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빠는 까를 불러올까 갈硏 궁구할究 (Study)

덧글에 대한 답에서 '빠인지 까인지 구별하기 어려운 세상에 살고 있다'고 말씀드린 적이 몇 번 있다. 정말 그렇다. 본인은 열심히 비판하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어이없이 빠를 불러오는 결과가 된다든지, 저는 열심히 옹호하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결국 까를 생산하는 결과가 된다든지 하는 상황은 흔하게 찾아볼 수 있다.

지나친 빠는 까를 부르고, 지나친 까는 빠를 부른다.

이러한 현상은 작용-반작용의 법칙, 사회적 판단 이론, 제로-섬 이론, 주장의 개진 태도에 대한 반응 등이 복합되어 나타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1. 이미 태도가 결정된 사람에게는 또다른 추가 정보가 별로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사회적 판단 이론에서도 말하는 바이지만, 자신이 일정한 태도를 갖고 있으면 새로운 정보를 아무리 힘주어 들이민다 해도 별로 달라지지 않는다. 문희준이 좋은 이유를 열심히 설명해봤자, 즐처드셈의 태도를 가진 사람에게는 큰 설득력이 없다. 따라서 이러한 작업은 비슷한 태도를 가진 사람끼리, 말하자면 문빠끼리 그 태도를 확인하는 정도의 효과밖에 없는 경우가 많다.

2. 강한 주장은 반대의 강한 주장을 불러온다: 오히려 기대했던 것과는 반대의 효과가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강한 빠는 필연적으로 강한 까를 불러오고, 역도 마찬가지다. 문희준이 좋은 이유를 강하게 설명하고 주입하려 시도하면, 그저 문희준을 대략 싫어했던 사람들은 자신의 판단이나 감정이 훼손당했다는 느낌을 갖게 되며, 따라서 왜 문희준이 싫은지에 대하여 더 강한 이유를 찾게 된다. 이 쪽에서 세게 밀수록 저쪽은 저절로 세게 되튀게 된다. 극단주의자들은 대부분 반대쪽의 극단주의자를 대립쌍으로 하여 존재하는 것을 볼 수 있다.

3. 소통력은 내용보다 형식에 좌우된다: 까나 빠의 내용보다 그 주장을 펼치는 사람의 태도에 따라 사람들의 태도가 결정되는 경우가 많다. 이것은 메세지의 내용보다 전달 형식이 더 큰 효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 "문희준 짱, 문희준 싫어하는 바보들은 즐처드셈!" 하면, 문희준이 뉘겨? 하던 사람들까지 눈살을 찌푸리게 된다. 이것은 시와 때를 가리지 않고 나대는 오빠부대가 흔히 주변으로부터 사갈시당하는 이유가 되기도 하고, 그저 강한 주장으로 시작했던 것이 점점 극단주의로 이동하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옳은 소리 해도 싸가지없게 이야기하면 실제적 설득력이 떨어지는 게 인지상정이다.

4. 부정적 주장과 긍정적 주장의 총합은 언제나 0이다: 까와 빠와 무관심의 양은 사회적으로 대충 결정되어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말하자면 어떤 이슈든 정규분포 곡선을 그릴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곡선의 양 극단에 있는 사람이 보기에는 모두가 그 문제에 관심을 갖고 몰두하고 있는 것으로 여길 수 있다. 더 나아가, 분포 곡선이 자기쪽으로 (혹은 제3자 효과에 따라 반대쪽으로) 강하게 skewed 되어 있는 것으로 생각할 수도 있다. 따라서 자기 주장을 거듭해야 할 필요를 느끼게 된다.

이것은 착각인 경우가 많다. 까와 빠의 논쟁으로 대표적이었던 <디워>의 경우도, 샘플의 수를 늘리면 늘릴수록 정규분포 곡선이 그려지지 않을까 싶다. 이 점은 결국, 어떤 논쟁적 이슈라도 중간에 집중되어 있는 세력을 중심으로 하여, 각 주장의 합은 대체로 0에 수렴하며, 약한 빠(예컨대 +2)는 약한 까(-2)를 동반하지만, 강한 빠(+7)는 필연적으로 강한 까(-7)를 유발함으로써, 전체적으로 제로 균형이 맞춰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일으킨다.

이런 소통 구조는 강한 주장을 갖고 있는 사람에게는 좀 고민스러운 점이다. 말하면 말할수록 정반대의 효과가 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얼개를 자세히 들여다 보면, 자신의 주장을 어떻게 소통해야 할까가 자연스레 드러나는 듯 싶기도 하다. 모두에게서 그런 접근을 기대하기는 어렵지만 말이다.


본문 속의 특정인은 포스팅의 특정 주장과 관계 없으며, 노무현, 황우석, 심형래, 전여옥, 유시민, 진중권, 이소연 등으로 대치할 수 있음.

 

덧글

  • 사바욘의_단_울휀스 2008/04/12 23:06 # 답글

    흥미로운 이야기네요. 4번은 특정경우에 특히 잘맞아 떨어질 것 같네요...
  • 히치하이커 2008/04/13 02:12 # 답글

    좋은 게 좋은 거지, 긍정적으로 바라봐라, 우리의 소원은 통일
    우리나라엔 요런 말들이 너무 고지식하게 퍼져있는 듯 합니다. 남들과 다르게 뭐만 하려고 하면, 다른 생각을 표현하려고만 하면 사방에서 태클을 날려대니. 자연스레 뭐 하나 하려면 눈치만 늘어나고요. 그래서인지 나와 다른 걸 너무도 쉽게 틀린 것으로 단정짓고 말이죠.

    모두가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세상이 되려면 무언가를 마냥 좋아하는 '빠'보단 따질 건 냉철하게 따지는 '까'가 많아야할텐데 말이죠.
    (쓰고 보니 스스로 반성해야겠단 생각이...흐미)
  • Cypris 2008/04/13 03:46 # 답글

    1번과 3번 완정 공감해요. 특히 의외로 사람들은 논리적인 뒷받침의견에 동요하기보다는 부드러운 목소리와 상황과 태도에 더 동요하는 듯 하더라구요.

  • 카스미 2008/04/13 17:18 # 답글

    아하하하. 이런 유머러스한 글도 참 좋네요.
  • mooyoung 2008/04/15 13:15 # 답글

    사랑하는 사람의 말은 모두 혹은 무조건 믿게된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래서 상처를 받지만) 우리모두는 자신의 생각이나 의견이 받아들여지길 바라면서 왜 상대방은 나의 이런저런 타당한(혹은 정당한) 의견을 받아들이지 않나(혹은) 거부하나 라는 생각만을 하는 것 같습니다. 상대방을 대상으로 여기지말고 그의 말을 받아들일 수 있으면 상대방도 그럴 수 있는 여지가 있지 않을까요. 하지만 논쟁의 주제나 쟁점에 따라 다르긴 하겠지요. 이런 생각도 있나봅니다. '논쟁을 통해서만이 진리에 이를수 있다' (나?)
  • deulpul 2008/04/17 14:43 # 답글

    사바욘의_단_울휀스: 네 번째는 '별로 관심 없는 다수가 언제나 존재하고, 양쪽에서 뛰어봐야 합치면 쎔쎔이다' 정도로 요약할 수 있겠습니다. 나라가 쪼개지는 것 같은 이슈도 사실은 관계자에게만 그렇게 보이는 '그들만의 리그'인 경우가 적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히치하이커: 비판적인 의식은 생각하는 동물로서 사람의 한 특징이 아닐까 싶습니다. 더구나 어이없는 일들이 상식인 것처럼 벌어지는 세상에서는 더욱 그렇지 않을까 싶은데요. 다만 모든 비판이 합리화될 수 있는 것은 아님도 명백합니다. 예컨대 비판을 위한 비판이라든가, 취향에 대한 비판이라든가...

    Cypris: 메세지의 전달 가능성이 메세지 자체 못지않게 소통 방식에 영향 받는 것도 부정할 수 없다고 봅니다. 말씀대로 하자면 '부드러운 목소리와 상황과 태도'를 만들어야 설득력이 높아진다는 것인데, 이건 알면서도 잘 안되는 점이기도 하군요.

    카스미: 나름 진지.

    mooyoung: 아아, 저의 어머니가 저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이 백일하에 드러났습니다, 하하-. 논쟁으로 의견을 좁히는 일은 매우 드물고 힘들지만, 논쟁 자체의 의미도 역시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논쟁을 통해서 '각자' 진리에 이른다고나 할까요...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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