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노래하는 박은옥, 정태춘 섞일雜 끓일湯 (Others)


그 동안 노래는 안 하고 사진만 찍고 다녔다는 '사진 찍는 사람' 정태춘이 박은옥과 함께 다시 노래를 부른다고 한다. 그것도, 누가 나보고 서울에서 가을 길 좋은 데를 꼽으라면 다섯 손가락 안에 넣을 동네에서 한다. 서울이라면 쓰윽 찾아가, 무대에서 멀리 떨어진 객석 한 귀퉁이에 앉아 지켜볼 텐데, 아쉽다.

여담이지만, 우연한 기회에 두 분의 따님이 쓰시는 블로그를 잠깐 본 적이 있다. 그 분에 따르면, 두 분은 그 분에게 블로그에다 두 사람의 이야기를 쓰지 않도록 엄명을 내리신 모양이다. 그러나 사실 우리네 산다는 게, 일상에서 지지고볶는 이야기 빼면 뭐 공허한 뜬구름들밖에 남는 것도 없지 않은가.

그래도 엄명 때문에 그런지, 해당 블로그는 그 본인의 블로그일 뿐, 박-정 두 분 이야기는 거의 나오지 않았다. 내가 본 부분에서는 딱 한 번, 이들이 등장했다.

"니 아빠 술 마셔."

나는 이 여섯 자를 보고 정태춘과 박은옥을 사랑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술 마시는 정태춘과 이렇게 말하는 박은옥에, 이렇게 쓴 따님까지 모두 눈물이 날 정도로 사랑스러웠다. 아니, 사람보다 이 여섯 글자가, 그 뒤에 담긴 뜻과 느낌들이 말할 수 없이 사랑스러웠던 것인지도 모른다. 본인들은 어땠을지 몰라도, 나는 그랬다. 맥락을 빼놓아서 뜬금없이 느껴지시겠지만.

이렇게 저 여섯 자에 말을 보태는 것도 군더더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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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크레인 삽날이 황새울을 도굴하며
커다란 흙무덤들을 파고 있을 때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라고 쓴
프랑을 둘둘 말아들고
헉헉거리며 그가 왔다

숨 돌릴 틈도 없이
내가 하나 둘 셋 하면 뛰어 들어
이 프랑을 펼치는 거야 라고 그가 속삭였다
그는 한번도 아티스트를 벗어나 본 적이 없다
참 푸르던 날

우리도 함께 묻으라며
흙무덤으로 우리가 몸을 던지자
뒤따라 전경 수십 명이 우리를 덮쳐 왔다
그때 그가 저 끝에서 소리쳤다. "목을 걸어!"
그는 벌써 프랑 한 끝으로 자신의 목을 동여매고 있었다

사람들이 진짜 죽는다고 고래고래 소리쳤지만
우리는 아무렇게나 흔들고 가는 굴비두름처럼 프랑에 목이 대롱대롱 묶인 채
컥컥거리며 끌려나와야 했다
한반도의 모든 비와 바람과 꽃잎과 구름의 마음을 섞어도
그 소리가 나올까 말까 한
박은옥이 이럴 수가 있냐고 울부짖고 있었다
그는 끝내 프랑을 놓지 않고 끌려갔다

송경동 시인이 이번 공연에 부쳐 쓴 시 '대추리에서' 중 일부다. 이렇게 시대를 관통하며 영욕을 치러내는 예술인을 시대와 함께 반추해 보는 것도 의미 있지만, 가끔은 인간으로서 그들을 보고 싶다. 상징을 벗겨내고 그 밑에 숨쉬는 날것으로서의 그들의 고민과 아픔을 짐작하다 보면, 그들이 선택한 상징이란 게 얼마나 값진 것인가, 그러한 상징이 의미를 잃어가는 시대라는 생각이 들 때 얼마나 절망하게 될까를 다시 깨닫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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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인터뷰 기사에서, 두 사람은 이렇게 말한다.

"문명의 질주에 동승하고 싶지 않아 뛰어내린 거죠. 재편된 한국 사회의 권력구조, 문화 지형에 편입되고 싶지 않아 제 역할을 포기했어요. 또 제 분노에 비해 나이가 들었고, 절망에 비해 열정이 떨어졌죠."(정태춘)

"아니, 결코 이 사람의 열정이 떨어진 건 아니에요. 자본이라는 블랙홀로 빠져드는 게 최선인 사회에 절망을 느꼈을 뿐이죠. 이 사람에게 노래는 소통이고 대화인데, 여전히 들려주고 싶은 얘기가 많지만, 사람들이 그 얘기를 들으려 하지 않는다고 생각한 거죠."(박은옥)

아닙니다. '이제까지도 (아니, 날이 갈수록) 눈에 잘 안 띄고 귀하고 듣기 어려웠던 얘기들, 아직도 풋풋한 바보네 인심과 양심을 지키는 가난한 이웃들'의 이야기, 간절히 듣고 싶어 하는 사람 여전히 많으니, 많이 좀 들려 주십시오.

※ 사진: 인터파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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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ZZiRACi 2009/10/17 09:31 # 삭제 답글

    아... 정태춘 목소리를 다시 들을 수 있겠군여!

    반가운 소식입니다!!
  • deulpul 2009/10/18 12:42 #

    두 분 목소리뿐 아니라 새 노래들도 들을 수 있었다면 더 좋겠습니다.
  • 2009/10/18 09:40 # 삭제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deulpul 2009/10/18 12:49 #

    이런 자리에서 공개하는 게 여러 모로 바람직하지 않은 듯 해서 되도록이면 밝히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내용이 뜬금없이 되어 버렸네요.
  • 2009/10/18 20:12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deulpul 2009/10/19 14:29 #

    그래서 가져왔습니다. 보기만 해도 괜히 마음이 훈훈해지거든요. 웃음도 나고요...
  • 제제 2009/10/19 10:31 # 삭제 답글

    두분의 뜻을 읽고 가슴이 져며오네요....
    험한 세상에 초불과도 같았던 분들이셨는데...이제 그 초불을 꺼버리실려고 한다니 모두 우리의 책임 같아 마음이 무겁습니다.
  • deulpul 2009/10/19 14:35 #

    '슬픈 환락과 전도된 가치 속에서' 노래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를 끊임없이 질문하면서도 노래 하셨던 분들이니, 세상이 어두울수록 더욱 노래로써 말할 것으로 믿습니다.
  • 다시첫차를기다리며 2009/10/23 18:24 # 답글

    좋은 글 감사합니다.
    허락하신다면 이번 공연 블로그에 트랙백 하고 싶습니다.
  • deulpul 2009/10/23 21:22 #

    물론이지요. 트랙백은 언제나 글 쓴 사람이 아니라 해 가시는 분의 결정에 따라 이루어지는 일이라고 믿기 때문에, 제 허락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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