤꼍에 심었다는 식이다. 단순한 실수인데, 남이 보기에는 정말 멍청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는 것들이라서 때로 가슴이 쓰리다.

내 짐작컨대 이유는 분명하다. 내용을 써나가는 동안, 내용에 쏟아야 할 관심이 형식, 그러니까 철자, 문법, 단어 선정, 관용구 따위에 온통 몰리고 있기 때문이다. 좌뇌와 우뇌가 듀얼 모드로 언제나 팽팽하게 잘 돌고 있다면 이런 실수를 잘 하지 않겠지만, 사람이 어디 그런가. 다 쓰고 나서 몇 번을 읽어보고 보내는 이메일 삼성(三省)을 체질화하고 있지만, 중견수 알까듯 걸리지 않고 쏙 빠져나가는 실수가 있다. 환장한다.

내 메일을 보고 시계를 뒤로 돌려놓고, 결과적으로 두 시간 늦게 월요일을 시작한 동료가 없기를 바라는 수밖에.

덧글

  • Charlie 2007/03/13 14:19 # 답글

    Spring forward, Fall Back! :) 매년 두번씩 그걸 주문처럼 외우지 않으면 아침에 무섭도록 조용한 도로를 보거나, 미어터지는 도로를 볼거란 두려움에 빠지곤 합니다..;
  • 시노조스 2007/03/13 19:48 # 답글

    머피의 법칙인가요? ^^
    그래도 순간 기억력이 좋으시네요. 뭔가 불안해서 봤다는 것 자체가 알고 있었다는 것 아닌가요? 다만 뇌가 통보를 늦게 해주는 바람에 난처하게 되었네요.

    갑자기, 흥부가 바람같이 달려와 제비에게 박씨를 던져주었더니만 제비가 입으로 잡아서 심는 장면이 떠오르는군요. "똑똑한 제비는 박씨를 그냥 먹지 않고 잘 키워서 배부르게 먹었답니다."

    이런 ^^;
  • deulpul 2007/03/14 13:57 # 답글

    Charlie: 일년이 팔철이나 십육철이 아니어서 정말 다행입니다.

    시노조스: 그런 거 있잖아요? 문 잠그고 나오면서, 수도꼭지 틀어놓지 않았나, 가스불 켜두지 않았나 불현듯 염려되는... 뭔가 켕기는 찜찜함이 사실로 확인되는 순간은 참 그렇죠. 제비가 심은 박씨가 싹터 열리는 큼지막한 박에서는 무엇이 나올까요. 캬바레만한 기와집과 싸모님들처럼 어여쁜 선녀들, 뭐 이런 거겠죠...?
  • 기형z 2007/03/14 21:15 # 답글

    하하. 재미있는(?) 경험이시네요..ㅎ
    한국엔 이런게 없어서 아직까지 저렇게 시간을 돌렸다 하는게 어떤 느낌인지는 잘 모르겠어요..
  • deulpul 2007/03/15 12:50 # 답글

    슬픈 경험이죠... 한국에 없어서 참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하긴, 한국은 이런 거 하지 않아도 이미 짜낼대로 다 짜내고 있지 않은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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