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네르바를 패러디? 때時 일事 (Issues)

영화 <와이키키 브라더스>에 나온 쇠락하는 밴드. 멤버가 하나 둘 빠져나가고, 결국 리더인 기타리스트와 땜방용 늙다리 선생 둘만 남았다. 지방의 시시껄렁한 노래자랑 반주를 하고 있는데, 중간 유명 가수 초청 시간에 '너훈아'가 나왔다. 사회자가 소개를 하고 2인 밴드가 전주를 넣는데, 나오는 가수를 보니 낯이 설다.

선생님, 너훈아가 아닌데요?
그래? 허허허... 나훈아 때문에 먹고 사는 놈 많구나.


목소리가 비슷하면 모창을 한다 하고, 외양이나 하는 태까지 비슷하면 모방(이미테이션) 가수라고 한다. 나훈아의 모방 가수로 활동하는 사람은 전국에서 대여섯 명에 이른다고 한다. 이들은 모두 나훈아에 기대어, 나훈아의 정체성을 부분적으로 재현하며 존재한다. 그러나 가수가 아니라 글장이들이 그러면 어떻게 될까?

자신이 미네르바라고 고백하는 형식으로 칼럼을 쓴 한 경제신문 논설위원이 화제다. 칼럼에서 필자는, 자신이 미네르바임을 자수한다면서, 국민의 불신을 사고 있는 현 정부의 경제 정책을 미네르바의 입을 빌려 비판했다.
말로는 자신이 미네르바라고 했지만, 글투로나 글에 나타난 개성으로나 미네르바와는 천양지차다. 온라인 글과 인쇄 매체 글의 양식이 다르다는 점을 고려하더라도, 미네르바의 글을 읽어 본 사람은 문제의 논설위원이 미네르바가 아님을 쉽게 알아챘을 것이다. 무엇보다, 미네르바는 현 정부의 경제 정책에 대해 아예 포기하고 각자 살아남을 것을 강조하는데, 논설위원의 칼럼은 그래도 정부가 문제를 풀 것을 강조한다.

그러나 어쨌든 자신이 미네르바라는 엄청난 떡밥을 던졌으므로 나름 화제가 되었는데, 여론의 관심이 좀 심각한 방향으로 흐르자, 필자나 해당 신문사는 '미네르바를 패러디한 것'이라고 해명하고 있다.

물론 이 칼럼이 무엇을 의도하였는지, 왜 이런 방식을 썼는지는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오죽 정부가 못났으면, 국가를 운영하는 정부보다 일개 논객이 더 믿을 만한 경제 예측을 내놓고 많은 사람의 신뢰를 받고 있겠는가. 칼럼은 이런 어이없는 일이 벌어지는 꼴을 신랄하게 비판하려는 목적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런 비판을 하기 위해서는 미네르바의 아이덴티티를 빌려오는 것은 좋은 수단이 될 수도 있다.

필자는 자신이 미네르바가 아님이 너무나 분명하고 상식적이므로, 큰 부담 없이 미네르바의 이름을 빌려 칼럼을 썼을 것이다. 누구도 실제로 자신이 미네르바라고 믿지는 않을 것으로 생각했음에 틀림없다. 자신이 "망할 놈의 쥐새끼"를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는 미네르바임을 고백하는 것은 자살 행위나 다름없다. 누구나 명확하게 알 수 있는 허위성은 이미지나 정체성의 악의적 도용이나 변조를 판단하는 중요한 기준이기도 하다. 여하튼 이 칼럼에서 중요한 논지는, 필자인 논설위원이 미네르바인가 아닌가가 아니라 이런 현상을 낳은 상황 자체라고 할 수 있다. 필자도 바로 이런 내용을 염두에 두고 칼럼을 썼을 것이다.

그러나 여론은 칼럼의 취지는 제쳐놓고, 해당 논설위원이 미네르바인가 아닌가에 더 관심을 쏟고 있다. 이 부분에서 해당 필자도 좀 당황하고 있지 않을까 싶다. 빌려 썼던 이름이 살아서 돌아다니는 꼴이 됐으니 말이다. 이것은 바로 윗 단락에서 말한 점 때문에 심각한 문제가 될 소지가 있다. 정부가 미네르바라면 이를 갈고 있다는 점과 더불어, 이런 정황이 해당 칼럼을 인터넷 판에서 서둘러 삭제토록 하는 정황이 되었을 것이다. 그래도 많은 사람이 그가 바로 미네르바라고 여전히 믿는다고 한다.

빈 것을 패러디할 수는 없다

해당 칼럼에 대한 해명은 "미네르바를 패러디했다"는 것이다. 나는 이 논설위원이 미네르바의 이름을 빌려 칼럼을 쓴 데 대해서는 큰 불만이 없지만, 바로 이 패러디 부분은 좀 마땅치가 않다. 필자나 해당 신문사의 해명에 따르면, 필자는 인간인 미네르바를 패러디한 셈이다. 인간이 패러디의 대상이 될 수 있는가?

패러디의 정의에 따르면, 고전적인 패러디 대상은 작가가 아니라 작품이지만, 사람도 패러디의 대상이 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풍자와 과장을 통해 유머를 주는 경우 패러디로 간주되는 것이다. 예컨대 외국 시사 코미디에 흔히 등장하는 정치인의 실명 희화화는 인간 패러디의 대표적인 사례라 할 수 있다. 이 경우, 사람이 바로 패러디 대상이 되는 작품으로 볼 수 있다. (너훈아, 나운하는 원작인 나훈아와 매우 흡사하지만 풍자의 의미가 약하기 때문에 패러디라고 하기는 좀 어렵다. 그냥 모방 가수라고 하는 게 더 나을 듯싶다.)

그렇다면, 문제의 논설위원이 미네르바를 패러디했다는 말은 성립할 수 있을까. 우선 분명한 것은 해당 필자가 미네르바의 '글'을 패러디하지는 않았다는 점이다. 논설위원의 글은 미네르바의 글과 색도 맛도 냄새도 다르다. 글을 패러디하려고 노력하지 않은 것은 분명하다.

그런데도 패러디라는 말이 성립하려면, 해당 논설위원이 미네르바라는 인간 자체를 놓고 이를 탐구 대상으로 하여 풍자적으로 접근했다고 보아야 한다. 그러나 해당 칼럼은 미네르바를 겨냥한 글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필자는 내가 미네르바다, 나를 찾지 마라, 제발 좀 믿고 살자, 난 전설이 됐다 등등의 문장을 끼워 넣었지만, 하고 싶은 말은 미네르바를 추앙하는 것도, 미네르바를 엿먹이자는 것도 아니다.

결국 해당 칼럼은 의도적으로 미네르바의 이름과 정체성에 기대어 작성되었으나, 패러디라고 하기에는 어폐가 있다. 그저 미네르바의 이름을 빌어 쓴 정부 비판적 시론쯤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해당 칼럼에 대한 해명도 '미네르바를 패러디한 것'이 아니라 '미네르바의 이름을 빌려 쓴 것'이라고 해야 정확하다.

이것은 미네르바라는 존재의 특수성과도 관련이 있다. 인터넷 논객 미네르바는 자연인이 아니다. 그는 말로서 존재하는 인물이다. 그 말이 어떤 옷을 입고 있는지는 자세히 알려져 있지 않고, 또 중요하지도 않다. 말을 도(道)라고 한다면 몸은 기(器)라고 할 것인데, 미네르바는 기는 비어 있고 도로만 존재하는 인물이다. 빈 것을 패러디할 수는 없지 않은가. 패러디하려면 도를 건드려야 할 일이며, 그렇지 않으면 허울뿐인 겉껍질을 빌려온 것에 지나지 않는다.

어쨌거나 자기 입으로 미네르바라고 주장하는 모양은 패러디든 모방이든 정체성 차용이든, 조금 격이 떨어진다. 목소리도 행동도 하나도 나훈아답지 않은 너훈아가, 자신이 나훈아라고 주장하면서 나훈아와는 다른 목소리로 노래하는 모양이랄까.

이왕 '패러디'할 양이면 미네르바의 글을 좀더 연구해서 제대로 좀 해보시지 그랬다. 사람을 패러디하지 말고 사람의 작품을 패러디하셨으면, 쓸데 없는 오해와 물의를 일으키며 칼럼을 삭제하는 일은 생기지 않았을 것이고, 오히려 경제 시론계의 명칼럼이 탄생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

덧글

  • deca 2008/12/03 11:22 # 답글

    가만보면, 어떤 단어의 정확한 의미를 사용해서 씌어지는 글들을 찾아보기가 어려워지고 있다는 생각이 드네요.
  • deulpul 2008/12/04 08:21 #

    개발새발 써 놔도 제대로 찾아 읽으시는 게 놀랍습니다. 애초 궁금했던 것은 말씀하신 것처럼, 패러디라는 말이 제대로 잘 쓰고 있는가였습니다. 쓰다 보니 잡탕이 된 게, 난독증 말고 난필증도 있는 모양이군요.
  • 2008/12/03 11:25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deulpul 2008/12/04 08:32 #

    도둑이 제 발 저린 거겠죠. 저린 정도가 아니라 아주 경기를 일으키는군요...
  • capcold 2008/12/03 16:16 # 답글

    !@#... 사실 조선일보 놀려먹는 재미 때문에 쓴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유독 미네르바 정체 이야기만 나오면 무조건 정색을 하고 달려들어 이번에도 또다시 밑바닥을 드러냈...(핫핫)
  • deulpul 2008/12/04 08:38 #

    조... 뭐라구요? 한국조선협회 소식지가 언제 일간이 됐습니까???
댓글 입력 영역



Adsense

Adsense2

구글 애널리틱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