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거운 귀환 섞일雜 끓일湯 (Others)

세상과 사물을 인식하고 이에 대응하는 능력이 그치는 지점에서 사람은 미혹(迷惑)으로 들어간다. 눈길과 손길이 미치지 못하는 경계에 선 사람이 미신에 빠져들 준비를 한대도 하나도 이상하지 않다.

꿈에 이가 빠지면 부모나 가족의 신상에 변화가 생기는 것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명색 실증주의적 사회과학도로 삶을 풀어가고 있는 내가 어느 새 이 말을 깊이 신봉하게 된 것은, 오로지 부모님의 신상이 내 인식 능력 밖에 있기 때문이라고 해야 옳다. 부모의 건강을 가까이서 세심하게 지켜볼 수 없는 상황에서, 나는 상서롭지 못한 조짐이 나타나지 않기만을 빌었다.

나는 언제인가부터 이 꿈을 꿀까봐 두려워하기 시작했으며, 비슷한 꿈을 꾸다 깨면 그 꿈을 되새겨 헤짚어보느라 새벽을 휑하게 보내는 일도 있었다. 그리고, 이러한 꿈이 보이지 않으면 부모님이 크게 불편하지 않으시는 것이라고 스스로 위안하기도 했다. 그래, 이것은 한국으로 가끔 부치는 영양제가 당신들에게 굳건한 건강을 가져다 줄 것이라고 스스로 암시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로, 실증적으로 올바르지 못한 나의 믿음에 지나지 않았다.

나의 아버지 어머니는 그들의 건강 상황을 절대로 내게 말하지 않으신다. 괜찮다, 괜찮다가 그들이 그들의 건강과 관련하여 내게 하는 말의 전부다. 그러므로, 나는 태평양을 건너오는 전화에서 울리는 그들의 목소리에서 미세한 변화를 읽으려고 애를 쓴다. 그러나 내가 화타도 편작도 아닌데, 문진(問診)이며 청진(聽診)으로 어찌 병세의 끝자락인들 알 수 있으랴.

아버지는 가끔씩 편지를 써 주신다. 편지는 언제나 날씨와 간단한 인사와 힘내라는 말씀으로 이루어져 있다. 가장 최근에 받은 그 편지 말미에는 "이제 나이가 드니 몸이 예전같지 않다"라는 말씀이 있었다. 평소에 하시지 않는 말씀을 하실 때, 명민한 자식이라면 눈치를 챘어야 했다. 아둔하게도 나는 그냥 예사로 보고 넘기고 말았다. 그리고 두어 주 뒤에, 아버지가 불편하니 잠깐 다녀갈 수 없냐는 어머니의 전화를 받았다.

병원에서 아버지 담당 의사를 나홀로 만났다. 그는 "그냥 편하게 사시다 탁! 돌아가셨으면 좋겠다. 그게 본인에게나 가족에게나 나은 일이다"라고 말했다. 이런 말을 하는 의사를 보며, 나는 멱살잡이를 해야 할지 아니면 고맙다고 엎드려 절을 해야 할지 판단할 수 없었다. 그는, 누구나 한 번 죽게 마련이며, 언젠가는 이별을 해야 한다, 그런 때를 대비해 마음의 준비를 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맞는 말씀이고 고마운 말씀이지만 받아들이기는 어려웠다. 나는 그에게 최선을 다해 주십사고 고개 숙여 말하는 수밖에 없었다.

아버지는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많이 약해지신 상태였다. 3년 5개월만에 뵌 모습이었다. 아무런 변화도 이루어 내지 못하는 것처럼 보이는 평범한 하루하루의 축적이 이렇게 큰 변화를 만들어 낼 수 있단 말인가. 하긴 중3 때 만났던 조카가 수능 본다고 바쁜 고3이 됐으니, 짧은 세월이 아닌지도 몰랐다. 이 짧지 않은 시간 동안 조카는 훌쩍 자랐고, 아버지는 훌쩍 늙으셨다.

내가 있던 짧은 기간 동안 아버지는 두 번 입원하셨다. 5인 병실의 구석에 하루종일 앉아서 나는, 내가 곁에 없음으로 해서 부모님이 겪으셨을 곤란에 대해 자책하였다. 그것은 과거형일 뿐 아니라 현재진행형이기도 하였다. 두 분은 택시를 타고 병원을 오갔으며, 입원한 아버지를 찾아 어머니가 홀로 병원을 다닐 때는 마을버스를 타고 다니셨다. 교통비도 교통비지만, 우리 집 근처에서는 택시가 잘 잡히지 않는 것이다. 내가 곁에 있다면 아무 것도 아닌 일인데, 그렇지 못하므로 큰 불편함을 겪고 계셨다.

한국에 머무르는 3주 동안 나는 아무도 만나지 않았다. 보고 싶은 친구, 동료들이 눈에 선했지만 집을 떠나지 않았다. 전화하면 당장 달려올 든든한 친구들도 많지만, 좋은 일로 온 것도 아니어서 연락도 하지 않았다.

자리를 비우는 사이 내가 감당해야 하는 일도 꼬여가고 있어서 더 오래 있을 수가 없었다. 의사의 말대로, 어차피 일조일석에 화라락 결판이 날 것도 아니었다. 나는 어머니에게, 아버지의 투병은 장기전이 될 것이며, 가족 모두가 호흡을 길게 갖고 병을 일상으로 하여 지내자고 말씀드려 두었다. 어머니에게 이런 말씀을 드리는 것도 마음이 아팠는데, 왜냐면 어머니도 5년 전에 큰 수술을 받으셨다는 것을 이번에 와서야 알았기 때문이다. 죽어도 내게 알리려 하지 않으셨다는 것을 누나로부터 전해 듣고, 나는 하릴없이 누나만 나무랐다. 그리고, 어머니 뜻대로, 그냥 모르는 체 해 두리라 생각했다. 갑자기 온도가 뚝 떨어진 아침, 나는 솜털처럼 가벼운 아버지 어머니를 포옹하고 먹먹한 눈을 슴벅거리며 집을 떠났다.

명부(冥府)처럼 컴컴한 하늘을 날아 또다른 세상으로 건너오는 컴컴한 비행기 안에서 나는 반복해 생각했다. 그래, 누구나 언젠가는 이별을 해야 한다. 이것은 모든 종류의 미신과 희구를 압도하는 명징한 명제다. 덤덤히 그런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하는 게 중요한지도 모르겠다. 나처럼 가까이서 부모님을 모시지 못하는 한 선배의 말처럼, 항상 상복(喪服) 준비해 두고 5분 대기조처럼 살아야 하는 것이 정답인지도 모르겠다. 다만, 그들은 내가 스스로를 감당하지 못했을 때 나를 지켜주었건만, 이제 그들이 스스로를 감당하기 어려울 때 내가 곁에 있지 못하다는 것이 한없이 마음이 아프다.

함께 걱정해 주고 격려해 주신 동료들과 laystall님, Yoon님, wenzday님, mooni님, 시노조스님, 붕어가시님, 섬백님, 妙香님, 길동무님, isanghee님, 자그니님, esaint님, 비공개 한 분과 다른 분들께 깊이 감사합니다.

덧글

  • 시노조스 2007/11/22 02:23 # 답글

    분명히 그런 순간이 찾아온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알고 있지만 도저히... 쉽게 그렇게 긍정하고 넘길 수가 없습니다.
    들풀님 아버님이 빨리 쾌차하시길 빕니다.
  • 2007/11/22 04:19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붕어가시 2007/11/22 06:00 # 답글

    행간에서 큰 여백을 느끼는 것은 저뿐만이 아닐겁니다. 힘내십시오.
  • 섬백 2007/11/22 09:06 # 답글

    제 말로는 가족분들 건강을 낫게 해드릴 수 없으니 힘 내시라는 말 밖에는 못하겠네요. 힘 내세요.
  • 파란딸기 2007/11/22 17:51 # 답글

    힘내십시오. ...
  • mooni 2007/11/22 19:58 # 삭제 답글

    그렇게 커보이던 어머니와 아버지의 등이 작아보일때, 정말 느낌이 묘했습니다.
    삶의 각각의 순간은 알고지만, 이해하면서 넘어가기는 힘들더군요.

    그래도 별탈 없으신것 같아 다행인 것 같습니다. 아버님이 쾌차하시길 바랍니다.
  • 2007/11/24 04:07 # 삭제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deulpul 2007/11/24 18:25 # 답글

    시노조스: 알면서도 잘 안되는 게 인지상정인 모양입니다. 고맙습니다.

    비공개님: 비슷한 처지에 있는 분들이 많이 공감해 주시는 듯하네요. 고맙습니다.

    붕어가시: 눈밝게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섬백: 고맙습니다. 제게도 큰 힘이 되는걸요.

    파란딸기: 고맙습니다.

    mooni: 이해합니다. 부모님이 작아 보일 때, 처음에는 내가 커서 그런가보다 했지만, 실제로 부모님이 작아지셔서 그렇다는 것을 깨닫는 데에도 시간이 꽤 걸렸습니다. 고맙습니다.

    비공개님: 제가 쓴 글인줄 알고 깜짝 놀랐습니다. 어쩌면 이렇게 여러 모로 비슷하신지요. 고맙게 잘 읽었습니다. 님도 님과 가족 모두 건강하시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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