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한 생일 선물 미국美 나라國 (USA)

아이가 학교 가기 전이거나 저학년일 때는, 아이가 치러야 할 것 대부분이 엄마 아빠의 몫이 됩니다. 이를테면 생일을 챙기는 것도 그렇죠. 생일을 가족끼리 기념하고 넘어가면 괜찮지만, 아이의 친구들을 불러 잔치를 하려면 부모가 신경 써야 할 게 많습니다.

미국에서 어린이의 생일 잔치는 대개 다음과 같이 이루어집니다. (물론 지역이나 상황에 따라 편차가 클 수 있습니다.) 우선 장소를 정해야 합니다. 집이 널찍하거나 초대할 아이가 많지 않으면 자기 집에서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대개 생일 잔치로 장소를 제공해 주는 곳을 이용합니다. 이렇게 생일 잔치 장소로 빌릴 수 있는 곳은 매우 다양한데, 생일 잔치를 열어 주는 게 돈벌이가 된다는 점을 생각하면 놀라운 일이 아닙니다.

우선 식당. 아이들이 좋아하는 패밀리 레스토랑이나 피자 전문점 같은 곳입니다. 다음은 각종 운동 시설. 역시 아이들이 뛰어놀 수 있는 실내 운동 시설을 갖춘 곳이 애용됩니다. 예컨대 각종 놀이 기구가 있는 체조 교습소, 실내 축구장, 수영장, 롤러 스케이트장, 아이스 스케이트장 등입니다. 여름이나 가을처럼 날씨가 좋을 때는 근처 농장에서도 합니다. 풀밭에서 뛰고 놀 수 있고 동물들도 있어서 아이들이 좋아합니다.

또 각종 게임기로 가득 차 있는 깨끗한 오락실도 인기가 많고, 볼링장에서 양쪽 도랑을 막고 가벼운 볼을 굴리며 놀기도 합니다. 참가자가 모두 발레 옷을 입고 발레 교습소에서 하기도 하고, 큰 화실에서 미술을 주제로 하여 열리기도 합니다. 말하자면,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활동과 관계 있는 곳이라면 대개 생일 잔치 장소를 제공하는 비지니스를 하고 있다고 보시면 됩니다.

이런 곳에서는 두 시간 정도의 프로그램으로 잔치를 운영합니다. 프로그램은 아이들을 챙겨주는 보호 직원이자 레크리에이션 담당자까지 겸하는 직원 두어 명이 이끌고 갑니다. 특정한 활동, 예컨대 발레나 미술 같은 활동을 주제로 한 생일 잔치일 경우 이와 관계된 지도도 병행합니다.

보통 한 시간 반 정도는 실컷 놀게 내버려 두고, 나머지 30분 정도는 부모가 준비하거나 프로그램이 제공하는 음식을 나눠 먹으며 선물을 주고받습니다. 생일 초대를 받으면 간단한 선물을 사 가지고 가는 게 관례이며, 이 선물 증정 시간에 각자가 나와서 준비한 선물을 줍니다. 생일인 아이는 즉석에서 포장을 뜯어 보며, 옆에 선 직원이 선물을 준 사람과 선물의 내역을 기록해 둡니다. 이것은 생일 선물을 받은 아이가 나중에 선물에 대해 감사 카드를 보내기 위한 기록입니다.

이렇게 한 30분 음식을 먹으며 놀다 잔치가 끝나면, 생일을 맞은 아이의 부모는 돌아가는 아이들에게 간단한 답례 선물을 넣은 '구디 백(goody bag)'을 나눠 줍니다. 여기에는 아주 간단한 장난감이나 학용품, 사탕 등 대여섯 가지 자질구레하지만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것들이 들어 있습니다.

이렇게 써놓고 보니, 마치 집안 어른 기제사 지내는 절차처럼 복잡하게 보이는군요. 여하튼 대체로 이런 과정으로 진행되는 게 관례입니다. 이렇게 아이들의 생일 잔치 이야기를 시시콜콜히 쓴 것은 다음과 같은 초대장 때문입니다:



엘리자베스라는 어린이의 생일 잔치 초대장입니다. 초대장은 날짜, 시간, 장소, 연락처 정도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 초대장에는 웬 쪽지 하나가 스테이플로 붙어 있었습니다.

"엘리자베스는 자기 생일 잔치에 친구들이 올 때, 선물 대신 상하지 않는 음식을 가져 오기를 원합니다. 이 음식은 가난한 사람을 돕기 위한 푸드 뱅크에 기부될 것입니다. 물론 아무 것도 가져 오지 않아도 좋구요."

말하자면 생일 선물을 받지 않고, 그 대신 생일을 계기로 하여 기부를 하겠다는 뜻입니다. 어찌된 일인지 궁금해서, 엘리자베스라는 아이의 부모에게 물어 보았습니다. 아이의 생일이 마침 연말이기도 하고 해서, 이번에는 선물을 받지 말고 대신 어려운 사람을 돕는 좋은 일을 하자고 엄마가 제안을 했답니다. 아이는 흔쾌히 찬성했고, 그래서 이런 아름다운 생일 잔치가 벌어지게 됐습니다.

연말은 선물의 계절이기도 하고, 그래서 온갖 종류의 가게들이 모두 대목을 맞는 시기이기도 하죠. 그러나 지나치게 상업화된 연말 분위기에서 사회의 그늘은 곧잘 잊혀집니다. 어린 딸에게 '이웃을 생각할 줄 아는 마음'이라는 크나큰 생일 선물을 안겨 준 현명한 부모의 배려에 머리가 숙여졌습니다.

엘리자베스가 바비 인형이나 곰 인형을 받는다면, 좀 갖고 놀다 곧 싫증을 내고 구석에 처박아 둘지 모릅니다. 그러나 자신의 생일에 자신의 힘으로 어려운 사람들을 도왔다는 마음은 오래도록 간직될 것임이 틀림없다고 생각합니다. 두 해 전에 쓴 '특별한 크리스마스 선물'이 생각나는, 따뜻한 생일 초대장이었습니다.

 

덧글

  • 자그니 2009/12/01 17:04 # 답글

    저렇게 아이는 하나둘, 세상을 배워가는 것이겠죠. 좋은 부모님들이네요...
  • deulpul 2009/12/02 08:56 #

    저도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아이 낳기는 쉬워도 부모 되기는 쉽지 않고, 현명하고 좋은 부모가 되기는 더욱 어려운 일이 아닐까 합니다.
  • 긁적 2009/12/01 17:52 # 답글

    참 귀엽네요. 저런 아이들이 한국에도 좀 많아져야 할텐데.

    요즘 무서운게, 길거리에 다니는 초딩들의 얼굴에서 순수한 아이의 모습이 느껴지지 않아요 -_-...
  • deulpul 2009/12/02 09:02 #

    아이는 어른의 거울이라는 말처럼, 어른들과 그들이 만들어 가는 사회를 반영하고 있는 게 아닐까 합니다. "난 어른이 되어도, 하늘빛 고운 눈망울, 간직하리라던 나의 꿈..." 이런 꿈을 꾸기에는 애나 어른이나 삶이 너무 팍팍하군요.
  • 김미영 2009/12/01 19:40 # 삭제 답글

    부모님이 자녀를 위해 영원히 기억할 수 있는 이벤트를 생각해 주셨네요. 저런 좋은 생각을 하는 현명한 부모님이 부럽네요.. 올 연말도 어려운 이웃을 생각할 수 있는 따뜻한 연말이 되었음 좋겠습니다.. ^^
  • deulpul 2009/12/02 09:11 #

    저도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바쁘거나 여유가 없다거나 하면서 미루어 오던 태도를 반성하게 됩니다. 그런 점에서 저 아이의 부모에게 고마운 마음이 듭니다. 만일 저 아이가 이웃을 생각하고 세상의 어두운 곳을 돌아볼 줄 아는 사람으로 성장한다면, 아마 오늘의 이 생일 잔치가 중요한 계기가 되겠지요.
  • 알렉세이 2009/12/01 19:56 # 답글

    이...이 꼬맹이.. 개념차군요~!
  • deulpul 2009/12/02 09:15 #

    아이보다 부모님이 대단하시다고 생각했는데, 말씀 듣고 보니 오래 손꼽아 왔을 생일 선물, 어른으로 치면 바로 눈 앞의 현금이나 다름 없는 그 유혹을 포기한 아이도 참 장하다는 생각이 드네요, 정말.
  • 꿈꿀권리 2009/12/02 22:26 # 답글

    안에서 바깥으로 아이의 시점을 돌려주는 엄마라니!
    근사하네요.
    인간에 대한 배려야 말로 '인간'의 시작이지요.
    '특별한 크리스마스 선물' 도 잘 읽었습니다.

    막연한 불우이웃돕기 성금은
    보이지 않는 적에게 폭탄을 투하하는 병사처럼 무감각 할 수 있지만
    약간의 윤곽이 드러나는 성금은
    (이를테면 가난한 레슬러의 헤드기어처럼..)
    오래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네요.

    따뜻한 글 잘 읽었습니다.
  • deulpul 2009/12/04 17:07 #

    글쎄, 이 정도만이라도 주변을 생각한다면 세상 살기가 조금 더 쉬워지지 않을까 합니다. 정작 힘 있는 자들은 저희 밥그릇 더욱 더 불리기 바쁘고, 도토리 키재기마냥 고만고만한 사람끼리 그런다는 게 문제지만 말입니다. 이런 일을 생각하면 자꾸 구조적인 접근을 떠올리지 않을 수가 없네요.
  • 2009/12/03 00:08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deulpul 2009/12/04 17:09 #

    그렇다는군요. 저도 말씀 들은 중에 기막힌 사례도 많았습니다. 귤이 회수를 지나면 탱자가 되는 한 예가 아닐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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