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정말 짧단다 섞일雜 끓일湯 (Others)

지난 일요일자 지역 신문 특집판에는 '중년의 변화'(midlife change)를 성공적으로 이룬 여성 네 명의 이야기가 실렸다. 네 명 모두 40대. 편집자는 중년 여성이라는 것이 참 애매하다는 말로 특집을 시작한다. 무엇을 새로 시작하기에는 가족, 일, 관계 따위가 이미 견고히 형성되어 있고, 그러나 무엇을 새로 시작하려면 더 늦어서는 곤란하다. 어디 여성만 그러할 것인가. 어쨌든, 다행히 많은 여성이 직업을 바꾸거나 이혼을 하거나 새로 결혼을 하거나, 혹은 소설을 쓰기 시작하거나 마라톤을 시작하거나 자기 사업을 열면서 자신의 삶을 찾고 있다고 한다. 그 대표적인 사례로 등장한 네 사람 중 한 명인 앤의 이야기가 인상 깊다.

그의 아버지는 암으로 돌아가셨다고 한다. 아버지가 암 말기 진단을 받고 나자 모든 것이 달라졌다. 가족의 생활은 모두 아버지를 중심으로 재편성되었다. 앤을 포함해, 멀리 떨어져 사는 가족들도 최대한 자주 집을 찾아가 아버지를 보았다. 그 때마다 암과 투병하던 아버지가 던진 말이 있다고 한다. "너 행복하니? 정말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사는 거야? 인생은 정말 짧단다, 얘야."

그 때 앤은 나름대로 행복한 삶을 살고 있었다. 잘 나가는 직장에서 마감일이 꼭꼭 다가오는 일을 갖고 있었고 세 명의 아이가 있었으며 따로 개인 비즈니스에도 관여하고 있었다. 또 자원봉사자로도 활동했으며 이웃사촌과 친구도 많았다. 이런 일과 관계 속에 파묻혀, 사실 이 일들을 즐길 틈조차 없었다고 한다. 삶은 그저 물 흐르듯 흘러갔다.

여기에 아버지의 암이 더해지자 앤의 생활은 크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무의미하게 돌아가던 톱니바퀴들이 갑자기 어그러지는 형국이었다. 앤은 아버지의 암 진단 때문에 시간적으로, 또 정서적으로 큰 영향을 받았다. 일과 관계에 몰두하지 못하는 일이 잦아졌고 애꿎은 커피의 양만 점점 늘어났다. 그리고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비로소 앤은 깨달았다. 행복하다고 느꼈던 자신의 삶이 얼마나 기계적인 반복이었던가를. 자신의 삶이 진정 자신을 위한 것이었던가. 나는 정말 나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살고 있나. 인생은 짧은데.

앤이 잘 나가는 월간 잡지 편집장을 때려치우고 프리랜서를 선언했을 때, 가족을 포함해 모든 사람이 놀랐다고 한다. 그는 그가 오래 꿈꾸었던 일, 즉 사진을 새로 시작했고, 몸을 바삐 움직이는 성격은 버리지 못해 작은 갤러리를 하나 냈다. 아이들과 책 읽는 시간이 늘어났고 남편과 데이트를 나갔다. 일에서 풀려난 시간을 활용해, 돈은 적게 벌어도 즐길 수 있는 것들을 즐기는 삶을 살기 시작했다. 이제 그는,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소중한 유산처럼 남겨주신 질문에 진정으로 대답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저 정말 행복해요. 저를 깨우쳐 주셔서 고마워요.

가장 늦었을 때, 혹은 그렇게 깨달았을 때가 가장 이를 때라는 것은 사람의 삶 살이에 관한 한 정말 정답인 듯하다. 양희은은 '내 나이 마흔 살에는'에서

가을 지나면 어느새
겨울 지나고 다시 가을
날아만 가는 세월이 야속해
붙잡고 싶었지, 내 나이 마흔 살에는

다시 서른이 된다면 정말
날개 달고 날고 싶어
그 빛나는 젊음은 다시 올수가 없다는 것을
이제서야 알겠네

하고 노래하며 서른을 그리워 한다. 그러나 52년생인 그이가 쉰 살 되었을 때, 왜 마흔 그 때 날개 달고 날지 못했을까 하고 후회했는지도 모른다. 키팅 천국, 불신 지옥은 만고진리인 것이다.

나이가 들어 몸이 따라주지 않아서 하고 싶은 것을 못 하게 되면 좀 슬플지 모른다. 못 하게 되는 것들이 점점 늘어날 테니 그에 익숙해지는 요량도 따라 늘어나겠지. 그래도, 옛날처럼 지리산이며 설악산이며 텐트 지고 며칠 쏘댕기는 일을 못하게 되면 참 슬플 것 같다. 사막 여행과 함께 말이다. 나중에 후회하지 말고, 이번 주말에는 산 비슷하게 생긴 곳이라도 찾아 나서려구. 인생, 짧은데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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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2007/07/06 21:29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銀鳥-_- 2007/07/06 21:52 # 답글

    어느날인가, 중학생인 때 숙모와 삼촌들이 모여서 그런 이야기를 하시더군요. "40대면 늙은 줄 알았어. 하지만 내가 30대가 되니까 그게 아니더라."
  • 니케 2007/07/06 21:53 # 답글

    눈물이 나는 글이네요. 좋은글 정말 감사합니다.
  • 2007/07/06 21:55 # 삭제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런∼ 2007/07/06 23:04 # 답글

    저랑 비슷한 경험이네요.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인생이 정말 짧다는 걸 알았죠.
    인생은 짧고 ...일순간에 허물어지기도 하죠.

    그래서 사랑하고 싶은 만큼 사랑하면서 살고
    하고 싶은 만큼 할일을 하고 살아야 해요.
    그런데 지금 그렇게 살고 있는 건가....스스로에게
  • marob5 2007/07/07 00:31 # 답글

    아... 이글을 읽고 제가 얼마나 현실에 안주하며 살려고 하는지 부끄러워지네요.
    잘 읽었어요 . 감사합니다 ^^
  • 토끼 2007/07/07 01:46 # 답글

    너무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항상 시작하고픈 일이 있었는데,
    지금도 나쁘진 않기에 너무 늦은건 아닐지 너무 두려웠는데 말이죠.
    용기를 주는 글이네요.
  • deulpul 2007/07/07 05:05 # 답글

    비공개1: 에구, 고맙습니다. 글쎄, 자기 생활을 돌이켜보고 과감히 바꿀 수 있는 공력은 사실 하루하루 치열하게 사는 것이 축적되면서 나오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지금의 생활도 참 소중한 것이 아닌가 싶어요.

    銀鳥-_-: 지금은 다들 그러실 거에요: 50대면 늙은 줄 알았어. 근데 그렇지도 않더라야...

    니케: 고맙습니다.

    비공개2: 엉, 나도 소식 잘 보고 있단다. 지난번에 연락 받고 보낸 축하 답장은 못본 모양이구나. 이상하게 내 이메일이 그 쪽으로는 잘 안가는 것 같아. 국경 수비대에 걸리나... 나야말로 네 홈피 게시판에는 무서워서 잘 못쓰게 되는걸... 하하. 얼른 현재 주소부터 알려주라. 축하 카드 보내고 싶어서 안달하시는 분이 여기 있거든.

    런~: 그러셨군요... 삶이 짧다거나 빠르다거나 하는 생각은 평소 잘 하지 않다가도, 내가 하고 싶은 일이 뭐 있더라? 하면 갑자기 조급해지는 자신을 발견합니다. 70대까지 그러고 있으면 안되리라는 점은 확실한 것 같은데... 말씀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marob5: 고맙습니다. 제게도 자극이 되는 기사였습니다.

    토끼: 휴- 타이밍... 이것도 참 중요한 부분이죠. 그렇게 타이밍 찾고 있으면 쉽게 손을 내밀 수 없다는 것도 분명하고... 두 길을 함께 갈 수 없는 게 삶이라서, 항상 선택이 어렵습니다.
  • ciel-F 2007/07/07 07:02 # 답글

    키팅 천국, 불신 지옥. 아마 carpe diem 말씀이시군요.
    잘 보고 갑니다 :)
  • wenzday 2007/07/07 08:12 # 답글

    늘 감사해요, 읽을 힘이 나는 글을 힘과 함께 실어주셔서.
  • supavista 2007/07/07 09:53 # 답글

    업어갈께요~감사합니다.
  • aster 2007/07/07 11:32 # 답글

    좋은 글 읽었습니다. 행복이 우선이 되는 삶.. 그리고 지금 당장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한 용기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되는군요. ^^
  • 2007/07/07 14:19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deulpul 2007/07/08 14:58 # 답글

    ciel-F: 네, 바로 그 이야기입니다. Carpe Diem, and make your lives extraordinary! 종교가 되기에 충분하지 않습니까?

    wenzday: 저도 늘 고맙습니다.

    supavista: 데려가 입양해주셔서 고맙습니다, 하하-.

    aster: 용기...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과 관련한 용기, 이것도 많은 생각을 불러오는 화두인 것 같습니다.

    비공개: 비공개님 효과입니다... 하하. 조곤조곤 풀어주신 글도 잘 읽었습니다. 사실 그 점이 가장 걸렸던 부분이기도 했습니다. 변화란 포기하거나 그만둘 무언가를 가진 사람에게 주로 해당하는 것이 아닐까, 앤의 경우처럼. 그런 점에서, 팔자 좋은(?) 사람의 사례를 인용한 모양이 되었습니다만, 미래가 아니라 현재 순간순간을 의미 있고 재미 있게 사는 일은 누구에게나 중요하지 않을까 하는 쪽으로 생각했습니다. 참 어렵긴 해요.
  • ihati 2007/07/10 09:39 # 답글

    서른 앞둔 제게 정말 도움되는 글이네요. 잘 읽고 갑니다 ^^
  • extravirgn 2007/07/10 09:56 # 삭제 답글

    한심하게 살아가니 세월이 덧없이 느껴지고 빨리가는거죠.
  • 2007/07/10 12:21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07/07/10 12:23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deulpul 2007/07/10 12:36 # 답글

    ihati: 빛나는 젊음으로 충만한 날개 다실 때네요. 부디 마흔 되어서 돌아보아도 후회되지 않는 서른 되시기를 바랍니다.

    extravirgn: 셰익스피어나 두보나 공자나 장자나, 인생의 허망함, 세월의 덧없음을 노래하고 걱정하고 일깨워주고 경계하고 슬퍼하고 고민한 성속 제현들을 놓고 한심하게 산 인생들이라고 하긴 어렵겠죠?

    비공개: 제가 정리했습니다, 하하-. 말씀 들으니 저도 그 분이 생각납니다. 거꾸로, 내가 그 분들 나이가 되면 나의 다음 세대에게 무슨 의미 있는 말을 해 줄 수 있을까, 그런 자격을 갖게나 될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 gutarahime 2007/07/11 11:19 # 답글

    밸리에서 보고 왔습니다.
    저도 나이를 탓하며 포기하고자하는 꿈이 있는데, 님의 글을 보니 아직 늦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솔직히 다시 도전할 용기가 날지 미지수이지만(도전하다 깨져서 좀 지친 상태입니다^^) 다시 기운을 내보렵니다. 더 나이가 들어서 후회하지 않도록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 Eileen 2007/07/11 14:18 # 답글

    가슴이 찡하네요.
    맘 먹었던 일들, 고민도 되고 잘해나갈지 걱정도 되고 하는데..
    더 늦기 전에 시작해야겠습니다. 당장은 힘들겠지만, 언젠가는 내 스스로 고맙다 느낄때가 있겠죠. 좋은글 잘 읽었습니다 :)
  • DarthSage 2007/07/11 19:25 # 답글

    해보지도 않고 고민한다는 것이 어리석게 느껴지지만,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함으로써 나중에 겪게될 다른 후회와 맞바꾸어 지는게 아닐까요.
  • deulpul 2007/07/18 08:06 # 답글

    gutarahime: 힘 내십시오. 저와 함께 가자구요-.

    Eileen: 넵, 비슷한 생각을 하시는 분들이 많아 제게도 힘이 되는군요.

    DarthSage: 네, 여러 길을 동시에 갈 수 없는 괴로움일테죠? 이왕 그렇다면 후회하지 않을 길을 잡아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후회나 미련이 아예 없는 길은 없을테고, 최소화할 수 있는 길이랄까요...
  • 검색으로 오게된.. 2009/12/06 18:04 # 삭제 답글

    ..생각하게 하는 귀한 글 감사해요..정말 감사해요..!!!
  • deulpul 2009/12/06 18:41 #

    오랜만에 댓글 주신 덕분에, 저도 다시 한번 읽어보고 마음을 가다듬었습니다. 저야말로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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