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심하고 카리스마 없는 닉슨의 승리 미국美 나라國 (USA)

미국 37대 대통령 리처드 닉슨. 미국 역사상 유일하게 현직에서 사임한 대통령. 워터게이트 추문에 휘말려 탄핵 위기에 몰린 끝에 1974년에 스스로 대통령직에서 물러난 그는, 이러한 불명예 때문인지 뭔가 음흉하고 사악한 정치인인 것처럼 기억된다. 미국에서도 닉슨은 흔히 정치의 어두운 구석을 체현한 사람으로 묘사된다.

그러나 워터게이트 이전까지 닉슨은 미국뿐 아니라 세계를 쥐락펴락하며 승리를 구가해 온 화려한 정치가였다. 정치인으로서 또 전략가로서 닉슨은 미국 정치와 대외 정책에 굵은 발자취를 남겼다.

닉슨이 워터게이트로 쫓겨나다시피 백악관을 떠난 일은 누구나 알고 있지만, 그가 1952년에 무려 39세의 나이로 전쟁 영웅 아이젠하워 장군의 러닝메이트가 되어 부통령에 당선된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아이젠하워-닉슨 팀은 1956년 재선까지 내리 성공하며 2차대전과 한국전쟁 이후의 미국 사회와 국제 질서의 초석을 놓았다.


부통령 때의 닉슨


8년 임기가 끝난 1960년에 닉슨은 체급을 올려 대통령에 도전했다. 닉슨과 맞붙은 민주당 후보는 존 F. 케네디였다. 케네디가 미국 최연소 대통령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스타로 탄생할 때, 그 제물이 되었던 이가 닉슨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닉슨이 무기력하게 케네디에 밟힌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케네디의 승리는 예상을 뒤집은 것이었다. 8년 동안 부통령 직무를 무리 없이 수행해 왔고, 아이젠하워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는 닉슨이 별다른 어려움 없이 승리할 것이라는 예상이 선거 중반까지의 대체적인 전망이었다. 그러나 닉슨은 케네디와 치열한 접전을 벌인 끝에, 유권자 지지율 0.2%라는 눈물 나는 차이로 낙선했다. 케네디 49.7% 대 닉슨 49.5%였던 것이다. (선거인단 수로는 303 대 219.) 이는 20세기에 치러진 미국 대선 중에서 가장 근소한 차이를 보인 선거 중 하나다.

닉슨과 공화당으로서는 (2000년대 식이라면) 그야말로 대법원이라도 끌고 가고 싶을 만큼 안타까웠을 것이다. 이들을 더욱 안타깝게 했던 것은 다름 아닌 텔레비전이다. 바로 이 점이 지금 난데없이 닉슨을 되돌아 보고 있는 이유다.

여유로운 케네디, 어수선한 닉슨

부통령 닉슨과 상원의원 케네디가 맞붙은 60년 대선은 정치와 언론 양쪽에서 모두 기념비로 기록된 선거였다. 양당 후보자 간 토론이 텔레비전으로 생중계된 최초의 선거로, '텔레비전 정치'를 탄생시킨 계기였기 때문이다. 전국의 시청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두 사람은 표정 하나하나, 숨소리 하나하나까지 생생히 중계되는 전대미문의 상황에서 치열한 토론을 벌였다. 그리고 이 토론들의 승리는 케네디에게 돌아갔다. 9월26일 시카고의 CBS 스튜디오에서 벌어진 첫 토론이 끝난 뒤, 케네디의 지지도는 닉슨을 앞서기 시작했다. 이 미세한 차이가 11월 선거 승리로 이어지는 발판이 되었다. 실제 개표 결과 드러난 종잇장보다 얇은 차이를 고려할 때, 텔레비전 토론이 없었다면 케네디의 전설은 탄생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왜 닉슨은 텔레비전 토론에서 실패했는가. 대체로 두 가지 이유를 들 수 있다. 첫째는 텔레비전 토론의 특성이다. 생중계되는 텔레비전 토론에서 유권자는 후보자의 말만 듣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입에서 나오는 말보다 표정, 분위기, 헤어스타일, 의상 따위로부터 더 큰 영향을 받는다. 닉슨은 텔레비전이란 매체와 친하지 않았으며, 이런 특성을 이해하지 못했다. 이런 점에서 닉슨은 완전히 실패했다.

첫 번째 토론에서 닉슨은 메이크업을 받지 않고 쌩얼로 나갔다. 하룻동안 자란 턱수염, 이른바 five o'clock shadow도 제대로 관리하지 못했다. 이런 얼굴은 치밀하게 화장을 한 케네디와 크게 대조가 되었다. 스튜디오의 세트를 미리 파악하지 못한 탓에, 입고 나간 회색 옷이 배경에 묻혀버리는 비극도 벌어졌다. 뜨거운 조명을 받으며 땀도 줄줄 흘렸다. 게다가 닉슨은 토론 며칠 전에 무릎 부상을 당해 병원에 입원하고 수술을 받았다. 이러한 상황 때문에 닉슨은 내리 서서 하는 토론이 불편하고 고통스러웠을 것이다. 하지만 자꾸 불편한 표정을 지은 닉슨의 얼굴은 시청자도 불편하게 만들었다. 시종 여유롭고 낙관적인 미소를 잃지 않았던 케네디의 태도와는 분명한 차이가 났다. 카메라가 자신을 비추는 줄도 모르고 자꾸 시계를 들여다 본 것도 부정적으로 비쳤다.

양자 간의 토론 직후 벌어진 조사에서, 토론을 본 시청자들은 케네디가 승리한 것으로 평가했다. 반면, 같은 토론을 라디오로 들은 청취자들은 닉슨에게 더 점수를 주었다. 텔레비전 토론의 특성, 텔레비전 카메라의 영향력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결과였다.

당시 많은 정치 분석가는 닉슨이 대통령 직무를 수행할 모든 자격과 능력을 갖추고 있다고 평가했다. 이른바 검증된 후보다. 닉슨은 국가 경영에 관해서는 막대한 경험을 축적하고 있었다. 그가 딱 하나 부족한 경험이 있었다면, 그것은 텔레비전 카메라와 마주하는 경험이었다. 그리고 그의 자질과 능력에도 불구하고, 바로 이 한 가지 부족함 때문에 그는 승리를 코앞에 두고 좌절했다.

"나는 내성적인 사람이요"

닉슨이 텔레비전 토론에서 실패한 두 번째 이유는 닉슨의 성격과 관련이 있다. 먼저 지적해야 할 점은 텔레비전 토론은 정책보다는 '인간'을 보여주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것이다. 텔레비전 토론은 정책을 잘 보여주지 않는다. 혹은 적어도, 시청자들은 정책을 잘 보지 않는다. 후보자의 입에서 나오는 온갖 숫자로 형상화되는 정책은 유권자들에게 잘 다가가지 않는다. 정책에 대해 알려면 공약을 담은 선거 홍보물을 한번 읽는 게 더 낫다. 후보자들의 정책을 분석한 인쇄 매체의 기사도 도움이 된다. 텔레비전 토론은 아니다.

대신 텔레비전은 후보자 '개인'을 보여준다. 후보자로서, 정책가로서, 정치인으로서가 아니라 개인을 보여준다. 시청자들은 후보자의 입에서 나오는 정책을 듣고 있지만, 실제로는 후보자의 언변, 말투, 표정, 손짓과 몸짓, 친화성, 여유로움 따위를 주의깊게 살펴보며 저울질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닉슨은, 그가 가진 많은 장점에도 불구하고 텔레비전에 어울리는 정치가는 아니었다. 그는 아마 1960년 당시에는 이 점을 잘 몰랐을 것이다. 그러나, 뒤에 말하겠지만, 뼈저린 패배를 겪으며 이러한 점을 절실하게 깨달았을 것이다. 나중에 대통령이 된 그는 스스로에 대해 "나는 외향적인 직업을 가진 내성적인 사람이다"라고 말한 바 있다. 케네디나 그의 전임자였던 린든 존슨은 점심 식사 자리를 기업, 시민단체, 대학의 전문가들로부터 조언을 얻는 기회로 활용했다. 닉슨은 대개 자기 집무실에서 쟁반에 담겨 온 밥을 혼자 먹었다.

CBS의 댄 래더는 닉슨에게 "많은 사람은 당신이 자신감과 신념을 불러일으키지 못하며, 성격적으로도 따뜻함이나 열정이 없다고 비판한다. 대체 왜 그런 것이냐?"라고 물은 적이 있다. 이에 대해 닉슨은 "내 장점은 말빨이 아니라니까. 뭔가 보여주겠다거나 거대한 약속을 남발하는 쇼맨쉽은 내 스타일이 아니다. 사람들이 열정적이고 카리스마가 있다고 칭송하고 좋아하는 스타일은 내 쪽이 아니라 그런 쪽인 거지"라고 답했다.

단시간에 수많은 국민을 상대로 하여 유들유들하고 친화적이면서도 자신감 있는 태도를 보여야 하는 텔레비전 토론에서는 닉슨 같은 스타일이 정말 잘 맞지 않을 것이다. 아무리 높은 탁견과 경험, 자질을 갖추고 있어도 그렇게 잘 보아주지 않을 것이다. 성격이 아니면 연기라도 해야 할텐데, 이렇게 고지식하면 그조차도 쉽지 않을 것이다. 텔레비전 정치란, 이런 스타일보다는 카메라에 닳고 닳은 정치인, 이를테면 로널드 레이건 같은 이가 훨씬 유리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 할 것이다.

과거의 루저가 압승을 거둔 이유는?

어쨌든 닉슨은 케네디에게 0.2%차로 졌다. 어쩌면 이것은 시대 의식이었는지도 모른다. 닉슨이 60년 선거에서 이겨 공화당 정부가 계속되었더라면, 미국의 60년대도 크게 달라졌을 것이다. 대선에 실패한 닉슨은 2년 뒤에 도전한 캘리포니아 주지사 선거에 도전했으나 또 졌다. 낙심한 그는 정계 은퇴를 선언했으나, 1968년 대선에 다시 등장해 민주당 후보를 누르고 결국 백악관에 입성하는 데 성공했다.

68년 선거 당시는 미국 도처에서 반전 및 인권 운동이 들불처럼 일어나고, 마틴 루서 킹과 로버트 케네디가 암살되는 격렬한 시대였다. 따라서 공화당 후보인 닉슨이 낙승했다는 것은 좀 의외다. 그러나 역사에서는 항상 순풍과 역풍이 동시에 작용함을 고려하면 이해 못할 일도 아니다. 이 선거에서 닉슨은 유권자 지지 43.4%를 얻어, 민주당 후보 허버트 험프리(42.7%)를 눌렀다. (선거인단 수는 301 대 191.)




4년 뒤 이 판도는 어떻게 바뀌는가. 1972년에 닉슨이 재선에 나섰을 때, 미국인은 이 내성적이고 소심한 대통령에게 보기 드문 전폭적인 지지를 몰아 주었다. 닉슨은 60.7%라는 엄청난 지지를 받으며, 37.5%를 얻은 민주당 후보 조지 맥거번을 가볍게 눌렀다. 이 지지율 차이는 미국 역대 대통령 선거에서 네 번째로 큰 차이였다. 선거인단 수로도 520 대 17의 압승이었다. 50개 주 중에서 49개가 닉슨을 지지했던 것이다.




72년 선거에서 닉슨이 압승한 데에는 여러 이유가 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지난 4년 간의 닉슨 정치를 국민이 두루 지지했다는 점이다. 경제가 순항을 계속했으며, 특히 대외 정책에서 두드러진 성과를 쌓았던 것이 큰 효자였다. 말썽 많았던 베트남전을 끝내고 중국을 직접 찾아가 대화를 시작했으며 소련과도 물꼬를 트는 전향적인 정책을 추진한 것이다. 그 결과, 진영에 관계없이 (미국식으로 표현하면 이데올로기에 관계 없이) 압도적인 지지를 얻어낸 것이다.

이게 소심하고 내성적이고 카리스마 없는 대통령, 텔레비전에 나와 버벅대며 땀이나 삐질삐질 흘리는 대통령이 이루어 낸 성과다. 거꾸로 말해, 국민에게 중요한 것은 카리스마도, 입에 모터 달린 것 같은 언변도, 텔레비전 앞에서 뺀질거리는 능수능란함도 아니라는 것이며, 정책으로 안 되는 것을 이미지로 커버하려는 꼬락서니는 하수중의 하수라는 것이며, 민주 국가의 정치인이 갈 길이란 오로지 국민을 귀히 여기고 그들의 뜻을 받아 철저히 수행하는 것일 뿐이라는 원칙을 다시 보여주는 것이다. (닉슨은 1968년과 1972년 선거에서 텔레비전 토론을 하지 않았다.)

매체에 노출되는 이명박의 이미지가 '어수선하고 어색하다'며 개선안으로 오바마를 철저히 따라하겠다는 기막힌 소리나 하는 자들이 한심해서 생각하다 여기까지 왔다.

※ 이미지 자료: 닉슨 사진은 여기, 나머지는 위키.

 

덧글

  • 언럭키즈 2009/12/04 21:13 # 답글

    가카께선 인기에 연연하지 않겠다 대인배스럽게 선언하셨거늘 어찌 참모진들은 저리 설레발을 치는지..
  • deulpul 2009/12/05 04:05 #

    인기에 연연하지 않겠다고 쓰고 귀 닫고 제 갈 길 가겠다라고 읽는 것이겠죠. 옆 사람들은 밥값을 하는 척이라도 해야 하기 때문이겠는데, 그 밥값이 국민의 피 같은 세금으로 나간다는 게 비극이군요.
  • 꿈꿀권리 2009/12/05 09:37 # 답글

    그러게 말입니다.
    비쥬얼에 속아 넘어가는 인간들은 또 뭡니까.
    정책이 무서운 이유가 한 번 잘못되면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을 유발할 수도 있거늘.

  • deulpul 2009/12/06 18:05 #

    "선거 때면 무슨 말을 못 하냐"는 사기꾼 정신으로 무장하고 달려드는데 속기 십상이지요. 그래도 얼굴 잘 생겼다고 홍모에게 표를 준 분들은 너무했습니다.

    말씀대로 정책이란 게 정말 무섭습니다. 특히 땅에 대한 일이 그렇죠. 되돌이킬 수가 없어서요. 사람이야 정권 바뀌면 잘라내고 낙하산 태워 물갈이하면 되고, 제도도 수정하고 손 보면 되지만, 땅을 파헤쳐 놓은 것은 도대체 어떻게 할 수가 없습니다. 나중에 잘못으로 판명되어도 어디 원래대로 돌릴 수나 있나 말입니다...
  • sapa 2010/02/06 21:31 # 삭제 답글

    비주얼로만 정치인의 능력을 판단해서는 안되겠지만 비주얼이 안되는 정치인이 능력이 있는 것도 아니겠죠.
  • deulpul 2010/02/12 18:38 #

    비주얼이 안 된다고 해서 능력이 있는 것은 아니다. = 당연한 명제가 되겠죠?
    비주얼이 안 된다고 해서 능력이 없는 것은 아니다. = 역시 당연한 명제.
    비주얼이 된다고 해서 능력이 있는 것은 아니다. = 역시 당연한 명제.
    비주얼이 된다고 해서 능력이 없는 것은 아니다. = 역시 당연한 명제.

    결국 답은, 말씀대로 비주얼과 정치적 능력은 별로 관련이 없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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