걔들은 거기서 놀라고 해 섞일雜 끓일湯 (Others)

이런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아직 충분히 정리되지 않은, 생각의 단초로 봐주시길 바란다.

예전에는 백주 대낮에 거리에서 불심 검문이 자의적으로 이루어졌다. 거리를 지나는 사람 모두를 대상으로 하여, 검문하는 사람 마음대로 취조와 수색이 이루어졌다.

흉악한 강력범을 잡기 위해서 그런 거면 누가 뭐라 그래. 대학교 정문 앞이나 지하철역 입구나 종로 한복판이나 아무데서나, 할 일 없이 자기 나와바리를 어슬렁거리는 거리의 깡패나 다름없는 경찰관들이 자기 마음대로 사람을 불러세우고 가방이며 핸드백을 뒤졌다.

운 좋게 그 가방 안에서 '불온 문서' '불온 책자'가 발견되면 땡 잡은 거다. 가방의 주인은 뒷덜미나 머리채를 붙잡힌 채 닭장차에 끌려가, 몇 가지 통과 의례를 거친 뒤 훈방되거나, 추후 추가로 발견되는 '범죄 사실'에 따라서 며칠 구류를 살기도 했다.
이런 지조때로 단속의 대상이 되는 '불온 문서'는 무엇이었나. 대학생 조직이나 노동 단체, 사회 단체에서 발표한 성명서, 집회나 시위 현장에서 배포된 안내문이며 선언문, 이른바 금서로 지정된, 이를테면 마르크스의 저서 같은 책자, 반정부 성향의 매체 등이 모두 포함된다. 예컨대 <한겨레신문>에서 '미국의 한반도 전략'과 관련된 기사만을 스크랩해둔 공책을 지니고 있다면 당신은 닭장차로 끌려가 통과 의례를 거칠 대상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지금 생각하면 너무나 어이없는 상황. 너무나 부조리한 상황. 너무나 비민주적인 상황. 너무나 한심하고 분노스러운 상황.

이 상황을 이겨내고 민주화의 싹을 틔운 것은 다름 아닌 이 '너무나'가 아닐까 싶다. 너무나 어이없고 분노스러운 나머지, 누가 보기에도 세상은 분명히 바뀌어야 하는 것으로 인식되는 것이다. 세대나 계층을 넘는 공감이 만들어진다. 6월항쟁 때 정권을 경악하게 만들었던 '넥타이 부대'는 이런 점을 잘 보여주는 사례다.

가시적 폭압은 가시적 저항을 불러 일으킨다. 군인들은 이 점을 잘 이해하지 못했다. 사회는 군대가 아니기 때문에, 밟으면 기는 게 아니라, 겉으로는 기는 것처럼 보이지만 속으로 저항력을 키우다 일정한 비등점에 도달하게 되면 결국 폭발시키고 마는 것이다.

머리를 잘라 광화문 네거리에 효시를 해도 저항은 멈추지 않는다. 오히려 내밀한 저항은 더 높아진다. 강하게 누르면 강하게 튀어 오르게 마련이다. 이것이 만고 진리인 뉴튼의 제3 운동법칙이다.

말길 트인 세상은 누구에게 유리한가

세상은 달라졌다. 입 있는 자 말할진저. 이제 누구나 정부를 비판할 수 있고, 노무현이든 이명박이든 개새 소새 해가며 욕까지 할 수 있다. 누구나 할 말은 할 수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인터넷이라는 훌륭한 '공론장'에서 할 말 하고 들을 말 듣고 공감도 하고 추천도 한다.

그래서?

이런 상황은 누구에게 더 도움이 될 것인가.

어제 텔레비전에서 재미있는 프로그램을 봤다. 무르팍에 노간지가 나왔다고 하자. 다음 날 친구들과 모여 이야기를 하는 도중, 그 프로그램 이야기가 나왔다. 한참 서로 신나게 말하다 보면, 멍하니 듣고 있는 사람이 있다는 점을 깨닫게 된다. 신나서 떠드는 사람은 모두 그 프로그램을 본 사람들이며, 그것을 보지 않은 사람은 멍하니 듣고만 있게 된다. 이 경우, 무르팍에 나온 노간지 이야기를 신나게 떠드는 것은, 이미 본 사람들끼리 공감을 재확인하는 데 지나지 않으며, 보지 않은 사람에게 그 공감을 전파하는 데까지는 잘 미치지 않는다.

인터넷에서 신나게 욕하고 조롱하고 한탄하고 그로써 서로 공감하는 것은, 외견상 부조리한 것에 대한 비판의 외연을 넓히는 일 같지만, 실상은 끼리끼리 모여 자위를 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지도 모른다. 내적 저항력은 이런 과정 속에서 소모되고 마는 것인지도 모른다. 넷에서는 모두 이명박을 씹고 한나라당을 비판하는 것 같은데, 여전히 지지율 50%가 나오는 불가사의한 일은 이 점과도 관련이 있는지도 모른다.

할 말 있는 (나 같은) 사람에게 인터넷은 좋은 터를 제공해 준다. 인터넷에서 의견을 나누고 서로서로 공감하면서 뭔가 되는 것 같은 느낌을 받을 수 있다. 건전한 상식을 가진 사람이 많아지고 있다는 느낌을 받을 수도 있다. 잘못된 정부나 정책을 비판하고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뭔가 뜨거운 비판이 물밀듯 일어나고 있고, 이런 것이 일정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문제는 이것이 얼마나 실질적인 힘을 가질 수 있겠는가 하는 점이다. 이미 나쁜 넘은 나쁘다는 것이 다 알려진 상황에서, 나쁜 넘은 남이 나쁘다고 욕하든 말든 열심히 제 할 일 밀어부치는데, 나쁜 넘 나쁜 것 다 아는 사람들끼리 모여 열심히 "쟤 나빠, 쟤 나빠"를 말로 반복하는 것이 얼마나 큰 힘을 발휘하겠는가.

실컷 씹힌 젖의원도 다시 나오고

이런 점에서 보면, 인터넷이라는 공간은 두 얼굴을 가진 위험한 곳이라는 생각을 할 수 있다. 담론이 자유롭게 오가고 지식과 의견이 교환되고 확장되며 시간과 공간을 넘어서 토론이 이루어지는 장으로서 기능할 수도 있지만, 밖에 나가 얼굴을 맞대고 들이받고 싸워야 할 때조차도 편하게 앉아 자판이나 두들기고 있으면서 뭔가 되고 있는 것처럼 느끼는 허위의식의 공간이 될 수도 있다.

하려고 하는 사람은 인터넷에서 뭐라고 떠들든 하게 마련이다. 안 보면 되고, 봐도 안 봤다고 우기면 된다. 인터넷에서 실컷 씹힌 젖의원도 최다 득표를 업고 또 나올 판이다. 세대적으로, 또 직업적으로 편향되어 있는 것으로 간주되는 인터넷 여론은 공기와 같은 존재라서, 아무리 언론 기사에서 '네티즌 아무개는 이렇게 말했다'라고 간접 인용하더라도 실질적 영향력을 발휘하기는 아직 한참 이른 것이다.

이런 점에서, 인터넷에서 정부에 대한 비판이 비등하는 것은 정부 처지에서 보아 오히려 매우 다행스러운 일이 될 수도 있다. 2MB 정부에 대한 분노가 거리로 쏟아져 나오지 않고, 자기네끼리만 공감하는 인터넷 안에서 쏟아지는 것이 얼마나 나은 일인가. 혹시나 해서 체포조까지 다듬어 준비해 뒀지만, 그거 실제로 쓸 일 벌어지면 정부로서도 무척 피곤하고 일 잘 안 풀릴 것이다. 자자, 괜히 말길 막아서 거리로 나오게 하지 말고, 인터넷이라는 해우소 안에서 열심히 지지고볶으며 힘 빼게 놔둘 일이다. 그 사이에 우리는 의료보험 손보고 운하 파고 갈 길 열심히 가면 된다.

저그들이 몰려온다. 어떡해야 할까. 대충 적당한 중간쯤에 서플라이 디포들 몇 개 지어둔다. 저그들이 모여서 디포 부수는 데 열중하는 동안, 본 기지에서 열심히 시즈탱크며 배틀크루저를 뽑아내면 되는 것이다. 곳간에 미네랄 넘치고 베스핀가스 가득 찼는데 두려울 게 없다.

김수영 시인은 자유에 피의 냄새가 스며 있다고 말한다. 민주주의는 피를 먹고 자란다는 말도 있다. 주인이 되려면 대가를 치루어야 한다. 비가 새는 판자집을 소유하더라도 세 사는 사람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 책임이 따른다. 하물며 한 국가의 주인이 되려는 데, 편하게 앉아서 밥 떠먹여주기를 기대할 수 있겠는가. 에이프릴 카터는 "직접행동을 수반하지 않는 민주주의는 타락한다"고 단언한다(<지식 e> 2에서 재인용).

지만원은 지금은 무척 망가졌지만, 한때 그는 어영부영 주먹구구가 판치는 한국 사회에 시스템을 들고 들어온 선각자였다. 그가 언젠가 논쟁하면서 키보드 워리어를 비판한 적이 있다. "그게 뭡니까. 처박혀 앉아서 이런 일이나 해대고" 하면서 그는 두 손을 앞으로 내밀어 손가락을 움직였다. 그가 이 말을 한 것은 다른 맥락에서지만, 거꾸로 대입하더라도 그의 말은 매우 중요한 시사점이 아닐 수 없다.

덧글

  • Charlie 2008/04/04 06:03 # 답글

    이오공감 올리고 싶은 글인데요? :)
    손가락이 간질간질~
  • deulpul 2008/04/04 11:07 # 답글

    취향이 특이하시군요! 하하하-.
  • 2008/04/04 20:27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긁적 2008/04/04 23:25 # 답글

    이오공감에 올리고 싶은 2人
    그러나 이런 좋은 글을 읽어도 사람이 변하는건 아니라는거 ㅠ.ㅠ....
  • deulpul 2008/04/05 02:05 # 답글

    비공개님: 그 차이는 참 연구 대상입니다, 정말. 어떻게 보면 뻔한 이유라고 생각도 되고, 어떻게 보면 참 의문스럽기도 하고요. 여하튼 그 차이가 참 사람 힘 빠지게 하는 듯 합니다.

    긁적: 투표율이라도 좀 올라갔으면 좋겠습니다만, 상황이 워낙 어이없어 무력감 갖기 딱 좋은 데다가, 투표하고 싶어도 밀 데가 없다거나... 하는.
  • Cypris 2008/04/13 03:49 # 답글

    웹 어디에선가 한창 수려하고 화려하며 흠잡을데 없는 강한 글이 돌아다녀도 덧글을 달며 동조하는 사람은 모두 그사람이 그사람들. 여전 황우석 사건 때도 주위의 사람들 100%가 다 그 사람 사기꾼이다 이러고 있는데, 여론조사에서 88%에 해당하는 사람들이 황우석을 믿고 있는 걸 보고 깜짝 놀랐더랬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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