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좋은 교재인가 중매媒 몸體 (Media)

신문은 인간 세상에서 실제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담고 있다. 즉 신문은 인간의 삶이 담긴 가장 보편적이고 대중적인 일일 역사서이다. 그러므로 신문만 잘 읽어도 인간 세상의 굵고 자잘한 일들을 이해하기 위한 기초적인 배경 지식은 충분히 얻을 수 있다.

우연히 보게 된 중 일부입니다. 신문의 의미와 가치, 특징 등을 간단히 제시하며, 논술 시험과 같은 입시에 대비하는 데 신문 읽기가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하는 글이었습니다.

그런데 조금 생각해 봐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신문이 세상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들을 담고 있을까요? 그렇지 않죠. 세상에서 벌어지는 수많은 일 중에서 신문사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만이 선택되어 지면에 올라갑니다.

그럼 거꾸로, 신문에 실리는 것은 모두 세상에서 실제로 벌어진 일일까요? 그렇지도 않습니다. 개개의 사실은 실제로 일어난 일들이겠지만, 신문에는 사실에 대한 보도뿐 아니라 수많은 해설, 추정, 평가, 분석, 예측, 주장 등이 함께 실려 있습니다.

위의 글에는 다음과 같은 말도 있습니다.

또한 신문에는 세상을 바라보는 다양하고 깊은 시각이 배어 있다. 신문은 나름대로의 시각(뉴스에 대한 가치 판단)으로 선택․배열한 지면을 통해서 세상을 먼저 읽어 주기 때문이다. 따라서 신문을 주의 깊게 읽으면 세상을 읽는 시각과 방식을 배울 수 있고, 이는 곧 읽는 방식 자체를 배우는 수준 높은 읽기가 된다.

이해가 되는 말이지만, 그러나 이 점은 거꾸로, 신문 읽기의 매우 위험한 점이기도 합니다. 특히 한국처럼 특정 이익을 대변하는 정파지가 주류인 신문 시장에서는 더욱 그렇습니다. 신문을 주의 깊게 읽으면 세상을 읽는 시각과 방식을 배울 수는 있는데, 문제는 세상을 왜곡되게 읽고 편향적으로 보는 방식을 배우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문제의 글도 맨 뒤에서

그러나 신문 읽기를 할 때 어느 특정 신문만을 읽는 것은 좋지 않다. 자신도 모르게 고정된 시각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라고 경계를 했습니다.

교과서적으로 말하자면, 신문은 세상을 읽는 좋은 매개체입니다. 그러나 이건 신문이 신문으로서 해야 할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을 때 이야기입니다. 현실 상황을 놓고 볼 때, 자라나는 학생들에게 신문을 열심히 읽으라고 선뜻 말할 수 있을까. 좀 망설여집니다.

특히, 논술 교육에서 강조되는 사설 읽기는 무척 위험합니다. 웃통 벗어부치고 나서서 신문사의 주장을 직격으로 쏘는 지면인데, 흔히 편향된 사실에 근거한 왜곡된 주장을 조야한 언어로 펼치는 공간이 됩니다. 이게 교육적으로 얼마나 가치가 있는지는 의문입니다.

신문들이 편향되어 있다면 여럿을 읽으면 되지 않는가? 현실적으로도 어렵지만, 더 중요한 문제가 있습니다. 언론이 내팽개친 공정성과 불편부당함을 왜 독자의 정신 세계가 대신 떠맡아야 합니까? 게다가, 다른 시각을 가진 신문을 읽다 보면, 그 시각들을 독자가 스스로 종합하는 게 아니라, 흔히 그 중 하나를 따라가게 됩니다.

신문 등의 언론, 특히 주류 언론(mainstream media)에 대한 비판자인 노엄 촘스키의 언급이 생각납니다. 그는 언론이 기득권자들의 이익에만 봉사하는 나팔수 역할을 한다는 점을 지적하는 '프로퍼갠더 모델'을 설명하면서,

언론의 사회적 목적(societal purpose)은 국가 사회를 주도하는 특권 계층의 경제적, 사회적, 정치적 아젠다를 방어하고 국민에게 주입하는 것이다. 언론이 이를 수행하는 방식은 다양하다. 주제 선정, 관심의 환기, 이슈 틀짓기, 정보 거르기, 강조와 톤, 그리고 일정한 제한 안에서만 토론을 허용하기 등이 그 방식들이다.

라고 말합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독 발린 병에 담긴 꿀을 무사히 꺼내 드실 수 있는 자신이 있다면, 신문은 좋은 교재가 되리라고 생각합니다.

그게 어떻게 가능한가. 신문을 갖고 하는 교육도 이제 미디어 리터러시(media literacy)의 측면에서 접근해야 하지 않을까 하고 생각합니다. 신문을 비롯한 대중매체의 단순한 수용자에서 벗어나, 그 매체들이 갖는 다양한 속성을 살펴보면서 독자적이고도 비판적인 시각을 갖는 수용자가 되자는 교육입니다. 신문 사설을 읽으며 그 왜곡된 논리를 배우는 것보다 훨씬 생산적이고 가치 있는 미디어 교육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리터러시(글 읽고 쓸 줄 앎)이라는 말이 왜 붙었겠습니까. 예컨대, 신문을 읽으며 신문을 만드는 기업의 시각을 객관적인 것으로 오해하여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다면, 글은 읽고 있어도 문맹이라는 뜻입니다.

 

덧글

  • 언럭키즈 2009/08/04 11:51 # 답글

    한국 신문은 최악과 차악만 남은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요..
  • deulpul 2009/08/04 13:32 #

    마치 선거와 같군요...
  • 김상현 2009/08/05 00:03 # 삭제 답글

    네 블로그에 들어올 때마다 감탄한다. 정말 (정신적으로) 치열하게 살고 있구나. 네 말에 100% 동감이야. 네가 인용한 글들에 대해 나도 별로 동의하지 못하겠다. 한국 신문의 양태를 생각하면 더더욱. 세상에 대한 균형 잡힌 시각, 비판적인 논조 등은 연목구어 꼴 된 지 오래이니까. '인간의 삶이 담긴 가장 보편적이고 대중적인 일일 역사서'라고? 그러면 수많은 이들이 신문을 승냥이떼나 vulture로 여기는 이유는 뭘꼬? 기자가 아닌 쪽에 서서 살아보니, 언론에 대한 촘스키의 신랄한 평가가 새삼 각별하게 공감된다. 요즘처럼 실제로 일어나지 않은 일을 작문하는 언론 아닌 언론이 종이와 비디오, 온라인 형태로 창궐하는 상황에서는, 약간 과장하면 차라리 눈 감고 귀 막은 채 사는 게 도리어 정신 건강에 나을지도 모르지. 좀 지나쳤나? 하하.
  • deulpul 2009/08/05 15:11 #

    엇? 나는 왜 이게 비공개 댓글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지? 하하-. 맞습니다. 언론도 그렇고 거기 실리는 것도 그렇고, 차라리 안 보고 안 읽는 게 속도 편하고 건강에도 이로운 것은 확실할 듯. 그런데도 어디 거리 지나다 신문 가판대 같은 거 있으면 눈길 저절로 가지 않습니까? 문자 중독자들은 어쩔 수 없어요, 하하-.
  • 영혼의환 2010/03/05 14:52 # 삭제 답글

    올해부터 시행되는 2007 개정 교육과정 중에서 국어과에선 미디어 리터러시에 대한 교육이 실시되게 되었습니다.
    지난 7차 교육과정 때에 맛만 봤던 것을 확실히 이번 교육과정 안에 넣어뒀지요.

    신문 기사에 대한 비판적 읽기, 영상매체의 의사전달 방법 이해하기, 미디어의 소통 구조 알기 등등 꽤 알찬 내용들로 채워졌습니다.

    심지언 출판을 둘러싼 작가, 출판사, 독자, 서점의 유통구조까지 독서 맥락의 한 부분으로 다루고 있습니다.

    특히 국어교육계에선 최근 리터러시 연구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기 때문에 앞으로의 성과가 더욱 기대되지요.^^

    다만... 정부가 올해부터 시행되는 교육과정을 시행도 해보지 않고, 작년(2008년)에 다시 개정해 버리겠다고 나섰기 때문에 다음 개정 교육과정에선 미디어 비판하며 읽기가 살아 남을 진 모르겠습니다...;;;


    어째든...
    교과서는 진화하고 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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