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유가치를 위한 기계 중매媒 몸體 (Media)

예전에 <뉴욕 타임스>의 한 칼럼니스트는 언젠가부터 자신의 출근길 풍경이 달라졌음을 고백한 적이 있습니다. 버스를 타고 출근하는 그의 아침은 아이팟 터치를 갖고부터 크게 달라졌습니다. 출근길은 그 전날 담아둔 드라마를 보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이런 생활을 반성하기 시작했습니다.

과거에 그는 버스에서 사람을 관찰하는 것이 큰 낙이자 일과였습니다. 버스의 안과 밖에서 분주히 움직이는 사람들은 그의 동료 시민들이자 그의 독자였고 이웃이었습니다. 눈이 마주치면 눈인사를 하고, 옆자리에 앉은 사람과 가벼운 이야기를 나누는 일도 흔했죠.

아이팟으로 드라마를 보기 시작한 뒤 이런 일이 사라졌습니다. 세상으로 향한 귀를 틀어막고 눈을 가리고, 작은 모니터만을 주시하며 일터로 달렸습니다. 그는 언젠가부터 자기가 숨쉬어야 하는 세상, 함께 살아야 하는 이웃들로부터 격리되고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제가 사는 곳의 지역 신문 기자도 비슷한 사정을 고백한 적이 있습니다. 그는 자전거를 타고 출근을 합니다. (제가 사는 곳은 미국에서 자전거 타기 가장 좋은 도시 중 하나로 꼽힐 정도로 편안하고 안전합니다.) 이 출근길은 그에게 아주 값진 시간이었습니다. 상쾌한 공기를 마시고 페달을 밟으며, 오늘 하루 해야 할 일들을 생각하고 만나야 할 사람을 떠올리고, 딸애의 바이올린이 실력이 많이 는 것, 아버지의 병이 좀 심각해진 것, 동생에게 생일 선물을 부쳐야 할 것 따위를 생각했습니다.

이러한 출근길은 그의 귀에 mp3 이어폰이 꽂히면서부터 크게 달라졌습니다. 좋아하는 음악에 정신을 뺏겨서, 예전과 같은 생각을 할 겨를이 없었습니다. 음악과 함께 하는 출근길은 분명 신나기는 했지만, 그는 앞으로 음악을 들으며 출근하지 않겠다고 선언했습니다. 생각을 하는 일이 훨씬 값지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아이팟을 비롯한 휴대용 미디어 기기들이 등장하면서 벌어진 가장 큰 변화는 '스몰 톡'의 실종이 아닐까 합니다. 한국에서라면 좀 이상한 사람 취급을 받겠지만, 이 곳에서는 우연히 잠깐 함께 있게 된 사람끼리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일이 아주 흔합니다. 예컨대 버스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던 승객들이 정겨이 잡담을 한다든가 말입니다.

사람들이 귀에 무언가를 꼽기 시작하면서부터 이런 이들이 사라지고, 사람들은 서로로부터 격리되고 있습니다. 언젠가는 무심코 옆 사람에게 무언가를 물어보려다, 귀에 이어폰을 꽂고 있는 것을 보고 무안해한 적도 있습니다. 생각해 보세요. 줄리 델피와 에단 호크가 이어폰으로 음악을 듣고 있었다면 비포 선라이즈가 탄생할 수 있었을지. 케이트 윈슬렛과 짐 케리가 아이팟 터치로 CSI나 하우스를 보고 있었다면 이터널 선샤인이 가능했을지. 농담이지만, 갈수록 결혼이 늦고 출산율이 떨어지는 것은 아이팟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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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패드 등장 소식 이후, 세상은 새로운 기기의 탄생을 놓고 또다시 들썩이고 있습니다. 이 기기가 사람과 사회를 또 어떻게 바꾸어 놓을 것인가. 아이패드로 무언가를 읽는다는 점에 한정하여 이야기를 해 보고 싶습니다. 사실 아이패드가 기존 기기들과 비교하여 가장 크게 다른 점은 바로 텍스트 콘텐츠를 쉽게 향유할 수 있다는 점이 아니겠습니까.

이 점에 주목하여 볼 때, 제가 보기에 가장 설득력이 있는 고민은 이 블로그에 종종 들러 주시는 김상현님의 것입니다. 엄청난 독서광이고 아미존 킨들, 소니 리더 등을 이미 사용하고 있는 김상현님은 '아이패드를 계기로 본 '웹 2.0' 시대의 책 읽기'에서 다음과 같이 고민합니다:


여기에 아이패드를 더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일단 아이팟 터치의 쓰임새가 현저히 줄어들 것은 분명하다. 노트북 이용 시간도 줄겠지. 종이책은 물론 킨들과 소니 리더를 열어보는 기회도 눈에 띄게 줄 것이다. 문제는 그와 함께 진중한 독서가 점점 더 '멸종 위기의 종' 신세로 전락할 위험성이 크다는 점이다. 진지한 독서는 적어도 30분 이상, 가능하다면 2, 3시간 지속적으로, 오직 그 책에만 집중할 때 가능하다. 아이패드가, 거기에 담긴 온갖 앱들의 매혹이, 그렇게 도 닦듯 책 읽기에 집중하는 것을 허용할까? 그게 내일로 닥친 중요한 기말고사를 대비한 공부가 아닌 한, 순전히 내 자유의지로 책을 오랫동안 들여다보는 것이 가능할까?

아이패드를 쓰는 한 신문, 잡지, 유튜브는 자주, 열심히 들여다보게 될 것이다. 하지만 아이패드로 종이책 들여다보듯, 아니 종이책까지 갈 것도 없이 킨들이나 소니 리더를 통해 책을 보듯, 꾸준히 집중해서 독서하기는 불가능에 가까울 것이다. 읽는 책의 내용은 가벼운 할리퀸이나 뱀파이어물이나 액션물, 추리물 따위로 치우칠 것이며, 그것도 한 번에 읽는 분량은 기껏해야 한두 챕터에 그칠 것이고, 그런 식으로 동시에 읽는 책의 타이틀은 적어도 3~10종에 이르러, 그 책들 사이를 오락가락 하며, 마치 주의력 결핍증 (attention deficit disorder) 환자처럼 굴 것이다.

클릭, 트윗, 이메일 확인하고 보내기, 이 책 열어 슬쩍 훑어보고 다른 책 흘낏 들여다보고, 재미있어 보이는 신문이나 잡지 기사 대충 살펴보고, 다른 이들의 블로그 둘러보고, 페이스북에 몇 자 적고, 다시 책 몇 줄 훑어보고... 가만, 아까 읽은 책이 뭐였지? 무슨 내용이었더라? 여기까지 읽었던가? 아니, 더 앞으로 가야 하나? 모든 것이 하이퍼링크의 거미줄로 뒤얽힌, 사상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디지털의 방대한 숲속에서 스토리는 길을 잃기 십상일 것이다. 그러는 가운데 읽던 책의 스토리는 물론 맥락조차 희밎해지고, 논리의 연결 고리는 끊기고, '깊은 독서' 에서 얻을 수 있었던 통찰력은 연목구어가 되며, 처음에 재미있으리라 기대했던 책은 간헐적이고 불규칙한 독서로 김빠진 맥주처럼 여겨져 제대로 끝내기조차 어려워질 것이다. '활자의 바다', '활자의 산맥'은 물이 빠져버린 황량한 개펄처럼 부박하고 변덕스러운 디지털 픽셀의 사막으로 대치될 것이다.


아이팟 터치도, 아이폰도 없고 아이패드도 손에 넣을 계획이 전혀 없으면서도 인터넷만으로 이미 상당히 집중력을 빼앗기고 있는 저로서는, 기계가 독서의 고사(枯死), 혹은 독서하는 재미의 고갈을 초래하지 않을까 하는 이런 염려를 아주 현실적인 것으로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이 기계로 무엇을 할 수 있을까'를 진지하게 생각하는 것일까요. 무엇을 할 수 있다면 정말로 그럴까요. 무엇을 하기 위해 기계가 필요한 것일까요, 아니면 기계를 사놓고 보니 그 무엇을 할 수 있게 되는 것일까요.

어쩌면 아이패드를 비롯한 새로운 첨단 기기의 가장 솔직한 효용은 "내가 이것을 샀다"는 만족감인지도 모릅니다. 사용가치도, 교환가치도 아닌 소유가치의 등장이랄까요.

(아이패드류가 신문용지를 대치할 가능성에 대해서는 진지하게 살펴보고 있습니다.)

 

덧글

  • 마수 2010/02/04 18:18 # 답글

    깊이 공감합니다. 책벌레로 불릴만큼 책을 좋아하던 저였지만, 노트북과 아이팟터치, 핸드폰 E-mail로 무장한 현재는 너무나도 즐겁지만. 동시에 바쁘고 어지럽고네요.
    모든 전자기기로부터 떨어지는 상상을 하지만, 또한 불가능함에 슬퍼집니다. 어느순간부터 핸드폰은 자의가 아니라 타의에 의해 들고다녀야 하고, E-mail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인터넷은 폭주하는 정보때문에 머리속이 과부하가 걸리는데다가 천천히 오래 읽는것을 방해합니다.
    슬프군요.
  • deulpul 2010/02/06 05:25 #

    세상의 추세가 그렇게 되어 있으니, 머리 깎고 절에 들어가기 전에는 탈출하기가 쉽지 않으리라고 생각합니다. 몇 년 전에 한 소설가가 휴대폰과 관련해 아래와 같은 문제 의식을 던진 적이 있는데(http://deulpul.egloos.com/207173), 그 때보다 훨씬 발달한, 혹은 퇴보한 지금 상황을 보면 어떻게 평가할지 궁금합니다.

    "이 나라의 젊은이들 중 상당수는 아직도 자신이 휴대전화를 주인으로 섬기는 노예라는 사실을 모른 채 희희낙락하고 있다. 자신의 정신세계가 휴대전화보다 작은 방 속에 갇혀 있음을 전혀 모르고 있다는 얘기다.

    물론 휴대전화는 사람과 사람, 나와 세상을 잇는 정보화 시대의 필수품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또한 휴대전화 사용이 생활 편리성의 몇 배나 되는 정신적 폐해를 주고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정보의 홍수에 떠밀려 가다 보면 뭔가를 깊이 생각하고 판단할 겨를이 없는 법이다. 있는 사실만 가지고도 넘쳐나는데 깊은 곳에 감추어진 사색의 항아리가 보일 리 없는 것이다.

    공부하다가 필요하면 편지를 쓰는 젊은이와 달리 하루 내내 휴대전화의 노예가 되어 사는 젊은이에게 뭔가 깊이 생각하며 살 겨를이나 있겠는가 말이다. 그리하여 거품 정보로 가득한 머리에는 꼭 필요한 정보가 들어갈 방이 없다. 무게 있는 정보를 소화하고 저장할 능력이 쇠퇴했기 때문이다."
  • Beatle 2010/02/04 18:21 # 삭제 답글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저 또한 같은 이유로 출퇴근 길에 음악을 듣지 않게 되었습니다.
    요즘 나오는 온갖 문명의 이기들이 생각할 시간을 모두 거둬 가버린 듯한 느낌이 듭니다.
  • deulpul 2010/02/06 05:30 #

    저도 요즘은 버스 탈 때, 되도록 귀에 아무 것도 꽂으려 하지 않습니다. 대신 밤에 자기 전에 몇 곡을 듣는데, 그렇게 좋을 수가 없어요.
  • pyrexia 2010/02/04 18:34 # 답글

    소유가치는 꽤 무서운 속성입니다. 번갈아 입을 옷 단 두 벌과 지금 읽고 있는 책 단 두 권만 소유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 deulpul 2010/02/06 05:34 #

    정말 그런가 봅니다. 저만 해도, 쓰지도 않으면서 사둔 게 좀 됩니다. 몇 년 전 롤러 블레이드를 사서 딱 두 번 타고 고이 잘 모셔 뒀습니다. 쓰지도 않는데 남에게 팔아서 유용하게 쓰이도록 할 생각은 잘 들지 않고, 오히려 '이런 것은 가지고 있는 게 로망이다' 따위의 합리화만 되는군요. 반성합니다...
  • 아녜제 2010/02/04 18:53 # 삭제 답글

    공감합니다. 제 아이팟 터치가 망가진 후 책 읽는 시간이 늘었습니다.
  • deulpul 2010/02/06 05:40 #

    본문에서 말씀드린 내용을 가장 실감나게 압축해서 표현해 주셨군요! 단문의 무게가, 아포리즘으로 삼아도 좋을 정도입니다.
  • 유치찬란 2010/02/04 21:22 # 답글

    근대문학의 종결과 이어지는 면이 있겠군요. 사실상 한국에서 책이 가지는 힘이 1980년대 이후로 심각할 정도로 약해졌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저것은 당연하지요. [근대문학의 종결이야 저것만 가지고 할 소리는 아니긴 하지만..]
    하지만 진중한 책 읽기보다, 아이팟 터치가 더 나쁜지일지와 같은것은, 책과 다른 인스턴트성 미디어 콘텐츠가 좀 더 나쁠지는 아직 단순히 말하긴 어려울지도 모르겠어요. 일단 노트북과 아이팟을 산 이후 책 읽는 시간이 반 넘게 줄은 1인으로써도;;;;;ㅠㅠ
  • deulpul 2010/02/06 05:49 #

    읽는 사람이 없으면 책이든 매체든 시들해지는 것은 필연이겠죠. 문학의 상황과도 관련이 아주 없지는 않다고 생각합니다. 말씀하신, 악역을 하는 게 기계인지 콘텐츠인지에 대한 물음은 의미 있는 문제 제기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그 둘이 서로를 의지하며 존재하기 때문에, 둘을 떼어놓고 생각하기 어려운 점이 있지 않을까 합니다. 닌텐도 DS를 학습용 기기로 사용하자는 주장이 있었는데(즉 같은 기계라도 콘텐츠에 따라 유용도가 달라질 수 있다), 지금 전세계의 DS 중에서 교육용으로 쓰이는 게 얼마나 될까 싶습니다.
  • LVP 2010/02/05 00:40 # 답글

    그래도 배터리가 다된다면, 잠깐이겠지만, 상황이 틀려질듯 합니다. 'ㅅ';;

    그럴때를 대비하는 삶의 자세를 가져야...(?!?!)
  • deulpul 2010/02/06 05:52 #

    그러면 배터리 수명이 더 긴 기기로 기변하거나, 여유 배터리를 항상 휴대하거나, 지하철 등 공공 장소에 전원 충전 시설을 만들어 달라고 청원하거나... 하는 쪽으로 머리가 돌게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 2010/02/05 10:17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deulpul 2010/02/06 05:56 #

    그러다가 밀실형 인간이 되는 겁니다, 하하-. 지하철 타면 장관이죠. 제발 이어폰이나 꼽고 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 그래서 이메일도 멀리 하고 사시는 겁니까!
  • 강정수 2010/02/05 10:19 # 삭제 답글

    좋은 글입니다. 꾸준히 RSS 구독하고 있었는데 처음으로 댓글 남기네요. 많은 부분 동감합니다. 그러나 한가지 떠오른 것이 있습니다. 정확하지는 않지만. 스크라테스가 이야기 했다고 합니다. '어떻게 인간의 사고를 '문자'로 기록할 수 있나? 그 순간 '영혼'이 사라진다' - 정확한 문구는 기억나지 않고요^^-.
    저도 개인적으로 종이 책을 무척이나 좋아합니다. 그리고 종이신문도 좋아하고요. 그러나 좋았던 시절 아쉽게도 끝나가고 있다는 생각입니다. 용돈 생기면 달려가던 동네 책방이 이제 먼 기억이 되었고, 작은 책 하나 구입해도 모두 정성스럽게 포장하던-환경 생각없이^^-, 그리고 친구들에게 밑줄 친 구절 읽어주며 행복했던 시절이 그립기만 합니다.
    그러나 메일이건, 유튭이건, 전자책이건, 공중파 드라마건 왔다 갔다하는 지금의 10대들에게도 저와 다르지만 그들 나람의 아름다운 추억과 사유의 공간이 존재할 것이라는 기대(?)는 가지고 있습니다. 말이 길어졌군요....
  • deulpul 2010/02/06 06:19 #

    반갑습니다. 말씀대로, 텍스트든 이미지든, 머리 속의 사고를 기호로 완벽히 그려내는 일은 언제나 불가능해왔던 게 아닐까 싶습니다. 다만, 언어를 배우고 익히게 되면 사고를 언어의 틀 안에서 하게 되고, 그래서 언어가 중요한 것이겠지요.

    말씀해 주신 '추억'은 우리 시대가 마지막으로 경험하고 간직하게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많은 분처럼 저도 종이 책이 사라지는 날은 오지 않는다고 믿습니다만, 그 역할이 갈수록 줄어드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라고 생각합니다. 읽지 않기도 하고, 전자책 같은 대안도 생기니 말이지요.

    종이책이나 전자책이나 콘텐츠는 똑같은데, 단지 그 내용을 전달하는 매체가 달라지는 것만으로 우리가 그 내용의 받아들이는 양상이 획기적으로 다른 것은 시사하는 점이 크다고 생각합니다. 말씀하신 대로, 이러한 변화가 사유의 공간과 기회를 앗아가는 것이 아니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은 강정수님과 마찬가지입니다.
  • 돌멩이 2010/02/07 00:29 # 삭제 답글

    생각지못한 부분이었는데 잘 읽었습니다.
    여행 다닐 때 편하겠다 싶어서 아이패드를 갖고싶었는데, 전자책이면 개개인이 소장하는 책의 양은 엄청나게 늘겠지만, 책을 빌리거나 안보는 책을 주거나 하는 아주 소소한 교류마저 없어질지도 모르겠네요. 여행자들끼리 책 바꿔보는 것도 낭만인데요.
    저도 주변이 너무 시끄러울 때가 아니면 이어폰을 꽂지않고, 책을 볼 땐 컴퓨터를 켜지않으려합니다. 인터넷은 시간을 정말 순식간에 잡아먹으면서, 막상 그 시간동안 뭘 했는지는 잘 모르겠더라고요. 하루하루가 빡빡하게 돌아가는데 그 짬짬이 생각 정리할 시간, 또는 아무 생각도 안 할 시간이 필요할텐데요.
    어쩌면 <아무 것도 안하는> 그 시간을 '낭비'라 여기고 뭔가 계속 해야한다는 강박이 심해서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베스트셀러도 '~하지않으면 안될 몇가지' '~에 미쳐라'같은 것이고, 뉴스면도 온통 집사라, 차사라, 돈모아라 투성이고, 온갖 기기들이 '음악을 들어라''dmb를 봐라''인터넷을 해라' ...뭘 하라고 계속 몰아치는 것 같아요. 끝없이 뭔가를 하지않으면 불안한걸까요. 불안하기때문에 끝없이 뭔가를 하는 걸까요..
  • deulpul 2010/02/12 18:46 #

    저는 사무실에서 가끔 이어폰을 쓰는데, 옆에서 밥맛없는 자식이 낄낄거릴 때가 그 때입니다. ... 는 농담이고요. 정말 '아무 것도 안 하는 시간'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잊고 살고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약간 견강부회지만, 뉴턴이 사과 떨어질 때 아이폰 앱에 미쳐 있었다면... 모든 유레카의 순간, 혹은 그 순간을 만들기 위해 축적해 온 노력들이 첨단 기기와 인터넷으로 해체되어 어딘가로 사라져 버리는 것은 아닐까 하는 마음이 기우였으면 좋겠습니다. 본문보다 훨씬 섬세한 문제의식을 주셔서 고맙습니다.
  • 김상현 2010/02/07 08:54 # 삭제 답글

    2010-02-06-Sat

    제 부족한 글이 (오자까지 그대로) 인용되어 있어서 순간 당혹스럽기도 하고, 쑥스럽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하고, 한편 고맙기도 했습니다.

    들풀님의 글을 보고 문득 노회찬 의원을 떠올렸습니다. 만난 적도 없고, 어떤 분인지 알지도 못합니다. 다만 트위터를 통해 정치인중 '어얼리 어답터'로 통하고, 블랙베리와 아이폰 두 개를 동시에 쓰기 때문에 정보시대의 쌍권총잡이로 유명하다는 말을 전해들었습니다. 그리고 트위터를 통해 노의원께서 직접 (자랑삼아) 쓰신 당신의 정보 생활을 읽었는데, 저는 그걸 보고 감탄하기보다 답답하고 슬프다는 독후감을 더 많이 얻었습니다.

    출근하는 차 안에서 블랙베리와 아이폰으로 이메일을 다 처리한다는 이야기였는데, 노의원께서는 그게 엄청난 생산성의 향상이고 바람직하다는 투로 말씀하셨지만, 제게는 다르게 보였습니다. 그렇게 전자기기에 마음과 주의를 집중하는 사이, 차창밖으로 펼쳐지는 풍경을 놓쳤을 것이고, 멍하니 앉아 이런저런 상상과 고민과 비전을 머릿속으로 '프로세스'할 기회를 놓친 것일 테니까요.

    데스크톱, 랩탑, 아이팟, 블랙베리, 아마존 킨들, 소니 리더 같은 기기를 쓰다가, 가끔 내가 이 기기들을 쓰는 것인지, 아니면 이 기기들이 나를 부리는 것인지 선뜻 구별하기 어려울 때가 있습니다. 그리고 과연 이렇게 다양한 기기를 쓰면서, 그리고 그들을 통해 사상 유례없이 풍요로운 컨텐트의 세례를 받으면서, 내가 이들 기기와 컨텐트를 만나기 전보다 더 똑똑해졌는가, 더 나아졌는가, 아니 그보다 더 중요하게, '더 행복해졌는가', 물어볼 때가 있습니다.

    그러면 갑자기 뭔가 잘못된 게 아닌가 하는, 찜찜한 생각이 슬그머니 고개를 들었다가 마음 한 구석에 남아, 끝내 사라지지를 않습니다. 좀더 많이 고민해 봐야 할 사안이 아닌가 합니다.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그곳에는 폭설이 내리지 않았는지 걱정이군요. 토론토보다 훨씬 더 추운 곳으로 왔는데, 올해는 도리어 동과 서가 역전된 듯합니다. 워싱턴 DC의 눈 풍경이 하도 비현실적이어서, 마치 평행우주 속의 또다른 도시가 아닌가 싶을 정도였습니다.
  • deulpul 2010/02/12 19:00 #

    허락을 받지 않고 상당한 분량을 무단 인용해서 죄송합니다. 하지만 정확한 문제의식을 그렇게 생생하게 쓰셨는데, 안 그럴 수가 있어야죠!

    말씀 들으니, 김광규 시인이 쓴 '젊은 손수운전자에게'의 한 대목이 생각납니다.

    "이제 너는 차를 몰고 달려가는구나 / 철따라 달라지는 가로수를 보지 못하고
    길가의 과일 장수나 생선 장수를 보지 못하고 / 아픈 애기를 업고 뛰어가는 여인을 보지 못하고
    교통순경과 신호등을 살피면서 / 앞만 보고 달려가는구나
    너의 눈은 빨라지고 / 너의 마음은 더욱 바빠졌다"

    첨단 기기와 인간 생활, 혹은 지적 전통과의 관계는 빨리 규명이 되어야 할 부분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혹여 부정적인 관찰 결과가 나온다 해도, 대세를 돌이키기는 어려울 듯 하지만 말입니다. 좀더 유용한 활용에 대한 고민이 시작되겠지요. 그러나 불용한 것은 왜 그리 재미있는가 말입니다... 이번 겨울은 도처에서 특이한 날씨인데, 좋은 쪽으로 특이하셔서 다행입니다. 저 있는 곳은 아직까지는 비교적 조용한 상황입니다...
  • 2010/02/11 14:58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deulpul 2010/02/12 19:02 #

    괜찮습니다. 메일이 스팸으로 갔나 보네요. 새해 복 그렇게 받으십시오, 하하-.
  • 아나나스 2010/07/08 15:48 # 삭제 답글

    The Paradox of our time란 짧은 글이 생각나네요.
    '우리는 많은 컴퓨터로 예전과 비교할 수 없이 더 많은 정보를 넣고 있지만,
    대화는 더 줄어들었다'
    we build more computers to hold more information to produce more copies than ever, but have less communication.

    점점 더 언어구사력이 떨어지는 아이들이 많아진다고 하던 학원선생인 친구 말도 떠오릅니다..
  • deulpul 2010/07/08 16:24 #

    말씀 들으니 사회적 자본이 줄어든다는 퍼트넘의 걱정도 생각납니다. 한편 언제나 새로운 기술과 미디어는 계속 나왔고 걱정도 계속 있었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들고요. 우리가 기성 세대가 되어 가기 때문에 걱정스럽게 보이는거다...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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