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권 정당성의 원천과 성과주의 짧을短 생각想 (Piece)

잠이 오지 않아서 잠깐 메모하는 생각의 실마리.

1. 전통적으로 정권의 정당성은 주로 그 태생에 대한 판단에서 나왔다. 정권의 탄생이 헌법이나 법률에 기초한 절차를 거쳤나 그렇지 않았나에 따라 정권의 정당성 여부가 결정된다. 예컨대 권력을 가로채기 위해 항명 쿠데타를 일으키고 광주를 쓸어버리면서 등장한 전두환 정권은 정당성을 갖지 못한다.

2. 이렇게 보면, 정권의 정당성 여부에는 기존 헌법이나 법률에 따른 절차가 중요한 기준으로 인식된다. 그러나 기존 법 체계가 심하게 왜곡되어 있다면 어떻게 될까. 민중 항쟁이나 민주 혁명을 통해 등장한 정권은 기존의 (억압적) 법 체계를 따르지 않았지만 오히려 정당성을 인정받는 경우가 많다.

3. 이 경우, 대체 권력에 의해 무너진 억압적 구 체제는 원래부터 정당성이 없었던 것으로 평가된다. 정당성이 없던 권력을 무너뜨렸으므로 새 체제는 구 체제의 법적 체계를 따르지 않았어도 정당성이 인정된다.

4. 이렇게 보면, 중요한 것은 단순히 기존의 법적 질서를 따르는 것이 아니라, 권력이 어떤 속성을 지니고 있고 어떤 방향을 지향하는가인 듯하다. 이 때의 '속성'이나 '방향'이란 현대 국가의 경우 대체로 민주성을 의미하거나, 적어도 큰 요소로 포함하게 된다. 세계 거의 모든 국가가 적어도 명목으로라도 민주주의를 내세우므로, 민주성을 더 많이 가진 정권일수록 더 큰 정당성을 가진다고 볼 수 있다.

5. 여기서 무엇이 민주성을 구성하느냐는 문제가 나온다. 이것은 교과서가 해결해 준다. 일반투표에서부터 언론 자유에 이르기까지, 인류가 그동안 개발해 온 민주주의적 장치들이 그 요소가 될 수 있다. 이를 하나하나 들기는 복잡하니까 반대로 뒤집어 보자. 독재적 요소를 없애는 것이 민주성의 확보라고 볼 수 있다. 독재적 요소는 비교적 간단하다. 국민 의견을 듣지 않거나 언론을 막아 말길을 닫고 소수의 이익을 위해 국가를 운영하며 이에 반대하면 합법적 폭력 장치를 통해 억압하는 것이다.

6. 최근에는 정권의 정당성에 대한 또다른 시각이 등장하고 있는 듯하다. 정권의 효율성, 성과, 퍼포먼스가 정권의 정당성을 마련해 준다는 시각이다. 출발이야 어쨌든 잘 먹고 잘 살게 해주면 많은 국민이 정권을 인정한다는 것이다. 가장 대표적인 예는 최근의 중국이다. 중국에는 여전히 많은 비민주적 요소가 남아 있고, 그 중 어떤 것은 민주주의의 근간을 침해하는 위험한 것이지만, 강력한 국정 운영 능력과 눈부신 경제 성과 덕분에 인민들은 대개 정부를 전면 부정하지 않는다.

7. 민주주의란 곧 민주주의 절차며 과정이라고 주장해 왔던 서구에서 이러한 시각이 나오고 있다는 점은 의미심장하다. 이것은 서구적 민주주의 가치의 무분별한 적용에 대한 반성이자 각국의 개별성에 대한 존중이기도 하지만, 경제가 최선의 가치가 되는 시대적 흐름과도 관련이 있다. 이러한 시각에 따르면, 정권의 정당성, 다시 말해 국민이 정권을 정권으로 인정해야 하는 이유는 오로지 국민의 복리를 지켜주고 증진시켜 준다는 점에서만 획득된다. 거꾸로, 합법적인 과정을 거쳐 탄생한 정권이라도 국가를 후퇴시키고 국민의 복리를 떨어뜨리는 정권은 정당성을 갖지 못한다.

8. 이러한 흐름의 가장 극단적인 한 표현은 국가 지도자가 기업의 CEO에 비유되는 것이다. 실제로 국가 지도자는 수많은 '국가 지도자다운' 과제를 해결해야 한다. 경제 성장은 중요하긴 하나 그 한 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성과주의적 시각에서 정권의 정당성은 주로 경제적 퍼포먼스로 판단된다. 이런 시각에서 보면, 회사를 말아먹는 무능한 CEO가 주총에서 잘리듯, 퍼포먼스가 딸리는 무능한 정권은 나라를 담당할 자격이 없게 된다.

9. 정권의 정당성을 퍼포먼스에서 찾는 성과주의적 관점이 올바른지 모르겠다. 이것은 정치학자들이 해결해줄 것이다. 문제는 종종 정권이 스스로 이러한 관점을 자초한다는 것이다. 편중된 부(富)를 사회에 확산시키자고 유도하는 지도자가 있고, 주가지수를 두 배, 세 배로 올려놓겠다고 약속하는 지도자가 있다. 후자의 경우가 성과주의적 정당성을 지향하는 정권이다. '선거 때면 무슨 말이든 할 수 있지만', 이것은 아주 위험한 접근이다. 성과를 이루지 못하면 정권이 정당성을 주장할 근거가 없어지기 때문이다.

10. 성과에 대한 강조와 설득으로 정권을 창출한 뒤, 실제로는 정반대의 결과를 내면 성과주의적 정당성은 위기에 처한다. 이런 상황이 벌어졌을 때, 성과주의적 정당성에 기대고 있는 정권이 택할 수 있는 옵션은 1) 거짓말과 환상의 주입(성과를 내고 있는 것으로 믿게 만든다), 2) 억압과 독재성 강화(무능에 대한 비판을 억압한다), 3) 서둘러 더 크게 베팅(큰 성과를 낼 수 있을 것으로 보이는 사업을 서둘러 벌인다), 4) 1)~3)의 복합, 5) 정권 포기 정도.

 

덧글

  • camino 2008/12/16 21:29 # 삭제 답글

    메모라 하기에는 아깝습니다. :)
  • deulpul 2008/12/17 05:53 #

    언제 하나하나 살을 좀 붙여봐야지 싶지만, 공부가 부족해서 희망사항에 그칠 모양입니다...
  • mooyoung 2008/12/16 22:34 # 답글

    메모라니 패스합니다.
  • deulpul 2008/12/17 05:58 #

    뭡니까! 제가 정리하지 못하는 아이디어들이므로 함께 생각해 보자는 것인데 말입니다, 하하-. (무책임하게 떠넘기는 중 맞습니다...)
  • mooyoung 2008/12/19 23:37 # 답글

    독자로서의 변: 정당성은 정권존재에 대한 개념적 요소이고, 성과주의란 활동에 대한 평가로서의 한 기준이라고 봤을 때, 성과주의적 관점에 따른 정당성 판단이란 말은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다수대표자형식을 취하는 민주정에서 다수의 의미를 단지 숫자라는 형식적의미로 파악하는냐, 다수에 포함된 개개인의 총의로 파악하느냐는 생각해 볼여지가 있다고 여깁니다. 성과주의적 관점이란 것도 비슷한 꺼리들이 있겠습니다. 이래저래 생각이 많아지는군요.
  • deulpul 2008/12/20 16:02 #

    역시... 떼를 써서 여쭤보기를 백 번 잘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도 정리되지 않아서 뒤섞고 있었는데, 일단 정권의 정당성과 해당 정권의 통치 성과가 본질적으로 다른 차원임을 잘 지적해 주셨습니다. 그 둘이 같거나 적어도 상호 보완하는 영역이라고 보는 주장도 나올 수 있을 듯 싶습니다. 두 번째 사항은 정말 재미있고도 어려운 문제입니다. 극단적으로 낮은 투표율이 일상이 되는 상황에서 더욱 그렇네요. 좀더 생각해 보겠습니다. 몸도 불편하시다는데, 좋은 말씀 주셔서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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