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ank Me for Smoking

담배를 거의 끊다시피 한 지 꽤 됐다. '딱'이 아니고 '거의'인 이유는 한 경우만 자연스럽게 예외가 되기 때문이다. 맥주 마시면서 사람들과 환담할 때가 그 때.

내가 사는 곳에서는 술집이나 식당에서 담배를 피울 수 없다. 3년 전쯤에 생긴 규정이다. 처음에는 불편했지만 금방 익숙해졌다. 생각해 보면 잘 된 일이기도 했다. 담배 연기 자욱한 실내는, 어쩔 수 없이 그 곳에 있어야 하는 사람, 즉 바텐더나 웨이트레스 중 담배를 피우지 않는 사람에게는 생지옥이나 다름없었을 것이다. 담배를 피울 수 있는 여유까지 술값에 포함된 것으로 볼 수도 있겠지만, 어쨌든 내 즐거움을 위해 다른 사람이 해를 입는다면 다시 생각해 볼 문제임은 틀림없다. 심지어, 담배를 피우는 사람도 어떨 때는 담배 연기가 싫다.
이 제도가 시행되자, 바나 술집들은 모두 반대했다. 시(市)를 상대로 소송도 제기했다. 손님이 줄어들 것이라는 걱정 때문이었다. 실제로 이를 입증하는 통계도 제출되었다. 또, 시 경계를 넘어선 곳, 즉 금연 규정이 미치지 않는 곳의 바는 난데없는 호황을 맞았다. 흡연 손님이 시 경계를 넘어 술집을 찾아가는 현상이 발생한 것이다. 그래도 시는, 공공 지역의 금연은 전국적 추세라고 주장하며 밀어붙였다. 몇 년이 지난 지금, 술집에서의 금연은 당연한 것으로 인식되고 있다.

나 역시 처음에는 무지막지한 규정이라고 욕도 많이 했다. 오후 9시 넘으면 수퍼나 식품점에서 술을 살 수 없는 규정과 더불어, 2대 악법쯤 되리라고 생각했다 (그건 정말 악법이다). 그러나 지금은 잘 된 처사라고 생각한다. 분명, 어떨 때는 "아쉬운 밤, 흐믓한 밤, 뽀얀 담배 연기..." 식의 분위기가 진정 그리울 때가 있다. 담배 연기가 그립다기보다 그 분위기가 그리운 것이라고 해야 정확한 말이겠지만 말이다. 그래서, 술집 주인이든 바텐더든 손님이든, 담배 연기에 별로 신경 쓰지 않는 인간들끼리 모여서 화기애애하게 서로 해(害) 주고 해 받으면서 지지고 볶을 수 있는 예외를 만들어 두었더라면 더 좋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실내 금연이므로, 담배를 피우고 싶은 사람은 문 밖으로 나간다. 괜찮은 술집이라면 밖에 좋은 벤치와 재떨이를 적당히 구성해 놓아, 흡연을 위해 밖으로 쫓겨난 손님도 배려할 줄 안다. 아무리 배려하더라도 밖은 밖이라서, 겨울에 찬바람이라도 쌩쌩 불면 참 괴롭다. 자연히 술자리에서 피우는 담배 갯수가 줄어든다. 이래저래 잘 된 처사다.

내가 담배를 거의 끊다시피 하면서도 스스로 예외를 두고 있는 것은 바로 이 경우다. 언젠가부터, 내가 바 밖에서 조용히 담배를 피우는 시간을 즐긴다는 것을 발견한 것이다.

술자리를 나와서 밖에서 가만히 담배를 피우노라면, 갑자기 다른 세상으로 걸어 나온 것 같은 생각이 든다. 문을 하나 밀고 나왔을 뿐인데, 안의 소음, 음악, 화제, 논쟁으로부터 완전히 격리된다. 갑자기 낯선 4차원 세상으로 넘어온 것처럼 느껴진다.

안에서 세상은 언제나 크게 흥겹거나 깊이 우울하다. 안의 세상은 절망의 골과 희망의 마루가 어울려 빚어내는 높은 파도를 넘으며 요동친다. 그러나 문 하나를 열고 나서서 만난 밖은, 그저 조용하다. 차들은 무표정하게 제 갈 길로 열심히 오가고 오뉴월 나뭇잎은 여린 바람에 선선히 흔들린다. 하늘의 별도 수천 년 전 그대로 여전히 거기에서 빛나고 있다. 우리의 격렬한 애환과 관계 없이, 세상은 여전히 안녕하게, 혹은 안녕하지 못하게 잘 굴러가고 있는 것이다. 담배를 피우러 나선 밖에서는 거리가 보이고, 하늘의 별이 보이고, 유리창을 통해 안의 사람들이 보인다. 그리고 유리에 반사된 나도 보인다. 안에서는 잘 보지 못하던.

가끔, 밖에서 흡연 동지를 만날 때도 있다. 서로 말을 하든 하지 않든, 밖으로 내몰린 마이너리티끼리 진하게 통하는 연대감이 있다. 눈인사를 하거나 종종 몇 마디 나누게 되기도 한다. 언젠가, 예쁘장한 백인 여자가, 자기는 아무래도 아시안 취향인 것 같다고 해서 가슴을 뛰게 만든 적도 있구나. 대취한 여인인 것 같긴 했지만.

술자리에서 피우는 담배를 예외로 한다고 해도, 기껏해야 두세 개피 정도. 그런 자리도 1~2주일에 한번 정도고. 이 정도 여유마저 닫고 살고 싶지는 않다. 이 마저도 너무 느슨한 것인가? 끊으려면 딱 끊어야 한다는데. 어쨌든 나는 금연을 결심하여 본 적은 없는 것이다.

요즘 담배를 거의 피우지 않고, 운동을 챙겨 하려고 노력하며, 한국 소식, 특히 정치 소식을 잘 보지 않는다고 동료에게 말하니, 동료의 반응이 통렬하다. 오래 살기로 작정했냐고, 몸에 좋은 건 다 하냐고 한다.

덧글

  • MCtheMad 2007/06/28 15:34 # 답글

    확실히 한국 정치 소식을 보지 않으면 수명이 늘기는 할것 같네요 ^_^;
  • 사은 2007/06/28 17:05 # 답글

    영국도 7월 1일부터 흡연금령이 떨어진다 해서 조금 들썩들썩합니다.
    아일랜드같은 곳에서는 들풀님도 살짝 언급하신 흡연동지들의 대쉬 열풍이 일기도 했다 하네요.
    밖에서 창으로 안을 들여다보는 것도, 안에서 창으로 밖을 들여다보는 것만큼이나 매력적이란 생각이 듭니다. 비바람만 없다면!
  • mooni 2007/06/28 19:27 # 답글

    역시 오래 사려면... ^^;;
  • deulpul 2007/06/29 10:36 # 답글

    MCtheMad: 그 소식 안 봐야 행복한 정치는 그 자체로 불행이죠. 있는 듯 없는 듯 존재할 수 있는 시대는 아니라 해도. 염증과 무관심은 분명 다른 것인데, 염증이 반복되어 무관심으로 굳어질까 두렵습니다.

    사은: 애연가 설 자리가 갈수록 좁아지는군요. 이렇게 규제해야 할 나쁜 물질이라면, 만드는 넘들부터 잡아 족쳐야 하는 게 제대로 된 순서가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안하죠. 못하거나.

    mooni: 영원한 진리가 아니라, 불행한 나라 불행한 상황 한정이라는 데서 약간의 위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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