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청난 격무에 시달려 날밤을 새우는 사내

정말 그렇다... 평상시에는 신경도 안 쓰이던 자질구레한 일들이 바쁠 때면 마구마구 쏟아진다. 평소에 보지도 않던 텔레비전 쇼나 재탕 영화가 시험기간이 되면 갑자기 재미있어지고, 내일 아침까지 제출해야 하는 과제를 시작하려면 그동안 미루어뒀던 모든 일이 다 하고 싶어진다. 그 하품나는 윈도우 솔리테어 게임도 그렇게 재미있을 수가 없다. 평소 아무렇지도 않던 책상은 왜 그리 지저분하게 느껴지는지... 머리도 또 감고 싶고... 아... 그동안 운동도 안했는데 달리기나 잠깐 하고 올까...

누구나 이런 경험 있을 것 같다. 모든 일을 미리미리 깔끔하게 마무리를 하는 편이 아니고 항상 마감이 코앞에 닥쳐야 몸이 움직이는 나로서는 다음 글을 보고 웃을 수가 없다. 다름아닌 내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떱...... 반성의 의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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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리조나 플랙스태프의 한 은행 지점에서 중간관리자로 일하는 론 보우건(29)은 일년에 두 번 열리는 은행 본점 총회에서 발표할 자료를 만드느라 월요일 밤 한숨도 자지 못했다. 화요일에 열리는 총회에서 그는 오전에 짤막한 발표를 해야 했던 것이다.

"어, 나 지금 제정신이 아니야. 자네도 보면 알지?" 총회날, 그는 회사 동료와 점심을 먹는 자리에서 그의 부스스한 몰골에 대해 변명을 한다. "자료 준비하고 발표문을 쓰는 데 시간이 엄청 많이 걸리더라구.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어려웠는데다가, 무슨 할 일들이 또 그리 많이 생기는지 말야... 이거 준비하는 데 열 시간도 더 걸렸다니까."

론과 함께 사는 여자친구 소피 콜린즈에 따르면, 월요일 저녁에 론이 작업을 시작할 때는 괜찮았다고 한다. "론은 지난 주말 내내 발표문을 써야 한다고 궁시렁댔어요. 그러나 실제로 책상 앞에 앉은 것은 월요일 밤 8시였지요. 책상 위에다가 온갖 필요할지도 모르는 것들을 가지런히 다 늘어놓고 말이죠." 예컨대 발표문을 쓰는데 참고하려고 회사에서 가져온 자료집이며 브로셔들, 볼펜과 형광펜들, 게다가 녹음기까지 준비해 두었단다. "그러더니, 의자에 앉은 지 30분도 못되어 론은 갑자기 화장실 청소를 시작했어요."

론은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발표문을 어떻게 시작할까 궁리하면서 화장실에 앉아있는데, 갑자기 변기가 엄청 더럽다는 것을 발견했어요. 이렇게 더러운 변기 위에 앉아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죠. 어쨌든 간단한 일이었으니까요. 약간의 세제와 박박 문지르기, 그리고 한두 번 씻어내면 끝이죠. 20분도 안걸렸을 거에요."

화장실 청소를 끝내고 나서, 방바닥에 나뒹굴고 있는 그의 옷들을 깨끗이 치우고 욕실의 수건을 새 것으로 모두 바꾸고나자, 론은 그가 부모님한테 2주 동안 전화 한 통 하지 않은 것을 생각해냈다. 어머니, 아버지와 통화가 끝나자 형한테도 전화하고 내친 김에 오랜만에 누나한테까지 전화를 했다.

"정말 일을 빨리 시작해야 하긴 했지만, 가족 중에서 누구 한 사람에게만 달랑 전화를 하고 말 수는 없잖아요."




그가 다시 책상 앞으로 돌아온 것은 밤 10시. 컴퓨터 전원 스위치를 켰더니 대화상자가 하나 뜨더니 윈도우 XP 보안 패치를 설치하라고 권하는 메세지가 튀어나왔다. 사실 언제나 컴퓨터만 켜면 뜨는 것이었는데, 그 날은 유달리 설득력있게 보였다고.

"몇 달 동안 이 메세지를 무시해 왔죠. '이제 이걸 설치할 할 때가 됐군' 하는 생각이 갑자기 들었어요."

패치를 설치하고 컴퓨터를 재부팅하고 나서 론은 아예 플래시 플레이어와 인터넷 익스플로러 플러그-인 장치까지 모두 업데이트했다.

10시45분에 다시 작업으로 돌아온 론은, 머리 속에 떠오르는 말들을 메모해 두기 위해 독서카드를 찾기 시작했다. 서류더미를 뒤적이다가 갑자기 론은 각종 납부금 고지서가 잔뜩 쌓여 있는 것을 발견했다.

"항상 케이블 텔레비전 요금과 전화요금을 인터넷 자동 납부로 바꾸면 어떨까 하고 생각해 왔죠. 생각난 김에 컴퓨터를 두들겨 자동 납부로 바꿔두는 건 괜찮은 생각이었어요."

그는 30분이 지난 11시15분에 다시 발표문 작업으로 돌아왔다.

"막 일을 시작하려고 하는데, 갑자기, 영화 <스니커즈>에서 명연설을 하는 장면이 있었다는 생각이 났어요. 그 장면이 내가 발표문을 준비하는 데 정말 도움이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그래서 디브이디를 쌓아둔 책꽂이로 향했어요. 문제의 명연설 장면이 사실은 <스니커즈>가 아니고 <데이브>에 들어있었다는 건 <스니커즈>를 다 보고 나서야 깨달았죠."

그러나 그는 <데이브>를 보지 않았다. 벌써 새벽 1시를 넘어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가 디브이디들을 가지런히 정리하고 나자 정말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론은 마음이 급해졌다.

새벽 1시에서 2시30분 사이에 론은 인터넷을 뒤지며 아이럽스쿨 같은 사이트에 들어가 고교 동창들이 잘 지내나 확인하고, <타임> 매거진 최신호를 첫 기사부터 마지막 기사까지 다 읽고, 아마존닷컴에서 책 세 권을 샀으며, Jay-Z의 노래 한 곡을 다운받았다.

아울러 론은 깨끗한 마음가짐으로 발표문 작업을 하기 위해 샤워를 하고 면도까지 했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샤워를 하면 도움이 된다니까요."

밤참을 만들어서 깨끗이 먹어치우고 나자 정말 이제는 발표문 작업 말고는 다른 생각이 나지 않았다.

동틀 무렵 여자친구 콜린은 론의 침대가 여전히 비어있다는 것을 깨닫고 눈을 떴다.

"그는 키보드 위에 엎드려 자고 있었어요. 모니터에는 아무 것도 쓰이지 않은 빈 워드 문서에

sssssssssssssssssssssssssssssssssssssssssssssssssssssssssssssss...

가 잔뜩 떠 있었구요,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독서카드에는 쓸데없는 농담 같은 것들이 가득 적혀 있었지요. 론은 몇시간 동안 인터넷의 유머 사이트들을 떠돌며 술자리에서 친구들에게 해줄 농담들을 받어적고 있었던 것임에 틀림없어요."

두 사람이 출근 준비를 서두를 때, 론은 성질을 팍팍 내며, 한 손으로 이를 닦고 옷을 입는 동안 다른 손으로 발표문의 요지를 작은 수첩에 갈겨 써야 했다.

회사로 가는 카풀 자동차 안에서 동료들은 론의 형편없는 몰골과 마주쳤다고 동료인 윌 서버는 증언한다. "차에 타자마자 론은 어젯밤 발표문 작업 때문에 한숨도 자지 못했다고 한탄했죠. 그러나 내가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데, 론이 그날 총회에서 한 발표문의 절반 이상은 아침에 우리와 함께 회사로 가는 출근길 20분 동안 자동차 안에서 날려 쓴 거였죠."

11개월째 지점 중간관리직을 맡고 있는 론은, 총회가 열린 그 날 10시30분에 8분짜리 발표를 큰 사고 없이 해냈다. 론은 "발표가 괜찮았어요. 반응도 좋았구요. 날밤을 새면서 준비한 것이니 당연하죠" 하고 말한다.

하지만, 론이 지금의 지점으로 오기 전 다른 지점에서 함께 일했던 옛날 동료로서 그날 론의 발표를 지켜보았던 세스 프리드랜더는 론이 새 지점으로 옮긴 뒤 아주 망가졌다고 말한다. "새 지점에서 론에게 엄청 일을 시키는 것 같더라구요. 완전히 전날 밤 전쟁을 치른 사람 같았어요. 이게 내가 관리자 일을 원하지 않는 이유에요. 난 밤에는 꼭 자야 하고, 만일 잠을 못자면 다음 날 아무 일도 할 수 없단 말이죠. 론처럼 밤새워 일하다간 나는 곧 끝장나고 말거에요."

참고 기사 (픽션임)

덧글

  • 善洪最高 2004/02/07 15:42 # 답글

    ㅎㅎㅎ~ 지금의 제 모습과 너무도 비슷해요.
    저도 다음주에 시험이 하나 있는데, 공부해 놓은 건 하나도 없는 주제에 하고 싶은 것 보고 싶은 프로그램은 왜 그리 많은지요...
    '컴퓨터부터 꺼야해' 생각하고 파워오프한지 두시간도 못 됐는데, 갑자기 블로그를 이리 저리 손대보고 싶은 생각이 들고... 하여간 또 이러고 있다니까요. -_-;; 얼른 나가야겠어요.
    사람들은 누구나 청개구리 습성이 있는가보아요~ ㅋㅋ
  • deulpul 2004/02/09 18:07 # 답글

    흐헤헷~ 정말 재미있게 본 글이어요. 누구나 삶살이는 비슷하다는 걸 느끼게 해준 글. 시험 준비 잘 하세요--.
  • graffiti 2004/02/10 00:03 # 삭제 답글

    하긴 저도, 오늘 읽은 소설책 글 쓰다가, 타이핑 치다가 회의하다가 게시판에 노닥거리기도 하고, 고스톱도 치고, 정신없이 보내고 있습니다. 경영학 책에 나오는데로 우선순위를 정해야 하는 것인지... 에구, 참 어려운 일입니다.
  • deulpul 2004/02/12 11:09 # 답글

    그래도 잘 하고 계신 거 다 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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