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민 자본주의 가치관이 재생산되는 사회 섞일雜 끓일湯 (Others)

영화 <대부 III>은 마이클 콜리오네가 자기 아이들에 쓰는 편지로 시작한다.

"... The only wealth in this world is children. More than all the money, power on earth, you are my treasure." (이 세상에서 진정한 재산이란 다름 아닌 아이들이다. 모든 돈과 권력보다 소중한 너희들이 바로 나의 보물이란다.)

벌써 몇 해 전의 이야기다. 한국에 가서 은사님을 뵈러 갔다가, 학과 직원분들과 식사를 하게 됐다. 어떤 분이 아이가 둘이라시며, "셋째도 있으면 좋겠지만 여력이 안돼요. 둘도 힘든데 어떻게 감당하겠어요? 요즘 셋째는 부(富)의 상징이래요..." 하셨다.

셋째는 부의 상징! 아이를 낳아 키우고 싶어도 살인적인 사교육비를 감당할 수 없거나 총체적 교육 아사리판에 애를 내팽개칠 수 없어서 출산을 포기하는 세상이다. 가난한 집에서 아이가 줄줄이 태어나면, 옛 어른들은 '저 먹을 것은 가지고 나오는 법이다'라고 위로하곤 했지만, 요즘은 그런 허황된 낙관을 유지하기가 도무지 어렵다.
요즘이 어떤 세상인가. 절벽을 향해 내달리는 쥐떼를 연상케 하는 너죽고나죽자식 교육 상황에 휩쓸리지 않고 살기란 어려우며, 땅 투기라도 해서 든든한 재산을 갖고 있지 않다면, 애들을 줄줄이 낳아 키우다가 어른과 애가 모두 망가지기 십상이다. 정말, 이제 앞으로 애를 여나믄씩 낳아 기를 수 있는 사람들은 살인적 교육비를 큰 부담없이 댈 수 있을 뿐 아니라 각종 차별적 사교육을 자식에게 제공해 줄 수 있는 소득 상위 계층뿐일지도 모른다.

언젠가, 출산율 변화가 사회에 장기적으로 어떤 영향을 갖고 오게 될지 분석한 글을 본 적이 있다. 재미있으니까 조금 살펴보자. <U.S. News and World Report> 출신으로 인구학을 연구하고 있는 필립 롱맨(Phillip Longman)이 2006년 3월 <Foreign Policy>에 기고한 글이다. 여기서 그는 다음과 같이 분석한다.

1. 현 세대는 아이를 낳지 않는 경향이 있으며, 인구 증가율은 세계적으로 감소하는 중이다.
2. 그러나 개인의 종교적, 이데올로기적 성향에 따라 각 가정의 실제 자녀 수는 차이가 난다.
3. 보수적/종교적인 사람은 아이를 많이 낳으며, 진보적/자유적인 사람은 결혼하지 않거나 아이를 적게 낳는다.
4. 결과적으로 보수적 이데올로기를 가진 종교적 가정에서 자란 아이들이 사회의 다수를 차지하게 된다.
5. 그 결과, 사회는 점점 더 보수화되고 종교적 성향을 띠게 된다.

롱맨의 주장에 따르면, 이데올로기적 성향에 따른 출산율의 차이는 한 사회의 성격을 변화시키는 매우 중대한 사건이다. 이러한 상황이 계속되면 진보적 이데올로기는 점차 중요성을 잃고 사라지게 되며, 사회는 종교 국가적 성향을 띠게 되는 것이다. 예컨대,

"미국에서 1930년대 후반에 태어난 여성 중 아이를 갖지 않은 사람은 10%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1950년대에 태어난 여성 중 아이를 갖지 않은 사람은 그 두 배에 이른다. 1960~70년대에 페미니즘과 반문화 운동을 경험한 세대는 그 전 세대에 비해 아이를 훨씬 덜 낳았으며, 그 결과 그들이 정서적, 심리적으로 다음 세대에 미친 영향력은 그들이 부모 세대로부터 받은 것과는 비교할 수도 없을 정도로 미약하다."

즉, 진보적 이념을 받아들이고 그 가치에 따라 생활해온 결과, 오히려 그 가치를 사회적으로 재생산할 인구적 토대가 무너져버렸다는 것이다. 현 세대에서 아이를 많이 낳는 사람은 이처럼 아이를 낳지 않거나 적게 낳는 경향(페미니즘이나 자유주의)에 반대하는 사람들이다. 이들의 배경이 되는 것은 보수성과 종교성이다. 그리고 그러한 배경에서 태어나 자란 아이들이 숫적으로 사회의 다수로 등장한다.

한국의 저출산은 강제된 결과

롱맨은 이러한 현상을 통해, 미국 문화가 왜 현실적 개인주의에서 종교적 원리주의로 점차 이동하고 있는지를 설명할 수 있다고 말한다. 2004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부시를 지지한 주의 출산율은 케리를 지지한 주의 출산율보다 평균 12%나 높았다고 한다. 출산율과 이데올로기 관계를 보여주는 한 단면이다.

1960년대 초에 태어난 프랑스 여성 중에서 아이를 셋 이상 가진 사람은 전체의 3분의 1이 채 되지 않는다. 그러나 이들이 낳은 아이들은 그 아이들 세대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33% 미만이 50% 이상으로 재생산되는 것이다. 아이를 셋 이상 낳은 이 여성들은 대부분 가톨릭이나 이슬람을 종교로 갖고 있다.

이러한 분석 끝에, 롱맨은 미래의 아이들은 대부분 보수 성향 일색인 계층을 부모로 하여 태어나게 될 것이라고 예측한다. 반대 이데올로기를 가진 사람들은 아이를 낳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결과 그들 부모의 사상과 가치관이 사회의 압도적 가치관으로 보편화되게 된다는 것이다.

매우 흥미로운 분석이었는데, 나는 이 글을 읽으며 한국의 경우도 비슷한 상황에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보았다. 출산율을 매개로 하여 사회의 성향이 변화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은 비슷하지만, 그 구조는 조금 다르다. 서구의 경우가 이데올로기나 종교적 요인 때문에 그러한 변화가 벌어진다면, 한국은 오로지 돈, 소득, 재력 때문에 이런 변화가 발생할 것 같다.

서구의 경우 아이를 낳지 않는 사람은 이를 자발적으로 선택했을 가능성이 높다. 이러한 선택을 낳은 것은 페미니즘이라든가 자유주의라든가 진보 성향이라든가 하는 것들이다. 그러나 한국에서 셋째, 넷째 아이는 부의 상징이다. 한국에서 아이를 낳지 않는 것은 자발적으로 선택하는 경우도 있지만, 그보다는 아이를 낳아 키울 상황이 못되기 때문이라고 해야 더 정확하다.

위에서도 말했지만, 1) 가계 수입의 절반을 쏟아부어야 하는 살인적인 사교육비, 2) 아이를 낳아 키울 연령층=젊은 세대의 경제적 불안정, 3) "애 낳으면 20만원 줄께"로 대표되는, 출산/육아와 관련한 사회 복지의 부재, 4) 아이를 낳아 키울 세상으로서의 한국 사회에 대한 전반적인 회의/염증/실망 따위가 겹쳐서 나타나는 최근의 한국 사회의 저조한 출산율은, 선택된 것이 아니라 강제된 것으로 보아야 한다.

그럼 이러한 상황이 미래에 시사하는 바는 무엇인가. 이 시점에서 나는 통계적 자료를 찾아보고 싶다. IMF 이후 최근 10년 간, 한국의 소득 상위 계층의 출산율과 하위 계층의 출산율이 어떤 차이를 나타내는지 궁금하다. 혹은 소득 수준과 최근 10년에 태어난 자녀 수 사이의 상관관계도 궁금하다. 모르긴 몰라도, 일정한 패턴이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왜 그럴까.

한국에서 젊은 부부가 아이를 (많이) 낳지 않는 이유는 이데올로기적인 것이 아니라 경제적인 것라고 했으므로, 경제 문제로부터 자유로운 계층은 이같은 출산 제한을 강제당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아이가 많아도 얼마든지 사교육 시킬 수 있고 방학마다 외국 여행 시킬 수 있고 조기 유학 시킬 수 있는 계층은 이러한 제한을 받지 않는다. 아이를 (많이) 낳지 않기를 '선택'할 수 있는 계층은 사실 이들뿐이다. 이 고소득 계층을 제외한 다른 대부분의 계층에서 저출산은 자발적 선택이 아니라 강요된 것에 가깝다.

권력 독점하고 머릿수까지

롱맨의 추론을 적용하면, 한국 사회의 미래상도 그림을 그릴 수 있다. 즉, 아이를 낳아 키울 여력이 되는 상위 계층 출신의 아이들이 점점 사회의 다수가 되어갈 것이며, 그 부모 세대의 가치관이 사회의 주도적인 가치관이 되어갈 것이다.

그 부모 세대의 가치관이란 것은 무엇인가. 아마 한국 사회에서 아이를 낳아 키우는 데 문제가 없기로 대표적인 사람들이라 할 수 있는 현 정부의 내각 지명자들을 보면 그것을 짐작할 수 있다. 말하자면, 부의 형성을 위해서라면 편법이나 부조리도 얼마든지 선택할 수 있고, 그게 왜 문제가 되는지 도대체 이해하지 못하며, 누구나 다 재산을 몇십억 쯤 가진 것으로 생각하며, 밀가루가 비싸면 쌀가루를 먹으면 되며, 군대는 미쳤다고 가며, 가족은 언제든지 미국 시민이 될 준비가 되어 있으며, 국가는 공공 분야든 뭐든 모조리 기업의 돈벌이 대상으로 넘겨야 하며, 못 사는 넘들은 무지하고 게을러서 그런 것이며, 수백 년 간직해 온 문화재며 수십만 년 지켜 온 자연이며 모두 개뿔, 돈다발 위해 일단 파고 보자는 등등의 가치관 말이다.

이런 어이없는 가치관(이라고 이름 붙이기도 한심한)이 보편화하는데도 사회는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다. 그것은 첫째, 이들이 주요 정책 결정을 좌우할 권력을 독점하고 있으며, 둘째, 출산율의 함수에 따라 숫적으로도 점점 다수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출산율을 매개로 하여 한국은 명실공히 최악의 20대 80 사회, 혹은 10대 90의 사회로 변모할지 모른다.

이것은 너무 비관적인 전망인지 모른다. 또 자녀 세대가 부모 세대의 가치관을 그대로 전수받지 않을 수도 있다는 점도 중요하다. 개천에서 용도 나올 수 있고 천민 자본주의 아비에서 고결한 박애주의 자식이 나올 수도 있긴 있다. 그러나 이러한 가능성은 애초에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이전무에게 비자금으로 나라를 떡주무르는 재벌의 해악을 인식시킬 수 없으며, 방사장에게 곡필과 왜곡을 일삼는 찌라시 언론의 문제점을 인식시킬 수 없다.

자식 세대의 정치 성향을 부모의 정치 성향과 비교하여 연령별로 분석한 연구가 있다. 부모 세대가 보수적이든 진보적이든 상관없이 자식 세대는 10대 후반~20대 초반에 부모와 반대되는 성향을 가지는 경향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30대 중반을 넘어서면 자식 세대의 성향은 다시 부모 세대와 일치하는 경향을 보였다. 결국 어디 안 가는 것이다.

이런 사회가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애를 많이 낳아 키워 건전한 상식의 머릿수를 늘리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대통령 하나 갈아치운다고 해결될 일이 아님도 분명하다. 이것은 저주의 수레바퀴와 같은 거대한 트렌드라서, 그 흐름을 바꾸기가 쉽지 않다.

내가 아는 한 사람은 이렇게 말한다. 세상은 원래 그런 것인가 봐. 턱도 없고 말도 안되는 부조리가 쌓이고 쌓여 가다가 언젠가는 폭발하고 다시 제 자리를 찾고, 그렇게 살만 하면 다시 부조리의 축적이 시작되는. 원래 그렇게 되도록 되어 있나 봐.

모순이 누적되어 폭발하는 사이클은 역사에서 쉽게 찾을 수 있다. 그리고 거시적으로 보아 그것이 유일한 근본 해결책인지도 모른다. 거기까지 이르는 과정과 그 계기 자체는 무척 비극적인 것이 되겠지만 말이다. 흡입-압축-폭발-배기라는 사회 변동의 사이클 중 우연히 모순의 압축 심화 상황에 존재하게 되어 곤란을 겪는 우리 세대를, 바라옵건대 긍휼히 여기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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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마르스 2008/04/02 12:03 # 답글

    굉장히 흥미로운 이론이네요. 수긍도 가구요. 수긍이 가는만큼 무섭기도 하고.
  • 닥슈나이더 2008/04/02 12:12 # 답글

    부자 아이들만 많고 가난한 사람들의 대가 끊기면......

    우리나라의 지금 상위권을 생각해 볼때... 다들 가난한 사람이 됩니다....

    쥐어짜낼 사람도 없고... 올려놓은 부동산에 뛰어들 불나방도 없고.....

    디플레이션이 일어나겠죠.....
  • milln 2008/04/02 12:31 # 답글

    어.. 그럴듯 하네요.
  • ~_~ 2008/04/02 16:28 # 삭제 답글

    제가 바라는 복수의 일종이라.... ㅎㅎ
  • 보리 2008/04/02 18:28 # 삭제 답글

    처음엔 설마? 하다가 점점 고개를 끄덕거리며 읽었는데요, 우리나라의 경우엔 출산을 선택할 수 있는 계층이 실질적으로 얼마나 그 선택권을 누리며 자녀를 더 낳는가에 대해선 확신이 안서네요. ^^; 여튼 얼핏 떠올려봐도 암담한 현상이군요.
  • 명랑이 2008/04/02 19:58 # 답글

    미국의 경우는 이디어크라시라는 영화(를 실제로 본 것은 아니지만)를 떠올리는군요. 그리고 한국의 경우는... 그렇게 부유한 층이 아이를 많이 낳고 가난한 층이 아이를 적게 낳거나 낳지 않는다면 미래에는 부가 좀 더 공평하게 분배된 사회가 도래할 것 같습니다.
  • 긁적 2008/04/02 23:48 # 답글

    오우. 정말 재미있는 이론인데요. ㅋㅋ
    글쎄요. 그 사람들 중에서 구해낼 수 있는 사람을 찾아봐야겠군요 =_=
  • deulpul 2008/04/03 03:20 # 답글

    마르스: 실제로 현실화된다면 무서운 일이겠습니다, 정말...

    닥슈나이더: 음... 그런 기묘한 현상이 일어날 것은 생각하지 못했군요. 진정한 막장 정글이 되는 것일까요. 여하튼 그렇게 되기까지 겪어야 할 과정에서 벌어질 일이 아득합니다.

    millin: 그래서 우울합니다.

    ~_~: 막장 정글을 말씀하시는 거겠죠? 복수는 좋은데, 그 전에 복수할 주체가 먼저 소멸하는 결과가 되어서...

    보리: 네, 상위 계층에서 실질적으로 아이를 많이 낳는 것으로 보기는 어렵습니다. 이것은 시대 추세하고도 관련이 있을텐데, 어쨌든 '선택권'은 이들만이 누릴 수 있다는 것이 씁쓸합니다.

    명랑이: 네... 그런 일이 벌어지면 다행이겠지만, 그런다 치더라도 거기까지 가는 과정이 너무 고통스럽지 않을까 싶습니다. 게다가 무한 경쟁이 삶의 최고 가치가 되는 막장 정글 사회라면 카인족과 아벨족이 항상 나뉘어 나타나게 마련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긁적: 그들보다 우리가 더 급하지 않을까 싶습니다만... 여하튼 옛말과는 달리, 인심은 빈 곳간에서 나오는 듯 합니다.
  • ellie.nc 2008/04/03 15:51 # 삭제 답글

    다행히(?) 이 포스팅의 기준대로 봤을때 한국 사회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아이를 셋넷씩 낳아 키울 수 있는 계층은 아주 극소수 부유층이므로 대가 반복되더라도 그들은 여전히 소수겠지요. (그들이 소수가 아닐쯔음이면 이미 이 나라 자체가 파탄난 상태일듯...)

    근데 그런 사람들이 권력을 쥘 확률이 높다는데서 문제가... -_-;;

    아이 낳아 키우는 것이 경제적 부와 아주 무관하지는 않겠지만, 오늘날 한국사회처럼 강한 상관관계를 갖는다는 사실은 정말 씁쓸하네요.
  • 구르미 2008/04/03 18:03 # 삭제 답글

    말씀하신 롱맨의 이론은 거북이나 화살패러독스와 같은 맹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즉 시간의 흐름이나 변화에 대한 변수를 고려하지 않은 이론이라는 것이죠. 상위층이 아무리 아이를 많이 낳는다해도 한 사회의 부유층은 소수로 일정 비율을 유지합니다. 상위층이라는 말 자체가 피라밋꼭대기의 일부를 뜻하기 때문이죠. 말씀하신 것처럼 상류층이 다수가 되려면 상류층 아이들이 지위를 유지해야 하는데, 상류층이 많아지면 경쟁에 생기고 탈락자가 생기면서 하위층으로 전환되는 변화가 생깁니다. 그래서 상류층은 늘 소수인 것이죠. 한 번 성공한 사업가 집안이 몇 대를 가는 것이 아니라 자기 대나 아들 대에서 망하기도 하는 겁니다.
    하지만 그들이 다수가 되지는 않겠지만 그들이 계속 이데올로기를 선도하고 유지한다는 점에서는 여전히 무섭죠.
  • deulpul 2008/04/04 03:50 # 답글

    ellie.nc: 네, 말씀대로 물리적 숫자로까지 다수가 되기는 어렵겠죠? 그래도, 또 말씀대로, 국가 사회의 주도 세력이 된다는 점이 유의할 점이라고 생각합니다.

    구르미: 롱맨은 실제 인구학적 통계를 들어서 이야기하고 있으니 근거가 있다고 생각합니다만, 제가 한국 사례를 빗대어 이야기한 것은 구르미님의 지적이 합당하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제가 말씀드린 상위층이란 어떤 시기든 상관없이 적용할 수 있는, 글자 그대로 (예컨대) 상위 10% 계층이 아니라 바로 '지금의 상위층'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분들이 세대를 거듭하며 나름대로 부침을 할 수 있겠습니다만, 상대적으로 소득이 적은 세대에 비해서 많은 아이를 낳을 수 있는 환경이므로 일단 숫적으로 유리한 조건을 누릴 수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었습니다. 그렇게 숫적으로 유리한 상황이 바로 그들의 가치관을 더욱 확산시키는 조건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었구요. 좋은 의견 고맙습니다.
  • DGDragon 2008/04/04 07:50 # 삭제 답글

    제가 하던 생각과 매우 비슷한 것 같습니다. 물리적 숫자의 다수라... 못될 것도 없지 않을까요. 해외 노동자란 변수가 있으니. -_- 저는 해외 노동자가 점진적으로 현재 한국의 중하위층을 상당부분 대체하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기존 중하위층은 뭐... 출산율 감소로 축소되고요. 그리고 한국이라는 국가의 주력 업종은 끝까지 2차 제조업이 될 듯 합니다. 자세한 설명을 댓글에 쓰긴 어렵지만, 문화 산업이란 것이 자랄 수 없는 토양인 듯.
  • Jayhawk 2008/04/04 11:01 # 삭제 답글

    글의 전개상 '천민자본주의'가 특별히 제목의 중요단어가 되어야 하는가에 조금 생각했습니다. 실은 천민자본주의라는 단어 자체에 거부감을 가지고 있기도 하구요. (귀족 자본주의 같은 것도 있을까요? ^^;)

    혹시나 해서 http://www.foog.com/302 이런 의견도 있다 이고, 저도 비슷한 맥락입니다.

    재생산을 통한 필요이상의 확대(또는 파생)는 자연스럽게 (다시금) 붕괴로 환원된다는 경험이... 요근래는 서브프라임+파생상품의 미국 경제를 보는 것 같군요.
  • deulpul 2008/04/04 13:25 # 답글

    DGDragon: 외국에서 이주해 오는 노동자나 그로 인해 발생하는 새로운 인구 변동은 미처 생각해 보지 못한 사항이었습니다. 이미 무시하기 어려운 비중으로 자라고 있는데, 장기적으로 어떤 변수로 작용할지 예상하기가 쉽지 않네요. 전체적으로 우리 사회의 하위 부분으로 유입될 것임은, 왜 그들이 오는지, 왜 그들을 고용하는지 이해하면 쉽게 알 수 있을 듯 싶습니다. 통일 되면 걱정되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Jayhawk: 생각 말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링크한 글도 잘 읽어 보았구요. 검색해 보니 비슷한 주장을 여럿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이 말이 지시하는 것을 싫어하는 만큼이나 이 말의 표현력을 좋아합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볼 수 있는 어떤 모습을 이 말보다 더 정확하고 효과적으로 표현하기는 쉽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1) 귀족 자본주의 같은 것은 물론 없지만, 자본주의라는 말 하나로 그 안에 포함되는 모든 개별성과 역동성을 압착하여 보는 태도에는 반대합니다(역동성이 반드시 긍정적인 것을 의미하지는 않죠). 더구나 자본주의 자체가 아니라 개개 자본가, 자본주의자에게까지 이르면, 얼마나 다양한 상황이 존재할 수 있는가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2) 천민이 누구일까요. 쉽게 대답하기 쉽지 않습니다. 옛날 같으면 도축업자를 천민이라고 했습니다. 대나무 쪼개 바구니 만드는 것을 직업으로 하는 사람도 사회 맨 밑바닥으로 쳤습니다. 오늘날 이런 분들은 사장님입니다. 요즘은 돈 없으면 천민입니다. 왜 이 말씀을 드리는가. 우리가 쓰는 천민 자본주의라는 말에 등장하는 천민에는 계급적 의미가 거의 탈색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이 말 쓰면서 도축업자를 떠올려 본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우리가 쓰는 이 말은 과거 신분제 시대에 존재했던 특정 계급이나 계층을 지시한다기보다, 특정한 자본가 그룹의 행태와 가치관을 지시하는 것으로 보아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저는 예컨대 전여오크같은 사람을 '불가촉 천민'으로 표현하는 데 주저하지 않지만, 신분제를 유지해야 한다거나 사회 최하층을 두어 차별해야 한다거나 하는 생각은 눈꼽만큼도 해본 적이 없거든요. 그러나, 단지 그 말의 유래가 그렇기 때문에 그 말을 써서는 안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3) 이렇게 보면, '천민'이라는 말에 들어 있는 천박성과 사람(民)의 두 개념 중 어디에 더 초점을 맞추고 있느냐의 문제인 것처럼 보입니다. 천민 자본주의를 말하는 사람들이 천박성에 초점을 두고 있다는 것은 너무나 명백한 일이 아닐까 싶네요. 천민의 천은 신분이 낮다는 뜻인 반면, 천민 자본주의에서의 천은 천박하다는 뜻이 강한 셈이죠.

    4) 이 말을 누가 어떤 의미로 처음 썼다든가 하는 점은 패쓰-. 논리적으로 납득하기도 좀 어렵고, 그래서 뭐? 하는 생각도 듭니다.

    5) 편견과 차별을 경계하고 걱정하는 생각은 백 번 동의하고 존경합니다. 다만 현재의 천민이 설치며 벌이는 패악이 살벌한데 수백년 전 '천민'을 챙기고 있어야 할까는 좀 의문입니다.

    6) 이 글의 제목으로 이 말이 붙은 데 대해서는 Jayhawk님처럼 저 역시 좀 마땅치가 않습니다. 천민 자본주의라는 말 때문에가 아니라, 출산을 선택할 수 있는 경제력을 갖춘 상위 계층을 모조리 싸잡아 천민 자본주의 가치관의 담지자로 표현해버린 것이 아닐까 하는 찜찜함 때문이었는데요. 그냥, 한국 사회를 이끌고 가는 미친 듯한 드라이브에 대한 얼치기 증오와 경멸에서 그렇게 이름 붙인 것이라고 이해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 병찬 2008/04/10 00:01 # 삭제 답글

    시간을 두고 고민하며 읽어봐야할 글인것같아 제 블로그에 원문출처를 달고 담겠습니다.
    사전에 양해를 구하지 않았음응 용서해 주시고, 혹 불편하게 느끼신다면 바로 조치할 수 있도록 알려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최근 급격하게 한국의 자본주의가 부정적인 방향으로 흘러가는 것 같아서 걱정스럽던 차에, 이 글을 읽게되어 정리하는데 많은 도움을 받았습니다.
  • deulpul 2008/04/10 06:00 # 답글

    하나도 불편하지 않습니다, 하하-. 읽어 주셔서 고맙습니다. 정말 '괴담' 카테고리로나 분류했어야 할 내용이 아닐까 싶습니다.
  • hyperkya 2008/05/04 14:22 # 삭제 답글

    세상이 왜 이모양 이꼴인가 했는데 이해가 되었습니다...방법과 수적으로 딸리는 군요. 해보겠다고 나혼자 나랑 비슷한 애들를 많이 낳는다고 변화가 당장 생기는 것도아니고 아이는 아이대로 스스로의 가치관을 갖을수도 있는 거니까...어쩜 수적으로 밀리는 부모밑에서 더 고생만 하는 것일수도 있고 그러니까 부모는 애만들일을 피할거고...전 응용미술쪽인데요 학교에서부터 졸업하고 일한지 십사년이 된 지금까지 디자인은 새롭고 창조적인거 하자는 분야인데도 불구하고 늘 부조리하게 돌아가는 거 보고서 막연하게 돈과 권력의 압박이라고만 생각하고 있었거든요.프랑스에 살고 있는데 한국에서 위험한 병인데도 정부가 규제다풀고 전폭적으로 미국 소고기를수입한다기에 옛날에 영국에서 농산부 장관 사진찍었던게 생각나서 기사를 찾다가 여기까지 와서 좋은 글 많이 읽고 갑니다.

  • deulpul 2008/06/28 00:04 # 답글

    댓글 달아 주신 걸 늦게 발견했네요. 반갑습니다. 분명히 잘못된 가치관인데도 이른바 '실리'로 합리화되고, 그게 보편화되어 누구도 문제를 느끼지 못하는 상황으로 가는 비극이 벌어질까 두려워서 생각해 본 것이었습니다. 제가 기우를 하고 있다면 좋겠습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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