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는 어디에서 죽는가 섞일雜 끓일湯 (Others)



한국은 자타가 인정하는 조선 강국이다. 오래 전부터 세계 1위를 놓친 적이 없다. 세계 큰 배들의 40%를 한국이 만든다. 2007년 수출액은 270억달러에 이르며, 올해에는 300억달러를 넘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한다. 외국 고객으로부터 거액의 주문이 계속되고 있고, 새해 벽두에도 현대중공업이 국내에서 건조된 선박 중 가장 큰 배(길이 334m, 폭 45.6m)를 중국 회사에 넘겼다.

그럼 이 거대한 배들은 그 수명이 다 하면 어디로 가는 것일까. 코끼리의 무덤과 같은 최후의 안식처라도 있는 것일까.

화려하게 태어난 초대형 선박이 마지막으로 닻을 내리는 곳은 가난한 나라의 황량한 해안이다. 방글라데시의 치타공 해안은 세계 대형 선박의 절반 정도를 처리하는 선박의 무덤이다. 이 곳에서 배들은, 그들이 누비고 다닌 세상이 어떤 곳인지 짐작조차 하지 못하는 헐벗은 노동자들에 의해 작은 쇳조각으로 해체 처리된다.

배가 태어난 곳은 골리앗 크레인과 대형 도크, 온갖 고도의 기술 장비로 뒤덮인 요람이었지만, 이 배를 해체하는 것은 오로지 인간의 몸뚱이다. 선박 해체 작업은 철판을 사람이 운반할 수 있는 크기로 잘라낸 뒤, 이를 날라 오는 원시적 방식으로 진행된다.





해체될 대형 선박은 수위가 높은 만조 때 물때를 기다려, 전속력으로 해안을 향해 달려든다고 한다. 육지에 가깝게 최대한 밀고 들어와야 인부들이 작업하기가 편하기 때문이다. 배는 죽음을 앞두고 마지막 온 힘을 한번 쏟는 셈이다.

물이 빠지고 배가 갯벌 위에 올라앉게 되면 헐벗은 인부들의 작업이 시작된다. 노동자들은 대부분 맨발이고 보호용 장갑도 끼지 않은 채, 칼날처럼 날카롭고 뜨겁게 달궈진 철판과 그 속에 남아 있는 독성 물질과 씨름한다. 방글라데시에서 배 해체 작업에 종사하는 사람은 20만 명에 이른다. 방글라데시는 철강 수요의 80%를 이렇게 선박 해체에서 나온 철강으로 충당한다고 한다. 선박 해체 작업 이전에는 전량 수입에 의존했다.

원래 선박 해체 산업(shipbreaking)은 주요 조선국들의 차지였지만, 환경 오염과 산업 재해를 낳는 3D 업종으로 인식되면서, 1970년대에 규제가 느슨한 동남아로 대부분 이전되었다. 현재 주요 선박 해체국은 방글라데시, 인도, 파키스탄 등이다. 일이 힘들고 사고가 자주 발생하며 노동 환경이 열악하므로, 해당 나라에서도 가장 저소득층 국민이 선박 해체 산업의 최전선에 나선다. 적절한 장비와 보호 조처 없이 오로지 맨손으로 치명적인 독성 물질과 씨름하며 작업한다. 부상이 일상이고 서너 주에 한 명씩 사고로 숨진다고 한다. 이들 나라의 해체 산업은 국제적 우려를 낳고 있다.

동물의 사체가 개미떼에 의해 순식간에 사라지듯, 죽은 배는 그렇게 사라진다. 남은 것은 해체 과정에서 떨어진 철판 파편들. 갯벌에 묻힌 철 조각들은 어린이와 여자들 차지다. 어린이와 여인들은 하루종일 갯벌을 뒤지며 조개 대신 철 조각을 주워서 동네 수집상에게 판다.

화려한 진수식 속에 태어난 배는 방글라데시 해안에서 쓸쓸하게 스러진다. 탄생과 소멸 사이의 격차는 배가 누비고 다닌 세상의 길만큼이나 아득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 아득한 간격의 마지막에 고된 노동이 스며들어 있다. 배를 만드는 사람은 배의 최후에 대해 염려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배를 소유한 사람도 그 배가 마지막에 어디로 가는지에 대해 말하기를 꺼리고 애써 외면한다. 극한적 노동 환경 속에서 일하는 방글라데시의 해체 작업 노동자가 받는 일당은 1.2달러 정도라고 한다.


※ 방글라데시의 배 해체 작업 양상과 그 위험성은 이곳, 이곳과 같은 동영상에서 볼 수 있다.
※ 첫 사진: 현대중공업, 다른 사진: Foreign Policy


 

덧글

  • 주차장 2008/01/06 05:19 # 답글

    뭐라하기가 참 어려운 문제죠. 그렇다고 저들을 고용하지 않으면 저들은 다른 더 저임금의 일을 하게 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서구인들의 윤리강화도 좋기는 하지만 그게 그렇게 쉽게 해결되는 문제가 아닌것인데 말이죠. 하여간 잘 봤습니다.
  • A-Typical 2008/01/06 07:03 # 답글

    몇몇 대형 크루즈 회사들은 자국에서 해체하겠다고 했다는데, 위험한 일을 그쪽에 안 주는 일이 일당 1.2불 받던 사람들이 환영할 일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 deulpul 2008/01/06 08:12 # 답글

    주차장, A-Typical: 원래 뜻은 그늘에 가려 쉽게 잊힐 수 있는 부분을 기억하자는 것이어서, 두 분이 말씀하시는 것과 초점이 다름니다만.

    일부 대형 크루즈 회사가 자체 해체를 계획하든말든 앞으로 동남아 지역은 대형 선박 해체 산업이 더욱 번창할 것으로 전망된다고 합니다. 수명이 다한 배가 점점 많아지는 것과도 관련이 있겠죠. "저들을 고용하지 않으면" 이나 "위험한 일을 그 쪽에 안주면"은 그냥 토론을 위한 가정일 뿐이고 현실은 계속 간다는 것이죠. 왜 가겠습니까. 수요가 있고 공급이 있으니 가는 거겠죠? 경제 이야기는 여기서 끝입니다. 시장 논리만을 생각하면 이상할 것도 하나도 없고 문제될 것도 하나도 없죠. 일당 0.3달러를 받고 하루 14시간 축구공을 꿰매는 예닐곱 살 파키스탄 어린이의 노동도, 전태일의 분신을 불러온 청계천 피복 산업도, 이황화탄소 가스를 마시며 일하던 원진 레이온의 작업 환경도 모두 시장 논리로는 아무 이상 없지 않습니까?

    이 다음부터는 조금 다른 차원의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같은 일을 하더라도 다양한 방법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방글라데시의 선박 해체 산업도 국제 노동단체나 환경단체들이 많은 관심을 기울이는 부분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이 쪽에서는, 문제 많으므로 방글라데시나 파키스탄, 인도가 그런 산업에 종사하지 못하도록 막으라고 주장하지 않습니다. 일을 하되 노동 환경이나 환경 오염을 개선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고 조사합니다. 그런 노력이 소중하며 실제로 세상을 바꾸어 온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어쨌든 일거리가 있으니 푼돈이나마 돈 벌잖아' 하는 경제 논리만 생각하면 비정규직이 많아도 무엇이 문제겠으며 사람이 기계가 되어도 무슨 문제가 되겠습니까.

    사실 저도 잘 모르는 이야기입니다만.
  • 섬백 2008/01/06 09:34 # 답글

    두 번째 사진 정말 인상적이네요. 끝 없는 지평선과 저 멀리 거대한 배, 그리고 초라한 사람들.

    배의 최후는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는데 이렇게 대략이나마 알게 되서 기쁘네요.
  • Jayhawk 2008/01/06 10:26 # 삭제 답글

    니콜라스 케이지 주연의 영화 로브오브워 라고, 무기를 가득실은 수송기를 어느 아프리카에 착륙시켜, 무기거래 혐의를 피하기 위해 무기를 나눠주는 장면이 나옵니다.

    아프리카 주민들이 무기뿐만 아니라 항공기까지 하루밤 사이에 다 해체해서 가져 가죠.
    건성건성 보다가 꽤 의미심장했었는데, 그 영화 생각이 나네요.
  • 푸른별빛 2008/01/06 11:06 # 답글

    보호용 목장갑 지급, 해체공구를 사용하는 분들 위주로 안전보호구 지급, 쇠독이 올랐을 때 유용한 피부연고제 지급, 땡볕 아래에서 지속적으로 작업하게 될테니 물을 담을 수 있는 아이스박스 지급...
    이 정도의 지원이면 직접 해체작업에 나서는 분들에게 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네요. 해당 선박 제조 업체쪽에서도 저런 품목의 지원이라면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싸구려 던져주고 생색낸다"라고 비난할지도 모르겠네요.
  • 좀비 2008/01/08 22:56 # 삭제 답글

    음.. 몰랐던 현실이군요..
    이것저것 생각해 보게 됩니다..
  • deulpul 2008/01/09 22:25 # 답글

    섬백: 좀 다른 말씀이지만, 이런 사진이 가능하려면 사진기자가 질퍽이고 오염물질 흥건한 갯벌로 들어갔어야 했을 듯 싶습니다. 포토 저널리즘의 힘은 그런 현장에서 나오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Jayhawk: 그 장면, 저도 기억납니다. 순식간에 사라지죠... 가져가서 뭐에다 쓸까 싶은 것까지도. 인상적이었습니다.

    푸른별빛: 네, 그런 구체적이고도 현실적인 조처들이 도움이 되는 측면이 분명히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 해안에 근로기준법이 있을까 싶거든요...

    좀비: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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