쥐새끼 검거 척살기 섞일雜 끓일湯 (Others)

며칠 여행을 하고 돌아왔더니 집이 수상쩍었다. 거실과 부엌, 심지어 내 방에까지 동물의 것으로 보이는 자그마한 털 뭉치가 흩어져 있었다. 처음 한두 개를 발견했을 때는 그저 그 사이 어디선가 먼지가 굴러나온 정도로 생각했다. 열심히 쓸고닦고 하는 집이지만, 나무로 만든 미국 집의 특성상, 밖에서 돌풍이라도 불면 그 영향을 좀 받을 수는 있었다. 그런데 이곳 저곳에서 비슷한 것이 발견되자 뭔가가 들어왔다 간 게 아닐까 하는 의심이 났다.

가장 큰 문제는 부엌에 있었다. 냉장고 바로 밑에 무언지 모를, 마치 쇠고기 말린 것 같은 작은 조각들이 흩어져 있었던 것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나갈 때는 이런 게 없었다. 분명히 내가 없는 동안 어떤 놈이 들어와서 분탕질을 친 것이 틀림없었다.

일단 청소를 시작했다. 청소를 하며 다시 세심하게 살피기 시작했는데, 결정적인 단서가 잡혔다. 한 구석에서 아주 작은 동물의 배설물로 보이는 흔적이 발견된 것이다. 쥐새끼다! 이렇게, 사람이 없는 틈에 몰래 기어들어와 분탕질을 치고 눈에 띄지 않게 숨어버리는 것은 쥐새끼밖에 없다.
처음에는 현실을 부정하고 싶었다. 아닐 거야. 설마 사람 집에 쥐가 들어왔겠어. 쥐가 아니겠지. 좀 지나면 괜찮을 거야. 그러나 불행히도, 세심하게 살펴보면 볼수록 쥐새끼의 흔적이 틀림없었다.

기가 막혀서 잠시 망연자실해졌다. 아무리 사나흘 비워뒀다지만, 사람 사는 집에 쥐새끼가 들어와서 설치고 다니다니. 쥐새끼라면 쥐새끼답게 어디 시궁창에서 남이 먹다 버린 순대국밥이나 할금거리고 있어야 마땅한 게 아닌가. 이 사태를 어찌해야 할 것인가.

배설물이 아직 채 마르지 않은 것으로 보아, 이 놈은 아직 집 안에 있는 것으로 판단되었다. 그러나, 분노한 사람 낌새를 알아채고 어디 깊숙이 숨었음에 틀림없는 그 쥐새끼를 찾아 잡아내는 일도 쉽지 않을 것이었다. 가장 편한 생각은, 이 쥐새끼가 빈 집에서 혼자 신나게 설치고 다니다가, 사람 들어오는 낌새를 보고 제가 들어온 구멍 어딘가로 빠져 나갔으리라는 것이었다. 그렇지. 아무리 담이 크고 얼굴 뻔뻔한 쥐새끼라도, 사람이 들어와 있는데 그대로 머물러 있을 수는 없겠지.

이렇게 생각하고 청소를 시작했다. 집안 구석구석을 모조리 청소하고 걸레로 잘 닦았다. 쥐새끼의 흔적이 있던 곳은 찜찜해서 소독약까지 뿌렸다. 난데없이 등장한 근본도 모를 쥐새끼 때문에 두어 시간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쓸고 닦았다. 할 일도 많은데 오밤중에 이게 웬 고생이람. 쥐새끼라니, 젠장, 무슨 60년대도 아니고 말야.

겨우 청소를 마쳤다. 의자에 앉아서 한숨 돌리며, 쥐가 들락거릴 틈새 비슷한 것을 모조리 찾아서 막아야 하나, 쥐약이라도 갖다 놔야 하나, 쥐덫이 좋을까 하고 생각하고 있을 때였다.

그 쥐새끼와 눈이 딱 마주친 것이다!

화분 옆, 그림자 속에서 무언가가 움직이나 싶더니 쥐새끼 한 마리가 살살 기어나왔다. 상판때기는 누가 쥐 아니랄까봐 꼭 쥐새끼처럼 생겼으며, 살금살금 기어나오는 꼬락서니가 영락없이 인간에게 도움이라고는 쥐꼬리만큼도 안 되는 쥐새끼였다. 이 쥐새끼가 화분 옆을 돌아 기어나오다 나랑 눈이 마주친 것이다. 내 눈에 절로 힘이 들어갔다.

아니, 그런데 기가 막힌 것이, 이 쥐새끼는 별로 놀라지도 않고 고개를 한번 내두르더니 부엌 쪽으로 천천히 발걸음을 옮기는 것이다. 얼핏 보니 이 쥐새끼가 씩 웃었던 것 같기도 했다. 이런 싸가지 없는 개잡쥐새끼를 봤나. 나는 경악 반, 격분 반의 상태가 되었다.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는데, 그 바람에 의자가 뒤로 넘어졌다. 쥐새끼는 내 서슬보다는 의자 넘어지는 소리에 놀라서, 도피하는 시늉을 하였다. 그런데 그동안 어디서 뭘 얼마나 뒷구멍으로 처먹었는지, 빨리 움직이지도 못하는 것이었다. 이 쥐새끼가 도망하는 척 하는 시간에 나는 냉장고 위를 뒤져 커다란 바가지를 찾아서 꺼내들 수 있었을 정도였다. 쥐새끼가 정말 도망할 생각이 있는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쥐새끼가 막 냉장고 밑으로 들어가려는 순간에 바가지를 뒤집어서 쥐새끼를 확 덮었다. 그리고 그 위에, 아직 내용물이 10개도 넘게 남은 미켈럽 라이트 캔맥주 박스를 얹어놨다. 제대로 걸렸다. 이 쥐새끼는 이제 글자 그대로 독 안에 갇힌 쥐새끼 꼴이 된 것이다. 이제 이 쥐새끼를 어떻게 처리하느냐 하는 일만 남았다.

그런데 다시 어이없는 일이 벌어졌다. 정상적인 동물이라면 이렇게 갇히게 되면 박박 긁거나 우왕좌왕 하며 탈출구를 찾으려 기를 써야 할 터인데, 이 쥐새끼는 태연히 한 구석에 앉아 있는 것이다. 불투명하나마 안이 비치는 바가지라서 그 건방진 꼬락서니를 그대로 지켜볼 수 있었다. 이 쥐새끼는 제가 이 집 주인이라고 생각하는 건가? 이 쥐새끼는 자기 집을 되찾은 것이라고 생각하는 건가? 이 쥐새끼는 제가 여기서 영원히 살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가? 아니면, 바가지로 둘러싸여 보호받으니 안심된다는 건가? 생각할수록 어이없었다.

어쨌거나, 이제 저 쥐새끼를 어떻게 처리해야 하느냐. 나는 보통, 집 안에서 곤충이나 거미를 잡으면 대부분 화장지에 조심스레 싸서 밖에 털어버린다. 좀 귀찮기는 하지만 쓸데없이 생명을 죽였다는 생각을 하지 않아도 되어서 좋다. 물론 파리 모기 따위는 인정사정 두지 않고 잡아죽이긴 하지만. 어쨌든 나름의 측은지심은 있는 편인데, 이렇게 건방지고 안하무인인 쥐새끼에게 돌아갈 측은지심은 있을 수 없었다. 그냥 밖으로 놓아주는 방법도 잠깐 생각해 봤는데, 쥐란 대체로 한 명에게 이로움을 주면 아홉 명에게 해로움을 주는 생물이라는 생각과, 특히 이런 뻔뻔한 쥐새끼는 언제든 다시 집으로 기어들어 올 것임에 틀림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론은 척살.

<그 때를 아십니까>에 나오던, '매월 20일은 쥐잡는 날' 때의 기억을 되돌이켜 보면, 쥐새끼를 척살하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었다. 미리 놓아둔 쥐약을 처먹은 쥐는 물론 당장 죽는다. 집게형 쥐덫에 걸린 쥐는 일단 큰 부상을 입으므로 그 부상으로 죽거나, 아니면 며칠 뒤 굶어 죽었다. 폐쇄형 쥐덫에 걸린 쥐는 굶어 죽거나, 물을 담은 큰 웅덩이에 그 쥐덫을 빠뜨림으로써 익사시켰다. 사람에게 재수없게 딱 걸린 쥐새끼 중에는 몽둥이로 맞아 죽은 쥐새끼도 적지 않았다.

상황으로 보아, 쥐새끼를 밖으로 잘 끌고 나가서 익사시키는 것이 제일 무난할 듯싶었다. 내가 시청 앞에 가짜 위패 꽂아놓고 추모하는 엄청난 특수 임무도 너끈히 해낼 수 있는 특수공작원 출신이라면, 그깟 쥐새끼 손으로 잡아 눌러 죽일수도 있겠지만, 어쨌는 나도 나름 조금은 정상적인 인간인 것이다.

쥐새끼를 가둔 바가지를 맥주 박스로 눌러놓고, 지하실 재활용 더미에 가서 적당히 단단한 상자 하나를 잘라 왔다. 이 골판지를 바가지 밑으로 살살 밀어 넣으니, 쥐새끼는 어디서 대규모 외국인 투자라도 들어온다고 여겼는지 낼름 올라 앉았다. 이제 이 골판지를 뒤집어서, 바가지가 밑으로 가고 골판지가 뚜껑이 된 상태로 하여 집 밖으로 들고 나왔다. 쥐새끼가 보기에는 세상이 뒤집힌 것이다. 세상이 뒤집히는 것은 만유인력의 법칙에 따른 필연적인 일이다. 쥐새끼의 팥알만한 대가리로는 이해가 되지 않겠지.

때는 무덥기 짝이 없는 여름 밤. 도처에 벌레 소리 요란한데 한밤중에 쥐새끼 때문에 이게 무슨 고생이란 말인가. 다시 한번 증오로 각오를 다진 뒤, 함께 가지고 나온 바퀴 제거용 스프레이를 골판지 뚜껑 안으로 분사했다. 쥐새끼를 잡아 익사시키려면 아무래도 좀 넋을 빼놓아야 하기 때문이었다. 막다른 골목에 몰린 쥐새끼는 고양이도 물려고 덤빈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이 쥐새끼도 턱없이 성질이나 버럭 내며 손을 물려고 덤빌지도 모른다. 스프레이를 뿌리노라니, 제길, 철망 너머로 소화기 분사하던 놈들 생각이 났다.

이후의 과정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분명한 것은 나 역시 기쁘고 즐겁게 쥐새끼 척살 작업을 수행한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한편 나는 이 쥐새끼가 어떻게 내 집에 들어왔을까 곰곰 생각했다. 쥐새끼가 등장한 것은 새로 이사 온 옆집 때문일 가능성이 컸다. 지난 주에 이사 온 옆집은 짐을 옮기는 날 하루종일 아파트 외부로 향한 문을 열어두었다. 뭐 '쥐새끼가 들어오면 어떻습니까. 이사 잘 하자는데'라는 생각이었을 것이다.

또, 왜 쥐새끼가 들어오지 않게 미리미리 방비하지 못했던가 하는 후회도 했다. 외부 문을 열어둔 이상, 쥐새끼가 들어올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었다. 이것은 일찌감치 예상된 일이기도 하다. 이웃이 신경을 쓰지 않는다면 나라도 문단속을 해서 쥐새끼가 밖으로부터 들어오지 못하도록 최대한 막았어야 했다. 설마 쥐새끼가 들어오랴, 들어온다 한들 내 방까지 제 집처럼 드나들랴 하고 안심했던 것은 분명 나의 실수였다.

죽은 쥐새끼를 잘 보관해서, 내일 아침 아파트 사무실에 가져갈 수 있도록 준비했다. 쥐새끼가 사람 사는 곳에 들락거리지 않게 조처를 좀 취해달라고 항의하기 위해서다. 그리고 혹시 쥐새끼가 들락거렸을지도 모르는 틈새에 쥐새끼가 싫어할만한 온갖 스프레이를 분사한 뒤 잘 막았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는 말은 있지만, 쥐 잡고 쥐구멍 막는다는 말이 있는지는 알 수 없다. 어쨌든 하루 밤 고생했으며 바가지며 몇 가지 집기가 쓰레기통으로 들어가는 희생을 겪기는 했지만, 결국 쥐새끼는 잡았고, 그 과정에서 나도 많이 배웠다. 그렇더라도, 이런 막돼먹은 쥐새끼는 내 평생 다시는 보지 않았으면 싶다.

덧글

  • 2008/07/31 00:30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deulpul 2008/07/31 00:41 #

    그건 순전히 기분 탓입니다...
  • 긁적 2008/07/31 01:13 # 답글

    수고하셨습니다 (.....)
  • deulpul 2008/07/31 01:46 #

    고맙습니다...
  • deca 2008/07/31 08:22 # 삭제 답글

    그래도 빨리(?) 해결하셨군요. 저는 어느 해 겨울엔가, 며칠에 걸쳐서 겨우 아파트 밖으로 쫓아내는데 성공했답니다. 대치(?)상태가 오래되다보니, 척살은 커녕, 아파트 밖으로 내보내고나서는 뻗어버렸던 기억이 납니다. 도움을 받았던 친구 말에 의하면, 그래도 rat이 아니라 mouse여서 다행이었다나요. 크기로 보자면 mouse라서 더 처치가 곤란하긴 했습니다만, rat이었다면 심리적 공포감이 더 크긴 했을 것 같습니다.
    눈이 마주친 그 기분, 저도 알고 있습니다...ㅎㅎㅎ
    고생하셨네요...-_-a;;
  • deulpul 2008/07/31 13:22 #

    다행히 집에 돌아온 시점이 현장을 덮친 것이나 마찬가지였고, 이 놈도 어쨌든 들어온 데를 찾아서 나가야 했으므로 운 좋게, 혹은 운 나쁘게 딱 마주친 꼴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사실은 한 달쯤 전에 다른 집에 잠깐 놀러 갔을 때 마침 쥐가 한 마리 나와서, 또 잡아낸 일이 있습니다. 이 놈은 rat이었는지 새끼였는지, 정말 자그마해서 귀여운 생각까지 들었어요. 이 놈은 차마 죽이지는 못하고 그냥 잡아서 밖으로 내보내 주었습니다. 왜 요즘 제 주변에 이렇게 쥐가 끓는지 모르겠군요.
  • Harry 2008/07/31 13:31 # 답글

    저는 지금 살고있는 아파트에서 이따금씩 "검고, 납작하며, 윤기가 도는" 곤충을 발견한답니다. 어제는 평소처럼 샌드백을 치다가 무언가 검은것이 바닥에 떨어지는것을 보니, 천수를 누리고 미련없이 떠나간 "그 곤충" 이더군요. 순간 몸서리가 쳐졌답니다. 정말 가짜특공대라면 그정도야 쉽게 손으로 잡겠지만.. 전 평범한 상식과 지식을 가진 일반인이랍니다. 죽은 그놈보다는 혹시라도 낳은 새끼들이 더 겁나는군요...
    아무튼 꼭 이기시길 바랍니다. 화이팅입니다.
  • deulpul 2008/07/31 13:57 #

    으헛...! 저는 사실 쥐보다 곤충 종류를 훨씬 더 싫어한... 다기보다 무서워서 질겁을 합니다. 제가 만일 스파이 일을 하다 잡히면, 물고문 성고문 기타 모든 고문 다 이겨낼 자신이 있지만, 벌레 고문 시작하면 모두 술술 불어버릴 겁니다. 그 놈들, 겁도 없군요. 샌드백 주변을 어슬렁거리다니... 그냥 펫으로 생각하고 함께 사신다면 모를까, 언제 날 잡아서 대박멸 조처를 취하시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요?
  • 자그니 2008/07/31 13:38 # 답글

    제가 농활갔던 집에서 여기저기 굴러다니는 쥐새끼 머리들 때문에 기겁했던 적이 있어요. 고양이를 키우시면 목과 척수만 톡-하고 뽑아낸 다음.. 몸통만 먹어치우더군요...
  • deulpul 2008/07/31 18:51 #

    으음... 이런 생생한 묘사를 하시다뇨, 크흑. 그림이 막 그려지며 닭살이 함께 돋는 중입니다. 그나저나 목이 그렇게 잘 뽑히는군요. 아아 납량특집 같은 문답입니다, 하하-.
  • flying mia 2008/08/02 15:57 # 답글

    와.. 산책처럼 들려 열심히 글만 읽고 가는 '지나가는 1인' 입니다만, 한 여름 납량특집처럼 등골 오싹하며 읽었습니다..

    지금 제가 살고 있는 방안에서 쥐가 나온다면, 저는 완전 패닉상태가 되어 목놓아 울것 같습니다만ㅠ 어쩌나요! 꼭 이기시길 바랍니다. 이런 쥐새끼들과 '검고, 납작하며, 윤기가 도는' 곤충은 정말 그 존체 자체가 의문입니다ㅠ
  • deulpul 2008/08/02 17:20 #

    함께 산책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쥐님은 아직 싱글이었는지, 식솔들이 나타나는 불상사는 벌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완전 박멸된 것으로 간주하고 있어요. mia님 방에 쥐님이 나타난다면 패닉 상태가 되시겠지만... 옆방에 나타난다면? 우왕ㅋ굿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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