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님뽕 처드셈!" 때時 일事 (Issues)

RIAA라고 있습니다. 가수 말고요. 얼핏 보면 이름도 예쁘군요. 하지만 '리아'라고 하지 않고 '알 아이 에이 에이'라고 합니다. 이름이야 어쨌든 성질은 더럽고 무시무시한 존재입니다. RIAA는 미국음반산업협회(Recording Industry Association of America)입니다. 음원 불법 유통자, 다시 말해 음악 등의 불법 업로더, 다운로더를 추적해 사냥하는 것으로 악명 높은 단체입니다. 물론 보는 이에 따라, 불법 관행에 맞서 저작권을 옹호하는 수호자라고 인식되기도 합니다. 워너뮤직, 소니뮤직, 유니버셜뮤직, EMI 등 세계 4대 음반회사를 비롯해, 1천600여 개 음반 회사가 이 단체의 회원입니다. 이들은 미국에서 유통되는 음악 시장의 90%를 담당하고요.

잘못이 없다면 RIAA 아니라 그 할애비가 와도 꿀릴 게 없죠. 그러나 세상이 어디 그렇습니까. 영국 조사이긴 하지만, 최근 한 조사에 따르면 청소년과 젊은이들은 1인당 평균 842곡을 불법 다운로드 받아 갖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그것도 휴대용 플레이어에 들어 있는 것만 따져 보니 그렇습니다. 단순하게 말하자면, 아무나 잡으면 다 걸린다는 것이겠죠.

그래서 RIAA는 2003년부터, 불법 업로더나 다운로더를 잡아 본보기로 처벌하는 강경책을 시작했습니다. "무작위로 걸린다. 너도 언제 걸릴지 모르니 알아서 조심해!" 하는 메시지를 주려던 것이죠.

적발할 사람을 점찍으면, 불법 행위에 대해 소송에 들어가겠다는 편지를 보냅니다. 소송 하면 피차 돈 깨지고 피곤하니까, 그냥 3, 4천 달러 내고 X 잡고 반성하라는 옵션도 줍니다. 물론 대부분 이 옵션을 선택해, 울며 겨자먹기로 돈을 내고 사태를 해결합니다. 적발된 사람이 대부분 학생임을 고려하면 꽤 강한 처벌입니다. 이렇게 적발한 사람은 작년 말까지 3만5천 명에 이르렀습니다.

근거 없는 요구는 단호한 거절한다

저작권 이야기를 하려던 게 아니고요. 몇 년 전에, 제가 있는 학교 당국에 RIAA가 보낸 편지 한 장이 도착했습니다. 이 학교 학생 중 20여 명이 불법 음원 사용자로 적발되었다는 통보였습니다. 편지에는 이 학생들에 대한 정보를 내어줄 것을 요구하는 내용이 들어 있었습니다. RIAA로서는 이 학생들이 어디에 사는 누군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RIAA가 확보할 수 있는 것은 불법 사용자의 IP 주소입니다. 학교 전산망 안에서 불법 유통을 적발하면 해당 IP를 확보하게 되지만, 구체적으로 이 IP가 어떤 사람과 연결되어 있는지는 전산망 운영자인 학교 당국만 알 수 있습니다. 따라서, 학교로부터 협조를 받아야 적발된 사람을 찍어서 돈 내라는 통지서를 보낼 수 있는 것이죠.

학생의 개인 정보를 내달라는 요구를 받은 학교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님뽕 처드셈!"

학생이 불법을 저지른 것은 저지른 것이고, 보호 대상인 개인의 신상을 넘겨주는 것은 다른 문제라는 것이죠. 총장까지 나서서, 학생들에게 인터넷 등을 책임 있게 이용할 것을 강조하면서도, 개인 기록을 요구하는 행위에는 절대 응하지 않겠다고 천명했습니다.

사실 이것은 제가 있던 학교에서만 벌어진 게 아닙니다. 많은 학교가 RIAA의 개인 정보 조회나 통지 요구를 거절했습니다. 그래서, RIAA에게는 이러한 상황을 처리하는 플랜 B가 있었습니다. 법원에 영장을 신청하는 것이죠. 하지만 이런 과정을 거치면 시간도 많이 걸리고 훨씬 복잡해 집니다. 게다가 법원의 까다로운 판단 과정도 거쳐야 합니다. 설령 RIAA가 해당 IP의 컴퓨터를 뒤져 얼마나 많은 불법 음원을 갖고 있는지 확인했더라도, 이런 건 증거로 제출할 수 없습니다. 뒤졌다는 것 자체가 불법이 되니까요. 예컨대 수사 기관이 불법 도청을 하면 공소 자체를 유지하기가 힘든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어쨌든 이렇게 법원이 영장을 발부하면 학교는 두말없이 해당 학생의 정보를 내어 줘야 합니다. 제가 있던 학교에서도 일은 이렇게 끝났습니다. 이 경우에도 많은 복잡한 법적 문제가 발생합니다. 3천 달러면 끝날 일을, 몇 만 달러 위험을 무릅쓰고 RIAA와 정식 소송을 벌이는 화끈한 사람도 있고, 그 결과 승소하는 경우도 드물지 않습니다.

여기서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저작권 문제가 아니라, 개인 정보의 중요성, 이를 관할하는 측의 책임감, 법원의 역할 등입니다. 위의 경우는 개인 정보 관리자가 대학이었지만, 상황에 따라 인터넷 서비스업체(ISP)가 되는 경우도 많습니다. 이 경우에도 정당한 법적 절차 없이 가입자 정보를 함부로 공개하거나 넘겨주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여기서 정당한 법적 절차란 이익 단체나 수사 기관의 '협조 요청 공문' 따위가 아니라, 법원의 판단을 거친 영장입니다. 법원은 영장을 내줄 때, 수색이 범죄 사실 규명에 꼭 필요한지, 수색 대상이 범죄 사실에 직접 관련되어 있는지, 범위는 한정되어 있는지를 판단합니다. 개인 정보 보호를 위해 규정된 강력한 법안들이 있기 때문에, 테러 용의자 같은 특수 사건이 아닌 한, 무작위로 찔러나 보자, "적대감이 하늘을 찌른다" 같은 거 하나 걸리겠지 따위의 청구는 성립할 수 없습니다.

법원 역할의 중요성

PD수첩의 작가가 외국 이메일을 쓰고 있었고, 한국 검찰이 정부 공직자의 정책 행위에 대한 명예훼손 혐의로 언론 기관을 조사하기 위해, 이 이메일 회사에 해당 작가의 이메일 내역을 통째로 내달라고 협조 공문을 보냈다고 칩시다. 한국 검찰에게 돌아올 반응은 글자 그대로 개무시입니다. 그나마 성의 좀 있는 회사는 "님뽕 처드셈!" 하는 답장을 보내 줄 겁니다.

씨바 성질이 뻗친 한국 검찰이, 정부 공직자의 정책 행위에 대한 명예훼손 혐의로 언론 기관을 조사하기 위해, 이 이메일 회사로부터 해당 작가의 이메일을 확보할 목적으로 미국 법원에 압수 수색 영장을 청구했다고 칩시다. 한국 검찰이 들을 수 있는 대답은 역시 "님뽕 처드셈!" 입니다.

이건 부패하기로는 칠레, 우루과이, 카타르, 푸에르토리코보다 낙후된 후진국의 듣보잡 정치 검찰이 요구했기 때문이 아닙니다. 법과 상식을 뛰어 넘는 GR이기 때문입니다.

이 정부 들어, 인터넷을 통한 의사 표현에 재갈을 물리려는 시도가 빈번해짐에 따라, 한국 포털이나 각종 웹 회사들은 경찰, 검찰, 정보통신심의위 같은 기관으로부터 많은 요구를 받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사용자 없이 포털 없죠. 포털과 웹 회사들은 자유로운 정보 유통을 통해 열린 사회 창출에 기여한다는 철학과 사명감을 가진 모습을 보여주었으면 좋겠습니다. 현실적으로 쉽지는 않겠지만, 법 근거 없는 '협조 요청' 따위는 개무시할 수 있는 자존심 있는 모습을 보고 싶습니다. 뜻 있는 기업도 많을 텐데, 왜 우리가 구글코리아 같은 회사만 신뢰하고 칭송해야 합니까. 법 근거를 달고 와도, 이 근거가 합리적인 것인지 정식으로 문제 제기하는 모습까지는 아직 기대하지 않겠습니다.

법원의 역할도 아주 중요합니다. 권력 가진 놈은 쓰고 싶어하게 마련이죠. 인터넷 사용자의 개인 정보 확보나 이메일 압수, 얼마나 손쉽고 간편합니까. 집에 쳐들어가 먼지 쌓인 편지함 뒤질 필요도 없고, 성가시게 도청 장치 설치하고 지키고 있을 필요도 없고. 영장 하나 받으면 가만히 앉아서 한 개인의 몇 년치 사생활을 모조리 긁어 올 수 있습니다.

칼 든 놈이 미친 듯이 칼춤 출 때, 이걸 규제할 수 있는 장치는 그리 많지 않습니다. 독립된 법원은 인류의 지혜를 모아 만든 그 소중한 장치 중 하나입니다. 검찰이 원하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내주지 말고, 이게 제대로 된 청구인지를 법과 양심과 상식에 따라 치열히 묻고 치열히 따져야 합니다. 그게 법원이 존재하는 이유 중 하나인 것이고, 국민으로부터 존경 받을 수 있는 길 중 하나인 것이죠.

처음으로 돌아가서, RIAA는 올해 초 불법 음원 공유에 대한 대처 방안을 바꿨습니다. 무작위 추적, 확인, 소송으로 이어지는 전략은 실효도 없고 비난의 대상일 뿐 아니라, 관련 소송에서 잇달아 패하고 있기 때문이었죠.

RIAA의 새 전략은 인터넷 사업자(ISP)와 손을 잡는 것입니다. 불법 사용자가 감지되면, 인터넷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업자에게 연락하여 인터넷 서비스를 제한하거나 차단하는 것이죠. 이렇게 되면 RIAA는 불법 사용자의 개인 정보를 확인하지 않고도 조처를 취할 수 있게 됩니다. '개인 정보 보호' '통신 비밀 보호' 같은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아는 사회의 양상이 어떤 것인지 짐작이 됩니다. 우리도 통신비밀보호법이란 게 있긴 있습니다만.

아, 이 때 개인 정보란 주민등록번호도, SSN도, 개인의 생각을 적은 이메일 내용도 아닙니다. 그저 해당 사람이 누군가 하는 아이덴티티만 가지고도 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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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9년 6월 21일 « camino @ iPhone 2009-06-22 04:30:5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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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2009/06/21 02:25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deulpul 2009/06/21 03:24 #

    남 같지가 않은가봐요. 아주 따뜻하고 정이 넘치는 사회입니다.
  • 천기누설 2009/06/21 05:53 # 답글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RIAA는 그래도 불법 업/다운로드의 근절이라는 명확한 목표가 있어서 대처방안을 바꿨군요. 그런데 한국 검찰의 행각은 그저 꼬투리를 잡아내기 위한 것이라고 밖에 안보여서 답이 안 보이네요.
  • deulpul 2009/06/21 07:45 #

    꼬투리는 꼬투리인데, 잘 잡아당기면 호박이 달려서 넝쿨째 딸려온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는 모양입니다.
  • 언럭키즈 2009/06/21 12:02 # 답글

    검찰 논리에 따르면 이명박을 싫어하는 우리 모두는 조작범.
    후 샏.
  • deulpul 2009/06/21 13:03 #

    검찰청 안에도 범인들 많으리라 생각합니다.
  • 자그니 2009/06/22 02:05 # 답글

    저도 관련해서 글 하나 써야 할텐데.... 아직 손도 못대고 있습니다. :)
  • deulpul 2009/06/22 04:39 #

    화끈하면서도 치밀한 자그니님 글 하나 빨리 봐야 할텐데 말입니다... 하하.
  • 개멍 2009/06/22 15:20 # 답글

    제가 알기로 국내 업체는 법적으로 내놓으라면 내놔야 하는걸로 압니다. 안 그러면 장사 접어야 하죠.
  • deulpul 2009/06/22 15:52 #

    저도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 영장 들고 찾아오면 무리한 압수라도 어쨌든 내줘야죠. 법 안에서 사업해야 하니 당연한 일이겠지요.
  • 개멍 2009/06/24 15:24 #

    영장도 굳이 필요없는걸로 아는데요. 아니던가요?
  • deulpul 2009/06/26 07:28 #

    국내 인터넷 회사로부터 개인의 이메일 내용을 압수하려면 법원이 발부한 영장이 있어야 합니다. 아이디나 인적 사항 같은 정보에 대해서는, 전기통신사업법에서 법원, 검사, 수사관서 장이 통신 자료를 요청하면 내줄 수 있다고 되어 있습니다. 이 경우는 물론 이메일 내용 같은 구체적 통신 내용이 아니고요. 더구나 '내줄 수 있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현실적으로는 '내주어야 한다'라고 해석되겠습니다만. 이런 조항들이 모두 개정 논의가 되고 있는 상황이라, 혼란의 여지가 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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