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의 그림자, 진도 참 안 나간다 섞일雜 끓일湯 (Others)

동료 한 분이 한국으로 떠나며 책 몇 권과 CD 몇 장을 남겨 주었다. 원래 책과 CD는 이 곳에 있는 공공도서관에 기증될 운명이었는데, 인사차 갔더니 고맙게도 그 중에서 몇 개를 뽑아 내게 건네 주었다.

책장을 휙휙 넘길 수 있는 책, 즉 한글로 쓰인 책에 대한 갈증은 때로 심각하다. 진도가 잘 안 나가는 원서, 특히 중문 복문이 배배 꼬여 두세 문장이 한 쪽을 차지하는 악성 원서와 씨름할 때는, 한글 책 생각이 간절하다. 이럴 때면, 한글 책이라면 철학책이든 통계책이든 앉은 자리에서 한 권씩 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실제로 그럴 수는 없겠지만 말이다. 그래서, 한글책은 책장을 휙휙 넘길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스트레스 해소에 큰 도움이 된다.

그런데 이 책은 한글로 되었는데도 도무지 진도가 잘 나가지 않는 것이다. 두 권으로 쪼개어 만들어진 카를로스 루이스 사폰의 <바람의 그림자> (문학과 지성사)다. 몇 장 읽다가 팽개치고, 또 몇 장 읽다가 팽개치고 하기를 벌써 석 달째다.

책 껍데기에 적힌 대로 '살인과 광기 그리고 불운한 사랑의 대서사시'라면 밤을 새워서라도 읽을 만한데, 왜 읽다 집어던진단 말인가. 도무지 납득이 안 가는 문장이 수시로 등장하기 때문이다.

문장에 관하여 내가 좀 까탈스럽다는 점은 나도 안다. 그래서, 도무지 요령부득이라고 생각하지만 어찌저찌 뜻은 통하는 문장들은 대충 넘어갈 수 있다. 순간적으로 책을 탁 덮고 싶은 충동이 생기기는 하지만 말이다. (그러나 물론 나는, 자비 출판한 비매품 책도 아니고, 상업적으로 제작되어 독자의 돈을 받고 파는 책이라면 그런 요령부득의 꼴을 보여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문제는 무슨 뜻인지 도무지 모를 문장이며 서술이 등장한다는 것이다. 소설이 무엇이고 묘사가 무엇인가. 글을 읽으면, 문장으로 해체된 현실이 다시 독자의 머리 속에서 재구성되어야 하는 게 아닌가. 그런데 어떤 문장들은 도무지 그게 안 된다.

예컨대 다음과 같은 문장이 나온다:

한쪽 구석에는 카락스의 어머니의 낡은 업라이트 피아노가 머물러 있었다. 건반들은 검게 변색되어 먼지 덮개 아래의 접합점들이 잘 보이지 않았다. (190쪽)
오래 방치된 집 안에 먼지를 덮어 쓰고 있는 피아노를 묘사하는 장면이다. 몇 번을 읽었다. 그런데도 무슨 말인지 알 수 없다. 건반이 검게 변색되다니? 누렇게라면 혹 몰라도. 불이 났었나? 먼지 덮개 아래라니, 건반에 덮개가 씌여 있었나? 그렇다면 건반이 '검게 변색'될 리가 없는데? 접합점이란 대체 뭐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문장이다.

구글 북스에서 찾아 본 영어 번역문과 스페인어 원문은 다음과 같다.


말하자면, 건반 자체의 색이 변한 게 아니라 검은 먼지에 덮여 있었다는 말이며, 두터이 쌓인 먼지 때문에 건반 사이의 경계가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는 말이다. 덮개며 접합점 따위는 나오지도 않는다.

또 이런 것도 있다:

슬리퍼를 신고 머리에는 파마기를 꽂고 솜이 들어간 남색 체크무늬 가운을 걸친 한 아주머니가 내게 문을 열어주었다. 희미한 빛 사이로 초인종이 보이는 듯했다. (258쪽)
주인공이 어두컴컴한 아파트 복도에서 어떤 집의 문을 두드린 뒤, 여주인이 문을 열고 나온 장면이다. 희미한 빛 사이로 초인종이 보인다니? 초인종이 있었단 말인가? 그런데 왜 주인공은 문을 "주먹으로 두들겼"나? 어두워서 미처 못 보았나? 그런데 집 안에서 빛이 흘러나오니 이제야 초인종이 보인다는 말인가? 안에서 빛이 나오면 밖에 있는 것들은 오히려 더 잘 안 보일텐데? 그런데 이렇게 눈에 띄기도 어려울 정도로 소소한 초인종에 왜 이런 특별한 관심을 두나? 그 뒤 벌어질 일에 무슨 단서라도 되나?

역시 영어 번역본과 스페인어 원문은 다음과 같다.


그러니까, 희미한 불빛에서 보니, 그 여주인은 (파마기를 덮어쓰고 있는 바람에) 잠수부처럼 보였다는 말이다. 웬 초인종? 잠수부(diver)를 스페인어 원문에서 buzo라고 썼는데, 번역자가 이를 buzzer로 혼동한 게 아닌가 싶다. 그러나 여기서 왜 갑자기 '초인종'이 나와야 하는가, 안에서 나오는 불빛에 그게 보일까 하는 상식적인 생각을 잠깐 했다면, 이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먹고 살 일도 아니고, 시간도 없어 더 많은 예를 보지는 않았지만, 대충 이런 식이다.

번역자는 자신이 번역한 한글 문장을 자신이 이해해야 한다. 번역자가 이해하지 못하면 아무도 이해하지 못한다. 한발 더 나아가, 자신은 이해하더라도 독자가 그 문장을 이해할 수 있는가 생각해 보아야 한다. 원문을 읽은 자신은 이해하고 있더라도, 한글로 옮겨 펴내면 읽는 사람은 원문을 본 번역자가 아니라 원문을 모르는 독자다.

번역서에서 글의 맥이 잘 잡히지 않으면 틀림없이 번역이 잘못된 것이다. 난데없거나 뜬금없거나 어이없거나 맥락에 닿지 않거나 그림이 잘 그려지지 않는 묘사며 서술이 그런 경우다. 전문서도 아닌 이런 대중소설 번역본에서, 읽어도 당최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 나온다면 거의 100% 번역 오류라고 보아도 된다.

사실 이 책에는 번역을 참 잘 한 것처럼 보이는 장면도 종종 나온다. 말하자면 번역의 품질이 고르지 못하고 들쭉날쭉이랄까. 번역자는 기가 막힌 명문을 쓸 필요도 없다. 물론 그럴 수 있으면 더욱 좋겠지만, 그런 일은 사실 번역자의 임무가 아니다. 번역자는 최대한 원문에 충실하면서 원저자가 뜻하는 바를 충실하게 옮기는 것일 따름이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아무리 뛰어난 부분이 있더라도 전체적으로 매끄럽지 않고, 더구나 실수에 가까운 부분들마저 수시로 등장한다면, 책 정말 읽고 싶어지지 않는다.

<바람의 그림자>는 미국과 스페인을 오가며 활동하는 작가 사폰의 첫 성인 소설이라고 한다. '전염병'이라고 불릴 정도로 큰 인기를 끌었으며, 책 뒷표지에 따르면 "가르시아 마르케스, 움베르토 에코, 그리고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가, 이 스페인의 젊은 소설가가 쓴 마술적이고 저항할 수 없는, 독자를 동요시키는 명민하고 놀라운 이 작품에서 만나고 있다"는데, 한글 번역본을 보며 도저히 그런 생각이 들지 않았다. 책 뒤에 줄줄이 늘어선 상찬이 도무지 믿기지 않는 과대 광고로 보이는 것은, 사폰의 원 소설이 시시껄렁해서인지 아니면 번역 탓인지 알 수 없다.

※ 책 이미지들: 구글 북스 The Shadow of the Wind, La sombra del vien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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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MCtheMad 2009/11/09 17:47 # 답글

    어찌됐든 스페인어 판으로 번역한 모양이군요.. =_=
    설마 영어로 저렇게 쓰여진 문장을 진심으로 저렇게 번역했을 리는 없으니...;;
  • deulpul 2009/11/09 18:17 #

    스페인어를 전공하시는 분이 하셨습니다. 베스트셀러 번역본의 출판 특성상, 촉박한 일정 속에서 시간 압박을 받으며 번역 작업이 이루어진 결과가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번역하다 보면, 너무 쉽게 지나가기 때문에 구태여 하나하나 안 찾아보는 경우도 있는데, 삑사리는 여기서도 생기지요.
  • HolyRan 2009/11/09 18:10 # 답글

    스킨 바꾸신 일, 정말 경축드립니다! 이리 기쁠 수 없습니다. 까만 바탕은 눈을 아프게 하지만 그래도 괜찮습니다! 만쉐!
  • deulpul 2009/11/09 18:30 #

    음... 이렇게 반가워하실 분은 이글루스 사용자들을 스킨 2.0으로 데리고 가고 싶어하(실지도 모르)는 이글루스 관계자밖에 없을텐데... 여하튼 기뻐해 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하지만 저도 눈이 너무 괴로워요... 검은 계열 바탕은 텍스트 위주의 블로그 스킨으로는 적합하지 않다는 점을 뒤늦게 깨닫고 있습니다. 그렇잖아도 보시는 분들도 저처럼 괴로운지 설문을 잠깐 돌려보고 싶었습니다만... 아무래도 다시 돌아가야 할까봐요.
  • 페코 2009/11/10 21:56 #

    검은색 바탕에 흰 글씨는 가독성이 떨어져요
  • 꿈꿀권리 2009/11/10 02:55 # 답글

    들풀님이 좋아서 선택하신거라면
    검정아닌 시뻘건 스킨일지라도 축하드려욧!
    눈이 아파도 참는 분이 계신데...
    ( 통증은 없지만 시력이 급격하게... --;)

    말이 났으니 말이지 울나라도 '번역청'을 둬야 합니다.
    출간되는 책은 번역청의 심사를 거쳐 숙고된 다음 세상으로 나와야 해요.
    엉터리 번역본을 읽으면 이누무 출판사가 미쳤나! (죄송..)
    번역한 인간은 나름 쟁쟁한 명성을 떨치는 교수류인데 실제 번역은 학부생이나 조교가
    알바로 한 것이 아닐까 의심쩍어지거든요.
    흠.
  • deulpul 2009/11/10 14:21 #

    음... 아무래도 다른 분께는 고문을, 저 스스로는 자해를 하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어쨌든 고맙습니다. 정말 그런 기관이 필요한지도 모르겠습니다. 현실적으로는 쉬운 일이 아닐테니 우선 관계하시는 분들이라도 열심히 하셨으면 좋겠는데, 그러고 보면 또 시장이 그렇게 되어 있질 않네요. 번역자들이 어떤 대접을 받는가 하는 점도 많이 나온 이야기이고요. 어디서부터 풀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 김상현 2009/11/10 03:57 # 삭제 답글

    Shadow of the Wind - 제가 아주 재미있게, 감동적으로 읽은 소설입니다. 좀 길다 싶고, 마무리가 너무 해피엔딩이라 마치 전근대 소설의 특징이 고스란히 드러난 것처럼 여겨지기도 했지만 그처럼 긴 이야기를 그처럼 흥미진진하게 끌어갈 수 있는 소설가의 역량이 부럽고 감탄스러웠습니다. 제가 읽은 책은 영어 번역본인데, 영어 실력이 모자라 뭐라고 진단하기는 어렵지만 참 잘된 번역이라는 생각을 읽는 동안 여러번 했습니다. 제가 캐나다로 이민 와 살며 세운 독서의 원칙 아닌 원칙은 이렇습니다. 영어로 된 책은 영어로 읽자. 한국 책은 한국 작가가 쓴, 본래 언어가 한글인 책을 읽자. 번역본도 영어 우선, 예외는 일본쪽 책. 예컨대 무라카미 하루키의 책은 한글로 번역된 것. 번역본으로 '이것 참 이상한 문장일세, 도대체 뭔 소리여?' 하는 생각이 덜 든 경우는 일본책을 번역한 경우가 거의 유일한 듯해서입니다. 한글로 번역된 영어 책 보면서 끌탕 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닙니다. 내가 왜 돈 주고 책 사서 이런 고난까지 겪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지요. 그나저나 참 재미난 블로그입니다. 잘 읽었습니다. 계속 건필!
  • deulpul 2009/11/10 14:42 #

    아, 명성에 값하는 좋은 작품이었군요. 말씀 들으니, 조금 더 힘을 내서 일단 마무리를 해 봐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 와중에 또 저런 걸 찾아낸다든가...) 이런 생각을 하게 되네요. 영화를 보는데, 시나리오도 훌륭하고 카메라라든가 음악이라든가 하는 부분들은 대체로 탁월한데, 배우 두어 명의 연기가 기대 이하여서 관객들이 실망하는 영화 있잖습니까. 그와 비슷한 경우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말씀하신 원칙은 번역이란 게 얼마나 어렵고 한계가 많은 작업인가를 잘 알려주시는 것 같습니다. 일본책은 언어뿐 아니라 문화로도 다른 나라에 비해 훨씬 가깝기 때문에, 말씀대로 아예 엉뚱한 번역 사태는 잘 벌어지지 않는 듯 합니다. 이 경우는 오히려 말이 안 통한다거나 이해가 되지 않는 문제보다, 한국어와는 분명히 다른 일본말식 표기를 그대로 갖다 쓰는 게 더 문제가 아닐까 합니다. 내용이 아니라 형식의 문제랄까요. 눈 아프실텐데 읽어 주셔서 고맙습니다...
  • 언럭키즈 2009/11/10 06:01 # 답글

    번역은 제2의 창작이라지만 아예 없던 내용을 만드는 건...OTL
  • deulpul 2009/11/10 14:43 #

    제3의 창작이죠...
  • 한여름 2009/11/10 13:42 # 답글

    이 책, 도서관에서 세번인가 빌렸는데 끝까지 못읽고 반납했어요. 아직도 못 읽고 있어요.^^ 이런 오류들이 많았군요. 예전에 낙하하는 저녁을 읽었는데 남자주인공 이름을 바꿨더라구요. 게다가 번역자 후기에 쓴 글이 자신이 처음 알던 이름으로 번역을 하니까 그 이름이 더 어울린다나(?) 그런 뉘앙스였던걸로 기억해요. 이렇게 황당한 적은 처음. 번역 좀 잘 해줬음 좋겠네요.
  • deulpul 2009/11/10 15:01 #

    이런 종류의 소설은 잡으면 그냥 내리 가는 게 정상인데, (일부 독자로부터) 마치 박상륭 소설이나 니체의 저작 같은 대접을 받고 있군요, 하하-. 아니 그리고 주인공 이름이 바뀌었단 말입니까? 단순히 외국인명의 발음을 수정한 게 아니고요? 흠... 문학 번역에서 국산화랄까의 수위에 대한 논란이 있는 것은 알고 있지만, 그건 좀 너무한 게 아닌가 싶습니다
  • 라임 2009/11/10 17:11 # 답글

    재미있게 읽은 소설인데, 생각해보면 터무니없이 읽는 기간이 오래 걸렸더랬어요.
    나이가 든 데 따른 집중력 부족 때문인가 생각했는데, 들풀님의 말씀대로 그 영향을 받은 듯도 합니다.
  • deulpul 2009/11/12 17:36 #

    그러셨군요. 아마 저와 비슷하신 게죠? 저는 책의 흐름에서 자연스러운 몰입을 방해하는 부분을 자주 만났습니다. 결국 줄거리에 집중하지 못하는 결과가 되었던 것이죠. 술술 잘 읽으신 작품들도 있으실 테니, 나이 탓은 절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 김상현 2009/11/11 01:43 # 삭제 답글

    웬만하면 영어 번역본으로 읽으시죠 - 다른 데서 보니 번역이 워낙 잘됐다는 평이어서, 그 번역가까지 유명해졌더군요. 한글 번역본으로 읽으시다간 아마 수명이 한두달 단축되지 않을까 싶은데...하하. 과거에 해리 포터 시리즈가 막 나왔을 때, 우연히 1권 번역본 보고 기절하는 줄 알았습니다. 촉박한 시간과 책의 분량을 고려하면 그럴 수도 었었겠다, 라고 생각하려고 무지 애썼습니다만...(하긴 해리 포터 시리즈는 그 원본의 문장도 형편없기로 잘 알려져 있지요 ^^). 그래서 저는, 지금은 오역/의역이 너무 많았다고 해서 비판을 많이 들은 이윤기씨의 경우가, 어떤 면에서는 도리어 의미롭지 않은가, 라고 엉뚱한 생각을 하기도 합니다. 그걸 번안이라거나, 에헴, '제2의 창작'이라고 본다면...^^ 각설하고, 새로 바뀐 블로그의 스킨 얘긴데요, 흰색 바탕에 까만색 글씨로 서둘러 바꾸시죠. 지금 제소를 적극 검토중입니다. 내 눈 돌리도~! 짤막한 글들로 구성된 블로그라면 그것도 괜찮겠습니다만, 들풀님의 블로그처럼 '본격 리터러시 블로그'인 경우에는 그야말로 Readability가 생며이죠. 물론 글 자체의 리더빌리티에 대해서는 불만 제로. 인터페이스 상의 리더빌리티를 가리키는 말씀입니다. 이 담부터는 저도 실명대신 닉네임을 쓰겠습니다. 바람아 불어라. 며칠전 그의 두 번째 책, The Angel's Game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둘다 이북 포맷. 값도 훨씬 더 싸고, 휴대성도 더 좋고...) :)
  • deulpul 2009/11/12 18:23 #

    번역을 매우 중요한 지적 작업으로 인정해 주는 출판 문화가 중요한 게 아닐까 싶습니다. 예전에 어떤 분이 책을 읽고 나서, 작가는 물론이고 그 책을 제작해 준 출판사와 읽을 수 있게 번역해 준 역자에게 두루 감사한다고 하신 것을 본 적이 있는데, 말하자면 그런 자세라고 하겠습니다. 번역은 제2의 창작이라고 말은 많이 하지만, 번역자를 제2의 창작자로 챙기고 기리는 문화는 아직 멀었다고 생각합니다.

    스킨은... 다시 바꿨습니다. 말씀대로, 말 많은 블로그에서는 문장에서 뿜어나오는 독기들도 만만찮은데 흰 글자에서 번져나오는 시각적 독기까지 더하니 관리하는 사람부터가 영 괴로워서 할 짓이 아니더군요. 그동안 괴롭혀 드려서 죄송합니다, 하하-.
  • 꿈꿀권리 2009/11/12 10:13 # 답글

    푸핫!
    이 정겨운 익숙함
    참으로 보람찬 하루가 되겠습니다. ^^
    다시 한 번 깨달았네요.
    울어라!
    혼자 울지말고 떼거리로 울어라!
  • deulpul 2009/11/12 18:29 #

    새로 올라왔거나 옛날 디자인에서 판만 바뀐 스킨들을 모조리 검토해 봤는데, 꼭 한두 개씩 아쉬운 부분이 있어서 도저히 가져다 쓸 수가 없었습니다. 이 디자인의 원판도 2.0은 여러 모로 마음에 들지 않아서, 결국 그 동안 써오던 놈을 다시 끌어냈습니다. 그래도 탐스러운 복숭아 실은 저 트럭은 데리고 왔네요. 며칠 동안 정이 들어서요...
  • physik 2009/11/22 03:53 # 답글

    한글 책을 반가운 마음으로 집었는데 문장이 이상하거나, 너무 재미가 없어서 진도가 나가지 않으면 참 답답하지요;; // 피아노 건반의 경우는 시간이 지나면서 먼지와 때로 인해 검게 변색되곤 합니다. 아무리 관리를 잘해도 손때가 묻기 때문에 오래된 피아노들은 대부분 흰 건반이 다 변색되어 있지요. 올려주신 영어번역본의 keys are dark with dirt는 제가 이해하기엔 때가 많이 탄 피아노 건반이란 얘기인 것 같습니다.
  • deulpul 2010/02/06 06:50 #

    아, 덧글 달아 주신 걸 모르고 넘어갔군요. 말씀하신 영어 문장은 그렇게 볼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음매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먼지가 덮인 상황에서, 손때로 누렇게 변색된 피아노의 색깔을 어떻게 짚어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은 들지만, 이 부분에 이르면 이건 작가의 문제이지 독자나 번역자의 문제가 아니지 않나 하는 생각도 조금 들고요. 어쨌든 이건 CJD냐 아니면 vCJD냐, 혹은 'I don't understand the situation' 이냐 'I don't understand you'냐 하는 문제가 아니니, 목숨 걸 필요는 없는 것이겠죠...?
  • pyrexia 2010/02/05 16:38 # 답글

    저도 끝내 못읽은 책 중에 하나입니다만, 덩달아 신나게 분노하며 오역을 비판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자신은 이해하더라도 독자가 그 문장을 이해할 수 있는가 생각해 보아야 한다"라는 말에 너무 뜨끔했기 때문입니다. 번역을 하는 사람은 번역을 하니까 그렇다쳐도 저는 한국말로 상상하고 한국말로 글을 쓰는데 왜 저만 이해하고 독자는 이해하지 못하는 걸까요? 늘 수련이 부족하다고 생각합니다만 좀처럼 수련이 되지 않는 걸 계속 붙들고 있는게 과연 수련이기나 한 건지 생각하기도 합니다. 아무튼 꽤 재밌는 소설인 것 같았는데 저도 끝까지 읽을 수 없어서 무척 안타까웠습니다.
  • deulpul 2010/02/06 06:43 #

    어떤 이유에서든지 이 책을 끝내지 못한 분들이 꽤 있다는 게 참 신기하군요. 그냥 내리 가는 종류의 소설이라서, 더욱 특이하게 생각됩니다.

    독자가 글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쓰는 사람 탓도 있고, 읽는 사람 탓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쓰는 사람 탓인 경우만 생각해 보자면, 예컨대 자기 머리 속의 사고의 단절이나 비약을 자기만 아는 말로 그대로 적어 내는 경우(쉽게 말해 저만 아는 이야기를 저만 아는 방식으로 써제끼는 경우)거나, 아니면 쉽게 쓸 수도 있는데 미문을 만들려고 문장을 꼬고 불필요한 단어를 동원하는 경우가 아닐까 싶습니다. 첫째 경우는 자신을 이해시키고 남과 소통하려는 의사가 전혀 없는 사람의 글이라고 생각해서, 저는 읽지 않습니다. 이런 사람과 함께 사는 사람은 얼마나 피곤할까 하는 생각이 들죠.

    둘째 경우는, 얼핏 보면 명문인데 읽어보면 내용이 없음을 금방 깨닫게 됩니다. 잘 쓴 글이라고 해서 읽어보면, 문장 하나하나를 모두 반례를 들어 반박할 수 있을 때도 있습니다. 내용을 생각해야 할 시간에 형식, 즉 단어나 표현에 매달리다 보니 그렇게 되는 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저는 이런 글도 읽지 않으려고 합니다.

    글의 가치와 신중함을 이해하는 사람들에게는 '수련'이 영원한 작업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저도 늘 부족하고, 그래서 이모저모 생각하다 보면, 글을 잘 쓰기 위해서는 고전적 비결인 '다독, 다작, 다상량' 이상 가는 대안이 없다는 생각에 이르게 됩니다. 인터넷으로 글쓰기가 쉬워지면서, 다작만 있고 다독이나 다상량은 없어지는 세상이라, 말씀해 주신 글쓰기의 고민이 무겁고도 가치 있게 생각됩니다.

    이런 소리 하고 있지만, 저도 스스로 보면 한심하기 이를 데 없는 경우가 허다하다는...
  • deulpul 2010/02/06 07:02 #

    아, 위에서 두 가지로 든 것은 pyrexia님 글이 그렇다는 게 아니라, 말씀하신 계제에 평소 생각하던 것을 읊어본 것이었습니다. 생각할 계기를 주셔서 고맙습니다. 언제 한번 따로 정리를 해 봐야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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