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벨 도우 케이스 미국美 나라國 (USA)

귀에 꽂은 이어폰에서 NPR의 <모닝 에디션> 뉴스 리포트가 나오고 있었다. 버스에서 내려 건물까지 걸어가는데 걸리는 시간은 3분 남짓이다. 버스 내릴 때 듣던 리포트가 건물 현관에 도착했는데도 끝나지 않았다. 나는 잠깐 멈춰 서서 뉴스를 마저 다 들었다. 기사가 마음을 흔드는 바람에, 도중에 꺼버릴 수가 없었다.

우리 사회는 일정한 정도의 상호 신뢰를 기초로 하여 운영된다. 중앙 분리대가 없는 왕복 2차선 국도를 달릴 때마다, 나는 우리가 상대방에 대한 신뢰에 얼마나 크게 의존하고 있는지를 실감한다. 도로를 시속 80킬로미터로 달리면서 한 발이 안 되는 공간을 사이에 두고 차량이 스쳐 지나갈 때에도 안심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상대에 대한 믿음 때문이다. 상대 운전자도 가느다란 노란 선을 존중할 것이라는 믿음, 그가 중앙선을 넘어 내 차선으로 들어오지 않으리라는 믿음이 있어야 도로를 달릴 수 있다.

혹은 식당에서 먹는 밥에 누구도 침을 뱉지 않으리라는 믿음이 있어야 밖에서 밥을 사 먹을 수 있다. 내가 보는 시험이 공정한 과정을 통해 채점되고 평가된다는 믿음이 있어야 시험이라는 제도에 수긍할 수 있다. 고층 건물을 지을 때 자재를 제대로 쓰고 적절히 시공했으리라는 믿음이 있어야 건물에 들어갈 수 있다. 현대 문명은 제도화된 상호 신뢰 위에서만 존재할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것은 법과 제도, 규율과 같은 사회적 약속을 누구나 지킬 것이라는 의미의 신뢰다. 말하자면 인간에 대한 신뢰이기는 하되, 규율을 매개로 한 소극적 의미의 신뢰라 할 수 있다. 이보다 좀더 적극적인 의미의 신뢰라면 사람 자체를 믿는 경우일 것이다. 타인의 말을 믿고, 타인의 인간됨을 믿고, 타인의 가능성을 믿고, 더 나아가 성선(性善)을 믿는 태도는 적극적인 의미의 인간 신뢰라고 할 수 있다.

서로가 서로를 믿지 못하여 항상 눈을 부릅뜨고 경계하며 살아야 하는 만인 대 만인의 투쟁 사회가 살기에 피곤한 세상일 것임은 명백하다. 그건 마치 팔이 굽혀지지 않는 세상에서 한 뼘 숟가락으로 자기 입에 밥을 떠 넣기 위해 부심하는 지옥일 것이다. 그보다는 서로가 서로를 믿으며 사는 사회가 훨씬 편하고 아름다울 것이다.

문제는 인간 모두가 남을 신뢰하지는 않는다는 점이며, 인간 중 일부는 상대방의 신뢰를 악용하여 자신의 배를 불린다는 점이며, 결과적으로 신뢰하는 사람만 손해를 보는 상황이 빚어진다는 점이며, 따라서 사회 전체의 신뢰 수준은 언제나 적당한 정도로 추락해 있기 마련이라는 점이다. 그래서 '사람을 너무 믿어서는 안 된다'는 취지를 담은 많은 격언이며 지혜가 존재한다. 정말, 이기(利己)와 사기와 협잡과,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 결과주의가 일상화된 사회에서는 사람을 너무 믿는 것은 병리 현상인지도 모른다.

남을 지나치게 믿는 병

아홉 살 소녀 이사벨 도우*는 그런 사람이다. 세상의 험난함을 아직 체험하지 못한 어린이들은 누구나 사람을 쉽게 믿는 경향이 있지만, 이사벨은 유달리 그렇다. 뿐만 아니라, 부모가 아무리 가르쳐도 이사벨은 낯선 사람을 경계하는 법을 배우지 못한다. 그 아이의 잘못이 아니다. 이사벨은 사람을 너무 쉽게 믿는 병에 걸려 있기 때문이다.

이사벨은 윌리엄스 증후군 환자다. 이 병은 유전자 이상으로 발생하는 희귀한 질환이다. 위키에 따르면 새로 태어나는 아이 중 7,500~20,000명당 1명 꼴로 발생한다고 한다. 이 병에 걸렸을 때 흔히 보이는 증상으로는 발육이 더디고 심장 계통에 문제가 생기는 일이 잦고, 입이 크고 콧대가 낮으며 인중이 긴 특이한 얼굴 때문에 '엘프형 얼굴'이라는 특징이 나타난다.

이런 신체적 증상에 더해 정신적인 특이성이 나타나는데, 가장 대표적인 증상은 말이 달변이고 지나치게 쾌활하고 사회성이 뛰어나며 사람을 쉽게 믿어버리는 점이다. 나는 처음에 이 뉴스를 들으면서, 이게 어떤 병의 '증상'인지 순간적으로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증상이란 뭔가 부정적이고 불편하고 있어서는 안 되는 비정상적 현상을 말하는 게 아닌가. 이건 어떻게 보면 장점일 수도 있지 않은가. 그러나 한편, 도를 넘어서 지나칠 정도가 되고, 더구나 본인이 스스로 통제를 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틀림없는 증상일 수 있었다.

특별 활동이 벌어지는 건물 밖에서 학부모들이 자기 아이를 데려가기 위해 기다리고 서 있었다. 이사벨은 밖으로 나오면서, 근처에 서 있던 낯선 할머니와 인사를 주고 받았다. 말을 나눈 지 얼마 되지도 않아서 이사벨은 이렇게 말하며 할머니에게 매달렸다. "저를 할머니 집에 데려다 주세요. 할머니 집에 가서 놀고 싶어요." 옆에서 이 장면을 바라보던 엄마 제시카는 기절초풍을 했지만, 드문 일은 아니었다. 이사벨은 항상 그렇게 낯선 사람에게 달려가 명랑하게 인사하고, 그를 따라 나서려고 한다.

많은 윌리엄스 증후군 환자는 다른 사람을 경계하고 불신하는 능력이 없다. 이 병이 발생하는 것은 7번 염색체에서 유전자 다수가 빠져 있기 때문인데, 그 때문에 뇌 활동이 영향을 받는다. 그 중 하나가 두려움을 조절하는 중추에 이상에 생기는 것이다. 따라서, 보통 사람이라면 두려워하고 경계해야 할 상황에서도 윌리엄스 증후군 환자는 즐겁고 명랑하며 친화적인 태도를 지니게 된다. 낯선 사람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고 믿어버리는 것, 이것은 이 증후군이 보이는 보편적인 현상이다.

한국에서(그리고 지구 어디에서나) 흔히 벌어지는 사건, 이를테면 어린이 납치 성폭행 살해 사건 같은 것을 떠올려 보면, 이사벨이 얼마나 위험한 병에 걸려 있는지 쉽게 상상할 수 있다. 세상은 남을 다 믿고 살기에는 너무나 험하고 위태스런 곳이다.

사랑한다는 말을 금지당한 소녀

바로 그 점이 엄마 제시카의 고민이다. 갓난아이일 때의 이사벨은 주변의 귀여움을 독차지했다. 낯을 가리는 법 없이 누구에게나 안기고 누구나 좋아했으며, 낯선 사람도 예외가 아니었다. 주기적으로 방긋방긋 웃는 귀여운 얼굴은 사랑스럽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자라면서 점점 문제가 되었다. 아무나 따라나섰던 것이다. 하루는 낯선 아줌마가 자기 애들을 데리고 아이스크림 가게에 가려는 차에 스스럼없이 올라타기도 했다. 뒷자리에 떡하니 앉아서 안전벨트까지 매고 따라나서려고 했다. 이 아줌마는 낯선 애가 자기 아이들 사이에 끼어 있는 것을 발견하고, 엄마 제시카에게 쫓아와서 크게 화를 내며 아이를 제대로 건사하지 못한다고 비난했다. 이사벨을 잃어버릴 뻔한 충격에 놀란 제시카는, 그이에게 이사벨이 어떤 병에 걸려 있는지 설명할 힘이 없었다.

학교 생활도 문제다. 선생님들은 모두 이사벨의 문제를 알고 있다. 이사벨은 선생님이나 학생 누구에게도 사랑한다는 말을 해서는 안 된다. 이사벨에게만 내려진 엄명이다. 모두를 사랑하기 때문에, 사랑하는 일이 금지된 것이다. 화장실도 절대로 혼자 가서는 안 된다. 혹시 있을지도 모를 사고를 예방하기 위해서다.

NPR 기자가 엄마와 인터뷰를 하고 있는 동안에, 이사벨을 포함한 아이 셋이 학교에서 돌아왔다. 갑자기 누군가가 기자의 목을 뒤에서 끌어 안았다. 기자가 뒤를 돌아보니 이사벨이었다. 물론 두 사람은 난생 처음 만난 사이다. 이사벨은 기자에게 온갖 질문을 속사포처럼 쏟아내다가, 녹음기 마이크를 잡고 노래를 불렀다고 한다. "당신은 나의 친구, 이 세상 최고의 친구에요... 당신은 정말 멋지고 아름답고 사랑스럽게 보여요..." 노래를 불러도 꼭 이런 걸 부른다.

수영장에 가면 엄마는 이사벨에게 한 순간도 눈을 뗄 수가 없다. 잠깐 옆의 학부모와 이야기를 하다 보면, 이사벨은 웬 낯선 남자의 무릎 위에 앉아 있다. 그 남자는 매우 불편한 표정을 짓고. 이사벨의 부모가 위험한 상상을 그치지 못하는 것은 이런 상황 때문이다. 아이스크림 아줌마나 수영장 아저씨는 나쁜 사람이 아니었지만, 세상에는 나쁜 사람도 많은 것이다.

이사벨의 부모는 이사벨의 유전자와 싸워 왔다. 그들은 낯선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끊임없이 이사벨에게 가르쳤다. 이사벨이 이해할 수 있게 책도 만들어 보여 주었고 비디오도 틀어 주고 교육용 완구도 보여 주었다. 모르는 사람에게 보여야 할 올바른 태도와 아닌 것을 구분하여 점수를 매기는 놀이도 해 보았다. 결과는 언제나 유전자의 승리였다. 이사벨은 배우고 나서 돌아서면 잊었다. 사람을 믿지 못하는 능력이 생물학적으로 없기 때문에, 당연한 일인지도 몰랐다. 역할극을 통한 교육은 항상 이런 식으로 전개되었다:

(낯선 사람을 연기하는) 엄마: 안녕, 아가야. 너 우리 강아지 볼래?
이사벨: 싫어요!
엄마: 우리 강아지 정말 이쁜데... 안 보고 싶어?
이사벨: 안 볼래요.
엄마: 그러지 말고 이리 오렴. 사탕도 있단다.
이사벨: 으음...
엄마: 얼른 와. 여기 내 차로 와라, 보여 줄께.
이사벨: 좋아요!
엄마: 이사벨... 너 낯선 사람 차로 가면 되겠니?


그럼에도 엄마가 이러한 교육에 끊임없이 매달리는 이유가 있다. 엄마 아빠가 이사벨을 영원히 지켜줄 수는 없기 때문이다.

기자와 인터뷰를 한 날 저녁, 밥을 먹기 위해 온 식구가 식탁에 둘러 앉았다. 이사벨은 음악을 듣기 위해서 CD 플레이어를 켰다. 음악이 나오기 시작하자, 아빠에게 다가와서 말했다. "사랑하는 아빠, 나랑 춤추겠어요?" 아빠는 이사벨을 안아 올려서 오래도록 오래도록 춤을 추었다.

왜 이 리포팅이 내 발목을 잡았는지 모른다. 남을 믿고 사랑하는 게 병이라니. 세상을 사랑하는 아이에게 불신하는 법을 가르쳐야 한다니. 이사벨의 병은 우리가 사는 불안하고 불쾌하고 위험한 세상에 대한 각성을 촉구하는 징표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윌리엄스 증후군 환자도, 그들의 가족도 별다른 불안 없이 세상을 살 수 있으면 좋으련만,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그런 이상이 현실화되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라디오에서 잠깐 나오는 이사벨의 목소리는 정말 사랑스러웠다. 방송이 끝날 무렵 이사벨이 '굿바이!' 하는 장면에서 코끝이 찡해지는 것을 참기 어렵다.


* 이름 '이사벨 도우'에서 도우는 가명이다. 원래의 NPR 기사에서는 성을 밝히지 않았다.

※ 참고 기사: A Life Without Fear. 이 NPR 기사 맨 위에 라디오 방송 녹음 파일이 있다.
※ 윌리엄스 증후군에 대한 한글 참고글, 영문 참고글, 한국윌리엄스증후군협회.


 

덧글

  • siva 2010/05/24 12:44 # 삭제 답글

    ...가슴아프네요.
    남을 경계하고 무서워할 줄 아는 아홉살 여자아이에게도 부모님에서 한발짝 떨어진 세상은 가혹한 곳이건만.
    저 아이가 열 아홉살 때 겪게 될 세상,
    그리고 부모님이 안 계시게 된 후에 어른이 된 그 아이가 겪게 될 세상이 막막합니다.
  • deulpul 2010/05/25 08:19 #

    아이가 조금씩 배워가고 있다고 하니 다행입니다. 이 병을 갖고도 다른 사람과 큰 차이 없는 생활을 하는 성인도 있으므로 비관만 하지는 않아도 되지 않을까 합니다. 예, 아이보다는 세상이 더 걱정입니다.
  • 들꽃향기 2010/05/24 20:40 # 답글

    이런 케이스가 있었군요;;; 읽는사람이 다 가슴이 아퍼지려고 합니다. ㄷㄷ
  • deulpul 2010/05/25 08:25 #

    아무런 귀책 사유 없이 고통을 겪는 것도 안됐는데, 험한 세태 탓에 더 힘들게 살아야 하는 듯해서 더욱 안타깝습니다.
  • 2010/05/24 22:59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deulpul 2010/05/25 08:27 #

    저도 궁금합니다. 잘 알겠습니다.
  • pyrexia 2010/05/24 23:34 # 답글

    글의 내용보다는 이런 취재가 존재하는 미국 언론이 조금 부럽습니다. 언론은 때때로 너무 게으르거나 너무 가난합니다.
    기다렸습니다. 많이...
  • deulpul 2010/05/25 08:34 #

    우리 식으로 치면 인간시대형 피처 스토리라고나 할텐데, 크게 호들갑스럽지 않게 적절히 절제하며 쓴 리포팅이 괜찮았습니다. 의료 과학 기사의 형식으로도 들여다 볼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기사 덧글에 보면 해당 병에 대한 내용을 설명하기보다 눈물 짜내기에 급급했다는 '악플'이 달려 있는데, 그렇게 보지 않습니다. 의학사전을 풀어 놓은 것 같은 기사를 읽는 사람은 별로 없을 테니까요. 반겨 주셔서 고맙습니다.
  • 자그니 2010/05/25 18:26 # 답글

    ....오랫만에 올려주신 포스팅에 반가운 마음에 들어왔다가, 뭔가 마음 무거워져서 나갑니다...
  • deulpul 2010/05/28 11:17 #

    애고 죄송합니다. 좀더 밝은 소식도 열심히 전하겠습니다.
  • 아나나스 2010/07/08 16:54 # 삭제 답글

    이 윌리엄스 증후군을 가진 아이들은 사람을 쉽게 따르는 것도 있지만
    나이에 비해 놀라운 어휘구사력을 보이고 또 음악에 뛰어난 재능을 가진 사례도 많더군요.
    모짜르트도 어쩌면 이 증후군을 앓았을 지도 모른다는 연구결과를 흥미있게 읽은 기억이
    납니다.


    전 남을 쉽게 믿는 이사벨이 질환을 가진 환자라고 생각되지가 않네요.
    성폭력을 당하는 아이들의 연령이 점점 더 낮아지고 더욱더 잔인한 범죄가 늘어나
    타인을 믿지못하게 된 이 사회가 더 병든 거겠죠..
  • deulpul 2010/07/09 05:30 #

    그렇다고 합니다. 그런 재능 때문에 언어를 비롯한 그 쪽 분야에서 훌륭한 일을 하는 사람도 많다고 하네요. 의학적인 측면에서는 나름의 진단을 할 수 있겠지만, 말씀대로 더 크게 병든 것은 사람이 사람을 믿지 못하게 된 우리 사회라고 생각합니다.
댓글 입력 영역



Adsense

Adsense2

구글 애널리틱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