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면피이거나 까마귀이거나 미국美 나라國 (USA)

전 알래스카 주지사이자 공화당 부통령 후보 사라 페일린. 널리 알려졌다시피, 아이 중 하나가 다운증후군을 갖고 있다. 그래서 장애인 소리만 들으면 팔을 걷어부치고 나선다. 정치인이 이런 태도와 철학을 갖고 있다면 존경해야 마땅하다. 그런데 그녀가 목소리를 높이고 게거품을 물어도 존경하는 사람이 많지 않다. 왜냐. 자기 필요에 따라 사람 봐 가면서 하기 때문이다.

오바마의 백악관 수석보좌관인 램 이매뉴얼은 작년 8월에 한 실언이 최근 뒤늦게 밝혀져서 곤욕을 치렀다. 그는 일부 진보 활동가들과 만난 자리에서, 이들이 오바마의 의료 개혁에 적극적이지 않은 보수적 민주당원을 비판하는 광고를 내겠다고 하자, 너무 앞서간다며 이른바 'r-word', 즉 'retarded'라고 힐난했다. 이 사실이 <월스트리트 저널>에 5개월 만에 공개된 것이다.

장애인 관련 단체가 정당하게 그를 비판하는 가운데, 틈만 나면 오바마를 잡아먹지 못해 안달인 페일린도 얼씨구나 하고 숟가락을 하나 얹었다. 그녀는 "그런 부적절한 말""인식 및 발전 장애를 가진 모든 신의 아이들과 그들을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모독이며, 받아들일 수 없고,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다"라고 말하며, 이참에 아예 이매뉴얼을 자리에서 쫓아내라고 들고 나왔다. 듣고 있자니 정말 가슴이 찢어질 것 같다. 그런데 페일린의 가슴은 한 쪽만 찢어진다.

페일린과 함께 서로를 지켜주고 키워주고 빨아주는 관계인 우익 선동가 러쉬 림보는, 자기 라디오 방송에서 이매뉴얼 사건을 언급하면서 r-word를 수 차례나 썼다. 놀려 먹기 좋은 게, 그가 싫어하는 오바마의 고위 당국자가 그가 더 싫어하는 진보 활동가들에게 그런 말을 썼다는 상황이다. 림보는 진보 활동가들이 retards라고 연거푸 말한 뒤, "내가 하는 말이 아니다. 이매뉴얼이 했다고 뉴스에 나왔다. 나는 그를 인용하고 있을 뿐이다"라고 눙치고 나서, 백악관에서 retard들의 정상회담이 벌어질 모양이라고 다시 비꼬았다.

림보가 이 말을 한 번도 아니고 여러 차례나 썼는데도, 페일린의 가슴은 물론 찢어지지 않았다. 페일린에게 림보의 발언을 어떻게 생각하냐고 물었을 때, 그녀는 정색을 하고 림보를 옹호했다. 그가 풍자를 하고 있으며, 이매뉴얼과는 달리 그냥 특정 그룹을 험담할 뿐이라는 주장(Fox TV 동영상)이었다. 그러나 장애인을 비하의 의미로 쓴 것은 완전히 똑같다.

같은 맥락에서 쓴 같은 말을 다르게 해석하며, 적은 까고 아군은 빠는 페일린의 이중 기준은, 그녀의 가슴은 찢어지는 종류인지 모르지만 얼굴은 단단한 머리 만큼이나 두껍다는 사실을 다시 보여준다. (여기서 갑자기 한 한국 여자가 생각난다.) (저 동영상을 보면, 껀수만 있으면 자신의 정치적 장래로 연결하려는 꼼수를 읽을 수 있어서, 나 같은 사람은 떨어진 만정이 다시 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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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뉴욕 시장이자 공화당 대통령 주자 중 하나였던 루디 줄리아니. 9/11 때 영웅 같은 모습으로 비치기도 했지만, 오로지 오바마를 씹을 수 있다면 영웅은 바보짓도 서슴지 않는다.

ABC의 '굿 모닝 아메리카'에 나온 줄리아니는, 작년 말에 벌어진 노스웨스트 비행기 테러 기도 사건을 언급하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오바마가 해야 할 일 중 하나는 부시가 잘 한 것을 계속하는 것이다. 말하자면 테러와의 전쟁 같은 거다. 부시 정권 하에서 한 번도 겪지 않은 미국 국내 테러를 오바마 정권에서 겪고 있지 않은가."

물론 이건 새빨간 거짓말이거나, 아니면 본인이 머저리임을 공개적으로 고백하는 것이다. 딴 사람도 아니고 9/11 때 뉴욕 시장 하던 사람이 이런 말을 하다니. 9/11은 말할 것도 없고, 노스웨스트 사건과 아주 흡사한 구두 테러(shoe bomber) 기도도 있었다. 이런 사건은 대체 언제 일어났던가. 오바마가 세 번째 임기를 수행하고 있다면 줄리아니의 말이 맞을 것이다.

일부러 이런 쌩거짓말을 했을 것 같지는 않고, 아마 착각일 것이다. 어떻게 이런 명백한 사실에 대한 엄청난 착각이 벌어졌을까. 부시는 옳고 오바마는 그르다는 강한 확신이 자기도 모르게 뇌를 마비시키는 모양이다. 나중에 그의 대변인은, "어르신의 말씀은 '9/11 이후에'라는 뜻입니다"라고 진화에 나섰는데, 그래도 어이없기는 여전.

동서를 막론하고, 철면피나 까마귀는 정치인이 되기에 꼭 필요한 자질인 듯하다. 정치에 뜻이 있는 분들은 참고하시기 바란다.

물론 반면교사로서 말이다.

 

덧글

  • 2010/03/03 15:16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긁적 2010/03/03 16:03 # 답글

    아니 테러 '기도'도 테러라고 이야기하는겁니까 -_-;
    테러 기도를 사전에 막았다면 이건 업적 아닌가효.
  • deulpul 2010/03/04 01:12 #

    아니 그런 날카로운 지적을 하시다니. 그런데 빤쭈에 달았던 폭발물에 불이 잘 붙지 않았다거나, 승객이 달려들어 제압했다거나 하는 점에만 주목하면 딴 소리를 할 수도 있을 듯합니다. 어쨌든 중요한 것은 이렇게 테러의 싹을 곳곳에 심어둔 쪽이 누구냐라는 것이겠지요. 오바마가 그 싹들 싹둑싹둑 잘라내지 못해서 좀 아쉽습니다만...
  • 김상현 2010/03/04 13:45 # 삭제 답글

    페일린, 림보 같은 인물을 보면 종종 양 극단으로 치닫곤 합니다. 이런 자들 때문에 미국이 지금 그 모양 그 꼴이다, 와, 이런 자들이 이런 작태를 벌여도 용인하기 때문에 미국이 저 정도일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저는 아직도 페일린과 림보의 지적 수준과 정치적 의도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그들을 추종하는 무리, 아니 그보다 그 두 사람의 일거수 일투족을 뉴스거리라고 크게 취급하고 보도하는 언론에 대해, 실로 개탄을 금치 못하겠습니다. 미국의 먼 북쪽, 촌에서 미국을 내려다보면서, 그래도 저들보다는 캐나다의 정치인, 방송인 들의 수준이 더 봐줄 만하다, 라는 데 일말의 위안을 갖습니다. 아, 이렇게 써놓고도 정말 성질이 나네요. 나중에 정말 페일린이 대통령 되는 것 아닙니까? .....으아아아아ㅏㅏㅏㅏㅏㅏㅏㄱ!
  • deulpul 2010/03/05 08:58 #

    남의 나라 일이지만, 상상만 해도 끔찍하네요. 설마 그런 일이 실제로 일어나겠습니까...? 그러기 위해서는 지금 하고 있는 사람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오바마가 기대를 저버린다면, 언감생심 차기를 꿈꾸는 저 여자에게는 기회가 넓어지는 셈이겠지요. 어느 나라를 보나, 이성적이거나 상식적인 사고방식보다 진영의 이데올로기가 훨씬 윗길인 모양입니다. 그래서 림보 같은 이데올로그들이 엄청난 보수를 받으며 혀를 놀리고 있는 것이겠죠.
  • 라피에사쥬 2010/03/04 14:19 # 답글

    말 막하는게 정치판에서 먹고 사는 법중 하나라지만 저건 정신상태가 좀 의심스럽다고나 할까요.

    특히나 자기 편이랍시고 저런 식으로 옹호했다면 과연 자기 자식 앞에서 할 말이나 있을지 모르겠군요. 정치적인 것을 떠나서 인간적으로 화가 납니다 -_-
  • deulpul 2010/03/05 09:01 #

    예, 욕하는 것은 좋은데 일관성이 항상 문제지요. 저 분은 가족을 정치 활동에 이용해 먹는다는 비판을 자주 받는데, 가진 게 없으면 가족이라도 열심히 파는 편이 나름대로 현명한 전략일지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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