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기말 강의 평가 섞일雜 끓일湯 (Others)

남에게 평가 받는 게 편안한 경우는 드물다. 평가 받는 자리란 두렵고 불안하며 불편하다. 아무리 사소한 평가라도 마음 한 자락 내 주지 않고 넘어가기는 어렵다.

가장 대표적인 평가 행위는 시험이겠지? 시험이 불쌍한 학생들의 전유물임을 상기하면, 교수나 강의 평가는 그 대척에 서는 혁명적 제도라 할 수 있겠다. 나는 개인적으로 학생에 의한 교수/강의 평가의 정신을 적극 지지한다. 시험과 강의 평가는 둘 다, 수업이라는 교육적 과정의 효율을 높이기 위한 중요한 장치다.

학기 말, 마지막 수업이면 학생들이 강의 평가를 한다. 교수는 평가지를 나눠주고 학생들에게 학기말 인사를 하고 교실을 떠난다. 작성된 평가지는 학생 중 하나가 모아서 학과 사무실에 갖다 준다. 평가 결과는 학기가 끝난 한참 뒤에 교수 자신에게 공개된다.

수업을 들은 학생이 적어 내는 강의 평가의 값은 일률적이지 않다. 같은 학생의 평가라도 교수의 신분과 위치에 따라 그 값은 크게 달라진다. 가르친 지 20년, 30년 넘은 교수는 평가지를 잘 읽어보지도 않을 것이다. 하지만 종신 임기(tenure) 심사를 앞두고 있는 조교수에게 강의 평가는 매우 중요한 성적표다.
학생 쪽에 시험을 잘 보기 위한 온갖 지혜와 지략과 전술과 비결과 꼼수가 존재한다면, 선생 쪽에는 학생으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기 위해서 비슷한 것이 존재할 수 있다. 꼼수류는 빼고, 강의 평가의 원래 취지를 고려하여, 학생들의 평가가 수업 개선에 활용되는 바람직한 상황을 만들기 위한 방법을 선생 쪽 처지에 서서 정리해 보자. 오늘자 학교 신문에 나온, 강의 평가제에 대한 학생과 교수들의 의견을 참고로 했다.

1. 학생의 의견이 중요함을 인식시킨다: 교수/강의 평가가 교수에게 중요하다는 점을 학생들이 알게 한다. 많은 학생은 강의 평가지를 정성들여 작성하지 않는다. 이유는 둘이다. 1) 마지막 수업에 이런 가욋일을 하면서 시간을 죽이려는 학생은 드물다. 2) 평가를 써 봐도 제대로 반영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학생의 평가가 자신에게 매우 중요한 교육적 피드백 과정임을 강조하고, 충분한 시간을 준다.

2. 서술형 평가에 주목한다: 1점~5점 중 하나를 선택하는 선택형 질문보다 직접 코멘트를 쓰는 서술형 평가 부분에 주목한다. 선택형 질문에서는 학생들이 수업을 어떻게 보는지를 개괄적으로만 알 수 있을 뿐이다. 좋다면 왜 좋은지, 나쁘다면 왜 나쁜지 알 턱이 있나. 이런 점은 서술형 평가에 나타나게 되며, 결국 수업을 개선하는 전략은 이 서술형 평가에서 나온다.

3. 중간 평가를 시행한다: 강의 평가는 학기 말, 대개 맨 마지막 시간에 한다. 그 결과는 수업이 다 끝나고 성적이 다 나간 뒤 공개된다. 따라서 수업이 진행되는 학기중에 학생들이 의견을 제시하고 그에 따라 수업 내용을 조정할 기회는 되지 못한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학기중에 비공식 평가 절차를 둔다. 물론 이 때도 철저한 익명을 보장해야 한다.

4. 학생의 의견을 꾸준히 청취한다: 학생들이 수업을 어떻게 보고 있는지를 학기 내내 지속적으로 파악한다. 학생들을 적절한 수로 쪼개 정기적 면담을 가지는 등의 방식. 물론 이 때의 관심은 수업 내용이 아니라 수업 자체다.

5. 의견이 반영된다는 점을 보여준다: 이러한 중간 평가나 지속적 체크에서 나온 의견을 수업에 반영한다. 수업이 학생들의 요구에 더욱 가까워지는 것은 물론이며, 더 나아가 학생들과 일정한 정서적 유대가 생길 수 있다. 물론 헛소리들은 무시해야겠지만.

이런 방안들은 좋은 평가를 받자는 의도가 아니라, 수업의 질을 높이기 위한, 혹은 학생이라는 고객을 만족시키기 위한 방안이라고 하겠다. 하지만 이런 과정을 열심히 밟으면 학기말 공식 평가에서도 학생들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게 되지 않을까?

덧글

  • 긁적 2008/12/14 11:30 # 답글

    아주 좋은 방법이네요. 이런걸 할 만한 개념있는 학교, 어디 없을까요? ㅠ.ㅠ
  • deulpul 2008/12/14 17:20 #

    괜찮겠죠? 학교 전체에서 시행할 수도 있지만, 가르치는 사람 개인 차원에서 수업의 효율을 높이는 방안으로도 의미가 있을 듯 싶습니다.
  • Gilipolla 2008/12/18 17:30 # 답글

    저희학교에서도 시행되고 있지만-_- 익명이긴 하지만 출석부 순서대로 나가서 누가 썼는지 마음만 먹으면 다 알 수 있답니다=_=;;;;; 수업시간에 전도까지 하시는 독실한 교수님이 계시는데, 그것에 대해 엄청 욕해놨더니 전출에 시험도 잘봤었는데 D+을 주더라구요. 따져봤자 역시 대학에선 교수가 깡패라서 그냥 잊어먹고 다신 사람이 하는 수업 안듣기로 했지요..ㅠ_ㅠ 그냥 전시행정같아 가끔 정말 싫습니다
  • deulpul 2008/12/19 09:01 #

    말씀 들으니 열불이 솟는군요. 우선, 완벽한 익명성을 보장하지 않는 평가가 얼마나 공정하고 도움이 되겠습니까. 안 하느니만 못하죠. 예전에 군대에서 익명으로 소원수리 받아놓고, 그날 밤에 불만 쓴 놈들 골라내 줘 패고 뺑뺑이 돌리는 것이나 다름이 없지 않습니까. 두 번째로, 수업 시간에 전도하는 무개념 교수도 있습니까? 독실한 교수가 아니라 독한 교수군요. 교육 환경에서는 정치 이야기를 하기도 조심스러운데, 전도를 하다뇨. 정말 어이가 없습니다. '대학에선 교수가 깡패' - 표현은 좀 거시기하지만 가슴에 콱 와 닿는 말씀이었습니다.
  • Gilipolla 2008/12/19 15:52 # 답글

    제가 생각해도 예의바른 표현이 아니였네요.ㅠ_ㅠ 갑자기 생각나는데 혼자 열불이 나서 그런 표현을-_-- 죄송할 따름입니다.ㅠ_ㅡ, 이래저래 대학교수도 정말 대단하신 분들이 많지만 은근 연줄로 오신분들도 많더라구요, 저는 영문과인데, 제가 공익 하던 동안 굉장히 실력 좋으셨던 교수님이 연줄맴버들의 텃세에 쫓겨서 숙명여대 가시고 같이 술 마시면서 말씀해주시는데 굉장히 씁쓸했습니다. 그렇다고 제가 숙명여대 들어갈수도없고-_-ㅋㅋㅋㅋ 그냥 학생입장에선 피하는거 밖엔 길이 없더라구요.ㅠ_ㅠ
  • deulpul 2008/12/20 16:09 #

    아뇨, 죄송하긴요. 아주 실감나는 생생한 표현이었습니다, 하하-. 숙대 학생들을 위해서는 잘 된 일 아니겠습니까... 끙. 어디나 사람 사는 데는 다 마찬가지다, 라고도 하지만 그렇게 믿고 싶지도 않고, 그런 소식 들을 때마다 아쉽습니다. 피해다니는 교수가 전공 필수를 맡지 않기를 바랄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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