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의 부모 자랑을 듣는 고아 소녀 미국美 나라國 (USA)

우선 사진 한 장 보시기 바란다.



빌 클린턴이다. 그가 환하게 웃으면서 손을 잡은 어린이는 병상에 누워 있는 아이티 소년이다.

재앙으로 온 세계의 눈길이 아이티에 쏠려 있으니, 그 참에 얼굴 한번 더 내밀러 나타난 정치인 빌 클린턴.

... 이라고 생각하시면, 어느 나라 정치인들의 행태에 너무 익숙해지신 것이다. 이 사진을 찍은 것은 지진이 나기 한참 전인 2009년 7월이다. 클린턴이 불우한 이웃집 찾아가서 도와주듯 아이티를 수시로 찾아간 것은 지진이 나기 훨씬 이전부터다. 2009년 5월에 그는 유엔 아이티 특별 대사로 임명되었다. 반기문 사무총장이 임명 소식을 발표한 뒤, 클린턴의 첫 대답은 이러한 직위를 맡게 되어 영광이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클린턴과 아이티의 인연은 훨씬 더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아이티는 빌-힐러리 클린턴 부부의 신혼여행지나 다름없었다. 1975년 10월에 결혼한 두 사람은, 친구의 도움을 받아, 12월에 뒤늦은 신혼여행 삼아서 아이티를 찾아갔다. 그게 처음이었다. 그 뒤로 클린턴과 아이티는 끈끈한 인연으로 맺어졌다.

올해 1월12일에 아이티 지진이 터지자마자, 빌 클린턴은 주간지 <타임>에 긴 글을 썼다. 제목은 "What Haiti Needs"였다. 여기서 그는 자신과 아이티의 개인적인 인연을 소개하며, 아이티의 잠재력을 강조하고, 미국과 국제 사회가 무너진 이 나라를 일으켜 세우는 데 힘을 합해 달라고 호소했다.

뿐만 아니다. 지진이 발생한 지 나흘만에, 아이티 피해자를 돕기 위한 재단을 만들었다. 그런데 특이한 것은 이 자선 재단의 이름이다. '클린턴-부시 아이티 펀드'가 이 재단의 이름이다. 부시가 들어가 있네? 말하자면, 아이티를 돕기 위한 자선 재단 결성에 클린턴은 물론이고 조지 W. 부시 같은 작자도 힘을 합한 것이다. 그래서 아래 사진과 같은 그림이 나왔다.



백악관에서 전현직 미국 대통령 셋이 모여, 아이티 지원을 발표하고 호소하는 중이다. 세 대통령이 아이티 지원을 호소하기 위해 한 자리에 모인 것을 놓고 <뉴욕 타임스>는 'A Presidential Triple Plea'라고 묘사했다. 이런 과정을 거쳐 신속하게 클린턴-부시 펀드가 만들어졌다.

전직 대통령이 자선 모금을 위해 주간지에 글을 썼다는 게 좀 특이한 일일까. 국제 문제를 다루는 미국 잡지 <포린 폴리시> 최근호는 또다른 미국 전 대통령 지미 카터가 보낸 장문의 편지를 '독자 편지'란에 실었다. 이 잡지는 그 전호에서 오바마의 대외 정책을 지미 카터의 그것과 비교하는 커버 스토리를 실었는데, 카터의 편지는 이 기사에 대한 '독자'의 반응인 셈이다. 편지에서 카터는 구체적인 사실을 들며 기사의 잘못을 조목조목 지적했는데, 설득력이 있어서 원래 기사의 필자도 별다른 재반론을 제기하지 않았다.

카터가 1977-1981년에 수행한 대통령직에서 물러난 뒤, 양지녘에 앉아 해바라기나 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다. 오히려 그는 재임 때보더 더 폭넓게, 더 헌신적으로 국제 활동을 전개했다. 수많은 국제 분쟁 지역에서 그를 찾아 볼 수 있었다. 1994년에 한반도의 북핵 위기가 초읽기로 치닫는 상황에서, 평양으로 날아가 김일성과 면담한 뒤 극적인 타협을 이끌어 낸 것은 그 중 하나다.

2002년에 스웨덴 한림원은 카터의 이러한 활동을 평가하여 노벨 평화상을 수여했다. 오바마를 포함해, 미국 대통령으로서 노벨 평화상을 받은 네 명 중 하나이며, 재임 이후의 활동 때문에 이 상을 받은 유일한 미국 대통령이다.

이런 모습을 보다 아래와 같은 기사들을 대하면, 성냥불 속의 판타지를 보다가 갑자기 시궁창 같은 현실로 돌아온 듯한 느낌을 받는다.

YS "세종시 국민투표밖에 방법 없다"
YS, 또 DJ 향해 독설

졸개를 이끌고 다니며 현실 정치에 훈수나 하는 것을 유일한 재임 후 활동으로 삼는 한국 전직 대통령을 보는 마음은 착찹하다. 그래도 이렇게 한 마디 하고 다니는 양반은 좀 나은지도 모른다. 명절 때 인사 받고 경호원 데리고 골프 치러 다니는 게 재임 후 활동의 전부인 작자도 있으니 말이다. 하긴 어디 나서서 무슨 활동이나 할 수 있겠는가. 계란이나 맞으면 차라리 다행이고, 나라에 낼 돈이나 제대로 내라는 핀잔이나 들을텐데.

이런 현실에 대해 사부님께서 하신 말씀이 있다.

(미국 전직 대통령들의 글을) 읽고 나서는
가슴이 빈 들판처럼 휑해지는 기분이 또 한번 들두먼.
조실 부모해 부모라는 게 뭔지 모르는 나이 어린 계집아이가
좋은 엄마 아빠 둔 친구의 엄마 아빠 자랑을 듣고 돌아서서
아무도 없는 집의 싸늘한 방바닥에 가 앉았을 때의 기분 같은 것.

아무개 아무개 아무개 들은 아무리 좋게 보아주려고 해도
꼭 술만 처먹고 집안 살림에는 아무 도움도 되지 않는
고아 소녀의 삼촌이나 오빠 같은 존재들 같기만 한지.



※ 사진 1: <타임>(본문 링크), 사진 2: 클린턴-부시 펀드(본문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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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들꽃향기 2010/03/07 17:15 # 답글

    저런걸 보면 미국을 우리가 막 뭐라고 해도(준 소돔과 고모라 수준?), 상당히 젊고 건강한 나라라는 생각이 듭니다. ㄷㄷ
  • 愚公 2010/03/07 18:32 #

    미국은 우리가 뭐라고 해도 잘 들리지 않는다능;
  • 들꽃향기 2010/03/07 18:34 #

    愚公님 : ㅁㅈㅈㅈ의 이름으로 깃발만 쳐들면 들릴거라고 생각하는 분들을 주변에서 자주 봐서요 ㄷㄷ
  • deulpul 2010/03/08 09:29 #

    네, 어떤 부분에서 그렇죠. 국가라는 복잡한 조직은 다양한 면을 지니게 마련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 중에서 윗대가리들이 어떤 면을 가지고 있나는 좀 관심이 가는군요.

    ㅁㅈㅈㅈ는 아무리 생각해도 떠오르지 않음... Can I buy a vowel?
  • 광햏 2010/03/08 16:05 # 삭제

    저도 ㅁㅈㅈㅈ가 뭘지 몹씨 궁금해 지네요...
    들풀님 벌어놓은 돈이 있어야 모음을 사죠...^^
  • 차원이동자 2010/03/08 16:26 #

    ㄱ이니 ㄴ이니하는 받침이 저기 뒹굴고 있네요.
  • 막둥이 2010/03/07 20:14 # 삭제 답글

    아이티가 현재의 아프고 불쌍한 빈국이 된 데에
    미국의 책임이 가장 크다고 볼 수 있다는데 아이러니가 느껴진다고 할까
    혹은 눈가리고 아웅으로 보이기도 합니다.
  • Leedo 2010/03/07 20:21 #

    이번 칠레 지진도 마찬가지라능..
  • 2010/03/07 22:14 # 삭제

    미국의 비밀병기가 아이티랑 칠레를 강타한건 세계인의 상식이죠.
  • deulpul 2010/03/08 09:33 #

    그런 생각이 이해는 갑니다만, 시대와 상황을 구분해서 볼 수도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수십 년 전에 한국이 베트남에 만들어 놓은 혼혈들에 관심을 쏟는 활동은 나름대로 의미가 있지 않겠습니까.
  • 달려옹 2010/03/07 20:18 # 답글

    전 전직 대통령들이 나름 자기 역할은 하고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일부국민들의 뜻만을 대변하더라도 자기 주장을 한다던가(김영삼 전 대통령)
    국가행사 출석률의 신기록을 달성한다던가..(전두환씨..)
    퇴임후에도 자신의 정치를 계속 하려고 한다던가..(고 노무현 전 대통령. 가장 아쉽습니다.
    한국 정치를 업그레이드 시킬수도 있었는데...)

    모 아프셨던 두분은 제끼고요.( 노태우씨, 고 김대중 전 대통령.)

    문제는 전직들은 닥치고 있으라는 현정부겠죠.

    대한민국의 민주주의 역사로 봤을때 저정도라도 하는건 고무적입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국제적으로 활동할수도 있었을 텐데. 조금 아쉽구요.

    모 다음 대통령이 마음이 열려있다면 현 이명박 대통령은 그토록 강조하시는 세일즈 외교를 위해
    전직 대통령 자격으로 사막 한가운데서 천막을 치고 아랍의 왕족들과 양젖을 마시면서 원전 수출을 위해 장기 출장이나 갔으면 좋겠습니다.
  • deulpul 2010/03/08 09:35 #

    영삼옹이나 두환보스에 대한 말씀은 농담인 거겠죠? 한국의 민주주의 역사를 고려해야 한다는 말씀에 동의합니다. 민주주의의 경험이 좀 쌓이면 우리도 퇴임 후 수해 현장을 누비는 대통령을 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 B군 2010/03/07 21:27 # 답글

    슬프지만 매;;; 매우 적절한 비유입니다. orz
  • deulpul 2010/03/08 09:36 #

    슬프고 우울하죠.
  • 소시민 2010/03/07 22:04 # 답글

    그런 의미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의 갑작스러운 서거는 많이 아쉽습니다 ㅠㅠ
  • deulpul 2010/03/08 09:36 #

    동의합니다. 재임 기간에 대한 평가야 어쨌든, 새로운 스타일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잠재력이 있는 분이었습니다.
  • 망설임의바다 2010/03/08 16:11 #

    저도요. 그날 아침에 정말 오랫동안 멍하니 하늘만 봤습니다.
  • 2010/03/07 22:39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deulpul 2010/03/08 09:38 #

    그런 느낌이 자주 듭니다. 아무래도 자꾸 상대 비교를 하게 되어서 그런 모양입니다.
  • ๑◕‿◕๑ 2010/03/07 23:18 # 답글

    그저 울죠
  • deulpul 2010/03/08 09:38 #

    아이디는 웃으시면서.
  • 미자씨 2010/03/08 00:06 # 답글

    사기든 뭐든, 저런 활동이나마 하는 전직 대통령이 있다는 것만 해도 참 부러운 일이빈다. 거참. 아무리 살펴봐도 우리나라는 저런 활동할 전직 대통령이 이젠 없네요...
  • deulpul 2010/03/08 09:38 #

    앞으로 적어도 8년 동안에는 볼 수 없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 공감 2010/03/08 00:24 # 답글

    미국의 일부 클린턴을 싫어하는 여론은 아직도 스캔들을 갖고 드립을 치는데
    그닥 낯선 광경은 아닌것 같더라고요....
  • deulpul 2010/03/08 09:40 #

    큰 일이긴 했지만, 뻗대고 서서 개기는 게 아니라 자빠져서 싹싹 빌었는데, 누운 사람을 밟고 패는 것은 신사적이지 못하다고 생각합니다. 여기자 주무르고 술병으로 이마 까는 분들이 이런 일 한다면, 과거야 충분히 용서할 수 있겠죠.
  • 현재진행형 2010/03/08 08:49 # 답글

    비유가 가슴을 치는 군요.... ;ㅁ;
  • deulpul 2010/03/08 09:41 #

    저도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 null 2010/03/08 16:50 # 답글

    미자씨 댓글의 '8년'은 어떤 계산으로 나온 수치인가요?ㅠ
  • deulpul 2010/03/09 07:51 #

    현 대통령 임기(3년) + 차기 대통령 임기(5년) = 8년입니다.
  • 지나다가 2010/03/09 01:31 # 삭제 답글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글을 읽다가 궁금해서 찾아보니 노벨평화상을 받은 미국대통령은 네 명 이군요.
  • deulpul 2010/03/09 07:44 #

    이크, 잘못 적었습니다. 지적해 주신 대로, 지금까지 노벨 평화상을 받은 미국 대통령은 시어도어 루즈벨트(1906년), 우드로 윌슨(1919년), 지미 카터(2002년), 버락 오바마(2009년) 등 네 명입니다. 카터를 제외한 세 명은 재임중에 받았습니다. 지적대로 본문 수정했습니다. 고맙습니다.
  • 우유차 2010/03/09 08:36 # 답글

    부씨도 하는 거 보면 분명히 아이큐 문제는 아닌데… 우리나라 전현직 분들에게 부족한 건 정말 뭘까요. ;ㅁ;
  • deulpul 2010/03/09 09:05 #

    돈인가봐요. 한 사람은 생활비에 쪼달려서 차도 팔아 치우는 지경이지(http://www.seoprise.com/board/view.php?uid=7502&table=global&level_gubun=all&mode=search&field=nic2&s_que=%C6%DF&start=1870http://www.seoprise.com/board/view.php?uid=7502&table=global&level_gubun=all&mode=search&field=nic2&s_que=%C6%DF&start=1870), 또 한 사람은 29만원밖에 없어서 밥도 제대로 못 먹는 지경이지, 이제 곧 새로 나올 전임 대통령은 돈을 모두 사회에 환원하고 털끝만큼도 건드리지 않을테니 역시 빈털털이일테지, 역시 돈이 없어서인 모양입니다. 클씨 부씨도 자기 돈 갖고 하는 게 아니라, 얼굴 빌려주고 돈을 모으는 건데, 이 사람들이 얼굴 내밀면 모이던 돈도 흩어질 지경이라서...
  • Cocoa 2010/03/09 18:06 # 답글

    음 민주주의라는 제도를 수용한 시간적 차이라고 넘기기에는 너무나 큰 갭이 존재한달까..

    비유가 너무 절절해서 눈물이 나려고 합니다.

  • deulpul 2010/03/11 04:34 #

    제발 그런 이유라면 좋겠습니다. 시간이 해결해 줄테니까요. 우리 생전에 그런 모습을 볼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해 보죠.
  • ㅉㅉㅉ 2010/03/11 06:14 # 삭제 답글

    영삼이는 그런 액수 받고 있으면서 돈이 없다고 하는걸 보면 철이 안 든게 분명하군요...
  • deulpul 2010/03/11 12:25 #

    본인들은 정말 돈이 없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수입과 씀씀이란 상대적인 거죠. 그나저나 저게 꽤 오래 전인데, 그동안 어떻게 사셨나 모르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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