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기 전도사 돌아가시다 미국美 나라國 (USA)

이제는 잊혀진 헐리웃 스타

찰턴 헤스턴이 돌아가셨구나. 죽음의 사자는 라이플로도 피스톨로도 막기 어려웠나보다.

어렸을 때 인상깊게 본 할리우드 클래식 중 하나는 <벤허>다. 종교적인 메세지에 예민하지 못했던 나이, 로마 제국과 변방 식민지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개인의 파란만장한 삶의 역정을 그린 것으로 인식되던 이 영화는 그 몇몇 장면이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에 남아 있다. 원형경기장의 전차 경주 장면이나 노예들이 노를 젓는 전함의 해전 장면들이 그 중 일부다. 스토리의 구조도 탄탄했고 볼거리도 넘쳤다.

이 영화의 또다른 매력 중 하나는 찰턴 헤스턴이었다. 얼굴에 온통 "나 인상파요" 하고 새기고 다니는 이 배우의 얼굴은 삶의 온갖 고통과 한을 잘 비벼서 넣기에 적당했고, 얼굴뿐 아니라 연기로도 그는 제 역할을 아주 훌륭히 해냈다.
대중들은 흔히 연예인들의 사실적 이미지와 매체에서 묘사된 이미지를 혼동하여 받아들인다. <전원일기>의 최회장 부인인 김혜자가 실제로도 후덕하고 자상한 어머니일 것이라고 생각하고, 박중훈이 실제 생활에서도 쾌활하고 웃기는 사람일 것으로 믿는다. 찰턴 헤스턴은 <벤허>를 찍기 몇 해 전에 또다른 대작 <십계명>에서 유대 민족을 고통에서 이끌어내는 모세 역을 맡았다. <벤허>에도 "그리스도의 이야기(A Tale of the Christ)"라는 부제가 붙어 있지만, <십계명>에서는 아예 종교 지도자로 나온 탓에, 그의 이미지는 정결하고 성스럽고 사려깊은 것으로 각인되어 있다.

내가 김혜자가 실제로 후덕하고 자상한 어머니인지, 박중훈이 실제로 웃기는 친구인지 잘 모르는 것처럼, 헤스턴이 실제로도 정결하고 사려깊은 사람인지 알 수 없다. 그러나 한 가지만은 이야기할 수 있다. 그는 오랫동안 미국 사회에 총기 소유를 확산시키는 데 큰 기여를 해왔다. 그는 벤허나 모세였던 그의 창조된 이미지와는 정반대로 보이는 활동을 하고 있다.

흔히 알려졌듯 미국에서 총은 매우 보편적이다. 통계보다 실제로 느끼는 총기류의 보편성은 더 피부에 와 닿는다. 미국에 처음 왔을 때 놀란 것 중 하나가 Wal-Mart 나 K-Mart 같은 대형 소비재 판매점에서 총기류를 흔히 팔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사냥용이었는데, 일부는 유리 진열장에, 일부는 그냥 박스에 넣어져서 진열되어 있었다.

이렇게 파는 총에는 엽총도 있고 산탄을 쓰는 총도 있다. 탄환도 한쪽 선반에 그냥 쌓여 있었다. 물론 그 총을 사려면 신고를 해야 하는 등의 절차를 밟아야 하겠지만, 여하튼 그렇게 총은 가까이 있다. 더구나 총기류 판매대가 위치한 곳은 레저용품을 파는 곳, 어린이들을 위한 장난감이나 운동용품을 파는 곳과 바로 붙어 있다.

어깨에 총을 멘 '모세'

이렇게 총이 흔하고 그 총으로 인한 사건 사고가 세계 최고 수준인 나라에서 더욱 더 총을 갖자고 주장하는 집단이 있다. 미국총기협회(NRA, National Rifle Association)가 그들이다. 이 단체는 자기 집에 권총이든 장총이든 총기류가 있어야 안심하고 잠을 잘 수 있고, 미국 시민이면 누구나 총을 마음대로 소유할 수 있어야 한다고 굳게 믿는 사람들이 모여 만든 조직이다.

미국에서 손꼽히는 로비단체인 이 협회는 총기류 제조업자의 재정적 지원을 등에 업은 강력한 로비력을 바탕으로 미국 조야에 큰 법적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헤스턴은 오랫동안 이 협회의 회장을 맡아서 미국 시민들에게 총기를 보급하는 데 주요한 역할을 해왔다. 영화로만 보면 복음의 전도사 같지만, 실제로는 총기의 전도사 노릇을 한 셈이다.

이 단체와 그를 따르는 미국인들의 주장은 간단하다. "More Guns, Less Crime," 총이 많으면 많을수록 범죄가 줄어든다는 것이다. 바보들도 아니고 뭔지 모르겠다. 아마 치열한 냉전 시대, 자기들뿐 아니라 지구 전체를 수십번 결딴내고도 남을 막대한 핵무기를 서로의 심장에 겨냥한 채 살얼음 평화를 유지해온 냉전 양대 세력의 한 축이었던 미국의 국민들은 그같은 과거 경험으로부터, 자신이 강하게 무장하고 있어야 남을 제압할 수 있다는, 혹은 적어도 안심할 수 있다는 동물적 생존술을 체득했는지도 모른다.

<성서> 요한복음 18장에는 로마의 하수인들이 예수를 잡으러 오는 장면이 다음과 같이 묘사되어 있다. "이에 시몬 베드로가 검을 가졌는데 이것을 빼서 대제사장의 종을 쳐서 오른편 귀를 베어버리니 그 종의 이름은 말고라. 예수께서 베드로더러 이르시되 검을 집에 꽂으라 아버지께서 주신 잔을 내가 마시지 아니하겠느냐 하시니라."

헤스턴판이라면 다음과 같이 될 것이다. "이에 시몬 베드로가 총을 가졌는데 이것을 빼서 대제사장의 종을 쏴서 오른편 가슴을 관통시키니 그 종의 이름은 말고라. 예수께서 베드로와 다른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모두 일제히 총을 꺼내라 적에 대항하는 것은 우리의 권리니 우리가 총을 들고 어찌 저항치 아니하겠느냐 하시니라."

헤스턴이 이 조직의 우두머리가 된 것은 그 개인의 신념과 그를 "얼굴마담"으로 필요로 하는 조직의 이해가 맞아떨어진 결과다. 그 과정에서 인기 배우 헤스턴의 창조된 이미지가 큰 노림수였음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헤스턴을 상징적 정점으로 한 NRA는 총기류 규제 법안이 제출되면 기를 쓰고 반대하며, 총기류의 거래와 소유에 관한 규제를 철폐하는 데 앞장서서 목소리를 높인다.

정치에도 적접 관여하는데, 예컨대 각 주에서 주 상하의원이나 주지사를 뽑을 때도 NRA는 후보자들에게 총기 소유와 관련한 설문을 보내고 자기들의 주장을 지지하는 후보를 골라내 공개한다.

위험하게만 보이는 이들의 주장은 대단히 미국적인 뿌리를 갖고 있다. 미국은 총으로 선 나라다. 모국 영국과 유혈 충돌 끝에 독립했으며, 안으로는 원주민을 총으로 쓸어버리고 밖으로는 주변 세력을 총으로 밀어내면서 나라를 세웠다. 세계에 미국을 각인시킨 것도 모두 총, 즉 전쟁을 계기로 해서다. 서부개척시대, 황량한 애리조나나 뉴멕시코에서 수시로 출몰하는 무법자들이나 원주민들과 대항하려면 스스로 무장하는 것이 최선이었을 수도 있겠다. 드넓은 땅덩어리에 행정력이 쉽게 미치기를 기대하기도 어려웠을 테니 말이다.

개개의 시민이 무장할 수 있는 권리, 이것은 아직 국가의 질서가 서지 않은 시대에 자신과 가족을 지키는 수단으로 성립되었다. NRA는 이런 주장이 여전히 유효하다고 믿는다. 지금은 그렇게 해서 보급된 총기가 바로 그 총기를 보유하고 써야 할 이유가 되고 있는데도 말이다.

이같은 이들의 주장은 미국의 헌법 수정조항 제2조로 합리화된다. 국민(시민)의 기본적 인권을 세세하게 규정하고 있어 흔히 권리장전(Bill of Rights)로 불리는 이 수정조항의 2조는 총기를 소유할 수 있는 권한을 시민의 기본권으로 규정하고 있다. [잘 통제된 시민군은 주(州)의 자유를 지키는 데 필요하므로, 무기를 소유할 수 있는 시민의 권리는 침해되어서는 안된다.] (A well-regulated militia being necessary to the security of a free state, the right of the people to keep and bear arms shall not be infringed.)

미국 헌법의 수정조항은 미국의 헌법 제정 당시 강한 연방정부를 세워 나라를 합치려는 연방주의자들(Federalists)과, 연방정부에 귀속됨으로써 각 주의 독립성을 잃어버리지 않을까 염려하던 반연방주의자들(Anti-Federalists) 간의 타협의 산물이었음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다시 말해, 헌법을 만들면서 동시에 규정된 초기 10개의 수정조항들이란 사실 새 헌법과 그에 따라 새로 생기는 연방정부의 강력한 구속력을 탐탁치 않게 생각하던 반연방주의자들을 달래기 위해 집어넣은 장치다. 따라서 그 내용은 연방정부나 연방의회에 대항해 각 주의 독립성과 자율성을 보장하기 위한 것들로 채워져 있다. (연방정부나 의회를) 마음껏 비판하고 의견을 표현할 수 있는 발언의 자유가 제1조로, 그리고 (각 주가 독자적으로) 무기를 소유할 수 있는 권리가 제2조로 앞부분에 위치한 것이 우연이 아니다.

오늘날은 이같은 필요가 없어졌다. 지금은 이같은 정치적 이유가 아니라 불안한 사회를 살아나가기 위해서 총이 필요하다고 한다. 총을 들고 덤비니 총이 있어야 지킬 수 있다는 논리다. 그러나 그 총은 어디서 나왔나. 어떤 목적에서든 총기가 흘러 넘치면 총기 사고며 총기 사건이 안날 수 없다. 악순환이다. 이런 상식적 인식을 갖고 있는 미국인도 많다. 학부모 단체를 비롯한 많은 시민단체가 NRA를 비판하며 총기 규제를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총기 소유와 보급 문제는 미국 사회를 관통하는 여러 쟁점 중 하나다.

총잡이를 양산하는 나라

1999년 고등학생이 학교에서 총을 쏴 동료 학생 12명과 교사 한 명이 죽고 25명이 다친 콜럼바인 사건의 주역이었던 고등학생들은 어릴 때 일찌감치 자기 아버지로부터 총기 다루는 법을 배웠다. 사건 직후 매스컴에 보도된 사진에서는 사건을 일으킨 학생이 아버지를 따라 총을 쏘러 가서 찍은 기념사진 따위가 흘러나왔다.

사건에 쓰인 총은 모두 네 정인데, 그 중 세 정은 18세가 되면 총을 살 수 있는 콜로라도의 법에 따라 사건의 장본인 중 하나인 고등학생 에릭 해리스가 사건이 벌어지기 얼마 전, 18세가 되자마자 샀다. 나머지 한 정은 21세가 되어야 살 수 있는 반자동 소총인데, 사건 몇 개월 뒤 경찰은 동네에 사는 22살짜리 마크 메인이 해리스에게 5백달러를 받고 이 총을 팔았음을 밝혀냈다.

총기가 자유로운 나라. 총잡이를 양산하는 나라. 소유하는 것으로도 부족해, 이제 총기를 숨겨 휴대하고 다닐 수 있도록 허용하는 것이 대세다. 이른바 Concealed Carry 혹은 Carrying Concealed Weapon 권리다. 미국 전역을 차츰차츰 잠식하여, 이제는 미국 전체에서 48개 주가 어떤 형태로든 일반 시민에게 총기 휴대를 허용하고 있다. 그 중 상당수는 공개적으로 갖고 다니는 것도 허용한다. 허리춤에 리볼버를 차고 다니던 서부시대를 연상할 수 있다. 물론 이러한 입법 움직임 뒤에는 NRA의 강력한 로비가 있음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위스콘신과 일리노이 두 주만 총기 휴대를 아직 허용하지 않고 있다. 두 곳 모두 공화당을 중심으로 한 찬성 세력이 굴하지 않고 밀어부치고 있어서,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 아슬아슬하다. 위스콘신에서는 그동안 허용 입법안이 의회 표결을 통과한 적도 있지만, 주지사의 비토를 통해 겨우 불허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좋은 비유가 될지 알 수 없지만, 여하튼 말 타면 경마 잡히고 싶어지는 법이다. 총기를 가지고 다니면, 예컨대, 주먹질로 다퉈 기껏해야 몇 바늘 꿰마고 말 일이 살인사건이 돼버린다. 수많은 우발적 총기 사건 사고가 이를 입증하고 있다. 미국이 정상적인 사회 구조를 갖추고 있는 나라들 중에서 총기 사건이 가장 많은 나라가 된 데에는 총기 소지와 휴대가 가장 자유스런 사회라는 점도 크게 작용했을 것이다.

총기를 소유하는 것으로 만족하지 못해 주머니에 꿰차고 다닐 권리를 달라는 사람들이 항상 달고 다니는 말은 "준법 시민들(law-abiding citizens)"이다. 범법자가 아니라 법을 잘 지키는 시민들은 권리가 있다는 말이다. 그러나 태어날 때부터 범법자가 어디 있던가. 아무리 흉악한 범죄자라도 어느 시점까지는 아주 법을 잘 지키는 모범 시민이지 않았겠는가. 그동안 준법 시민으로 잘 살아오던 어떤 작자가 갑자기 범법자가 되기로 결심했을 때, 혹은 우발적으로 그런 상황이 벌어졌을 때, 그의 손에 총이 들려있는가 아닌가는 하늘과 땅 차이의 결과를 낳을 것이다.

FBI에 따르면, 미국에서는 한 해 1만 명 이상이 총기로 살해된다. 총기를 사용한 범죄는 한 해 250만 건 정도로 추산된다. 총기 소유 운동의 상징 같은 존재였던 찰턴 헤스턴이 천수를 누리고 84세에 선종(善終)한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하긴, 마이클 무어의 <볼링 포 콜럼바인>에서 나왔던 것처럼 성채 같은 집에서 살아 왔으니, 그는 자기 주장이 빚어냈을지도 모를 저잣거리의 피비린내 나는 폭력으로부터 항상 안전하게 살아오기는 했을 것이다.

이미지: 찰턴 헤스턴, 총기 지도

덧글

  • 은혈의륜 2008/04/08 05:23 # 답글

    NRA는 제가 알기로는 미국에서 가장 큰 정부대상 로비집단이지요... 그러니까 아직도 폐지가 안되는듯.
  • deulpul 2008/04/10 05:45 # 답글

    그렇습니다. 게다가, NRA는 미국 안에서뿐만 아니라 세계를 대상으로 하여 총기 보급 활동을 펼치는 것으로도 유명합니다. 정치인 출신 로비스트를 유엔에 상주시키는 것은 물론이고, 직접 뒷돈을 대는지는 잘 밝혀지지 않지만, 각국의 총기 옹호론 그룹을 음양으로 지원하고 이론적 뒷받침을 하는 것은 잘 알려져 있습니다. 세계 시장을 대상으로 한 미국 총기 산업의 이해관계 때문인 것은 당연한 사실.
  • joey00 2008/04/12 21:23 # 답글

    좋은글 감사합니다.
  • Cheese_fry 2009/02/05 00:17 # 답글

    모세의 이미지와 총기. ^_^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2nd Amendment 는 아직까지 incorporate 되지 않은 몇 안되는 Bill of Rights 개런티 중의 하나라고 합니다. 음. incorporation 안되도 괜찮은데..ㅎㅎ.. 그런데 작년에 워싱턴 디씨 국한된 건이긴 하지만 대법원에서 2nd Amendment 의 definition 을 내렸다고 합니다. 일반적으로 말해 개인의 총기소유권이라고요.. NRA 입장에서는 한 걸음 나간거긴 합니다만..ㅎㅎ

    NRA 와 ACLU 가 붙으면 과연 어느쪽이 이길지..ㅎㅎ 둘다 시끄럽기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운지라..
  • gforce 2009/03/13 08:42 # 답글

    1. CCW는 미국에서 가장 얻기 힘든 자격 중 하나이며, 이것을 얻기 위해서는 엄청난 시간과 경비가 소요되며, 이 자격을 결국 얻는 시민들은 모범 시민으로 손꼽히는 사람들입니다. 미국 총기법에 반론을 제기하시려면 CCW를 걸고넘어지시는 건 좀 그렇지 싶은데요.

    2. 미국 법집행기관들이 미 전역에 퍼진 불법총기를 제대로 규제할 역량이 없는 이상, 미국 사회에서 불법총기는 이미 어떻게 하기 힘든 현실입니다. 이상적인 결과야 불법 총기가 싹 없어지고 순수한 호신을 위한 총기소유의 필요가 없어지는 것이겠지만, 그게 이루어지지 않고, 그러기 매우 힘든 이상... 일반 시민의 총기 소유권을 제약하는 것은 뭔가 어폐가 있다고 생각하시지 않습니까?

    3. 미디어에 의해 제대로 보도되지 않고 있습니다만, CCW 소유자들에 의해 강력범죄가 예방되거나 피해가 억제된 사례의 수는 무시할 만한 것이 아닙니다.

    4. Gun Lobby의 다른 단체들과 비교하면 NRA는 온건한 편일 텐데요. 물론 이게 NRA가 딱히 아주 온건해서 그런 건 아니긴 하지만.

    5. NRA의 로비 역량이 총기 업체들의 지원에서 온다고 단정하시는 것은 적절하지 못한 표현입니다. 미국 정계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끼치는 보험업계 로비나 담배업계 로비를 지원하는 기업들의 자금력과 로비에 쏟아붓는 자원들은 총기업체들을 가내수공업처럼 보이게 만들 정도입니다=_= (예를 들어, 2006년 기준으로 미국에서 가장 많이 총기를 생산한 레밍턴 사의 연수익은 겨우 393 million USD인데 비해, 캐멀 담배 라인의 모회사인--업계 약 3위--레이놀즈 아메리칸의 연수익은 9 billion. 보험업계는 궃이 언급할 필요도 없겠죠)

    그렇기 때문에, NRA의 로비역량의 주 원동력을 "총기업체들에게 지원받은" 자금력에서 찾는 것은 적절하지 못합니다. NRA가 강력한 정치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것은 의회에서 당의 결속력이 약하고 각 선거구의 정치적 영향력이 매우 높은 미국의 독특한 의회 시스템과, 사회적으로 크게 공론화된 이슈를 가지고 유권자들과 지지자들을 조직화할 수 있는 조직적 역량에서 찾는 것이 더 적절하지 않을까 합니다.
  • deulpul 2009/03/13 10:50 #

    총이 이미 손쓸 수 없이 퍼져 있으니 더 무장을 해서 안전을 지켜야 한다는 것은 총기 옹호론자들이 금과옥조처럼 내세우는 논리입니다. 그 결과 총기는 더욱 퍼져나가고 더욱 확산됩니다. 이건 가치관의 문제이기도 하고 현명함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2007년에 조승희 사건이 벌어졌을 때, 많은 사람이 총기가 만연되어 손쉽게 학살 범죄에 쓰이는 상황에 문제를 제기한 반면, 총 없이는 무서워 못 사는 사람들, 혹은 사람들이 총 없이는 무서워 못 살기를 바라는 사람들은 이런 학살극이 발생할수록 더욱 무장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어떤 쪽이 설득력이 있는 소리를 하는지는 개인이 판단할 문제이며, 이를 사회적으로 실현하는 것은 정책입니다. 어떤 판단을 하든, 미국 사회에서 총기가 너무 널리, 너무 쉽게 퍼져 있다는 점은 누구나 동의하리라 생각합니다. 그 대책으로, 한 쪽은 규제를, 다른 쪽은 무장을 내세우는 것이죠.

    골치 아픈 사회 문제에 직면해 있다면, 그 원인을 찾고 해결책을 세워 조금씩 노력해야 하리라고 생각합니다. 총기 문제에 대해서도 이미 다양한 해결책이 제안되어 있습니다. 핵심은 접근을 어렵게 한다는 점이겠죠. 이런 노력들을 이상론으로 왜곡하며, "총기를 싹 없애자는 말이냐? 이는 불가능하다"라고 주장하는 것에는 동의하기 어렵습니다. 극단적인 이상 상황을 설정하고, 그게 이루어지기 어려우니 현실로 가자는 것은 점진적 노력의 가치를 폄하하고 문제를 악화시키기만 할 뿐이죠.

    총기 산업과 로비의 문제는 비교를 잘못 하신 것 같습니다. 말씀이 맞으려면, NRA의 로비 중에서 총기 산업이 기여하는 부분이 적다는 점을 밝히셔야 하는데, 총기 산업과 다른 산업의 규모를 비교한 것은 별로 관계가 없는 이야기가 아닐까 싶네요. 하지만, NRA의 로비력이 총기 산업뿐 아니라 덜 떨어진 유권자들의 단결력에서도 온다고 지적하신 점은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총기 휴대권 취득과 관련된 점, 이들이 범죄 예방에 실체적 도움이 되고 있다는 점, NRA가 다른 총기 관련 로비 단체에 비하면 온건하다는 점은 구체적인 근거를 들어 말씀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 gforce 2009/03/13 13:03 #

    1. 아뇨, 일반 시민에 대한 총기 규제를 하려면 일단 불법 총기부터 제대로 잡고 하라는 겁니다. 그리고 그것을 하는 데 새로운 총기 규제법은 필요가 없다는 게 Pro-Gun 쪽의 일반적인 입장이고 말이죠.

    2. CCW의 취득 관련해서 한 발언은 좀 찾아보니 May-issue state의 법규를 보고 한 발언이었습니다. 일반화하기에는 좀 문제가 있군요. 실수를 인정합니다.

    3.

    http://en.wikipedia.org/wiki/Concealed_carry_in_the_United_States#Research_into_the_effects_of_concealed_carry_laws_on_crime

    위키피디아를 그대로 쓰는 것은 좀 성의가 없긴 합니다만, 일단 출판된 서적에 근거하고 있으므로 사용하도록 하겠습니다.

    http://www.newsweek.com/id/112174/page/1

    이 기사에 실린 예들도 참고할 만하긴 한데, 저 기사에 실린 예만으로 일반화하기에는 보편성이 떨어져서 그냥 참고만 하시길.

    4. GOA 같은 단체를 보시면 좀 더 납득이 가시지 않을까 합니다. 적어도 NRA는 Status Quo는 상당히 존중하는 편이거든요. 뭐, NRA가 특별히 온건하다고 말하려던 건 아니었으니까 그다지 중요한 주제는 아니지 싶습니다만은.

    5. "덜 떨어진 유권자들"이라는 표현에서, 그 덜 떨어진 유권자들이 총기 보유 옹호론을 지지하는 유권자인지, 아니면 유권자 전체를 포괄해서 말하시는 건지 밝히시는 게 좋다고 보입니다. 후자의 의미로 말씀하셨다면 저도 반론을 제기할 생각은 없습니다.
  • deulpul 2009/03/14 08:42 #

    먼저, 이런저런 자료를 찾아주신 데 감사합니다.

    여기서 총기 규제론과 옹호론을 반복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잘 아시겠지만, 인터넷 할인 쇼핑몰에 총기 세일 하나 올라와도 금방 댓글로 논쟁이 붙는 게 미국입니다. 의미 있는 논쟁이라기보다 서로 평행성만 달리는 논쟁이죠. 그걸 여기서 반복하고 싶지는 않고요.

    옹호론이든 규제론이든 모두 각자 산더미같은 주장과 자료를 쌓아놓고 있습니다. 위에서 말씀드렸다시피, 이 중 어떤 것을 받아들일지는 판단의 문제이며 선택의 문제입니다. 그리고 그 중에서 저는 미국 사회의 총기 문제가 좀더 적극적인 규제를 통해 해결되어 가야 한다고 생각하는 편입니다. 그러니까 제 처지에서 보면, 개인의 안전과 사회 치안을 위해 개개인이 총기로 무장하자는 논리는 틀리고 어리석은 주장이 됩니다. 같은 맥락에서, '덜 떨어진 유권자'는 당연히 총기 확산을 지지하는 유권자들을 말한 것이고요. 물론 제가 그렇게 말하는 것처럼, 총기 옹호론자들이 저를 보고 '덜 떨어진 유권자'라고 말한다면, 그것도 그들의 자유라고 생각합니다. gforce님이 자신이 보기에 어이없는 사람들을 "병신들" "병맛" 이라고 말씀하시는 것과 비슷한 맥락이라고 보시면 되겠습니다.

    혹시 gforce님이 총기 옹호론자이고 그래서 이런 댓글을 다신 것이라면, 본의 아니게 '덜 떨어진 유권자' 군에 속하게 해 드린 셈이군요. gforce님 개인에 대한 이야기는 아니었으니, 기분 나쁘게 여기시지 않기를 바랍니다.

    규제론-옹호론 재탕을 하고 싶지 않으니 말씀하신 것을 되도록 간단히 살펴보겠습니다. 첫째, '불법 총기'란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흔히 불법 총기(illegal weapon)란 정상적인 경로를 거치지 않고 유통되거나 허용되지 않는 곳에서 소지되는 총기류를 말합니다. 같은 총이라도 어떻게 다루어지냐에 따라 불법 딱지가 붙는 것이지, 총 자체에 불법이 있고 합법이 있는 게 아니죠. (물론 유통 자체가 법으로 금지되어 있는 무기류는 지금 이야기하는 대상이 아닙니다.)

    조승희의 학살극에 쓰인 총 두 자루는 모두 합법적으로 판매된 총들입니다. 조승희는 하나는 인터넷으로, 하나는 총기상에 가서 신분 증명 다 하고 샀습니다. 정신병 경력을 신고하지 않은 았았다든가 하는 부분이 있는데, 총 사러 온 놈이 총 안 주는 조건을 신고하겠습니까. 파는 놈이 하나하나 다 진단서 떼어 볼 수도 없고 말이죠. 결국 조승희의 총 두 자루는 유통에 관한 한 합법 총기였습니다. 그래서 총기를 판 측도 별다른 처벌을 받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학살극에 사용됐습니다. 본문에도 썼지만, 콜럼바인에서 사용된 총도 네 자루 중 세 자루가 합법 총기였으며, 나머지 하나도 합법적으로 구입된 것을 고딩이 사서 범죄에 썼습니다.

    불법 총기부터 제대로 잡아라. 좋은 말씀이지만, 어떻게? 합법 총기가 손 하나 거치면 불법 총기가 됩니다.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은 합법 총기가 떠돌아다는 상황에서 이를 어떻게 단도리하겠습니까. 효과적인 방안이 있으면 좋겠군요. 설령 불법 총기가 잡힌다 쳐도, 위에서 본 것처럼 '합법 총기'로도 얼마든지 죽고 죽이는 범죄가 일어난다는 것은 뻔한 상식이 아니겠습니까. 날 때부터 손에 피 묻히고 태어나는 사람 없고, 제조될 때부터 학살용으로 나오는 총 없습니다. 만일 전과도 없는 사람이 합법적인 총을 들고 사람을 쏴 죽이는 일 같은 건 전혀 일어나지 않는다면, '불법 총기부터 잡아라'라는 말씀을 이해하겠습니다.

    둘째, 본문은 헤스턴의 사망을 계기로, 미국에 만연한 총기 문화의 연원을 비판적으로 들여다 본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새로운 총기 규제법을 제정하라고 주장하는 글이 아닙니다. 그런데 그런 글을 놓고 '불법 총기를 잡기 위해 새로운 총기 규제법은 필요가 없다는 게 Pro-Gun 쪽의 일반적인 입장이다"라고 해 주시면 교통 정리가 좀 복잡하게 되죠.

    뿐만 아니라, 댓글에 "미국 법집행기관들이 미 전역에 퍼진 불법총기를 제대로 규제할 역량이 없는 이상, 미국 사회에서 불법총기는 이미 어떻게 하기 힘든 현실입니다"라고 하시고서, 다시 "일반 시민에 대한 총기 규제를 하려면 일단 불법 총기부터 제대로 잡고 하라는 겁니다. 그리고 그것을 하는 데 새로운 총기 규제법은 필요가 없다"라는 게 NRA 주장이라고 인용하신 것은 현실적으로 모순인 것처럼 보이는군요.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을 해내라, 안 그러면 우리가 스스로 무장하겠다 이 소리 아닙니까? 결국 닥치고 무장이라는 이야기나 다름 없는 것처럼 보입니다.

    셋째, 총기 은닉 휴대 허용의 효과 역시 아직 논란거리입니다. 인용해 주신 위키피디아에 등장하는 연구도 그렇고요, <뉴스위크> 기사는 gforce님 주장("CCW 소유자들에 의해 강력범죄가 예방되거나 피해가 억제된 사례")와는 관계 없는 것인데, 왜 기록해 두셨는지 모르겠군요. 혹시 인터뷰에 나오는 그 유명한 텍사스 사례를 염두에 두신 것이라면, 그것도 기껏해야 '총을 쏠 수 있었으면 달라지지 않았을까' 하는 추측과 예상일 뿐이지, 예방이나 억제된 사례는 아니죠. 현실에서 그럴 듯한 사례가 있으면 저도 이해하기 쉽겠습니다만. concealed carry 이므로, 집이나 가게에 무장 강도가 들어오는 상황이 아니라, 길을 걷든지 버스를 타고 가든지 식당이든지 하는 상황이어야 합니다. 예컨대, 길거리에서 강도가 총을 들고 사람을 위협하므로 (피해자나 제3자가) 가방 속에서 총을 꺼내서 대응 사격을 하여 강도를 죽이거나 쫓아 보냈다는 식인데, 그런 사례가 있다면, 돈만 뺏겨도 될 걸 총질하다 제가 먼저 죽는 인상적인 사례도 등장할 겁니다. 두 사람이 총질하는 바람에 '지나가다'가 유탄을 맞아 죽는 사례도 생기겠고요. 그래서 그저 통계 수치를 이용해 이런저런 범죄 억지 효과가 발생했다고 주장할 수밖에 없는데, 당연한 이야기지만 그 조차 논란중이고요.

    넷째, 본문에서 "NRA가 총기 옹호 그룹 중에서 가장 과격하다"라는 주장을 편 바 없는데, '다른 단체보다 온건하다'라는 말씀이 무슨 소용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각종 총기 옹호 그룹 중에서 NRA가 어떤 위치인가에 관심을 갖고 있지 않습니다. 그들이 생각이 완전 또라이들보다는 온건하든 말든, 대표적인 총기 옹호 조직으로서 그 어떤 단체보다 큰 영향을 미치고, 더 나아가 다른 나라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은 사실 아닙니까. 본문에서는 그 점을 지적했습니다.

    어쨌든 첫 부분에 말씀드린 것처럼, 이 모든 생각은 총기류와 관련한 제 개인적인 관점에서 비롯되는 것이며, 저와는 다른 관점을 갖고 있는 사람이 보기에는 납득되지 않는 게 당연합니다. 한참 지난 글인데도 읽고 댓글 달아 주셔서 고맙습니다.
  • gforce 2009/03/14 15:21 #

    입장 잘 알겠습니다. 제 입장에도 deulpul님의 입장에도 컴퓨터 앞에 주저앉아서 논쟁할 거리는 충분해 보입니다만, deulpul님도 저도 그것보다는 중요한 일이 인생에 널려 있을 테고, 그리고 이러다간 양쪽 모두 talking point를 복습하는 상황이 될 위험성이 보이니, 이쯤에서 끝맻는 게 좋겠군요.

    P.S. 입장의 차이는 어떻던간에, 가식이 아닌 격조있는 응답을 해 주신 것에 감사를 드리겠습니다. 주제넘는 참견이지만, 아무래도 인터넷이 인터넷이다보니 이런 opinionated piece에는 답글에서 적으신 것 같은 caveat을 간단하게나마 덧붙이시는 것이 어떨까 합니다.
  • deulpul 2009/03/17 12:43 #

    바쁘실텐데 의견 들려 주셔서 고맙습니다. 개인 블로그의 글이란 당연히 개인 의견임을 전제로 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말씀대로 그 생각의 방향을 좀더 명확하게 밝혀두는 것이 불필요한 오해를 막을 수 있음은 사실이라고 생각합니다. 잘 참고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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