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기지 않는 배우 박중훈

"가질 수 있는데 아직 못 가진 것과 영원히 가질 수 없는 것이 있잖아요. 나는 영원히 가질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질투를 안 합니다."

배우 박중훈의 이야기다. <신동아> 2003년 11월에 실린 인터뷰에서다. 80년대는 안성기로 대표되고 90년대는 한석규, 2000년대에는 송강호라 할 수 있을텐데, 거기 빠져서 느낌이 어떠냐는 공허한 질문에 대한 대답이다. 그렇지. 영원히 가질 수 없는 것도 있다. 우리는 80년대나 90년대를 다시 가질 수는 없다.

"말론 브랜도처럼 카리스마 강한 배우가 병약한 병자역을 할 수도 있겠지만 관객이 보고싶어 하지는 않을 거예요. 말론 브랜도한테는 역시 '대부'를 기대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관객이 박중훈에게 바라는 역이 있고, 또 내가 잘할 수 있는 역이 있지 않습니까. 배우가 천의 얼굴을 가져야 됩니까. 아니면 한 가지 얼굴을 깊이 있게 가져야 됩니까. 나는 후자 쪽에 무게를 둡니다. 웃음과 유머를 끝까지 가져가고 싶어요. 칼 루이스가 100m, 200m달리기 하고 넓이뛰기하면 됐지 마라톤까지 잘할 수 있습니까. 100m달리기와 마라톤은 쓰는 근육이 다릅니다."

그래도 나는 박중훈이 무거운 성격 연기도 잘 할 것이라고 믿는다. 물론 그를 좋아하는 것은 즐거운 배우라는 점 때문이지만.

"영화는 시대의 거울이거든요. 나는 영화라는 장르를 통해 시대에 참여하는 거지요. 최소한 그 시대가 어떤 시대라는 걸 알고 엔터테인먼트를 하는 것과 그냥 웃기는 엔터테이너 노릇이나 하는 것은 다릅니다. 항상 내 자신과 후배들에게 세상 돌아가는 것을 알고 업데이트를 해야 한다고 독려하고 있습니다. 찰리 채플린이 시대를 몰랐다면 가슴 저미는 코미디 연기를 할 수 있었을까요. 시대를 아는 사람이 코미디를 해야 눈물이 나오게 할 수 있습니다."

그래, 가만히 보니 이런 점 때문에 좋아하는 것 같기도 하다. 웃기지만 웃기는 배우가 아닌 박중훈. 그는 매일 일간지 8개를 읽는다.

인터뷰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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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善洪最高 2004/02/15 22:00 # 답글

    참 말을 잘 하는 배우 중 한명이라고 생각해요. 여러 시상식이나 영화에서는 주로 코믹한 분위기를 풍기지만, 이런저런 인터뷰에서 보면 말을 참 잘 하더라고요. 자기 생각이 있는 배우라는 느낌을 갖게 해요. '천의 얼굴'을 가진 안성기가 대단하지만, '자기만의 얼굴'을 가진 박중훈도 정말 대단한 배우라고 생각해요. 저는 언제부턴가 우리나라 영화의 주류를 이루고 있는 코미디를 좋아하지는 않지만, 우연히도 박중훈이 등장한 코미디는 많이 보게 됐어요. 코미디가 아니어도 코믹한 분위기가 나올 수 있는 게 이 배우의 힘이라고 생각해요. 웃긴 건 좋은 거잖아요. :)
    어렸을 때 모 청바지 광고 전속모델이었는데, 그걸 보려고 CF가 방송되는 시간을 외워뒀다가 찾아보곤 했던 기억이 나요. 아마도 1989년~90년이었을텐데, 저에게는 그의 개성있는 얼굴이 참 핸섬해 보였답니다. ^^
  • deulpul 2004/02/17 21:37 # 답글

    그렇죠? 비교적 최근에 찍은 영화 포스터를 보니 굉장히 무거운 그림이던데, 어떤 스토리인지 궁금하네요. 그나저나 박중훈을 보면 미국 뮤지컬 배우 진 켈리가 생각나요. vice versa. 볼때마다 정말 희한할 정도로 꼭 닮은 것 같은데... 저만 그렇게 느끼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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