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이 사라지고 기자가 사라지고 중매媒 몸體 (Media)

내가 사는 곳에서 발행되는 한 신문에서 최근 베테랑 기자 하나가 은퇴했다. 마이크 밀러는 1969년에 이 신문에서 일하기 시작했으니 40년 근속 기자다. 40년 동안 한 신문에서만 일한 것은, 이 신문이 그의 취향에 잘 맞는 진보적 성격의 매체였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1969년부터 일했다고 했지만, 이는 정식 기자로 근무한 기간만을 따진 것이다. 실제로는 서너 해 더 올라간다. 밀러가 이 신문사와 인연을 맺은 것은 대학생 때다. 신문사에서 저녁에 광고 교정쇄가 나오면, 이 교정쇄를 들고 지역 광고주에게 달려가 최종 확인을 받는 아르바이트가 그가 했던 첫 번째 신문사 일이었다.

그가 기자로서 가장 오래, 또 가장 즐거이 일한 곳은 법원이다. 그는 인간 세상의 애환이 가장 극적이고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공간인 법원을 취재하며, 거기서 사건과 사고와 인간과 사회와 원칙과 유머를 길어내어 글로 써왔다. 그의 역할이 어떠했던지는, 최근 그가 은퇴한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법원의 판사들이 감사 편지를 보낸 것에서 잘 알 수 있다. 판사들은 이 편지에 다음과 같이 썼다.

"법원에서 우리는 복잡한 법률적 절차를 진행합니다. 또 법정에서는 다양한 인간의 감정이 표출됩니다. 당신은 이러한 복잡한 법률 과정과 생생한 인간의 감정을 깔끔하고도 의미 있게 기사로 써 왔습니다. 많은 경우 마감 시간의 압박과 지면의 제한을 받으면서도 이런 일을 훌륭하게 수행하여 왔습니다. 이 지역 시민이 법과 법 체계에 대해 잘 알게 된 데에는 당신의 노력이 큰 몫을 하였습니다."

이 편지를 보낸 판사들은 실명을 쓰지 않았다. 그저 '지역 판사들 일동'이라고 적었다. 법조 기자가 받을 수 있는 최대의 영광 중 하나가 아닐까 생각한다.

노기자 마이크 밀러는 올해 64세다. 이 신문의 편집국에서 (명예직을 갖고 있는 사람을 빼면) 가장 나이가 많고, 가장 오래 일해 왔다. 은퇴할 때가 된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밀러의 은퇴는 자기 뜻이 아니라, 최근 이 신문이 또다시 단행한 감원의 결과다. 이 신문과 다른 신문을 소유하고 있는 모회사는 두 신문에서 기자 12명을 다시 덜어내기로 결정했으며, 밀러는 그 중 한 명이다.

보도되지 않으면 존재하지 않는다

계속적인 감원과 경영 축소가 신문사들을 지배하고 있다. 불황과 신문업계의 위기 속에서 기자들이 사라지고 있다. 밀러가 일하던 신문도 일찌감치, 매일 발행되는 신문을 포기하고 인터넷과 주간 2회 발행 체제로 전환했었다. 그러고도 인원 감축은 계속된다. 신문을 살리기 위해 사람을 포기하는 것이다. 그러나 기자 없는 신문이란 게 존재할 수 있는가.

최근 내가 사는 곳에서 한 행사가 열렸다. 범진보 진영의 활동가, 학자, 정치인, 시민 등이 자유롭게 모여 강의하고 토론하고 즐기는 연례 축제로, 셔토쿼(Chautauqua, 문화 교육 학교) 성격의 행사다. 우리 식으로 말하자면 '범진보 여름 캠프' 정도가 될 것이다. (이 행사와 셔토쿼에 대해서는 나중에 기회 있을 때 보자.)

내로라 하는 활동가들은 물론이고 대학 교수들, 학자들, 연방 및 주 상원의원들, 작가들이 참석한 이 행사는 그러나 지역 신문의 주목을 받지 못했다. 올해로 여덟 번째나 되고, 1만 여 명이 삼삼오오 모인 행사인데도 이른바 MSM(주류 미디어)는 취재도 오지 않았다. 물론 이들 매체에는 이 행사 관련 기사가 나오지도 않았다. 이 매체를 구독하거나 보는 독자나 시청자의 처지에서 보면, 이 행사는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나 마찬가지다.

이러한 상황은 매체의 역할 및 최근의 미디어 산업 상황과 관련해 심각한 고민을 안겨 준다. 시간과 공간의 한계 속에서 살 수밖에 없는 일반 독자에게 있어 세계란 미디어에 의해 재구성되는 세계다. 우리는 뉴스를 통해 세상에서, 혹은 심지어 바로 나의 옆에서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를 알게 된다. 물론 우리는, 이렇게 전달되고 재구성되는 세계가 매체의 편견에 의해 덧칠되어 있을 수도 있다는 점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아예 전달되지조차 않는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우리는 세상의 어떤 부분이 존재한다는 점을 전혀 알지도 못하고 살게 된다.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재임 중에 그의 탄핵 운동이 강력하고도 뿌리 깊게 존재했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이 얼마나 될 것인가.

우리가 그들보다 숫자가 많다니!

1979년 6월에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자기 출신국인 폴란드를 방문했다. 교황이 공산권을 방문한 것은 처음이었다. 교황의 방문은 예상치 못한 상황을 초래했다. 폴란드인들의 환영 열기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크고 뜨거웠던 것이다. 9일 간의 방문 기간에 1천3백만 명에 이르는 군중이 거리로 몰려나와 교황을 맞았다. <타임>은 이를 놓고 "교황의 방문은 축제, 정치 캠페인, 십자군 운동, 거대한 폴란드식 결혼 행사 등을 모두 하나로 합쳐놓은 듯 했다"라고 썼다.

이러한 열기는 분명 종교 지도자에 대한 환영 이상의 무엇이 있음을 의미했다. 그 무엇이 무엇인가. <뉴스위크>의 크리스천 카릴에 따르면, 교황 방문 당시 반정부 성향의 청소년이었으며 현재 폴란드 외무장관인 라도스와프 시코르스키는 "우리는 '우리'가 '그들'보다 훨씬 숫자가 많음을 처음으로 깨닫게 되었다"라고 말한다. 교황의 방문은 폴란드인에게, 이미 존재하고 있지만 알지 못했던 새로운 세계를 열어젖혀 준 것이다.

카릴의 기사에 따르면, 역사학자 티모시 애쉬는 나중에 다음과 같이 평가했다. "폴란드 출신 교황이 없었다면 1980년 자유노조 혁명은 일어날 수 없었을 것이다. 자유노조가 없었다면 고르바초프의 동유럽 정책 변화도 없었을 것이다. 그런 변화가 없었다면 1989년의 벨벳 혁명도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것은 세상과 자신에 대한 있는 그대로의 인식이 역사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나를 잘 보여주는 사례다. 폴란드 국민은 교황을 맞으러 거리에 나서고 나서야 자신들이 다수임을 자각하게 됐다. 그러나 언론이 정당한 역할을 하고 있었다면, 폴란드 국민은 거리에 나서기 전에 이미 이러한 사실을 깨달았을 것이다.

자각의 모태가 되는 사실들은 대부분 매체를 통해 제공된다. 어두웠던 군사독재 시절, 정권의 속성을 잘 보여준 물고문 살인도 성고문 만행도 모두 매체를 통해 대중에게 널리 알려졌으며, 정권에 대한 국민적 저항으로 이어졌다. 당시 독재 정부가 '보도지침'을 마련해 "이 사건은 보도하지 말 것, 이 사건은 사회면 맨 아래에 1단으로 보도할 것" 식으로 철저히 통제한 것도 이 때문이다. 사실이 언론에 의해 재구성되는 것을 막고, 그들에게 유리한 일부 사실로만 세상을 재구성하려던 노력이었던 것이다.

던져지지 않는 질문, 견제되지 않는 권력

신문의 위기, 매체의 위기에 대한 우려가 일상이 됐다. 원인이 무엇이든, 이러한 상황이 어떤 결과를 낳을 것인지 생각해 봐야 한다. 편향된 신문들, 왜곡된 신문 시장에 대한 비판적 인식과는 별도로, 원론적으로 신문이나 매체가 없는 사회가 과연 소망스러울 것인가를 질문해야 한다.

신문이 위기에 처한 것은 사람들이 신문을 읽지 않아서가 아니다. 사람들이 읽지 않는 것은 신문이 아니라 종이 신문이다. 우리는 여전히 신문을 (인터넷을 통해) 읽고 기사에 나온 사건을 토론한다. 정보의 원천으로서 신문이라는 매체를 여전히 이용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어쨌든 신문은 팔리지 않으며, 그 결과 신문이 사라지거나, 아니면 맨 앞에 쓴 마이크 밀러 기자의 예에서처럼, 기자, 그것도 믿을만한 좋은 기자들이 사라진다. 열 명이 취재하여 재구성한 세상과 다섯 명이 취재하여 재구성한 세상은 전혀 다르다. 말하자면, 다섯 명이 취재하여 재구성한 세상은 '보도자료로 구성되는 세상'이나 마찬가지다. 취재 여력이 미치질 못하니, 미디어 학자 로버트 맥체스니의 표현대로, 뉴스로 위장하여 뿌리는 PR이나 받아적고 있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것은 끔찍하고도 불행한 사회다.

더 나이가, 이러한 매체 상황이 민주주의에 독이 될 것이라는 점도 명확하다. 미디어 학자 에릭 에프런의 식으로 표현하자면 "이야기는 말해지지 않고, 질문은 던져지지 않으며, 권력은 견제되지 않는" 상황이 된다. 언론에 의해 견제되지 않는 권력이란 불의와 비리를 행하기에 얼마나 자유로울 것인가.

인터넷이라는 매체, 블로깅, 누구나 기자가 될 수 있는 시스템이 이러한 견제 장치의 일부 대안이 될 수 있지만, 완벽하고도 제도적인(institutional) 대안이 되기는 어렵다. 정보의 접근, 분석, 해석, 제시라는 전 과정은 직업적 저널리스트를 필요로 하는 작업 세계다. 아마추어 사설 탐정들에게 강력 사건을 맡겨놓고, 시간 나거나 관심 있으면 해결해 보라고 요청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맨 앞에 쓴 마이크 밀러 기자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법원을 커버하던 때 밀러는 지역 경찰, 검찰 등 법 집행 기관은 물론이고 법원의 잘못에 대해서도 가차없이 비판했다. 그의 비판이 존경을 받았던 것은 사심이 없고 공정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그가 은퇴한다는 소식을 듣고 익명으로 감사 편지를 보낸 '지역 판사들 일동' 역시 밀러로부터 혹독한 감시와 비판을 받던 사람들이다. 그들은 감사 편지에 이렇게 썼다.

"우리 정부 체계는 유능하고 헌신적인 언론에 의지하고 있다는 점을 당신을 통해 깨닫게 되었습니다. 당신은 언제나 자신이 해야 할 준비를 철저히 갖추었으며, 신뢰를 저버린 적이 한 번도 없으며, 잘못된 것을 바로잡기 위해 언제나 노력해 왔습니다. 법원이 언론에 대해 신뢰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당신 때문입니다."

마이크 밀러를 '사수'로 모시고 경찰 출입을 하며 기자 생활을 했던 후배 기자는 다음과 같이 썼다.

"그는 다른 기자들이 시간이 없거나 관심이 없어 돌보지 않는 사건을 파헤쳤다. 그는 재판에서 나온 증언 하나로부터 거대한 이야기를 추적해 내는 능력이 있었다. 그런 일을 하는 기자는 이제 거의 없다. 마이크가 없는 지역 법원에서는 이제 많은 중요한 이야기들이 제대로 보도되지 않은 채 지나쳐질 것임에 틀림없다."

이런 기자들이 사라지고, 이런 기자들이 일하던 신문들이 사라진다. 세상은 어떤 곳이 될지 아직은 미지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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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른밸 2009/10/06 18:32 # 답글

    특히나 특정신문 몇 개의 영향력이 전국적으로 매우 크고, 지방신문이나 군소신문의 영향력은 미미한 한국에서 점점 좋은 기자를 보기가 힘들어지는 것 같습니다. 기자 양성 시스템이 기사보다는 지식에 초점이 맞춰져있어서 앞으로도 가능성이 높아보이지는 않구요...
  • deulpul 2009/10/08 11:52 #

    좋은 말씀 고맙습니다. 지역 매체 상황은 바람직한 언론 환경을 측정하는 척도 중 하나가 아닐까 싶습니다. 말씀대로 기자 양성 시스템과 관련해서도 중요한 요소가 될 수 있을 테고요. 그런데도 현실은 서울이라는 한 지방으로 더욱 더 몰고가지 못해 안달인 것처럼 보입니다.
  • 2009/10/06 19:38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deulpul 2009/10/08 11:54 #

    정말 걱정인데, 기우였으면 좋겠습니다. 저 양반도 평생 돈을 얼마나 벌었나, 외모가 얼마나 멋있나를 따져 보면 다른 평가를 할 수도 있겠습니다. 그런 거 하려면 기자보다 다른 직업을 선택해야겠죠. 사진 보니 외모는 '기자답게' 잘 생기긴 했습니다만...
  • 리디 2009/10/07 13:40 # 삭제 답글

    혹자는 '지성'을 '압도적인 지식의 축적' 혹은 '범인과 구분되는 통찰'로 정의했는데, 들풀님은 둘 다에 해당하실 것 같다는 생각이 얼핏 드네요. :)
  • deulpul 2009/10/08 11:54 #

    도토리 200개, 내공 500점 드립니다.
  • 자유인 2009/10/08 01:21 # 삭제 답글

    감동적이네요. 살짝 울컥하기도 하고 부럽기도 하고 답답하기도 하고 가슴이 시리고 먹먹해지기도 하네요.
  • deulpul 2009/10/08 11:55 #

    사는 게 다 그런 거 아니겠습니까. 부럽기도 하고 답답하기도 하고 시리기도 하고 먹먹하기도 하고... 뻘답글이어서 죄송합니다.
  • 언럭키즈 2009/10/08 20:54 # 답글

    '좋은 기사'라고 할 만한 기사를 본 지가 너무 오래 된 것 같습니다.
    요리로 치자면 인스턴트아니면 조미료 팍팍 뿌린 기사가 대부분이 된 것 같아요.
  • deulpul 2009/10/08 21:09 #

    무슨 맛인지 절절히 와 닿습니다. 조미료도 순 깻묵이죠. 한데 후려서 잡기 위한... 그런데 말씀하신 '좋은 기사' 쪽으로 가는 게 인쇄 매체의 활로가 아닐까 하고 모색하는 움직임도 있는 듯 하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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