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창호 커뮤니케이션 중매媒 몸體 (Media)

기둥 뒤에 공간 있다. ☜ 링크 죽음. 할 수 없이 펌 대체 링크

많은 분이 이미 보신 것이겠지만, 나는 얼마 전에 아는 분이 알려 주셔서 뒤늦게 보고 신나게 웃었다.

그런데 이 에피소드는 내가 평소에 늘 생각하던 인터넷의 한 가지 소통 방식을 아주 잘 보여주고 있다. 블로그나 게시판, 신문 기사 댓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행태다. 벽창호 커뮤니케이션이라고나 할까. 예컨대 이렇게 진행된다.

본문 글: 이명박이 외계인으로 밝혀졌습니다. Blah Blah...
댓글 1: 헐 모든 것이 이해가 되는군요.
댓글 2: 떡 돌려야겠다.
댓글 3: 저 뉴스 출처가 <뉴농담데일리> 입니다. 믿지 마세요.
댓글 4: 헉! 정체가 이제 드러났군요.
댓글 5: 나쁜 외계인. 지구를 정복하러 왔음에 틀림없다.
댓글 6: 그거 잘못된 보도예요. 정정 보도 나왔습니다. 링크: http://newnongdamdaily.co.kr/...
댓글 7: 일본인인 줄 알았더니 외계인이었군요.
댓글 8: 외계인이었다니... 알려 주셔서 고맙습니다.

아주 흔히 볼 수 있고, 볼 때마다 머리에 쥐가 나는 느낌을 막을 수 없는 소통 방식이다.

위의 예에서 댓글 3과 6은 본문에서 제시한 정보가 갖는 오류를 지적하고 이를 바로잡는 형태를 취한다. 어떤 필자도 모든 것을 다 알 수는 없고 무오류의 철갑이란 존재하지 않기에, 누가 쓰는 글이든 본문에서 잘못된 정보가 제시될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이런 오류에 대해 이렇게 수정 및 보완 댓글이 달리는 것은 인터넷에서 유통되는 정보의 신뢰도를 높일 수 있는 아주 중요한 피드백 장치다. 이른바 집단 지성이 형성되는 한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문제는 실제로 이런 피드백이 다른 독자들에게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는 점이다. 위의 사례에서 댓글 4, 5와 댓글 7, 8이 그런 형태다. 다른 독자가 잘못된 정보를 지적하고 그 근거까지 제시했는데도, 이를 깨닫지 못하거나 무시하고 원래의 잘못된 정보를 여전히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유추할 수 있는 블로깅(혹은 게시판) 소통의 한 패턴은 '다른 사람의 댓글은 읽지 않는다'는 게 아닐까 싶다. 본문만 읽고 떠오르는 느낌이나 생각을 댓글로 적기 때문에, 본문 아래 댓글란에서 이루어지는 수정 보완 기능에 주의를 기울이지 못하는 것이다. 하긴 요즘은 본문도 다 읽지 않고 댓글을 적는 경우가 드물지 않고 '선 리플 후 감상'도 만연하는 지경이니 놀라운 일이 아닐지 모른다.

왜 댓글들을 읽지 않을까. 시간이 없다거나 하는 점을 빼면, 댓글을 쓰는 사람은 포스팅으로 인해 만들어진 토론 공간을 다수 대 다수의 소통 공간으로 보기보다는 주인장, 혹은 필자와 나와의 일대일 소통 공간으로 보는 게 아닐까. 블로그는 대개 개인 공간이므로 이러한 인식은 이해가 될 만하다. 게다가 댓글을 쓰도록 되어 있는 사이트의 디자인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일부 신문 기사 사이트에서처럼 본문 바로 밑에 댓글 작성란이 있고, 그 아래 다른 사람이 쓴 댓글이 보이는 형태라면 이러한 벽창호 현상이 발생할 가능성이 구조적으로 더욱 높다고 할 수 있다. 다른 댓글을 먼저 펼쳐 보여주지 않기 때문에, 본문과 자신의 생각을 일대일로 대응시키는 셈이다.

또 댓글에서 벌어지는 무의미한 논쟁들 때문에 댓글란을 일부러 회피하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한편, 오류를 지정하고 수정하려는 댓글(위의 예에서 3과 6)의 필자나 내용이나 소스를 신뢰하지 않을 경우, 의도적으로 수정 댓글을 무시하는 경우도 드물지 않은 듯하다. 이러한 경우는 수정 댓글을 단순히 간과한 게 아니라, 의도적으로 반대쪽(그러니까 원래의 정보)을 지지하는 의도를 드러낸 셈이 된다. X빠 포스팅에 실린 실체적 오류에 대해 X까가 아무리 내용을 지적한다 해도 다른 X빠들은 이를 참고하지 않는다.

어떠한 이유에서든, 이러한 소통 패턴은 어떤 정보가 여러 사람의 참여를 통해 수정되고 보완될 여지를 줄이는 결과를 낳는다. 아니 이런 이야기는 집어치우고, 보고 있으면 답답해서 먹은 게 얹힌 느낌이 든다. 소통이 막힌 사회, 남의 의견에 귀 기울이지 않는 세태의 상징 같아서. 댓글 달기 전에 본문은 제대로 읽고, 가능하면 댓글에서 어떤 대화가 이루어지는지도 한번 보는 게 좋지 않을까.

'기둥 뒤에 공간 있다'의 마지막에 등장하는 막무가내들은 이런 상황이 재미있어서 일부러 무시하는 의도적 벽창호족이라고 생각되긴 하지만.


 

덧글

  • MCtheMad 2010/06/06 09:14 # 답글

    어떻게 보면 그냥 자기 할말만 싸질러 놓고 간다는 느낌 같기도 해요..
  • deulpul 2010/06/06 10:11 #

    그게 댓글의 한 특성이기도 하니 어쩔 수 없다는 생각도 듭니다. 아닌 게 아니라, 댓글은 사실 쌍방향 소통 모양을 취하고 있지만, 많은 경우 일방적인 소통 방식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 점에서 자기 댓글에 달린 답글 찾아보는 기능 같은 건 편리하기도 하고 유익하기도 하다고 볼 수 있겠지요.
  • Metal 2010/06/07 00:28 # 삭제 답글

    아.. 결론은 이명박이 외계인?
  • deulpul 2010/06/07 02:12 #

    댓글을 읽으세요! 하하-.
  • 우유차 2010/06/07 09:23 # 답글

    먼저 터뜨리는 사람이 언제나 위너인 거죠. 저건 인터넷 세상에서 뿐만이 아니라 회사에서도 잘잘못을 다투는 경우에는 일어나는 일이라 '나중에 해명하는 입장'이나 '오류를 정정하는 입장'에 서게 되면 이미 오해는 받을대로 받은 상황이라 심화가 쌓이는 건 어쩔 수가 없더군요. 이잌…
  • deulpul 2010/06/07 15:58 #

    그래서 나팔 불 수 있는 자들이 활개를 치는 것이겠지요. 일단 쑤시고 보는 경찰, 일단 조지고 보는 검찰, 인터뷰하고 나서 창작해 쓰는, 신문이라고 주장하는 사이비 정치 집단 등이 모두 그 맛을 본 자들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 kirrie 2010/06/07 11:20 # 삭제 답글

    완전히 같은 이야기는 아니어도, 유명한 고전 유머(?)가 있어서 링크 달아봅니다.

    http://www.shlomifish.org/humour/by-others/how-many-newsgroup-readers-does-it-take-to-change-a-lightbulb.html

    전구를 갈아 끼우려면 몇 명의 뉴스그룹 독자가 필요한가, 에 관한 농담. ㅎㅎ
  • deulpul 2010/06/07 16:08 #

    음... 댓글러들이 서로 겹치지 않는다면, 전구 갈아 끼우는 포스팅에서 논쟁하는 사람은 원 필자를 빼고 178명이군요, 하하-. 그런데, 이 포스팅 하나만 보고 나면 전구나 전구 갈아 끼우는 일과 관련해서는 최고 전문가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전구'를 어떻게 표기해야 하는가에서부터 업계 관련자의 전문적 주장까지 모두 한 번에 들을 수 있으니까요. 이게 집단 지성인가... 집단 잉여력인가...
  • siva 2010/06/07 12:24 # 삭제 답글

    때로는 답글만이 아니라 본문도 안 읽는 사람들도 있다는 더러운 현실(....)
  • deulpul 2010/06/07 16:12 #

    본문을 안 읽으면 답글을 달지 않는 게 상식이라고 하겠습니다. 주장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기 때문이죠. 흔히 말하는 '난독증'이란, 실은 귀차니즘이나 무성의함의 다른 표현에 불과하다는 생각도 듭니다.
  • 2010/06/08 03:24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deulpul 2010/06/08 09:33 #

    그러고 보니, 길게 달린 앞 댓글들을 다 읽어보고 댓글 다는 경우는, 논쟁이 무척 재미있는 경우가 아니라면 그리 많지 않을 수도 있겠네요. 그래서 본문에 큰 오류가 벌어진 게 분명하고 댓글에서 이게 지적됐다면, 본문에 이를 반영해 두는 게 좋지 않을까 합니다. 그나저나 재미있지 않습니까? 제가 뽑은 베스트 댓글은 "네, 조수석으로 내렸습니다. 됐냐, 이 새끼야?" 였습니다...
  • 2010/06/10 01:55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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