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가방에 들어가신다 섞일雜 끓일湯 (Others)

아마 한글은 세계 여러 나라 문자 가운데에서 띄어쓰기가 가장 어려운 글이 아닐까 싶다. 무조건 띄어 쓰는 영어나 유럽어, 무조건 붙여 쓰는 중국어 같다면 훨씬 수월할 것이다. 지금도 글 쓸 때면, 국어사전 찾는 일의 절반 이상이 띄어쓰기 때문이다. 하긴 그래서 그런지, 중국어나 일본어를 보면 그렇게 써놓고 뜻을 해득하는 게 신기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한글 띄어쓰기의 원칙이 있기는 있다. 문장의 각 단어는 띄어 쓴다는 것인데, 예외도 많고 복수 허용 사례도 많아서 머리가 아프다. 예를 들면,

문장의 단어는 띄어 쓴다
띄어쓰기 규정이 어렵다

그가 블로그 시작한 어언 여섯 해
그가 블로그 시작한 아닌지 관심도 없다

블로거이 많이 모였다
네티즌, 시민기자, 블로거 이 많이 모였다

약관에 있는 대로 하시오
약관대로 하시오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아는 만큼 보이나니
만큼도 모르니 사랑하지 않는가봐

그럴 뿐만 아니라 이런 일도 있었다
뿐만 아니라 이런 일도 있었다

자꾸 부탁하니, 그럼 한번 해 볼까
자꾸 할 필요 없이 한 번에 끝내자

서울에 눈이 이십 센티나 왔다
서울에 눈이 20센티나 왔다

한 잔 하러 갑시다
한잔 술에 취하랴

벼랑에서 밀어버렸다 / 밀어 버렸다
밖으로 밀어내 버렸다

이야기는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이야기는 여기서부터입니다

시작한 지 10분 에 끝났다
앞으로 10분 지나면 끝난다

그때 그곳 생각이 난다
그 때는 그 곳이 최고인 줄 알았지

좀더새집
조금 더 커진 새 집으로 이사왔다

여기에, 고유 명사나 전문 용어의 경우 띄어 쓰는 게 원칙이지만 붙여 쓰기도 허용하며, '단위별로 띄어 쓴다'는 단서 조항까지 들어가면 머리가 핑핑 돈다.

원칙은 단어를 띄어 쓰는 것이라도, 이에 어울리지 않는 형태소, 예를 들면 조사나 어미 때문에 예외가 생기고, 같은 말이라도 쓰임에 따라 띄거나 붙여야 한다. 또 의미를 읽어내기 쉽도록 하기 위해 붙여 쓰기를 허용한 결과, 띄우거나 붙이는 게 모두 허용되는 상황이지만, 한 글에서 두 가지를 병행하면 불편하게 보인다. 예컨대,

"빌기도 해보고 사정도 해 보고 모든 일을 다 해보았으나, 열심히 해 본 노력이 모두 소용이 없었다."

같은 문장은 맞춤법 규정의 띄어쓰기 원칙에는 어긋나지 않지만 아주 무원칙적인 인상이 든다.

한글을 제대로 띄어 쓰기는 참 어렵다. 아마 이 글에서도 잘못 띄어 쓴 게 있을 것이다. 띄어쓰기는 자음접변과 더불어, 한국어 표기의 자존심임이 틀림없다.

 

덧글

  • mooyoung 2010/01/08 22:18 # 답글

    ㅎㅎ,감동입니다. 띄어쓰기뿐 아니라 가끔 맞춤법이 가물거리거나 틀릴때도 있더라구요. 근데 틀리게 표기된 글자나 단어를 보면 거의 내가 읽는 소리로 쓴 경우가 많았어요. 그래서 읽기를 제대로 해야하는구나.. 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답니다.
  • deulpul 2010/01/09 20:47 #

    좋은 지적이십니다. (잘못) 소리나는 대로 쓰는 경우를 종종 보는데, 컴퓨터를 이용한 빨리쓰기의 단점 중 하나가 아닐까 싶습니다. 저도 그냥 소리나는 대로 '희안하다'라고 썼었는데, 어느 날 어떤 분이 지적해 주셔서 '희한하다'로 바로잡은 적도 있죠.
  • 2010/01/09 01:17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deulpul 2010/01/09 20:48 #

    잘 봤어요. 곧 연락 드리겠습니다.
  • 2010/01/09 01:18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deulpul 2010/01/09 20:48 #

    어렵죠. 벌써 틀리셨네요, 하하-.
  • MCtheMad 2010/01/09 01:51 # 답글

    더욱이 띄어쓰기는 잘못 적어도 맞춤법의 경우와는 다르게 그 문장에 대한 부정적인 느낌을 꽤나 덜 받기 때문에 부담없이 틀려 버리는 것 같기도 합니다.
  • deulpul 2010/01/09 20:53 #

    맞습니다. 워낙 예외도 많고 복수 인정 사례도 많아서, 그 원칙이 이름값을 못하는 느낌입니다. 저 자신도 맞춤법보다 띄어쓰기를 좀더 편하게 여기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 김상현 2010/01/13 11:32 # 삭제 답글

    한글 맞춤법과 띄어쓰기는 정말 부비트랩이나 장애물 경주를 연상케 합니다. 헷갈릴 때도 너무 많고요. 그래서 그런가 이 글에 더 공감이 됩니다. 텍스트 메시징에다 트위터가 더해지면서 이 규정은 더욱 자주 무시되는 인상이 짙은데, 하도 그것이 일상화하다 보니, 혹시 맞춤법과 띄어쓰기 규정도 대폭 바뀌거나, 아니면 '그 뜻이 통하는 한 괜찮다'라는 정도까지 추락/진화/돌연변이 하는 사태로 이어지지 않을까, 엉뚱한 호기심이 들기도 합니다. 물론 한글학회 같은 곳에서는 그럴 리가 없고, 일반 대중 사이에서 말이죠.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 deulpul 2010/01/13 15:41 #

    정말, 짤막한 공간에 우겨 넣으려고 띄어쓰기를 희생해 본 적이 있는 분 많을 겁니다. 문자 보낼 때는 공간 띄우기도 귀찮을 테고요. 분명 간단하고 빠른 통신이 확대되는 세태는 띄어쓰기에게 별로 우호적인 환경이 아닌 모양입니다.
  • 송동현 2010/01/13 17:08 # 삭제 답글

    한글, 참으로 과학적이다 싶으면서도 참으로 어렵습니다. 가끔 맞춤법과 띄어쓰기가 잘못되어 있으면 글의 내용과는 상관없이 퀼리티가 확 떨어지는 경우가 있어 굉장히 힘듭니다. 말씀하신대로 "한국어 표기의 자존심"을 잘 지켜나가야 하는데... 덕분에 좋은 고민했습니다. :) 감사합니다.
  • 나그네 2010/11/09 20:57 # 삭제 답글

    왜 그럴까? 왜 그럴까? 한참을 생각해보아도 답이 없었다.
    사실 이전부터 답은 나와있다. 가장 보편적이면서도 정확한 답이..
    단지 어려울 뿐이다 뛰어쓰기라는 것 자체가..
    우리나라 말은 중국어를 가져다가 쓸 때 더욱 더 빛이 난다(더 정확한 뜻과 이해를 도울 수 있다는 말임)는 것은 전부 알 것이다. 그래서 일 것이다. 우리말이 어려운 것은 아니 정말 쉽다.
    한자를 모르고도 쓰는 것을 보면 말이다..^^
  • deulpul 2010/11/10 03:27 #

    음... 한국어가 어렵다는 생각을 들게 하는 댓글이군요. 게다가 의식의 흐름까지 반영되어 있다면... 한자를 적절히 사용하면 뜻을 명확히 전달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말씀은 맞다고 생각합니다.

    위에 적어주신 송동현님의 의견도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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