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 섞일雜 끓일湯 (Others)

-. 두어 해 전에, 초등학교 저학년 아이들로 구성된 축구팀에서 자원봉사 코치를 했다. 체격에 맞게 정규 공보다 조금 작은 공을 쓰며, 유니폼까지 맞춰 입고 '잔디 구장'에서 공을 차는 꼬맹이 녀석들을 바라보자니, 불우하게 축구를 하던 우리 어린 시절이 생각나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 팀 아이들


녀석들은 공을 차기보다 공에 끌려 다녔다. 자석에 끌리는 철가루들 같았다. 우리도 그랬다. 이렇게 공에 끌려 다니며 얼마나 재미있었던가.

꼬맹이 팀에는 여자 아이들이 많았다. 다른 팀들도 비슷했다. 그러나 이런 구분은 무의미했다. 남자애와 여자애가 구분 없이 뒤섞여 공을 찼다. 우리 어릴 때 한국에서 공을 차는 여학생은 없었다.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다. 축구를 남자에게만 허용하는 문화는 여자에게 너무 가혹하다.

-. 시즌을 시작하기 전에 자원봉사 코치들 모임이 있었다. 이 지역 청소년 축구협회에서 나온 직원이 축구 규정집과 기초적인 훈련 자료들을 나누어 주었다. 집에 와서 규정집을 훑어 보았다. 이렇게 독해가 잘 되는 영어도 드물지 싶었다.

-. 시즌 중에는 토요일마다 다른 팀과 시합을 했다. 잔디밭 위에 라인과 골대를 설치하고 애들을 정렬시켜 인사를 하게 한 후 시합이 시작된다. 장난 같은 시합인데도, 킥 오프를 하기 전에 사이드라인 밖에서 아이들을 지켜 보노라면 내가 뛰기라도 할 것처럼 가슴이 두근거렸다.

My heart leaps up when I behold
A rainbow in the sky
So was it when my life began
So is it now I am a man
So be it when I shall grow old
Or let me die!
(William Wordsworth, 'The Rainbow' 일부)

무지개를 축구공으로 바꾸면 딱이다.

-. 어릴 때, 장래의 꿈이 축구선수인 때가 있었다. 아마 초등학교 3, 4학년 쯤이었던 듯하다. 그 때, 축구는 나에게 신앙이었다. 앉은뱅이 책상 위의 벽에 붙여둔 수업 시간표 뒤에, 나는 축구 선수가 되겠다는 다짐을 아무도 몰래 써 놓았다. 나는 아침마다 실로 경건하게 축구에 경배하고는 집을 나서곤 했다.

이 즈음 일기를 보면 축구 이야기가 수시로 등장한다. 무용담도 있고 축구 하다 다친 이야기도 있다. 나는 어릴 때 팔에 깁스를 한 적이 두 번 있는데, 그 중 하나는 축구를 하다가 다쳤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일기에는 어시스트를 했다면서 좋아하거나, 누가 혼자 공을 몰고 다녀서 화가 났다거나 하는 대목도 나온다. 나는 축구에 교육 효과가 있음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 축구화를 신어 본 것은 직장에서 축구 동호회에 들어갔을 때가 처음이다. 축구화를 신어본 적이 없으므로 사이즈를 제대로 맞추지 못했다. 안 맞는 신발로 미련하게 공을 차다가 엄지 발톱에 피멍이 들었다. 발톱은 며칠 뒤 통째로 빠져 버렸으며, 나는 한 달 가까이 불편하게 걸어 다녀야 했다.

-. 일요일에는 동네에 있는 초등학교에 갔다. 그 곳에는 언제나 축구 하는 사람, 혹은 애들이 있었다. 눈치를 좀 보다가, 나랑 비슷하게 철이 없는 어른 하나를 잡아 가위바위보를 해서 편을 가른 뒤, 공 차고 있는 사람들, 혹은 애들에 끼면 그만이었다. 가끔 투덜대는 놈들이 있었지만, 대개는 그냥 끼워주었다. 가끔 하드를 사줬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 미국에 처음 왔을 때, 집 뒤에 엄청나게 너른 잔디 축구장이 있었다. 파인 데 하나 없이 고른 게, 옛날 효창운동장의 그 우악스런 인조 잔디보다 더 고왔다. 미국에서 제일 처음 산 것들 중 하나가 5호짜리 축구공이었다. 이 공을 가지고 잔디 축구장으로 가 봤는데, 허락 없이 안에 들어가 놀아도 되는지 알 수가 없었다. 며칠 동안, 라인 안에 들어갈 생각은 못 하고, 골대 뒤에 공간에서 놀다가, 어느 날 운동장에 붙어 있는 관공서(교육청이었다)에 들어가서 물어보았다.

나: 저기서 공 차도 돼요?
그: 네?
나: 저기 운동장에 개인이 들어가 공 차도 돼요?
그: 저기는 공원이에요.
나: 네?
그: 공원이라고요.
나: 공원이니까 못 들어 가는군요?
그: 공원이니까 마음대로 들어가서 놀아도 된다고요.

주민들을 위해 만들어 둔, 울도 담도 없는 공원에 허락 받아야 들어갈 수 있냐고 물어 온 억압순응형 주민은 그 동네에서 나 밖에 없었을 것이다.

-. 아시다시피 미국에서는 축구를 사커라고 한다. 풋볼은 미식축구다. 나는 미식축구를 풋볼로 부르는 것이 정당하다는 생각을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다. 경기의 대부분을 공을 던지고 잡고 뛰고 넘어뜨리고 하는 움직임으로 채우는 경기, 발로 공을 차 넣을 때보다 손으로 들고 뛸 때 점수를 두 배, 혹은 여섯 배까지 더 주는 경기를 풋볼이라고 부르는 것은 부당하다. 이 경기는 풋볼보다는 핸드볼이라고 불러야 한다. 내가 미식축구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이유 중에는, 이처럼 축구의 이름을 빼앗겼다는 심리적 박탈감이 자리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위키에 따르면 '풋볼'은 꼭 발을 쓰는 구기가 아니라도, 발로 뜀박질을 하며(on foot) 하는 경기를 통틀어 말한다는 설도 있다고 한다. 중세 유럽에서 귀족들은 말 타고 하는 대신 천민들은 발로 열심히 뛰어다니며 게임을 한 것을 이르는 말이라는 거다. 어쨌거나 미국넘들의 축구에 대한 관심이 다른 나라 사람들보다 인색한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오늘 TV 뉴스에서는 "이번 월드컵 경기를 볼 예정이십니까?"라는 질문에 "아니오"라고 답한 사람이 79%였다고 나온다.

-. 간혹 이런 질문을 받는다: "골프 안 치세요?" 나는 진실로 자랑스럽게 대답한다. "공 차는데요." 듣는 놈이야 웬 빈티냐고 생각할지 몰라도, 뻑적지근하게 돈을 발라 마련한 장비로, 남들은 못 놀게 막아 둔 넓디 넓은 잔디밭에서 조막만한 구멍에 공을 집어넣기 위해 낑낑대는 행위를 나의 꿈, 나의 이상이었던 축구에 비할 수는 없다.

-. 이런 말이 가능할지 모르겠지만, 축구는 빈자들의 게임이다. 둥글게 생긴 물체만 있다면 할 수 있다. 풀밭에서도 야산에서도 황무지에서도 모래밭에서도 아스팔트 위에서도 할 수 있다. 달리기나 맨손 체조를 빼면, 가장 적은 비용으로 가장 많은 사람이 즐길 수 있는 운동이라 할 수 있다. 이것이 축구의 힘이다. 이것이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나라에서부터 가장 가난한 나라에 이르기까지 사랑을 받는 축구의 저력이다. 가난한 나라의 뒷골목에서 태어난 아이가 영국이며 이탈리아며 독일에서 꿈을 실현할 수 있는 운동이 몇이나 되겠는가.


비닐봉지로 만든 공을 차는 케냐 아이들


-. 월드컵을 커버 스토리로 잡은 지난 주의 <타임>은 축구가 민주적인 운동이라고 한다. 기사에 인용된 나이키 부사장은 축구에 대한 사람들의 열정이 다른 경기의 그것과는 차원이 다르다고 말한다. 이 잡지의 맨 뒷장에 실린 글 'Go, North Korea!' 에서 칼럼니스트는 1966년 북한의 월드컵 경기를 본 뒤 평생 북한 축구의 팬이 되었다고 말한다.

-. 욕 먹을 이야기지만, 앞에 쌓인 할 일들을 생각하면 한국이 너무 잘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러나 밝은 면을 봐야겠지. 한국이 잘 하면 잘 해서 좋고, 혹시라도 성적이 좋지 않다면 내 할 일을 할 수 있어서 좋은 거다.

-. 월드컵이 시작됐고, 잠시 뒤면 한국의 첫 경기가 벌어진다. 무지개를 보는 워즈워드처럼, 가슴이 뛴다.


※ 두 번째 사진: Homemade Soccer

 

덧글

  • 2010/06/12 20:01 # 삭제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deulpul 2010/06/14 06:11 #

    인용해 주신 구절을 보고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모든 '鄕人'에게 싫은 소리를 듣지 않고 칭찬을 받고자 하는 마음이 전혀 없다고 자신 있게 말하기 어려웠기 때문이었습니다. 덕분에 언젠가 썼던 증오의 긍정성, 또 관용은 불관용을 관용하지 않는다는 생각 등에 대해서도 잠시 돌이켜 볼 수 있었습니다. 큰 힘이 되는 말씀 주셔서 고맙습니다. 마지막에 지적해 주신 부분은 사실입니다! 하하-. 이미 알고 있는 것보다 더 잘 읽히는 게 어디 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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