낫 투 배드, 쿠든 비 베러 섞일雜 끓일湯 (Others)

"하우 아 유?"
"아임 화인, 생큐. 앤드 유?"

교과서를 이용한 제도 교육이 개인에게 얼마나 강력한 영향을 미치는지는, 미국에서 교통사고로 다 죽어 가면서도 구급요원(paramedic)이 "하우 아 유?" 하고 물으니 저렇게 대답했다는 한국 교포의 전설에서 잘 알 수 있습니다.

사무실에 한 직원이 있습니다. 이 분이 싸가지가 좀 없습니다. 제가 흔히 '도덕적 장애자'로 분류하는 종류의 인간인데, 왜 그런지는 쓰지 않겠습니다.

이 분이 항상 입에 달고 다니는 말이 있습니다. 사람을 만나든 전화를 받든, "하와유?"를 들으면 항상 "낫 투 배드(Not too bad)" 합니다. 그냥 인사치레에 대한 일상적인 대답이니까 큰 의미를 둘 필요는 없겠습니다.

하지만 굳이 따진다면 이 말은 자기 삶, 혹은 상황을 부정적인 것으로 전제하고 내놓은 대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나쁘긴 나쁜데, 아주 나쁘진 않은 상태'라고 해석될 수 있다든가 말입니다. 그래서, 유머러스하다거나 위트 있게 들리기보다는, 항상 뭔가에 찌들려 지내거나, 뭐 중요한 일을 하느라 매여 산다는 점을 유세하는 것처럼 들립니다. 여하튼 부정적 방향에서 인생을 사는 사람의 대답이랄 수 있겠습니다.

이웃에 장애인 한 분이 있습니다. 그가 속한 인종에게만 발생하는 희귀한 병에 걸려 있는 청년입니다. 스무 살이 넘었는데, 열 두어 살 어린이 정도의 몸이며, 그 몸도 무척 불편합니다. 이 청년의 부모는 이 청년이 진작에 죽을 줄 알았습니다. 60년대만 해도, 이 병에 걸린 아이들의 절반이 다섯 살을 넘기지 못했습니다. 그래도 청년은 지금까지 살아 남았습니다. 이 병의 사망율은 지금은 많이 떨어졌지만, 그래도 50%가 30세 이전에 죽습니다.

이 청년이 "하와유?"를 받을 때에는 언제나 다음과 같이 대답합니다: "아임 엑설런트, 쿠든 비 베러!"

쿠든 비 베러(Couldn't be better).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다. 자기 상황을 긍정적인 면으로 묘사한 것일 뿐만 아니라, 그런 표현 중에서도 최상입니다. 이런 말을, 아주 정성들여서 진심이 물씬물씬 묻어나도록 이야기합니다.

매우 희귀한 병에 걸린 채, 음식이라고는 평생을 오직 한 종류의 시리얼만 먹고 물은 목에 꽂은 호스로 마시며 고통스럽게 사는 이 청년이 이런 인사를 하는 걸 들으면, 옆의 사람까지 마음이 밝아집니다. 동시에, 육체적인 면으로만 보자면 청년보다 훨씬 베러하다고 볼 수 있는 저는, 그의 인사를 들을 때마다 내가 인생을 열심히 살고 있나 반성하게 됩니다.

반면, 사무실의 그 인간이 낫 투 배드, 낫 투 배드 하고 나불대는 것은 옆에서 듣기에도 짜증이 납니다. 다른 많은 사람보다 훨씬 좋은 환경에서 삶을 영위하는 그가 인사를 꼭 저렇게 부정적으로 해야 하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듭니다. 모르죠, 과거에 인생 참 안 풀릴 때 입에 붙은 인사가 습관이 된 것인지도.

인사가 바뀌었다고 해야 할까요. 이 청년에 비하면 사지 멀쩡한 그 직원이야말로 쿠든 비 베러일 겁니다. 낫 투 배드는 이 청년이 해야 맞는 말이 되겠죠. 그러나 멀쩡한 놈은 죽겠다고 인사하고, 힘든 분은 최상이라고 인사합니다.

서로 다른 상황에 있는 두 사람이 인사하는 말을 들으면, 인생의 가치는 얼마나 주관적인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세상은 정말 보기에 따라, 마음먹기에 따라 전혀 다르게 보일 수도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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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2009/12/12 15:42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deulpul 2009/12/13 17:29 #

    비공개님이야말로 긍정적으로 열심히 사시는 점에서 '쿠든 비 베러'가 아닐까 항상 생각합니다.
  • kirrie 2009/12/12 16:49 # 삭제 답글

    음...
  • deulpul 2009/12/13 17:30 #

    나무라셔도 됩니다, 하하-.
  • 김상현 2009/12/12 17:16 # 삭제 답글

    낫 투 배드는 제가 종종 써온 대답입니다. 이 글을 읽고 나니 바꿔야겠네요. 그레잇! 엑설런트! 아니면 아임 화인 앤유?로라도... :D 그나저나 자주 상대해야 하는 사람이 들풀님의 경우처럼 싸가지 없을 때는 참 괴롭습니다. 그런 인간 때문에 하루 종일 기분이 안좋을 때도 있지요. 잘 됐으면 좋겠습니다. 낫투배드라고 대답하는 그 인간이 너는 어떠냐고 물으면 뭐라고 대답하시나요? 쿠든비베러? 아니면 낫 투투 배드? :)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공감합니다.
  • deulpul 2009/12/13 17:33 #

    아니, 말씀 들으니 위에 적은 것 중에서 '낫 투 배드' 부분을 지워버리고 싶군요. 같은 말을 쓰는 사람 중에도 저 인간과 정반대의 사람이 있을 수도 있다는 점에서 말입니다. 그러고 보니 그 응대가 불편하게 들린 것은 그 말 자체 때문이라기보다 인간 때문이었나 싶기도 합니다. 아, 그리고 이 분은 저에게는 절대 인사를 하지 않기 때문에, 응답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하-.
  • realdio 2009/12/13 03:59 # 삭제 답글

    인규야,,보고싶다..
  • deulpul 2009/12/13 17:38 #

    뜻의 간절함은 이해하겠사오나, 배달 과정에 착오가 생긴 게 아닐까요?
  • luckysix 2009/12/13 04:50 # 답글

    말에는 그사람의 인품과 함께 많은 것이 들어나는 법이지요. 말만큼 무서운것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Not too bad를 읇조리며 얼마나 자신을 부정적인 시각으로 옭아매는건지.. =_=
    긍정적사고가 최고입니다 :)
  • deulpul 2009/12/13 17:45 #

    말과 인품과 관련한 말씀에 동의하면서, 또 같은 말도 인품에 따라 다르게 느낄 수 있다는 점도 함께 깨닫게 되는군요...
  • MONO 2010/11/11 09:03 # 답글

    와우... 건너건너 왔는데, 반성하게 되네요... ^^ 제 카톡 condition에도 not bad 라고 되어있었는데... 당장 쿠든 비 베러로 바꿔야겠습니다 ^^ 좋은하루 되세요~
  • deulpul 2010/11/13 09:45 #

    이걸 쓴 게 벌써 1년 가까이 됐군요... 그 사이에 저 청년은 세상을 떠났습니다. 자신은 모르겠지만, 하루하루를 밝고 힘차게 열심히 살라는 중요한 교훈을 제게 남겨 주고 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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