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무 팽개치고 아이폰 사러 나간 시장님 미국美 나라國 (USA)

아이폰 한국 출시 여부를 놓고 설왕설래가 계속되고 있다. 아이폰 출시 관련 소식을 들을 때마다, 두어 해 전의 에피소드 하나가 생각난다.

아이폰처럼 높은 인기를 끄는 제품이 새로 시장에 나올 때, 몇 시간을 마다하지 않고 가게 앞에 줄을 서서 제품을 손에 넣으려는 미국 소비자의 양상은 낯선 일이 아니다. 예컨대 해리포터 시리즈는 책이 속간될 때마다 서점 앞에서 장사진을 치고 밤을 새는 모습이 연출됐다.

나로서는 도통 이해가 되지 않는 모습이다. 남보다 며칠 앞서 제품을 손에 넣음으로써 얼마나 큰 효용을 얻을 수 있는지 의문스럽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람에 따라 이런 데서 큰 효용을 얻는다고 느낄 수도 있을테고, 새로운 게 나오면 제일 먼저 손에 넣지 않고서는 못 견디는 사람도 있을 수 있겠다.

존 스트릿(66)도 그런 사람 중 하나다. 2007년 6월29일, 첫 세대 아이폰이 미국에 처음 출시되던 날, 스트릿은 아이폰을 파는 필라델피아의 한 AT&T 매장에 새벽 3시30분에 나갔다. 그리고 오후 6시에 판매가 개시되기까지 하루종일 줄을 섰다. 그 덕분에 스트릿은 출시 첫날, 따끈따끈한 아이폰 박스를 손에 넣을 수 있었다.

이틀 밤을 야영하며 줄을 선 사람까지 있었으니, 판매 당일 새벽에 시작해 하루종일 줄을 선 것은 그다지 유별난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러나 문제는 그가 필라델피아 시장이었다는 점이다.

'추리닝'에 운동화 차림을 한 스트릿 시장은, 간이 의자와 랩탑 컴퓨터를 들고 새벽 3시30분에 거리로 나왔다. 목에는 아이팟 나노와 연결된 보우즈 헤드폰이 매달려 있었다. 그는 이미 몇 사람이 줄을 만들고 있던 AT&T 매장 앞에서 의자를 펼쳤다. 아이폰을 사기 위해 하루 근무를 제낀 스트릿 시장의 줄서기는 이렇게 시작되었다.




11시30분쯤, 한 젊은이가 스트릿 시장에게 다가와 항의했다. "필라델피아에서 200건의 살인 사건이 일어나고 있는데, 어떻게 당신이 아이폰이나 사겠다고 여기 앉아 있을 수가 있는 거요?" 당시 필라델피아에서는 연초 이래 200번째의 살인 사건이 벌어졌으며, 이는 지난 십여 년 만에 최고치였다. 이렇게 치안 상황이 불안한데, 시장이란 작자가 전화기를 사겠다고 줄이나 서고 있어서야 되겠냐는 항의였던 것이다. 이에 대해 시장은 "나는 내 업무를 하고 있는 중이요"라고 대답했다.

거리를 지나던 다른 시민들도 스트릿 시장을 비난했다. 그가 정식으로 하루 휴가를 내었는지 따지는 시민도 있었다. 그러나 시장은 "사무실에서만 업무를 볼 수 있다는 고정관념을 버려" 하고 주장하며 버텼다. 랩탑과 휴대폰으로 얼마든지 업무를 수행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젊은이와의 논쟁 직후, 스트릿 시장은 자기 자리를 봐 달라고 부탁하고 줄을 떠나 사무실로 돌아갔다. 오찬 모임에 참석하기로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추리닝'을 입고 모임에 등장한 시장은 차림새가 부적절한 것을 이해해달라고 말했다고 한다.

이후 2시 경에 거리로 돌아왔고, 다시 4시에 줄로 돌아와 6시에 판매가 개시될 때까지 줄에서 기다렸다. 스트릿 시장이 아이폰을 사기 위해 줄을 서서 기다리는 모습은 언론에 생중계되었다. 좋게 말하면 아이폰 열풍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였으며, 나쁘게 말하면 신제품 구매를 위해 업무를 팽개친 무개념 공직자의 대표적 사례가 됐다.

6시가 넘어 아이폰 판매가 개시되었다. 스트릿 시장은 언론의 플래시 세례를 받으며 크레딧 카드로 대금을 지불하고 아이폰 상자를 손에 넣었다. 밖에는 아직 100여 명의 시민이 줄을 서서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스트릿 시장은 아이폰 상자를 머리 위로 치켜들었으며, 줄을 서 있던 시민들은 환호했다.

스트릿 시장은 아이폰의 가치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한다. "기다릴 만한 가치가 있는 일이었습니다. 나는 이런 제품을 좋아하거든요. 아이폰이 내게는 단순한 전화 이상이라는 것을 많은 사람이 잘 이해를 못하는 모양입니다. 이건 통신 기기에요. 이메일도 되구요, 온라인 접속도 할 수 있죠. 나는 컴퓨터 없이도 이메일을 체크하고 스케줄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뭐든지 할 수 있죠."

아이폰 상자를 든 시장은 전화를 개통시키기 위해 서둘러 집으로 돌아갔다. 새 아이폰은 그가 석 달 전에 산 블랙베리를 대치했다고 한다.

처음 이 소식을 들었을 때, 나는 무엇보다 시장이 직접 새벽부터 줄을 서서 기다린 점에 눈길이 갔다. 하려고만 했으면 보좌관을 시키는지 측근을 시키든지 할 수 있었을텐데, 본인이 직접 의자를 들고 나가, 다른 시민과 똑같이 줄을 서서 기다린 끝에 아이폰을 사는 모습이 소탈하면서도 탈권위주의적으로 느껴졌다. 어떤 나라 같았으면, 아예 시장 몫으로 박스 하나쯤 미리 빼 놓았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공직자가 업무를 팽개치고 열 다섯 시간 가까이 길거리에서 시간을 보낸 것은 아무리 봐도 쉽게 합리화하기가 어려울 듯 싶었다. 당사자는 사무실 밖에서도 통신 기기를 이용해 근무할 수 있다고 했지만, 아이팟 헤드폰을 쓴 채, 길거리에 앉아서 무슨 근무를 하겠는가. 그러고 보니 문제의 필라델피아 시장은 측근들의 부패 등에 힘입어, 2005년에 <타임>이 선정한 '최악의 대도시 시장' 3명 중 한 명에 꼽힌 사람이기도 하다.

어쨌든 아이폰이든 아이팟이든, 정말 갖고 싶게 만든다는 게 핵심 문제인 듯.

※ 스트릿 시장의 아이폰 구매 현장 중계
※ 사진 1: 중계 화면 저장, 사진 2: http://farm2.static.flickr.com/1193/665923275_42e76dd354.jpg?v=0

덧글

  • 긁적 2009/09/03 14:47 # 답글

    정말 두 가지 측면이 모두 재미있네요. 잘 읽었습니다.
    그냥 하루 휴가 내지 -_-; 시장이라는 친구가. 휴가를 내고 저러면 막장소리는 안 들을텐데.;
  • deulpul 2009/09/04 07:28 #

    그냥 하루 휴가 내지. (2)
    그런데, 휴가 내고 줄 서 있더라도 좋은 소리는 못 듣지 않았을까 싶기도 합니다.
  • 마르스 2009/09/03 15:47 # 답글

    한편으로는 이해가 가지만(무려 아이폰이지 않습니까!) 그래도 저건 쫌...
  • deulpul 2009/09/04 07:41 #

    한편으로는 이해가 가지만. (2^2)
  • 파애 2009/09/03 17:35 # 답글

    시장이 뭔가 했더니 ... ㅡㅡ;; 오노..;;
  • deulpul 2009/09/04 07:30 #

    아무렴 제가 업무 팽개치고 시장에 아이폰 사러 나갔을까요, 하하-. 혼동을 피하기 위해서 제목에 '님' 추가했습니다...
  • 키엘 2009/09/03 17:44 # 삭제 답글

    제대로된 시스템에서는, 시장 본인이 가는게 아니고 비서를 보내는게 맞습니다. (비서는 개인적인 일도 처리해주거든요.) 그건 권위적인게 아니고 시스템에 맞는 일을 하는것이니까요. 시장은 시장 업무를, 비서는 비서 업무를.

    아마도, 그 시장은 자기가 줄을 서는것을 즐겼을것으로 생각됩니다.
  • deulpul 2009/09/04 07:32 #

    그 시장은 자기가 줄을 서는 것을 즐겼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2)
    네, 비서 등 손이 비는 사람을 보내고 자신은 일을 하는 게 정답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걸 몰랐다기보다, 정말 자기가 나가서 줄 서서 기다리는 것을 즐겼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혹은 정치적 고려를 한 것인지도요. (하지만 결과는 예상 밖.)
  • 푸르메 2009/09/03 18:58 # 삭제 답글

    ^^ 포장하기에 따라 다른 판단이 걸리겠군요. 하지만 업무시간에 그러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은 바람직하지는 않네요...
  • deulpul 2009/09/04 07:33 #

    업무시간에 그러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은 바람직하지는 않네요. (2)
    더구나 세상이 흉흉한 마당에...
  • 언럭키즈 2009/09/03 18:59 # 답글

    얼리어답터의 본능이라고 칭해야 할까요;;;
  • deulpul 2009/09/04 07:36 #

    스스로 자신이 개짓 가이(gadget guy)라고 할 정도니까, 이런 모습이 본능적인 것일수도 있겠습니다. 갖고 나온 아이팟 나노도 아이팟 세 개 중 하나라고 했고, 랩탑도 여러 개 있다고 하더군요...
  • 나인테일 2009/09/04 00:51 # 답글

    시장이 덕후일 경우 일어나는 사고..;;
    블랙베리 신제품 나오면 오바마도 마음 만은 저러고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 deulpul 2009/09/04 07:38 #

    덕후의 정치세력화가 현실화되는 중이군요... 저 시장 소식을 듣고서 "뭐 어떠냐? 시장은 사람 아니냐? 이해할 수 있다"는 필라델피아 시민도 있었다는데, 역시 덕후끼리는 통하는...
  • Cailia 2009/09/04 08:17 # 답글

    ...밸리에서 "사장" 이라 보고 들어왔다가 "시장"인걸 보고 헉! 했습니다.

    저도 뭔가 신제품 나오고 그것을 구하고 싶다고 마음먹었을땐 남보다 무슨수를 써서라도
    먼저 손에 넣을려고하는 편이지만...자기 업무 때려치면서 까지 할 자신은 없군요Orz

    ..역시 세상은 넓네요 ( -_-)
  • deulpul 2009/09/04 13:20 #

    '사장'이 그랬다면 좀더 이해를 받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음... 어쨌든 오래 정치를 한 사람이므로 틀림없이 자기 행동을 미리 저울질해봤으리라 싶은데, 아이폰의 예쁜 모양을 보고 나니 저울질이고 뭐고... 였을 수도.
  • nini 2009/09/04 09:30 # 삭제 답글

    시장 왈 "이건 통신 기기에요. 이메일도 되구요, 온라인 접속도 할 수 있죠. 나는 컴퓨터 없이도 이메일을 체크하고 스케줄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뭐든지 할 수 있죠."

    ....와이파이 막아놓고 대놓고 비싸게 팔아먹는 우리나라에서는 얼마나 통할지 모르겠군요
    그 잘났다는 데이터요금제 속도나 좀 빠르게 내준다면 모를까.. DAMN
  • deulpul 2009/09/04 13:22 #

    한국에서는 여러 모로 순탄치 않을 듯 합니다. 시장님의 발언은 마치 아이폰 광고를 찍으시는 듯...
  • 미령 2009/09/04 11:47 # 삭제 답글

    혹시 미국에서는 비서에게 시키면 비서가 소송걸지 않을까요?
    그냥 그런 생각이 드네요.
    비서가 사온다던지, 권력으로 먼저 챙긴다는건... 문제가 있다고 봐요...
    우리나라에선 왠지 그게(권력을 마구 행사하는 것) 당연해보인다는게 문제가 아닐까요?
    아무튼 이 시장님의 행동이 옳아보이진 않지만, 직접 가서 샀다는 것이 좋아보이긴 하네요.
  • deulpul 2009/09/04 13:25 #

    댓글 토론(?)의 중간 결론으로 보면, 업무 시간에 뛰쳐 나가서 샀다는 건 무개념이긴 한데, 덕후 본능에 충실한 점은 인정함... 이랄까요. 만약 비서를 내보냈다면, 비서도 하루 수발 드는 일 제끼고 길에서 휴식할 수 있으므로 윈윈 게임이었을 수도... 어쨌든 남 안 시키고 본인이 직접 했다는 점은 여러 모로 생각할 여지를 남기는 듯 합니다.
  • 자그니 2009/09/04 11:54 # 답글

    저는 아이폰 나온다면 나가서 줄 서서 살겁니다...;ㅁ;
  • deulpul 2009/09/04 13:28 #

    사용기도 내용을 차곡차곡 눌러담아 제일착으로 올리시지 않을까 싶습니다...
  • 러움 2009/09/04 15:25 # 답글

    시장이 덕후 ㅋㅋㅋㅋㅋㅋ ㅠㅠ 아아아아; 근데 정말 남 시키기 아까울 정도로 좋았나봐요.; 어떻게 보면 순진해보이기도 하고 그렇군요.;
  • deulpul 2009/09/04 19:05 #

    유명한 식당에서 줄 서서 기다리는 일을 끔찍히 싫어하는 저로서는 완벽히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지만, 기다리는 순간도 즐거움의 연속일 수 있다는 점은 인정합니다. 그렇게 좋았나봐요, 정말.
  • 2009/09/09 18:30 # 삭제 답글

    애플의 마케팅 전략이 아닌가 싶기도 하네요
  • deulpul 2009/09/11 14:04 #

    죽고 못사는 애호가와 갖고 싶은 첨단 기기가 만나는 접점에서는 마케팅의 영역이 좀 흐려지는 모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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