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보원'을 위한 변명 중매媒 몸體 (Media)

'남보원'을 위한 변명이라면, 보나마나 이 프로그램에서 코믹하게 전개되는 남성들의 항변에도 들을 게 있다는 주장으로 생각하실 것이다. 아니다.

대중매체, 혹은 더 나아가 커뮤니케이션 일반을 연구하는 접근 방법 중 하나로 내용 분석(content analysis)이라는 게 있다. 매체에 실린 내용을 꼼꼼히 살펴서 그 의미를 추출해 내는 것이다. 널리 인용되는 베럴슨이라는 학자의 정의에 따르면, 내용 분석은 "커뮤니케이션에서 등장하는 메시지의 내용을 객관적이고 체계적이며 수량적으로 기술하는 연구 방법"이라고 한다.

뭐 복잡하게 써 놨지만, 쉽게 말해 매체의 내용을 보면서 그 속성을 체계적으로 읽어 낸다는 말이다. 스템플이라는 학자가 말했듯, 이런 일은 우리 누구나 일상적으로 하는 일이다.

예컨대 한 텔레비전 방송의 사장이 친정부 인사로 바뀐 뒤로 뉴스가 눈에 띄게 달라진 것으로 보인다든가, 광고에서 여성 신체의 노출 정도가 심해지고 있다든가, 텔레비전 드라마가 온통 파행적 인생들으로만 채워지는 모양을 보인다든가, 최근 유행하는 노래 가사에는 사회성이 빠지고 개인의 사소한 일상이 우세한 것으로 보인다든가 하는 것이다. 이런 '비공식적이고 일상적이며 개인적인' 내용 분석 결과, 우리는 "땡전 뉴스가 돌아왔네?" 하든가 "무조건 벗기는 게 대세임" 하든가 "막장 드라마 시대군" 하든가 "요즘 노래는 그저 사랑 타령이야" 하든가 하는 결론, 혹은 적어도 인상을 갖게 된다.

커뮤니케이션 연구 방법 중 하나로 쓰는 내용 분석이 이런 일상적인 내용 분석과 다른 점은, 체계적이고 객관적으로 그런 작업을 수행한다는 것이다. 사장이 바뀐 뒤 뉴스가 달라진 것으로 보인다면, 과학적으로 설정한 기준에 따라 체계적으로 뉴스의 내용을 분석해볼 수 있다. 뉴스의 내용은 주로 코딩을 통해 숫자로 추출되고, 이 숫자 데이터는 통계를 통해 분석된다. 혹은 숫자와 통계로 가지 않고 질적인(qualitative) 분석을 통해 메시지의 속성을 연구할 수도 있다. 어느 경우나, 과학적 방법으로서의 내용 분석이 지향하는 것은, 분석의 결과 나온 결론이 누가 봐도 인정할 수 있는 객관적인 성격을 띠도록 하는 것이다.

호머 심슨은 영양 과잉을 경계하는가, 고무하는가?

내용 분석은 나름대로 매체의 메시지를 분석하는 강력한 방법이긴 하지만 완전하지는 않다. 몇 가지 단점이 있는데, 예컨대 메시지의 효과를 직접적으로 증명하지 못한다든가, 분석 툴이 학자에 따라 다를 수 있다든가 하는 점이다. 그런데 이렇게 단점으로 잘 지적되지 않는 골칫거리가 하나 있다. 바로 풍자적 메시지다.



한 수업에서 벌어진 일이다. 내용 분석을 통해 텀 페이퍼를 쓰는 수업에서 한 학생이 애니메이션 '더 심슨즈'의 에피소드들을 분석해 왔다. 그런데 문제가 좀 생겼다. 이 학생은 '더 심슨즈'가 현실에 대한 풍자를 자주 보여준다는 점을 무시하고, 화면에 나온 액면 그대로에 주목해 분석을 해온 것이다.

예컨대 호머가 열 겹 가까운 팬케이크를 쌓아놓고 시럽을 듬뿍 쳐서 먹으며 소다를 벌컥벌컥 마시는 장면이 있다. 이 학생은 이런 장면을, 탄수화물이나 당류의 과다 섭취를 보여줌으로써 바람직하지 않은 식습관을 고무하는 것으로 분석했다. 가령 어린이들이 좋아하는 애니메이션이 어떻게 부적합한 식습관을 고취하는가 하는 연구 문제를 갖고 내용 분석을 하면, 이런 장면은 여기에 딱 들어맞는 사례가 된다. 호머의 밥상은 부적합한 식습관의 하나로 코딩되고, 나중에 애니가 비만을 장려한다든가 하는 분석 결과에 포함될 것이다.

그러나 그런가. 실제로는 정반대가 아닌가. 문제의 장면은 무분별하게 과다한 당분을 섭취하는 실태를 호머를 통해 풍자적으로 묘사한 것이다. 따라서 이 장면의 메시지는 부적합한 식습관 고취가 아니라, 거꾸로 경계라고 해야 옳을 것이다. 장면을 있는 그대로만 보고 내용 분석을 위해 코딩하면 정반대의 결과가 나오는 것이다.

풍자의 성격을 띤 미디어 메시지는,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든, 대부분 이렇게 메시지의 구조가 복층화 되어 있다. 이런 메시지를 제대로 내용 분석하기는 쉽지 않다. 요즘 컴퓨터를 이용한 내용 분석 방법도 늘고 있는데, 이런 방법으로는 이렇게 복층화된 메시지를 도무지 읽어낼 수가 없다. 풍자의 정도가 고도화할수록 이런 어려움은 더욱 커진다.

남녀 이슈라면 코미디도 백분 토론

사실 이런 점은 매체 연구자들의 문제이기 앞서, 메시지 수용자의 문제이기도 하다. 고도로 풍자된 메시지에 노출된 독자나 시청자는, 많은 경우 그 메시지를 제대로 해석하지 못하여 제작자의 의도를 오해하고, 원래 의도와는 반대되는 인식을 흔히 갖게 된다. 정치인 아무개를 비판하는 메시지를 탁월한 역설적 패러디로 엮은 게시물을 보고, 글쓴이가 아무개빠라고 분노하는 경우를 흔히 보지 않는가. (이른바 '난독증'의 한 양상이 되겠다.)

나는 '개그 콘서트'를 본 적이 거의 없고, 그 중 한 코너인 남성인권보장위원회, 이른바 '남보원'을 본 적은 한 번도 없다. 최근에 논란이 되고 있다기에 유튜브에서 몇 에피소드를 찾아보았다. 그 결과, 이 코너가 어떤 의도로 연출되고 방영되는지 정확히 알기 어려웠다. 말하자면, 액면 그대로, 실제로 남성 권익을 주장하고 옹호하겠다는 의도를 갖고 있는지, 아니면 이미 팽배한 구조적 기득권에도 불구하고 소소한 남성 권익을 더 챙기겠다는 '찌질남'들의 세태를 꼬집으려는 의도를 갖고 있는지 말이다.

복층 구조를 가진 많은 풍자 메시지가 그렇듯, 이 코미디도 제작 의도를 읽어내기가 어렵다. 이렇게 의도를 읽어내려고 하는 일 자체가 무의미한 것일 수도 있다. 제작자의 처지에서 한번 생각해 보자. 제작자는 이 코너를 통해 '이기적인 여성들로부터 역차별 받는 남성의 피해를 폭로하고 항거하려는' 의도를 가졌을까? 아니면 '별 것도 아닌 걸 갖고 째째하게 목숨 거는 남성들의 구질구질한 행태를 풍자하려는' 의도를 가졌을까? 둘 중 어느 하나일 수도 있겠고, 둘 다일 수도 있겠다. 예컨대, 이 코너를 보는 남성들은 출연자들이 내놓는 말 자체에 호응할 수 있고, 여성들은 그런 말을 내놓는 남자들의 찌질함이 생생히 노출되는 데 통쾌함을 느낄 수도 있다.

이렇게 보면 이 코너는, 소재의 신선함이나 풍자의 깊이와는 관계 없이, 풍자 메시지의 복합 구조를 매우 잘 활용한 성공적인 쇼라고 할 수 있다. 사실 이런 반응은 의도했다기보다 얻어진 것인지도 모른다. 내가 보기에 이 코너가 생긴 가장 큰 기획 의도는 그저 많은 사람이 관심 갖는 소재로 재미있고 신선한 코미디를 만들자는 게 아니었을까 한다. 이 쇼는 어디까지나 코미디인 것이고, 그 중에서도 시사 코미디는 아닌 것이다.

아닌 게 아니라, 이 코너는 코미디에 딱 어울리는 정도의 과장된 메시지가 그 내용을 이룬다. 이런 코미디의 특성을 외면하고, 또 풍자 메시지가 가질 수 있는 복층 의미 구조를 도외시한 채, 화면에 나오는 액면 그대로만 받아들여 정색한다면, 이 코너가 꼬집고 있는지도 모르는 남성들 못지않게 '찌질하다'고 할 수 있다. (좋아하지 않는 말인데, 오늘 한 번 썼다.)

사람들은 메시지의 의도가 어떤 것이든 상관없이, 액면에 먼저 반응하고, 또 대부분 액면에만 반응한다. 이 코너를 옹호하는 측도, 비판하는 측도 모두 액면만을 놓고 열렬히 호응하거나 돌아서서 침을 뱉는다. 코미디로서 이 코너가 가질 수 있는 풍자의 측면은 완전히 도외시하는 양이, 마치 백분 토론을 보면서 거기 나온 토론자들의 발언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모습을 보는 듯하다. 그러다 보니, 남녀 문제를 놓고 흔히 벌어지는 한풀이, 원풀이, 아니면 네탓, 내탓, 나아가 남탓에 조상탓까지 우르르 쏟아진다. 한국에서는 코미디 하기도 참 쉽지 않을 듯하다.

왜 이런 풍자 메시지가 심각하게 받아들여지는 것일까. 남녀 문제라는 예민한 이슈에 얽혀 있기 때문일까. 이런 양상을 보면, 개별적으로는 큰 문제 없으면서도, 유적(類的) 존재로서의 상대방에 대하여는 적대감과 증오심을 안고 사는 희한한 대결 구도가 떠오른다. 다들 좋아해서 연애하고 결혼하시면서 왜 그러는지 모르겠다. (자주 드리는 말씀이지만, 이 경우에도 시스템이 불필요한 갈등을 (더) 낳는다는 점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Why so serious? 나는 이 말을 아주 싫어한다. 생각을 하기 싫어하는 사람들이, 당연히 심각해야 하는 일에 대해서도 이런 말을 마구잡이로 쓰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 경우만은 그렇게 말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다.

※ 호머 심슨 이미지: The Simpsons Image Gallery

 

덧글

  • MCtheMad 2009/12/14 00:43 # 답글

    남녀 관계에 대해서는 "남자" 혹은 "여자" 라는 가공의 집단을 만들어 내곤 하는것 같습니다. 그 "남자" 나 "여자" 는 자기 주변에 자기가 알고 지내는 사람들과는 다른 어떤 혐오적인 특성을 대표하는 인물인것 같아요. 실제로 상대방 성 집단을 열렬히 비난하더라도, 그 비난의 화살이 실제 자기 주변의 이성에게 향해지지는 않는것을 보면 말이죠.
  • deulpul 2009/12/14 15:56 #

    그래서, 이런 이슈를 놓고 논란이 벌어질 때마다 "여친이나 아내를 생각해 보셈" "나중에 태어날 니 아들을 생각해 보셈" 하는 말이 나오는 것이겠죠. 본문에도 썼지만, 이렇게 추상화된 상대방을 적대화하도록 만드는 시스템도 큰 몫을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 모자 2009/12/14 15:37 # 삭제 답글

    그대여 나에게도 자궁이 있다 그게 잘못인가
    어찌하여 그대는 아직도 나의 이름을 의심하는가
  • deulpul 2009/12/14 15:59 #

    에... 선문답은 저-기 종교 논란 벌어지는 곳에서 하시는 것이...
  • 언럭키즈 2009/12/14 19:15 # 답글

    풍자와 아이러니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풍자의 역사만큼이나 긴 역사를 가지고 있지 않나 생각됩니다.
    덤으로 남보원을 소스로 진짜 찌질한 광고를 만들어버린 애니콜의 스보원 이란 게 있더군요. =_=;;
    http://tvpot.daum.net/clip/ClipViewByVid.do?vid=LBOkuUphJE8$
  • deulpul 2009/12/15 09:09 #

    그래서 예민한 문제로 농담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정색하고 달려드는 사람이 있어서요. 링크해 주신 '찌질한' 광고는 어떻게 생겼는지 궁금합니다만, 다음 동영상은 도무지 뜨질 않는군요...
  • . 2009/12/19 13:09 # 삭제 답글

    그래서 저는 남보원의 풍자메시지의 복합 구조 바깥에는 구호를 외치고 목소리를 높이는 것을 쑥스러워하는 사람들을 훈련시키는 측면이 있는 것 같다고 느낀 적도 있었지요.
  • deulpul 2009/12/22 11:18 #

    그런 점도 분명 있겠습니다. 생각은 (간절히) 하지만 입에 올리기에는 쪼잔한 문제를 나 대신 공론화해주는 데에서 공감을 가질 수 있는 것이겠죠. 그러나 이게 나의 공감을 넘어서 상대방의 각성으로까지 연결되기는 쉽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코미디라는 형식을 빌린 풍자 메시지이기 때문인데, 결국 보는 사람에 따라 다양하게, 더 나아가 천양지차로 받아들일 수 있다는 것이죠. 성차별이나 역차별 문제는 심각하게 접근해야 할 일이지만, 이런 풍자 메시지를 놓고 그거 하자고 정색하고 달려드는 거 보면 참 우울합니다.
  • 아는남자 2010/01/03 22:42 # 답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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