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 부족증 섞일雜 끓일湯 (Others)

너댓 살 된 아이들이 동무를 사귀는 모습을 보신 적 있으세요? 아이들도 나름대로 성격이 제각각이어서 모두 똑같다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대충 다음과 같이 됩니다.

한 아이(A)가 놀이터에서 놀고 있습니다. 장난감 트럭을 갖고 놀고 있고, 그 엄마는 좀 떨어진 벤치에 앉아서 아이를 지켜봅니다. 잠시 후 다른 아이(B)가 엄마 손을 잡고 놀이터에 왔습니다. B는 A와 좀 떨어진 곳에서 장난감 기차를 갖고 놀기 시작했으며, B의 엄마는 A의 엄마가 앉은 벤치에서 좀 떨어진 벤치에 앉았습니다.

B는 처음에는 낯설어서 혼자 삐죽삐죽 놀다가, 은근히 A 쪽으로 다가갑니다. 딴엔 딴청을 피우느라 "기차가 칙칙폭폭~" 같은 뻘소리를 내며 가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렇게 해서 B의 기차와 A의 트럭이 가까운 곳에서 만나게 됩니다.

A는 가까이 다가온 B의 기차를 만져 봅니다. B도 A의 트럭을 만져 봅니다. 한 아이가 "이거 내 건데, 너 갖고 놀아!" 하고 말합니다. 아니면 "이거 울 아빠가 사줬다!" 하고 맥락이 닿지 않는 뜬금없는 소리를 합니다. 이 말들은 아이들이 상호작용을 시작하는 발화(ignition) 역할을 하는데, 말하자면 떡밥을 던지는 겁니다. 따라서 말 자체의 의미는 전혀 중요하지 않고, 말이 나왔다는 사실이 중요합니다. 어떤 말도 가능하다는 것이죠. (물론 "이 띱때끼, 꺼져" 같은 건 제외입니다.) 이런 말 한 마디로 둘 사이에 대화(라기보다 형해화된 생각의 파편의 왕래)가 시작되고, 1분도 채 지나지 않아 둘은 말도 안 되는 이야기들을 주고받으며 십년지기처럼 재미나게 놉니다.

이렇게 되면, 어정쩡한 거리에 앉아 있던 엄마들이 좀 어색해집니다. 상대방의 존재를 서로 강하게 의식하고 있지만, 아이들처럼 다짜고짜, 혹은 은근히 다가가서 "이 치마 내 옷인데, 만져보셔도 돼요!" 하거나 "이 진주 반지, 우리 남편이 사줬어요!" 할 수가 없습니다. 성인 간의 대화에서는 아이들과는 달리, 말을 했다는 사실보다 그 말의 의미가 훨씬 더 중요합니다. 말 내용에 따라, 잘못하면 졸지에 광남광녀가 됩니다.
또 저 사람이 나와 대화를 나누고 싶어하는지 알 수 없다는 점도, 어색한 침묵을 만들게 하는 요소입니다. 아니 그 이전에, 자신이 저 엄마와 말을 하고 싶은 건지조차 잘 모르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래서 어른끼리 섣불리 대화를 시작하지 못하고, 아이에게 말을 하는 척 합니다. "A야~ 흙 만지지 마~. 더러워~." 그러면 B 엄마는 미소를 띠고 있다가, 적당한 틈을 봐서 목소리를 가다듬고 자신도 한 마디 합니다. "B야~ 코 나오니? 닦아 줄까?"

이 다음에 A의 엄마와 B의 엄마의 관계가 어떻게 진행되는지는 전적으로 두 사람의 성격에 달렸습니다. 그 중 한 사람이라도 적극적인 성품을 지녔다면, "아유, 안녕하세요. 애가 귀엽네요. 쟤도 작년에 광화문 촛불시위 나갔었나요?" 하고 선선하게 대화를 시작할 수 있을 겁니다.





아이들이 친구를 새로 사귈 때 보면, 지극히 상황 중심적입니다. 당장의 상황에서 서로 하고 있는 짓, 놀고 있는 것에만 모든 관심을 맞추고 있습니다. 이 점만을 공유로 하여 관계가 시작되고 유지됩니다. 하긴 그것 말고는 달리 관심 줄 게 없기도 하겠지만 말입니다. 어쨌든 상대방이 어떤 사람이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사람이 있다는 것 자체, 그래서 같이 놀 수 있다는 사실이 중요합니다. 그 결과, 상대방이 자기와 눈에 띄게 달라도, 예컨대 피부색이 달라도 개의치 않습니다.

하지만 어른들이 친구를 사귈 때는 인물, 특히 그 인물의 배경 중심적이 됩니다. 당장의 상황에서 어떤 짓을 함께 하고 있지만, 그보다는 상대방의 나이, 짐작되는 직업, 외모, 입성 등에 관심이 쏠리게 됩니다. 물론 안 그런 경우도 있지만, 대체로 그렇게 됩니다. 블로그질을 봐도, 같이 블로그 하면서도 저 주인장의 나이, 직업, 성격 따위 참 궁금하지 않습니까.

이런 성인들의 사회적 본능은 쉽게 친구를 사귀지 못하게 하는 한 요소가 되는 듯 합니다. 바로 옆의 사람인데도 선뜻 다가가기 어렵습니다. 마음을 열기는 더욱 어렵습니다. 외로운 것이죠. 가끔은 아이들처럼 천진난만하게, 껍데기 다 벗어버리고 인간 대 인간으로 시작했으면 하고 바랄 때가 있습니다. 그러다 말 통하면 십년지기 되는 것이고요.

물론 개개인의 성격에 따라 다릅니다. 예전에 회사에 있을 때 알던 한 분은 '사회성'이 정말 좋았습니다. 겨울이면 10층에서 지하까지 모든 사무실의 망년회에 참석했습니다. 12월은 고난의 행군 기간이었죠. 아니, 기쁨의 행군이었을까.










한 개인이 일정한 집단 안에서 친구를 사귀는 비율은 대체로 일관되어 있다는 생각이 종종 듭니다. 어떤 사람은 소수의 친구를 깊게 사귀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많은 친구를 손쉽게 만들고 사귑니다. 개인의 성격이 이런 양상을 결정짓기 때문에, 성격이 일정하게 유지되는 한, 한 개인은 어느 집단에서든 친구를 만들고 사귀는 폭이 일정한 듯 보입니다.

어떤 사람이 10%의 비율로 친한 친구를 사귀는 경향이 있다고 합시다. 그냥 이름 알고, 지나다 만나면 인사하는 친구가 아니라, 고민 털어놓고 같이 기뻐하고 같이 슬퍼하고, 술 먹다 안심하고 쓰러질 수 있는 친한 친구입니다. 50명으로 이루어진 학급에서 친한 친구 다섯 명을 사귀었습니다. 10%입니다. 대학에 갔더니 같은 학과에 80명이 있었습니다. 여기서 친구 여덟 명을 사귀었습니다. 만일 이 사람이 열 명이 어울려 일하는 사무실에서 근무하게 되었다면, 그 중 한 명 정도는 그의 친한 친구가 되어줄 겁니다.

그런데, 이 사람이 8명밖에 없는 사무실로 옮겼습니다. 숫자상으로 이 사람의 친구는 0.8명입니다. 실제로는 이 사람은 이 사무실에서 근무하는 내내 친구 부족증을 겪으며 무척 외로워할지 모릅니다.

친구 부족증은 무척 심각한 병입니다. 고독과 절망이 인간을 죽음에 이르게 한다면, 또 절망의 순간에 등을 뚜덕뚜덕 두들겨 줄 수 있는 믿음직한 친구들이 있는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덜 고독하다고 볼 수 있다면, 친구 부족증은 죽음까지는 아니더라도 위험한 병입니다.





위에서 생각해 본 내용으로 보자면, 친구 부족증을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은 둘 밖에 없는 듯 합니다. 첫째는 친한 친구를 사귀는 비율을 10%에서 30%로 올리거나 하는 겁니다. 성격을 바꾼다는 것이죠. 말은 쉽지만 실제로는 참 어렵습니다. 성격 바꾸는 것, 더구나 어른 되고 나서 세상과 인간에 대해 나름의 뜻이 생기고 나서는 쉽지 않습니다.

두 번째 방법은 모집단의 수를 늘리는 것입니다. 같은 10%라도, 10명이 일하는 사무실에서보다는 30명이 일하는 사무실이 더 유리한 환경인 것이죠. 물론 무의미하게 숫자만 많으면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군중 속에서는 오히려 더욱 더 외로워지게 마련이니까요. 의미 있게 전체 수를 늘리는 길을 모색해야 합니다. 이 말은, 본인이 다양한 활동에 참여하고 쫓아다녀야 한다는 점을 뜻하기도 합니다. 친구가 될 가능성이 있는 모집단의 수가 굳이 한 집단일 필요는 없습니다. 오늘 하루 내가 만나 이야기한 사람 수로 따져도 괜찮습니다.

그러나 간혹 이것도 쉽지 않습니다. 나의 생활 공간이 극히 소수의 사람과 접촉할 수밖에 없도록 되어 있는 경우가 있기 때문입니다. 예컨대, 한국을 떠나 있는 분들에게서 이런 외로움을 많이 봅니다. 제 아버지의 친구 중 한 분은 미국에 사시는데, 한 달에도 두어 통씩 편지를 보내곤 하셨습니다. 편지가 오가는 시간을 고려하면, 항상 편지를 쓰고 계신 셈이었습니다. 두 분이 주고받는 편지를 나중에 보게 되었는데, 개인의 일상에서 취미, 가족, 정치 이야기까지 친한 친구들이 나눌 수 있는 이야기는 모두 들어 있었습니다. 두 분이 실제로 무릎을 맞대고 만난 것은 30년 전의 일입니다.

그래서 이 글은 친구 부족증에 시달리는 모든 분들, 특히 외부적 조건 때문에 좋은 친구를 사귀기 어렵게 되어 있는 분들, 예컨대 자신만의 공간에 격리되어 있다든가, 가사에 매여 있다든가, 해외에 격리되어 있다든가 하는 분들에게 드리는 위로이기도 합니다.

친구 부족증의 증상에 대해서는 자세히 쓰지 않겠습니다. 정도 차이는 있지만, 이 글을 보시는 분들 대부분이 겪고 계시는 것일 테니까요.

그림: http://www.aboyinmidair.com/post/91676777/illustrated-unknown-artist-truism-friends-help

덧글

  • 른밸 2009/06/22 06:37 # 답글

    저 같은 경우 극복 방법 세번째라고 봐야할까요? 난 그런가보지 하고 혼자 지내는 데에 익숙하도록 노력했거든요. 지금이야 여자친구도 있고, 동아리 애들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혼자있는 것에 더 최적화(?)된 것 같습니다. 나름 넉살좋고 착하다는 말 많이 들어서 쉽게 친해지기는 하지만 깊게 사귀지는 못하더라구요. 여전히 내가 그렇지 뭐- 하고 살지만, 베프 이야기 하는 친구를 보면 좀 부럽기도 합니다.

    좋은 글 잘 봤습니다
  • deulpul 2009/06/22 07:51 #

    친구가 적어도, 정서나 생활에서 큰 불편을 느끼지 못하면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그래도 좋은 친구들을 가질 수 없거나 볼 수 없거나 만날 수 없으면 종종 괴롭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베프 이야기하는 친구를 보면 저도 부럽습니다. 베프 이야기하는 '친구'는... 내가 베프가 아니란 거냐! 하하-.
  • 언럭키즈 2009/06/22 11:41 # 답글

    전 두 번째 방법이군요.
    '인터넷'이란 모집단은 참 대단하더군요.(오프라인으로 활동 저변을 넓히기엔 아직 기숙사에 묶여있는 처지라...)
  • deulpul 2009/06/22 14:23 #

    무려 수십 만, 웬만한 카페만 해도 수백 명이니 10%만 해도... 그런데 역시 술청에서 함께 치고박고 해봐야 미운 정 고운 정 드는 게 아닐까 싶기도 하군요.

    그나저나 블로그 성격이 티미해서 죄송합니다... 하하-.
  • 섬백 2009/06/22 15:58 # 답글

    음... 저는 한국에 있었을때는 잡식성(...)이었는데 나이먹어 외국에 나오니까 참 친구 사귀기 힘들더라구요. 혼자 있는 것도 시간 지나니까 괜찮아 졌지만 그래도 힘든건 힘들더군요.
  • deulpul 2009/06/23 06:21 #

    그렇죠. <예스맨> 보면서, 짐 캐리 본인의 이야기보다, 낙심해 처박혀 지내는 짐 캐리를 끄집어내기 위해 애쓰는 친구에게 더 눈길이 갔던 것도 비슷한 이유에서였을 겁니다.
  • 긁적 2009/06/22 20:52 # 답글

    대부분이 겪고 계시는!!
    ㅋㅋㅋ
    ㅡ.ㅠ...
  • deulpul 2009/06/23 06:18 #

    외롭지 않은 사람보다 외로운 사람이 더 많은 게 세상 아니겠습니까.
  • 2009/06/23 09:56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deulpul 2009/06/23 11:54 #

    최고의 방법을 찾으셨군요. 축하합니다. 병(?)에 걸린 상태로 시작하면 의존도가 높아질 수 있으니 좀 조심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love hurts라는 상식만 이겨내시면 되겠습니다!
  • misty 2009/06/27 06:15 # 삭제 답글

    아 바로 제 얘기네요... 전 친구가 하나도 없어요...
  • deulpul 2009/07/05 05:27 #

    정말요? 음... 친구가 하나도 없기는 쉽지 않을 것 같지만, 사귐의 깊이를 함께 따져 보면 또 흔한 일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깊이 사귈 수 있는 좋은 친구가 많이 생기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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