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라 칼슨 케이스 섞일雜 끓일湯 (Others)

지난 11월25일 아침, 한 로컬 텔레비전 방송사가 진행하는 생방송 뉴스 프로그램을 보던 시청자들은 깜짝 놀랐다. 여성 앵커가 뉴스를 읽는 도중, 갑자기 옆에서 소란이 벌어진 것이다. 비명과 놀란 목소리들이 터져 나오는가 싶더니, 화면 안에서 당황하고 있던 앵커의 품에 바로 옆에 앉아 있던 또 다른 여성 앵커가 쓰러지며 안겼다. 방송은 곧 중지되고 광고가 나오기 시작했다. 두 시간짜리 뉴스 쇼가 거의 끝나가던 시점에서 벌어진 일이다.

생방송 도중 갑자기 쓰러진 앵커 새라 칼슨은 곧바로 병원으로 실려갔다. 응급차 안에서 의식을 되찾았으며, 병원에서 몇 시간 동안 안정을 취한 뒤 집으로 돌아갔다. 그녀가 병원에 더 오래 머물 필요는 없었다. 그녀는 단지 간질 발작을 일으켰을 뿐이다.

칼슨이 자신에게 간질 증상이 있음을 알게 된 것은 딱 1년 전인 2008년 크리스마스 직전이다. 주기적으로 나타나는 가벼운 언어 장애 때문에 병원을 찾은 칼슨에게 의사는 간질 확진을 내 놓았다. 크리스마스 선물 치고는 너무나 가혹한 것이 아닐 수 없었다.

생방송을 진행하는 뉴스 앵커에게 언제 찾아올지 모를 발작 증상이 있다는 것은 치명적인 일일 것이다. 그러나 칼슨은 자신의 병을 숨기지 않았다. 간질 진단을 받고나서 얼마 뒤, 칼슨은 방송사 뉴스 홈페이지에 자신이 이러한 진단을 받았음을 공개적으로 발표했다. 제목은 "나는 발작 증상이 있습니다" 였다. 물론 이렇게 공공연히 고백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여러분께 이 말씀을 드려야 할지를 놓고 지난 몇 주 동안 고민했습니다. 그러다가, 시청자들이 화면을 통해 보지 못하는 일도 터놓고 알려야 하는 것이 뉴스 앵커로서 저의 책무라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이런 사실을 고백하면, 남들이 알지 못하는 병으로 고생하는 여러 시청자의 이야기도 들을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칼슨은 보건의료 기자 출신이다.) 아마 저는 이 병을 평생 갖고 살아야 하겠지요. 새로운 소식이 나오면 전해 드리겠습니다.


다행히 칼슨에게 본격적인 발작 증상(grand mal seizures)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녀 자신이 자세히 묘사한 데 따르면, 약 30초 정도 말을 제대로 못하고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이해하지 못하는 증상이 하루 두어 차례씩 나타난다는 것이다. 생방송 중에도 이런 일이 몇 번 있었다고 밝혔다.

그러나 칼슨이 간질 진단을 받았음을 고백했음에도, 회사는 그녀를 내치지 않았다. 아침 뉴스 진행자인 세 앵커 중 하나로서의 위치는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그녀는 여전히 밝고 명랑하게 아침 뉴스를 진행했다. 그러나 뉴스가 계속되는 두 시간 동안 그녀는 얼마나 마음을 졸이며 살아 왔을 것인가. 방송 내내, 제발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기원하고 또 기원했을 것이다. 매일매일 그랬을 것이다. 그러나 11월25일, 그렇게 걱정하던 사태가 벌어지고 말았다.

병원에서 한나절을 보내고 집으로 돌아간 칼슨은 저녁 무렵에, 시청자에게 드리는 편지를 써서 발표했다. 이 글에서 그녀는 자신이 간질 증상이 있음을 다시 한번 확인하고, 그날 아침 벌어진 일을 자세히 설명했다. 석 달 전부터 운전을 그만두었다는 사실도 밝혔다. 방송사 관계자에 따르면, 칼슨이 쓰러진 뒤 방송사에는 그녀의 안부를 걱정하는 시청자들의 전화와 이메일이 쇄도했다고 한다. 이런 지지와 격려가 칼슨의 증상을 완화시키지는 못하더라도 그녀에게 큰 힘이 되었을 것이다.

새라 칼슨은 생방송 뉴스를 계속할 수 있을까. 방송사는 그녀를 아침 뉴스 앵커 중 하나로 계속 앉혀둘까. 11월 말 칼슨의 발작 소식을 읽고 나서 이 기사를 스크랩해 둔 이유는 바로 이런 질문 때문이었다. 아무래도 생방송 뉴스 진행을 맡기기는 어렵지 않을까, 어떤 형태로든 하차하도록 하지 않을까, 부담이 덜한 기자직으로 돌아가도록 하지 않을까 하는 게 내 생각이었다.

웃기지 말라. 일주일 뒤인 12월2일, 새라 칼슨은 자기 자리인 아침 뉴스로 돌아왔다. 그리고 세 앵커 중 막내로서 칼슨은 평소와 전혀 다름없이 밝고 명랑하게 뉴스를 진행하고 있다. 적어도 오늘 아침까지는 그렇다.

물론 방송사측은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여러 배려나 준비를 해 두고 있을 것이다. 진행자들은 물론이고 스탭들도 칼슨 때문에 두 시간 내내 더한층 바짝 긴장하며 프로그램을 만들어야 한다. 이런 배려나 준비는 칼슨을 하차시켜버리는 것보다 훨씬 번잡하고 위험한 일일 것이다. 그러나 방송사는 그 쪽을 선택했다. 사람이 없어서는 아닐 것이다.

그렇더라도, 만일 칼슨이 또다시 생방송 중에 본격적 발작을 보인다면, 뉴스 진행자 자리를 계속 유지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그녀는 "내 증상이 완전히 치유되기를 바라는 '비현실적인' 소망을 갖고 있습니다"라고 말하지만, 그런 비현실적인 소망이 현실이 되었으면, 혹은 적어도 그녀가 카메라 앞에 서는 순간에는 일이 벌어지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은 뉴스 앵커로서 그녀를 아는 모든 사람의 소망일 듯하다.

※ 이미지: 방송사 홈페이지

 

덧글

  • 긁적 2009/12/25 13:51 # 답글

    헐.
    한국과는 다르군요. 한국과는.
  • deulpul 2009/12/25 16:56 #

    네, 몇 가지 점에서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일도 있었습니다. 한 신문사는 이 일을 취재해 기사를 내보내면서, 방송사에 당시 상황을 찍은 동영상 화면을 요청했습니다. 방송사는 일언지하에 거절했습니다. 사생활을 침해한다는 것이었죠. 이 일이 알려지자, 많은 사람이 신문사를 비난했습니다. 이런 여러 그림들이 대개 상식의 기초 위에서 그려지는 것 같습니다.
  • 긁적 2009/12/26 00:42 #

    ㅠ.ㅠ...............
    거기 사람사는데 맞죠?
    근데 왤케 달라요 ㅠ.ㅠ....

    한국이라면 '혼절녀'라고 돌듯 -_-....
  • deulpul 2009/12/26 09:53 #

    혼절녀... 털썩. 하지만 그럴 가능성이 무척 높다고 생각합니다. 더 나아가, 대통령 유고에 맞먹는 대형 떡밥으로 신나게 다루어졌을 가능성도 있고요. 개인의 불행은 안드로메다로. 왜 이렇게 되어가고 있는가를 짚어 보는 일은 우리 모두의 숙제가 아닐까 싶습니다.
  • 김상현 2009/12/26 01:03 # 삭제 답글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그 신문사의 작태에서 드러나듯이 미국에도 정신 나간 인간들이 많지만 사람들의 소통 통로가 대체로 잘 열려 있어서 그것들이 뒤섞이고 충돌하는 가운데 일정선에서 균형이 잡히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방송, 특히 생방송의 속성과 새라 칼슨의 경우를 맞춰보면, 아무리 좋게 보려고 해도 무리수라는 생각입니다. 간질이 언제 발작할지 알 수 없는 현실적 상황을 고려할 때 더욱 그렇지요. 새라 칼슨의 고백이 수많은 시청자들의 동정심을 얻고, 아마도 다른 수많은, 그전까지는 그 프로를 보지 않았던 사람들을 새롭게 시청자로 끌어온 효과가 있었을 것이고, 방송국이 칼슨을 계속 기용한 데에는 그러한 상업적 고려도 크게 작용했으리라는 게 제 생각입니다 (방송국의 생리, 시청률과 시청자들의 반응에 거의 두드러기에 가까운 반응을 보이는 그 비정한 상업주의를 고려할 때 그렇다는 말씀입니다). 저는 차제에, 방송국에서 전후 사정을 충분히 설명하고, 칼슨에게 프로를 따로 주더라도 녹화분으로 내보내는 게 맞다고 봅니다. 생방송의 의도와 취지를 생각하면 더욱 그렇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더욱 건필하시고, 2010년에는 더욱 더 뜻깊고 기억할 만한 경사가 이어지기를 기원합니다.
  • deulpul 2009/12/26 10:34 #

    말씀하시는 뜻을 잘 이해할 수 있습니다. 방송에 큰 지장이 없었기 때문에 지금까지는 문제가 없었더라도, 일단 문제가 벌어진 이상 계속 그런 상태를 유지하기는 쉽지 않으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도 이 일을 눈여겨 보고 있었던 것이고요. 그런데 한편, '안 되지 않을까'라는 저의 생각이, 장애라면 무조건 배제하는 것을 당연시하는 한국적 사고방식에서 나온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습니다. 이 분야에 관한 한, 한국은 후진국 중의 후진국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도 은연중에 그런 태도를 갖고 있는 게 아닐까 한 것이죠.

    그렇더라도, 말씀처럼 생방송의 특성상 어떤 식으로든 보완 조처가 내려질 것 같기는 합니다. 다음 정기 개편 때라든가 하는 계기를 통해 이루어질 수 있겠죠. 님도 보람찬 새해를 맞으시기 바랍니다. 좀 일찌감치 새해 인사를 드리는군요.
  • 2009/12/26 01:59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deulpul 2009/12/26 10:37 #

    정말, 지금은 괜찮으세요? 언젠가 얼핏 말씀을 들었습니다만, 그 정도이실 줄은 몰랐습니다. 더 이상 그런 일로 고생하지 않으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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