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차없이 잘라라!

아래는 지난 8월13일, 피납된 아프간 인질 중 두 명이 먼저 석방될 때 사진이다. 로이터에서 찍은 사진인데, 국내 한 신문에는 이 사진이 이리저리 잘린 뒤 세 장의 독립 사진이 되어 화보에 올랐다. 사진을 어떻게 크랍핑(cropping), 혹은 프레이밍(framing)을 하느냐에 따라 그 느낌이 큰 차이가 나는 것을 잘 보여주는 사례. (사진들은 크기만 조금 줄였고 나머지는 신문 웹사이트에 올라 있는 그대로이다.)



사진 1: 석방되는 인질과 주변 환경이 넓게 잡힌 사진으로, 원판인 것으로 생각된다. 인질 두 명과 다른 세 사람은 롱샷으로 찍혔다. 낡은 자동차, 흙담벽, 거친 도로가 현지 상황을 말해주고 있다. 인질 두 명은 차 앞쪽으로 발을 옮기는 중이고, 이들을 인솔하는 듯한 관계자와 다른 사람도 움직이고 있다. 전체적으로 도로 한가운데에서 인질 이첩이 이루어지고 관계자들이 바삐 움직이는 상황을 보여준다.



사진 2: 같은 사진에서 자동차 부분과 카메라에 등을 돌리고 서 있는 흰색 와이셔츠 사내를 잘라낸 장면이다. 따라서 나머지 사람들이 좀더 강조되어 나타났다. 첫 사진에서는 무엇을 하는지 불분명했던 흰색 모자의 사내가 휴대전화를 보고 있다는 것도 드러난다. 물론 우리의 눈은 히잡을 잡고 있는 인질 두 사람에게 먼저 멈추지만, 곧바로 그 앞의 두 관계자에게도 눈길이 간다. 오히려, 사진 속에서도 인질의 앞에 위치하고 독자에게도 좀더 가까이 있는 남자 두 명이 사진의 주요 주제인 것처럼 부각된다. 전체적인 상황보다는 인물들의 움직임에 좀더 초점을 맞췄다.



사진 3: 같은 사진에서 다른 사람은 다 잘라버리고 인질 두 사람만 잡았다. 독자의 관심에 좀더 충실한 크랍핑이라 할 수 있겠다. 두 사람의 차림과 불안한 분위기가 잘 드러나 있다. 다른 사람의 발이 보인 것은 아쉽다고 할 수 있다. 독자의 주의를 분산시키는 불필요한 요소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른 사진이 필요하다.

사진 4: 실제로 기사 옆에 붙어 쓰인 사진은 이 것이다. 이 사진은 위의 사진과 같은 사진을 크랍핑만 다르게 한 것은 아니고, 초 단위의 시간차를 두고 찍은 사진인 듯하다. 사진 크레딧이 없어서 위의 사진과 함께 찍힌 로이터 사진인지 불명확하다. 이 사진은 아까보다 좀더 밝으며, 따라서 불안해 하는 인질들의 표정이나 눈매가 좀더 분명하게 드러난다.

이 사진은 독자의 눈을 인물의 얼굴로 이끌어 고정시키는 사진이다. 여기서는 흙담벽이나 다른 사람 등, 주의를 분산시키는 요소는 모두 잘라냈다. 흙담벽을 잘라내려니, 바람에 날리는 오른쪽 인질의 히잡 자락도 어쩔 수 없이 잘랐다. 그 결과, 오히려 어수선하고 불안한 상황을 더욱 강하게 시사하는 효과가 났다. 만일 담벽을 포토샵으로 지워버리면 바로 조작된 보도 사진이 된다. 사진의 밝기를 사후 보정하는 정도는 포토저널리즘에서 대체로 인정된다.

전체적으로, 사진에 크랍핑을 더하면서 사진의 주제도 서사에서 인물로 이동하고 있다. 이것은 카메라가, 혹은 카메라 렌즈를 빌린 독자의 눈이 인물에게 점점 가까이 다가가는 셈이므로 당연한 효과라 할 수 있다. 사진이 다가가면서 사진의 주제도 달라진다. 단순화하여 말하자면, 석방 당시의 긴박함 같은 기사에는 사진 1이 어울릴 것이고, '아무개와 아무개는 누구인가' 같은 기사라면 사진 4가 어울릴 것이다. 석방 인질 두 사람을 주요 대상으로 한 사진이라면, 다른 사람들의 존재는 독자의 눈길을 흩뜨리는 역할밖에 하지 않는다. 결국 위의 사진들은 같은 사진이면서 다른 사진이기도 하다.

많은 사람은 사진 1보다 사진 4에 점수를 더 준다. 주제가 뚜렷하기도 하고, 가까이 다가간 사진(더 당겨 찍은 사진)이 정서적 임팩트가 더 크기 때문이다. 보도 사진이란 대부분 결국 뉴스 인물에 대한 사진이고, 독자는 사진에서 사람을 발견하고 싶어한다. 사진의 불필요한 부분을 자르는 것만으로도 평범한 사진이 강력한 사진으로 바뀔 수 있다. 포토저널리즘 교과서에는 다음과 같이 되어 있다: 가차없이 잘라라(crop ruthlessly)!

핑백

덧글

  • Charlie 2007/09/10 13:25 # 답글

    '그리고 함량/수준미달인 기사/기자들도 가차없이 잘라라!!' ... 라고 생각이 드는 요즘입니다.
  • BigTrain 2007/09/10 13:34 # 답글

    크롭의 효과를 한 눈에 볼 수 있네요. 역시 사진은 찍는 것 만큼이나 편집이 중요한 것 같습니다.
  • 메르키제데크 2007/09/10 14:25 # 답글

    이전에 뉴스수업 받을 때가 생각나네요. 프레이밍..
  • ... 2007/09/11 15:26 # 삭제 답글

    4번은 아예 다른 사진인 듯 한데요?? 손 등등이...
  • deulpul 2007/09/12 13:44 # 답글

    Charlie: 자를 것도 많고 지를 것도 많고 질릴 것도 많은 세상입니다, 정말.

    BigTrain: 네, 보도 사진에서는 좀 민감한 부분이긴도 한데, 언제 날 잡아서 한번 살펴 보겠습니다.

    메르키제데크: 재미있었겠네요. 좋은 성적 받으셨죠? 하하-. (이런 어이없는)

    ...: 선감상 후리플의 생활화.
댓글 입력 영역



Adsense

Adsense2

구글 애널리틱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