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모스크바? 중매媒 몸體 (Media)

썰렁한 농담은 위험하다(?)

8월23일 종합 일간지, 스포츠지, 경제지를 가리지 않고 온갖 신문에 실린 기사다. AP 기사를 연합뉴스가 받은 기사인데, 핵심은 한 언어학자가 조사해봤더니 '썰렁한 농담'은 공격적인 반응을 불러왔다는 것이다.

그런데 기사 발신지가 '모스크바 AP=연합뉴스'로 되어 있다. 좀 이상하다. 이 기사 어디에도 러시아와 관련한 언급은 없다. 해당 연구자인 낸시 벨은 미국 워싱턴 주 출신으로, 지금도 워싱턴 주립대학에서 근무하고 있고, 문제의 연구도 자기 학교에서 이루어졌다. 모스크바에서 열린 무슨 국제 학회에서 발표된 것인가? 그런 말도 없다. 그런데 웬 모스크바?

이 기사의 발신지 모스크바는 러시아의 모스크바(Moscow)가 아니라 미국 아이다호 주의 작은 도시 모스코(Moscow)다. 철자만 같을 뿐, 도시도 다르고 발음도 다르다. AP 기사 원문에는 분명 'MOSCOW, Idaho'라고 밝혀져 있다. 따라서, 연합뉴스 기자가 러시아와 미국 지명을 혼동한 것이 아니라면, 독자에게 혼란을 주지 않기 위해서는 원 기사에 따라 구체적으로 밝혔어야 한다. 광대한 미국 땅덩어리의 소소한 지명을 모두 꿰고 있기란 불가능한 일이지만, 의심이 갈 때는 확인해야 하지 않을까.

그럼 왜 워싱턴 주의 연구 기사가 아이다호 주의 도시에서 나왔을까. 오른쪽 지도를 보면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아이다호 주의 모스코는 낸시 벨이 근무하는 워싱턴 주립대학이 있는 워싱턴 주 풀먼(Pullman) 바로 옆의 도시다. 풀먼과 모스코는 10킬로미터 남짓한 거리를 간격으로 바짝 붙어 있다. 그 사이에 주 경계가 지난다. 모스코에도 아이다호 대학이 있으므로, 비록 다른 주지만 두 도시가 함께 묶여 교육 중심지 역할을 한다.

참고로 세계, 특히 유럽의 주요 도시 이름은 미국에 거의 다 있는 것으로 보면 된다. 프랑스에 파리가 있으면 미국엔 패리스(Paris)가 있으며, 독일에 베를린이 있으면 미국엔 벌린(Berlin)이 있고, 러시아에 모스크바가 있으면 미국에는 모스코(Moscow)가 있다. 런던(London)은 영국에도 있지만 미국에도 있다. 있어도 한두 개가 아니다. 최소한으로 따져도 패리스는 15개, 벌린은 18개, 모스코는 14개, 런던은 16개나 있다.

뿐만 아니다. 스페인 마드리드(Madrid)는 9개, 포르투갈의 리스본(Lisbon)은 12개다. 카이로(Cairo)도 8개나 되고 베들레헴도 있고 레바논도 있다. 체코의 프라하(Prague)는 프라그가 되어 두 곳이 있으며, 뉴 프라그까지 있다.

물론 이런 유사, 중복 지명 사태는 지나치게 넓은 땅에 이름을 다 붙여야 하는 상황을 고려하면 이해할 만하다. 워싱턴, 링컨 같은 사람 이름, 유럽 이민자들의 출신지 이름, 아메리카 원주민이 쓰던 이름 등등을 모두 붙여도 모자라니 어쩔 수 없이 중복될 수밖에. 심슨 가족(The Simpsons)이 이웃들과 지지고볶으며 어울려 사는 '스프링필드(Springfield)'라는 이름을 가진 미국의 도시나 마을은 25개 주에 걸쳐 최소한 34곳이나 된다.

도시 이름이 이 지경이니, 소소한 거리 이름으로까지 가면 오죽하겠는가. 내가 사는 도시에는 그랜드 캐년과 옐로우스톤이 만나며, 이를 지나면 포토맥이 나오고 이에 이어진 게티스버그를 지나면 노르망디가 나온다.

어쨌든 그래서, 영화 <파리, 텍사스(Paris, Texas)>는 프랑스와 미국 남부를 오가며 벌어지는 애정 영화가 아닌 것이다.

원래는 문제의 '썰렁한 농담' 연구에 대해 쓰려고 했는데, 지명 이야기가 되어버렸다. 연구 자체에 대해서는 나중에 시간 있으면 보기로 하고. 이 기사처럼 [연구 - 외신 - 국내기사]의 경로를 취하는 과학 연구 기사는 도처에 과장과 헛점이 발견된다. 이게 연구의 잘못인지 외신의 잘못인지 국내기사의 잘못인지 판가름하기가 쉽지 않다. 어쨌든 저널리즘의 호들갑이 한 몫 하고 있는 것은 분명한 듯하다.

이 연합뉴스 기사도 예외는 아니다. 리드에서부터 '엄청나게'라는 생경한 단어를 썼다. 게다가 존 로비츠가 동료 코미디언 앤디 딕에게 총을 쐈다니. 그랬다면 로비츠는 지금 감옥에서 콩밥을 먹고 있어야 할 것이다. 원문은 "last year's brawl in which Jon Lovitz banged Andy Dick's head into a bar"다. 이 말은 작년 7월 두 사람이 말다툼을 벌이다 로비츠가 딕의 머리를 술집 테이블에 처박아버린 사건을 말한다.

이 사건은 코미디언끼리 싸운 사건일 뿐, '썰렁한 농담'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 마치 윤다훈과 김정균이 포장마차에서 치고박고 한 사건이나 마찬가지다. 따라서 AP가 연구 결과를 설명하는 기사에 이 싸움을 인용한 것 자체가 좀 부적합하다. 그런데, 더구나 회수를 건너와 연합뉴스에 이르러서는 정말 이상하게 변질되어 버렸다.

고의적인 왜곡을 일삼는 일부 언론의 보도 행태에 비하면 이런 실수는 애교라 할 수 있다. 바쁜 일정에 쫓기다 보면 자잘한 실수가 나오는 것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사실에 대한 확인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으며, 이것은 외신을 번역하는 보도에서도 마찬가지다. 게다가 그다지 시급한 내용의 기사도 아니지 않은가. 과장과 실수는 이 곳과 같은 듣보잡 개인 블로그와 '연압뉴스'에게 맡겨두시면 안될까. 업계 나와바리를 좀 지키면서 장사하잔 말입니다!

지도: 구글맵, 부분 수정

 

덧글

  • deca 2008/08/24 14:54 # 삭제 답글

    연합뉴스... 한 두 번이 아니죠. 소위 연합뉴스'발' 기사들을 그대로 옮겨놓는 주요일간지들을 생각해보면 좀 갑갑할 때가 많습니다.
  • deulpul 2008/08/24 16:12 #

    게다가 이제 쓸데없는 걱정까지 새로 강요하는군요.
  • 2008/08/24 16:20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deulpul 2008/08/25 02:43 #

    정말, 좀 이상하긴 한데 그걸 다 찾아보려면 것도 참 괴롭죠. 직업상 그런 일 하는 것도 곤욕인데... 하하-. 여하튼 이건 언제 집중 해부를 한번 해 봐야 할 일입니다.
  • Mh_Kāśyapa 2008/08/24 16:32 # 답글

    영화 [파리, 텍사스] 를 보면서 와~ 미국에도 파리가 있구나~ 한 군데쯤은 있을 수도 있겠지~ 했더니만 무려 15입니까......;;;
  • deulpul 2008/08/25 02:44 #

    미국에 파리는 수십 억개가 있습니다. 아 썰렁...
  • mooyoung 2008/08/25 00:37 # 답글

    나와바리는 뭥미? 원칙,기준,지켜야할 선..뭐 이런 뜻임? 전문용어는 저 같은 무식자를 위해 해설도 같이 좀 해주세요!
  • deulpul 2008/08/25 03:01 #

    일본말에서 온 나와바리(なわ-ばり)[縄張り]는 관할권, 영향권, 구역 정도의 의미로 쓰이는 말입니다. 세상에 줄 그어놓고 그 질서에 따라 밥 벌어 먹는 넘들(예컨대 조폭, 조폭 언론, 조폭 경찰, 조폭 재벌 등등)끼리 쓰는 업계 전문 용어입니다. 비권장 용어지만 막 나갈 때는 씁니다...

    예문 1: "남대문서 색히들은 나와바리도 모르나, 왜 종로 바닥에서 애들 잡고 마일리지 올리고 지롤이야!" (종로경찰서 나리)

    예문 2: "북창동이 나와바리면 거기서 짜져 있지, 왜 강남까지 기어들어와 개수작이야? 너 좀 처맞자." (재벌 나리)

    예문 3: "쟤네들 듣보잡 인터넷 언론이잖아? 어디 우리 나와바리를 함부로 넘보는거징? 동관이 형한테 일러야징." (모모일보 청와대 출입기자 나리)
  • 시노조스 2008/08/25 04:08 # 답글

    와 그래도 겹치는 부분은 없겠죠.

    아 오랜만입니다. =_=
  • deulpul 2008/08/25 04:37 #

    겹치는 일은 있어서도 안 되고 있을 수도 없는데, 자꾸 3류 블로그의 영역을 넘본단 말입니다. 이러다가 밥 굶겠어요. 오랜만이시네요, 정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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