퀸을 좋아하다 못해서 섞일雜 끓일湯 (Others)



짝퉁은 우울하다. 진짜를 향한 염원, 진짜가 되지 못한 숙명에 대한 회한, 진짜에 기대어야만 성립할 수 있는 존재 방식이 짝퉁을 우울하게 만든다. 그러나 모든 짝퉁이 다 우울한 건 분명 아니다. 어떤 짝퉁은 즐겁고 신나게 짝퉁 한다. 짝퉁인데도 신나기가 진짜배기 저리 가라고, 짝퉁이어서 오히려 더 신난다.

퀸을 좋아하다 못해, 스스로 퀸이 되기로 한 밴드, 게리 멀렌과 더 웍스(Gary Mullen & the Works)를 보면 그런 생각이 절로 든다. 모방은 최대의 존경이라 했던가. 프레디 머큐리보다 더 머큐리같은 게리 멀렌은 그의 존재 자체가 머큐리와 퀸에 대한 최대의 존경이자 찬사다.

더 웍스는 퀸과 같이 영국 그룹이다. 밴드의 리더이자 살아 있는 머큐리로 불리는 게리 멀렌은 어렸을 때부터 퀸의 열렬한 팬이었다. (나이를 따져 보니 대충 73년생쯤 되는 듯하다.) 음악을 시작하고 나서 밴드를 조직해 영국 전역의 클럽을 돌며 공연했다. 멀렌은 직접 음악을 쓰기도 하고 연주도 했지만, 그가 음악을 하며 가장 신명 났던 때는 무대에 서서 퀸의 노래를 부를 때였다. 그의 노래를 듣는 사람이면 누구나 프레디 머큐리가 살아 돌아온 게 아닐까 놀랄 정도였다. 목소리도 그랬지만, 무대 매너도 머큐리 판박이였다.

명색 밴드를 한다면서 퀸 노래를 부르며 좋아하고, 또 곧잘 하는 것을 본 부인과 엄마가 'American Idol'과 비슷한 영국 프로그램 'Stars in Their Eyes'에 출연 신청서를 접수시켰다. 무대에서 프레디 머큐리의 재림을 현실화한 멀렌은 이 프로그램의 2000년 최종 우승자가 되었다. 그가 최종 결승에서 받은 투표 86만여 표는 이 프로그램 사상 전무후무한 것이었다. 멀렌의 재능에 더하여 퀸에 대한 영국인의 사랑이 합쳐져서 나온 결과일 것이다.

이후 멀렌과 더 웍스는 아예 퀸이 되기로 작정했다. 퀸의 80년대 라이브 공연을 그대로 재현한 'One Night of Queen'을 기획한 것이다. 이 공연은 음악은 물론이고 의상, 무대 구조, 조명까지 철저하게 퀸의 라이브를 재현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 핵심은 물론 머큐리보다 더 머큐리 같은 멀렌이다. 현재 이들은 영국은 물론, 미국 전역까지 순회하며 다니며 머큐리의 목소리를 기억하고 퀸을 그리워하는 팬들을 다시 한 자리에 모으고 있다. 더 웍스의 공연에서 퀸을 추억하는 팬들은, 글자 그대로 이미 사라진 퀸과 꿈 같은 하룻밤을 보내게 되는 것이다. 그게 진짜 퀸인지 아닌지는 중요한 게 아니다. 중요한 것은 음악과 추억, 영감이니까.

감동과 전율 뒤의 아쉬움

퀸의 음악이 조용하게 깔리던 공연장은 서서히 불이 어두워지다가 캄캄해졌다. 객석이 조용해졌나 싶기가 무섭게 붉고 푸른 조명이 무대 위를 때리며, 드럼과 일렉 기타의 강렬한 소리가 터져 나온다. 어느 새 자리를 잡은 더 웍스의 멤버(리드 기타, 베이스, 키보드, 드럼)들이 첫 곡 'Tie Your Mother Down'을 연주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윽고 무대 왼쪽에서 '프레디 머큐리'가 펄쩍펄쩍 뛰며 나타났다. 좍 붙는 흰색 바지, 운동화, 아무 것도 입지 않은 상반신에 걸친 짧은 흰색 잠바, 짧은 머리, 콧수염, 손에 든 지팡이 같은 마이크 스탠드. 어디로 보나 영락없는 머큐리였다. 만일 내가 돈이 많아서 일등석에 앉았더라면 멀렌과 머큐리의 외모상의 차이를 잡아낼 수 있었겠지만, 3층 테라스에서 보기에는 내 앞에서 펄펄 뛰며 노래하고 있는 웃통 벗은 사람은 그저 머큐리였다.

더 놀라운 것은 재림 머큐리의 손짓 발짓 몸짓이었다. 멀렌은 1985년 Live Aid 때 머큐리가 했던 것과 똑같은 몸짓을 보여주고 있었다. 관객과 호흡하는 것도 똑같았다. 그보다 더 놀라운 것은 멀렌의 목소리였다. 그가 'Love of My Life'를 부를 때는, 머큐리와 다른 사람이라고는 도저히 생각되지 않았다. 영국인들이 왜 멀렌에게 열광했는지 그 이유를 잘 알 수 있었다.

당연한 말이겠지만, 나는 프레디 머큐리와 퀸의 실제 공연을 본 적이 없다. 뮤직 비디오, 공연 녹화 비디오, 그리고 음악이 내가 아는 퀸의 전부다. 따라서 멀렌과 더 웍스가 퀸을 얼마나 철저히 재현해 내는지를 세세히 평가하기 어렵다. 다만 다른 사람의 평가는 참고할 수 있다. 실제로 퀸의 드러머였던 로저 타일러는 멀렌이 머큐리보다 더 머큐리답다고 말했으며, 무대 위에서 머큐리와 가장 가까운 존재였던 리드 기타리스트 브라이언 메이는 멀렌이 머큐리의 무대 매너뿐 아니라 목소리 스타일과 음역까지 놀랍도록 정확히 재현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재림한 퀸과의 하룻밤은 'Somebody to Love' 'Another One Bites the Dust' 'Don't Stop Me Now' 'Bohemian Rhapsody' 'We Are the Champion' 같은 명곡들을 섭렵하며 깊어 갔다. 멀렌은 관객들을 자리에 앉지 못하게 했다. 그는 머큐리의 목소리로, "이건 락 음악이란 말입니다!! 만일 의자에 엉덩짝을 붙인다면 내가 밖으로 차내 버리겠소!" 하면서 관객을 못살게 굴었다. 관객은 손뼉치고 고함치며 이런 시달림을 즐거워했다. 진짜 퀸의 공연에서 그랬듯, 관객은 퀸의 노래를 목이 터지게 따라 불렀다. 공연장은 하나의 거대한 노래방이었다. 이따금씩 멀렌은 자기 목소리를 끊고, 관객의 목소리가 홀을 뒤흔들게 만들었다. 이 역시 퀸의 공연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장면이었다.

중간에 쉬는 시간을 포함해 두 시간 반 계속되는 공연은, 퀸이 남긴 음악의 힘이 얼마나 큰 것인가를 생생히 느끼는 데 부족함이 없었다. 그러나 고백해야겠다. 공연 내내, 내 앞에서 노래하는 저이가 진짜 머큐리이고 진짜 퀸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멀렌의 몸짓과 목소리에 빨려 들어가며 정말 머큐리를 앞에 놓고 그의 노래를 듣는 것 같은 착각에 빠졌다가도, 잠시 뒤 다시 아쉬움으로 돌아오곤 했다.

글쎄, 이 아쉬움은 퀸의 팬이 갖는 아쉬움이자, 멀렌과 더 웍스가 갖는 아쉬움이기도 할 것이다. 이들은 오랫동안 퀸의 팬과 호흡할 수는 있지만, 결코 퀸이 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이 한 가지 있다. 위키는 멀렌과 그의 그룹을 tribute act라는 장르에 포함시키고 있다. 퀸을 좋아하다 못해서, 스스로 퀸의 그늘에 들어가 살기로 작정한 밴드. 이들을 보며 울고 웃고 환호하는 팬. 이들은 퀸과 프레디 머큐리가 음악이라는 유산을 통해 오래도록 살아 남을 것임을 열렬히 말해주는 뜨거운 증거임에 틀림없다.


* 아래는 'One Night of Queen'의 모습을 간략히 살펴볼 수 있는 동영상.



* 아래는 퀸의 1985년 런던 Live Aid 공연 모습. 머큐리는 대략 이 때쯤 에이즈에 감염된 것으로 추정된다.




* 아래 그림 석 장은 라이브 장면들에서 잡은 보너스. 가수가 중요한 게 아니고...



포스터 그림: www.kinggeorgeshall.com
공연 장면: 모두 Youtub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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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eek Your Daimonion : one night of queen 2009-06-12 15:00:23 #

    ... 퀸을 좋아하다 못해서 (deulpul님의 블로그에서 트랙백) 이제는 희미해진 이름이 되어버렸지만 나는 퀸을 무척 좋아한다. 친구들 ... more

덧글

  • 나인테일 2009/03/31 01:35 # 답글

    그 이전에도 네덜란드의 Valensia라던가 Robby Valentine같은 사람들이 유명하기는 했지요..;; 개인적으로 퀸 트리뷰트 앨범에 이 두 사람이 안 들어갔던게 참 아쉽더군요..OTL.

    (그래서 Valensia는 자기 혼자서 퀸 트리뷰트 음반을 내기도 했고요..;;)
  • deulpul 2009/04/02 12:23 #

    아, 추가 정보 감사합니다. 퀸 팬이라면서 이런 사람들도 모르고 있던 게 부끄럽군요. 언제 기회를 내서 총정리 좀 해야겠습니다.
  • 세리카 2009/03/31 14:06 # 삭제 답글

    퀸의 추종자 중 한명으로, 참 좋은 정보 얻어갑니다.
    폴 로저스와 퀸을 만드느니 멀렌씨의 열정이 훨씬 퀸 같아 보이는군요.
    국내 영부인이라는 밴드도 생각나네요^^
  • deulpul 2009/04/02 12:31 #

    열정, 그게 퀸의 유산인 것 같습니다. 프레디를 대치한 게 아니라서 언제나 퀸+폴 로저스인 것이 인상적이네요. '영부인 밴드'도 있었습니까? 이름부터 죽이는군요, 하하-. 잠깐 보니 열정에 관한 한 오리지널 퀸에 절대 뒤지지 않는 듯 합니다.
  • 2009/04/01 22:20 # 삭제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deulpul 2009/04/02 12:32 #

    네, 전갈 받았습니다. 원래 조직이 움직이는 일이 다 그렇죠. 걱정마시고요.
  • Daimon 2009/06/11 20:14 # 답글

    와- 잘 봤습니다. 어릴적 조금씩 돈을 모아 한 밴드의 음반을 모두를 산 것은 퀸이 처음이었지요. 저는 위윌락유만 있는줄 알았지 이런 제대로된 공연을 하는 밴드가 있다는걸 처음 알았네요. 실제로 꼭 한번 보고싶네요. ^^
  • 영부인밴드 2012/03/03 11:40 # 삭제 답글

    안녕하세요, 영부인밴드입니다. 검색하다보니 여기에 저희가 언급되어있네요. 오래전이지만..영광입니다 ^^; 보름 후에 홍대에서 공연이 있습니다. 시간 나시면 들려주세요. ^^; 직장인들로 이루어진 밴드라 개리멀런 만큼 완벽한 '카피'는 못만들어내지만, 한국에서 15년간 퀸만을 연주한 열정은 개리멀런과 좀 비슷하지 않을까요 ^^; http://cafe.daum.net/0vueen
  • deulpul 2012/03/03 16:30 #

    오오, 이렇게 들러 주시다니 저야말로 영광입니다. 이 글을 썼던 즈음 영부인밴드 동영상을 찾아보고 즐거워했던 생각이 납니다. 퀸을 좋아하고 기억하는 사람들에게는 그들의 음악에 대한 사랑과 열정이 가장 중요한 가치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가까이 있었다면 꼭 가서 함께 즐거운 시간을 가졌을 텐데, 아쉽네요. 오랜만에 하시는 공연이니만치, 멤버 모두 당일까지 최상의 컨디션 유지하시고 성공적인 공연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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