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력은 지성인을 만들어 주지 않는다 섞일雜 끓일湯 (Others)

햇볕이 따뜻하니 좋은 한낮이다. 땅 속과 땅 위, 그리고 대기가 봄의 활기로 가득 차 있고, 그 안에서 걷거나 뛰는 사람의 표정도 모두 밝다. 인간이 해 없이도 살 수 있다면 그럭저럭 살 수는 있겠지만, 세상은 지금보다 훨씬 우울해졌을 것이다.

점심을 사들고 햇볕이 잘 드는 양지녘 돌계단을 찾다가, 역시 밖에서 점심을 먹고 있던 후배를 만났다. 주변은 밥 먹고 이야기하고 뛰고 노는 사람들로 적당히 가득하다. 날만 좋으면 이 곳은 언제나 소풍 온 어린이대공원이나 동구릉 분위기가 난다.

함께 밥을 먹은 김에, 평소 잘 마시지 않는 커피까지 하나씩 사들고 햇볕을 좀더 쐬기로 한다. 후배가 조심스럽게 고민을 풀어 놓는다. 후배는 어떤 조직의 일 일부을 맡고 있다. 최근에 그 조직에 말하자면 조직 분규 같은 것이 생겨서, 본인도 힘들고 분위기도 별로 좋지 않다고 한다.

이런 이야기를 하는 후배의 말 속에는 조직에서 함께 일하거나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한 실망이 잠시 비친다. 배운 사람들이 참 답답하고 실망스럽다는 것이다.

이곳의 조직이라면 그것이 친목을 위한 것이든 업무를 위한 것이든 그 구성원의 주류는 유학생들이다. 이들은 대부분 '많이 배운' 사람들이다. 가방 끈 길이로 따져 그렇다는 말이다. 대학을 마치고 대학원 석사, 박사 과정에서 몇 년을 버팅기는 사람들보다 더 배운 사람들이 어디 있겠나. 최소한 20년 이상 공식 교육을 받고 있는 사람들 아닌가. 그러니, 이 쪽에 있는 사람들은 개인이 공부를 하는 기간으로도 한국 최고급이요, 공부가 끝나면 대부분 교수나 연구원 같은 인텔렉추얼한 자리로 갈 것이므로, 말하자면 이른바 사회지도층 예비군 같은 사람들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사회지도층 예비군들이 일상에서 드러내 보이는 의식의 편린들은 사회를 지도하기에는 너무나 개탄스러운 경우가 종종 있어서, 이들의 뜻이나 방식대로 사회가 지도되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는 사태가 종종 벌어진다. 예컨대 나는 유학생들이 중심이 되어 운영되는 웹사이트에서 벌어진 몇 차례의 논쟁을 기억한다. 시험 부정행위 문제가 불거졌을 때, 어떤 유학생은 들키지 않고 부정행위 하는 것도 능력이라고 주장했다. 이들이 중국인을 비하하는 말을 내뱉는 것은 어디서나 흔히 들을 수 있다. 어떤 조직에서든 민주적 상식이라고 여길 만한 관행이 운영자의 독단으로 무시되고 전횡되는 경우도 수시로 벌어진다.

유학생이든 공부하는 사람이든 모두 그 이전에 사람이므로, 어디나 그렇듯 별 놈 다 있게 마련이다. 문제는 우리가 공부하는 사람에게 지식인이라거나 지성인이라거나 인격자라거나 사회지도층이라거나 하는 타이틀을 너무 쉽게 주고, 또 그것을 당연한 것으로 생각한다는 점이다.

그래서 나는 후배에게 이런 말을 해 주었다. 사람들은 흔히 공부를 많이, 혹은 오래 한 사람을 존경하고 우러르며 지식인이라고 존중해 준다. 그것은 오래 공부를 하면, 마치 오래 도를 닦은 것처럼 공부가 그 사람의 인격으로 녹아 들어가 존경스러운 면모를 가지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크나큰 착각이다. 우리 사회에서 공부란 뭔가. 공부가 인격을 닦고 수양을 하는 일과 동의어가 되지 않은 지 이미 오래다. 그저 자기 분야에서 전문적인 지식을 축적하고, 창의력을 동원해 인간과 사회와 자연을 설명하고 그것을 후배 세대에게 넘겨주는 직업이 아닌가. 현대 사회에서 이것은 불행히도 하나의 직업에 지나지 않는다. 회사원, 세일즈맨, 생산직 노동자, 농민, 공무원 등과 같은 하나의 직업군일 뿐이다.

공부를 많이 했다거나 오래 하고 있다는 것이 저절로 그 사람을 지성인이나 인격자로 만들어 주지 않는다. 그랬다면 교수란 사람들은 모두 성인군자가 되어 있어야 할 것이다. 오히려 학교 근처에도 가보지 못한 불학의 '막장 인생'으로부터 진정한 스승의 모습을 찾게 되는 경우도 많지 않은가. 직종에 상관없이 한 분야에 오래 종사한 사람을 만나면 공통으로 느껴지는 것이 있는데, 삶에서 우러나오는 지혜나 관조 같은 것이다. 나는 이런 느낌을 만경평야 어디쯤 들판에서 만난 늙수구레한 농민에게서도 받았고, 40년 넘게 도장만 파온 사람에게서도 받았다. 이런 무학(無學)의 스승들은 우리가 세심하게 보기만 한다면 우리 주변에 널려 있다.

사실 사회지도층이란 말은 그 자체로 매우 폭력적이고 위압적이다. 설령 이런 말이 무리 없이 성립할 수 있다고 해도, 공부를 하는 사람은 그로써 저절로 사회지도층이 되는 것이 아니다. 자기 분야에서 남들보다 더 배웠을 뿐이다. 그러니 지나친 기대도 하지 말고 실망도 하지 말아라. 그저 유학생 집단이든 교수 집단이든, 성인부터 잡놈까지 다 어울려 사는 우리 사회의 또다른 한 축소판이라고 생각해야 한다. 상아탑 아래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시장에서, 극장에서, 동굴에서 하는 것과 꼭같은 몸싸움을 요구한다. 인간 보편에 대해 실망은 할지언정 배운 넘들이 왜 그럴까 하고 실망하지는 말아라. 배운 넘들도 충분히 그럴 수 있고, 오히려 배웠기 때문에 남들보다 더 그럴 수도 있다.

후배에게 얼마나 도움이 되는 말이었는지는 알 수 없다. 후배는 배운 사람들에 실망하여 심각히 고민중이었고, 햇볕은 따뜻했으며, 사람들은 모여 놀고 밥을 먹다가 또다시 배우러 어딘가로들 떠났다.


 

덧글

  • mattathias 2007/04/27 09:02 # 답글

    네, 둘은 별개입니다.
  • 시노조스 2007/04/27 09:21 # 답글

    지성과 인성은 비례하지 않지요.
    요즘 하는 일에서 느낀답니다. 아르바이트지만요. ^^;

    재밌는 것은 저 또한 그 굴레에서 벗어나지 않는다는 것.
  • 무브온21(커서) 2007/04/27 09:30 # 삭제 답글

    논리력과 기억력(학력)도 따로 가는 것 같습니다. 풍부한 기억력으로 글을 잘 구성하는 사람이 논리적으로 따지면 막 화내고 그러더군요.
  • 피닉스 2007/04/27 09:49 # 삭제 답글

    배움과 인격은 대부분 비례하지 않죠... 많이 배울수록 인격이 안 좋은 경우도 있으니까요...
  • Dorothy 2007/04/27 10:25 # 답글

    안녕하세요, 처음으로 글 남깁니다.^-^

    작년 이맘때쯤 제가 갈등했던 부분과 비슷한 글인것 같아요.
    보수적인 집안에서 자란 저는 사람사이에서의 연배와 학벌은
    무시못할 차이라고 믿고(인격, 말한마디에서조차.)
    그렇게 생활해왔는데 제 모친뻘 되는 회사상사분의 모습을 보고는
    그간 자리잡혀있던 사고들이 깊은 혼란과 괴리에 빠졌던 적이 있었지요.

    덕분에 깊이 상처를 남긴 아~주 값비싼 경험이라고 여기고 있습니다.
  • wenzday 2007/04/27 11:13 # 답글

    공감합니다. 스스로에 대해서는 왜 배우고 연구하지 않는지 모르겠습니다.
  • 용호씨 2007/04/27 17:41 # 답글

    '다만 배운 사람이라 이러느냐' 라는 대조효과로 더 드러나 보이는 점도 꽤 있겠지요.
    하긴 저도 명문대 다닌 다는 아이들이 담배공초를 길에다가 버리는 꼴을 보고
    '이것들은 글렀다'라고 생각했던 기억이 있군요. 그나저나 우리나라의 인성교육은 정말 어디로
    가는건지.. 교육에서 인성이 차지하는 비중이 극단적으로 작아서 그런게 아닌가 싶습니다.
    적어도 예전에는 교육에서 인성이 차지하는 비중이 컸었는데 말이죠. (조선시대까지
    간다면 너무 많이 간걸까요^^?)
  • 카본 2007/04/27 22:07 # 답글

    안녕하세요, 지성인은 물론이고, 가방끈이 길다고 지식인이 되는 것도 아닌듯합니다.
  • 히치하이커 2007/04/28 10:55 # 답글

    지성과 인격은 별다른 관계가 없음이 확실하다고 생각하지만, 지금 세계의 꼬라지를 보면 오히려 지성과 인격은 반비례하는 게 아닐까란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 달속토끼 2007/04/28 19:43 # 답글

    위의 덧글 쓰신 히치하이커님의 말씀에 공감합니다.
    배울수록 더 잔인하고 비열해지는 게 아닌가...하는 생각이 불현듯...
  • 가방끈 2007/04/29 05:44 # 삭제 답글

    무엇을 배우고 공부하느냐를 잠시 들여다보면, 박사학위를 통해 길러지는 학력과 인품 사이에 예상되는 상관관계가 무의미함에 가까움을 어렵지않게 짐작할 수 있게 됩니다. 전공에 따라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마음 뭉클해지는 소설하나 제대로 잃어보지 못한채 자나깨나 전공서적과 논문 퍼블리시에 매달리는 소위 "박사"들에게 인문적 소양과 인품의 계발은 그저 먼 훗날의 희망에 불과한 것이 현실의 한 단면이지요. 오히려 정신노동을 통해 단련된 논리-분석력은 (사실 기억력은 나이들고 이리저리 치이면서 오히려 감퇴되는 경향을 보이기때문에 학력의 큰 특징이라 보기어려워 보입니다. - 무브온21님, ㅎㅎ) 자신의 상황과 입장을 합리화하는데 아주 편리하게 이용되기도 합니다. 결국, 긴 가방끈을 달고 다니는 사람도 또 그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는 비교적 덜 긴 가방끈을 가지고 다니는 사람들도 모두 가방끈의 길이 자체에 너무 많은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 것이 정신건강과 상대에 대한 올바른 이해에 도움이 되지않을까 생각합니다.
  • Hikaru 2007/04/29 12:34 # 답글

    저도 많이 느꼈죠. 그래서 이제는 '배운 사람이~' 이런 생각 안해요.
    다행히 주변에 인간미 없는 사람보다는, 인간성 좋아서 나까지 물들여주는 사람이 몇몇 있어서 배우고 싶단 생각을 해요.
    나도 따뜻하고 다정해서 상대가 마음을 놓을 수 있는 사람 되고 싶다고.
  • eunjeong 2007/05/03 00:32 # 답글

    안녕하세요.. 저도 완전 공감합니다.. :)
    가끔은 그 사람 자체도 문제지만, 빡빡한 박사과정 그리고 이를 둘러싼 환경이 여러면에서 '배운 사람'이 난해한 성격을 가지도록 하는 건 아닐까 싶네요.. 저만 하더라도 비교적 정상적(?)인 성격이라 자부해왔는데 이제는.. 쿨럭.. ㅎㅎ :)
  • weed 2007/05/03 14:44 # 답글

    항상 지식보다는 지혜를, 좋은 성적 보다는 곧은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이 옳은 일이라 생각하고 있지만, 가끔 마음 속으로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때마다 부끄럽고 슬퍼집니다. 저도 앞으로 공부할 날이 아직 많이 남은 사람이고, 아마 평생동안 공부를 하게 될 지도 모르는 사람인데, 공부하는 사람으로서 '인간'이 되는 법을 배우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가히 막막하여 문득 돌이켜 볼 때 마다 정신이 아뜩해지는 기분을 느끼곤 한답니다. 올바른 삶을 사는 용기와 곧은 길을 알아보는 혜안은 어떻게 얻을 수 있는 것일까요? 갑자기 입산 수도라도 하고 싶은 마음이 듭니다.

    p.s : 링크 신고 합니다 :)
  • deulpul 2007/05/08 10:57 # 답글

    mattathias: 그렇겠죠? 별개란 말은 독립적임, 즉 자동적인 일치가 아니며, 또한 자동적인 분리도 아니라는 의미라고 생각합니다.

    시노조스: 역시, 체험 삶의 현장에서 배우는 공부가 진짜 공부죠. 우리 모두에게도 해당하는 말이지만, 오히려 그래서, 조금씩만 생각을 하고 살면 전체적으로 차츰 나아지리라 믿습니다.

    무브온21(커서): 그렇습니까.

    피닉스: 말씀대로 이런 경우도 있고 저런 경우도 있어서, 정비례 관계는 분명 아니지만, 그렇다고 반비례도 아니지 않나 싶습니다. 사실 배움과 인격이 반비례한다기보다, 배움에 관계 없이 갖출 것을 제대로 갖추느냐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Dorothy: 좋은 경험을 하셨더라면 좋았을텐데 그러셨군요. 개인이란 연배와 학벌로 일반화되기에 앞서 역시 그 개개인이라는 점이 중요하리라 생각합니다. 다음에는 명실상부 존경스러운 분을 만나게 되시길 바랍니다.

    wenzday: 그런 학과는 없잖습니까? 하하-.

    용호씨: 네, 정말 같은 일을 벌여도 배웠다는 이유로 더 비판받는 것도 불공평한 것 같습니다. 배웠다는 것만으로 더 기대를 하지 않는다는 것은 배웠다는 이유만으로 더 비판하지도 않는다는 것과 동의어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냥 다 사람 사는 세상에서 사는 사람들인 것이죠.

    카본: 그렇겠죠? 지식인이라는 말 속에도 사회적으로 기대되는 일정한 역할이 포함되어 있는 경우가 많으니 말입니다. 네이버 지식인 말구요... 하하-.

    가방끈: 제가 드리고 싶은 말씀을 완벽하게 잘 정리하셨네요. 가방끈님은 가방끈이 기신지 알 수 없지만, 만일 길다면 가방끈님처럼만 길었으면 좋겠습니다, 하하-.

    Hikaru: 네, 역시 사람이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어떻게 보면, 우리 삶 자체가 뽑기인지도 모르겠네요. 상사운, 선배운, 후배운, 동료운 모두 운으로 표현되는... 운이 좋아야죠.

    eunjeong: 음... 참, 그런 면도 있군요. 그 바닥 일이라는 게 '미친 듯한 경쟁이 나를 키웠어요' 쪽으로 나가든지, 아니면 '이런듯 엇뎌하리 저런들 엇뎌하리'판 서생 쪽으로 나가든지 양단간에 선택해야 하는 경우가 많아서, 어느 쪽이든 건전한 자아 형성에 파행이 생길 가능성이 높습니다.......

    weed: 제게 다시금 경종이 되는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weed님은 불확실함때문에 막막하고 아득해 하시지만, 저는 어영부영 가져온 고정관념과 편견을 신념인 것으로 착각하고 확신하며 살고 있지 않나 걱정합니다. 입산할 때 연락하세요-.
  • 2007/06/20 02:47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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