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또 송덕비냐" 퇴임 동작구청장 찬양 '눈총'

기사 제목이 잘못 되었다. 사또 송덕비치고 저런 게 어디 있는가. 아마 저 송덕비는 우리나라 방방곡곡 송덕비를 다 통틀어서, 으리으리하고 뻑적지근하기로 몇 손가락 안에 꼽힐 것이다. 조선 수백 년 동안 한반도 곳곳에 세워진 모든 송덕비를 다 끌고 와 봐야, 이 송덕비를 당하지 못할 것이다. 이렇게 레주메 복사해 넣고 사진까지 박아 넣은 송덕비에 비하면, 애민하고 우국하여 하늘의 별처럼 빛나는 청백리들의 송덕비는 소박하다 못해 빛이 바랄 것이다. 아마도 이 송덕비의 주인공은 한민족 2천년 역사에서 보기 드물게 큰 덕을 남기고 돌아가신 분인 모양이다.
뭐? 죽지도 않았다고? 왜 그런데 살아 있는 사람의 송덕비를 저렇게 뻑적지근한 추모비 삘로 만들었는가? 죽으란 이야긴가?
저 송덕비의 주인공이 동작구청장으로 12년을 재직했다고 하니, 한 때 나도 그의 '백성' 중 하나였을 것이다. 그 때 그가 어떤 선정을 베풀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으나, 송덕비를 세우게 한 그의 덕은 사실이라고 믿는다. 내 보기에 그가 크게 부덕했던 것은 자리를 물러나면서 저 비를 건립하는 일을 막지 못한 것이다.
덕 높고 애민하기가 이를 데 없었던 연암 박지원은 경상도 안의현감을 지낼 때, 백성들이 선정에 감읍하여 송덕비를 세우려 하자, 자기 뜻을 몰라서 하는 일이라며 비를 깨부수고 처벌하겠다고 크게 꾸짖었다. 또 실학자 안정복도 충청도 목천현 현감직을 떠난 뒤, 그를 그리워 한 백성들이 '떠난 목민관을 그린다'는 뜻의 거사비(去思碑)를 세웠다는 소식을 듣고 크게 부끄러워 하며 다음과 같은 시를 지었다.
이런 기라성 같은 선현들도 허름한 송덕비 하나 세우는 것을 크나큰 수치로 생각했다. 송덕비를 세울 만큼 진정 덕이 있고 선정을 베풀었던 구청장이라면, 저 으리으리한 옻빛 돌에 새긴 자기 이름 석자와, 함께 더렵혀진 부모의 이름과, 자기의 생애와 자기 얼굴을 치욕스럽게 생각해야 마땅할 것이다. 수치스럽지도 않은가.
목민도 아닌 내가 아끼고 아끼는 정약용의 <목민심서> 마지막인 해관육조(解官六條)편에는 다음과 같은 말이 나온다.
정치든 인생이든, 야구든 바둑이든, 마무리를 잘 해야 한다. '선공후사'라는 좋은 좌우명을 갖고 계시고 송덕비를 받을 만큼 덕이 있으신 분이라면 마무리까지 잘 하시리라 믿는다. 잘못하면 돌에 새긴 치욕이 천 년을 간다.
※ 사진: 경향닷컴 (본문에 링크)

기사 제목이 잘못 되었다. 사또 송덕비치고 저런 게 어디 있는가. 아마 저 송덕비는 우리나라 방방곡곡 송덕비를 다 통틀어서, 으리으리하고 뻑적지근하기로 몇 손가락 안에 꼽힐 것이다. 조선 수백 년 동안 한반도 곳곳에 세워진 모든 송덕비를 다 끌고 와 봐야, 이 송덕비를 당하지 못할 것이다. 이렇게 레주메 복사해 넣고 사진까지 박아 넣은 송덕비에 비하면, 애민하고 우국하여 하늘의 별처럼 빛나는 청백리들의 송덕비는 소박하다 못해 빛이 바랄 것이다. 아마도 이 송덕비의 주인공은 한민족 2천년 역사에서 보기 드물게 큰 덕을 남기고 돌아가신 분인 모양이다.
뭐? 죽지도 않았다고? 왜 그런데 살아 있는 사람의 송덕비를 저렇게 뻑적지근한 추모비 삘로 만들었는가? 죽으란 이야긴가?
저 송덕비의 주인공이 동작구청장으로 12년을 재직했다고 하니, 한 때 나도 그의 '백성' 중 하나였을 것이다. 그 때 그가 어떤 선정을 베풀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으나, 송덕비를 세우게 한 그의 덕은 사실이라고 믿는다. 내 보기에 그가 크게 부덕했던 것은 자리를 물러나면서 저 비를 건립하는 일을 막지 못한 것이다.
덕 높고 애민하기가 이를 데 없었던 연암 박지원은 경상도 안의현감을 지낼 때, 백성들이 선정에 감읍하여 송덕비를 세우려 하자, 자기 뜻을 몰라서 하는 일이라며 비를 깨부수고 처벌하겠다고 크게 꾸짖었다. 또 실학자 안정복도 충청도 목천현 현감직을 떠난 뒤, 그를 그리워 한 백성들이 '떠난 목민관을 그린다'는 뜻의 거사비(去思碑)를 세웠다는 소식을 듣고 크게 부끄러워 하며 다음과 같은 시를 지었다.
삼 년간이나 목천의 밥으로 배를 채우지 못하면서도(三年不飽木州飯)
재주 없이 먹기만 한다고 부끄럽게 여겼었는데(自分無才愧素餐)
우습게도 복귀정에 세워진 한 조각 돌(可笑龜亭一片石)
거기에다 내 이름 남겨 후인들에게 보이다니(陋名留與後人看)
(이선희 한국학중앙연구원 전임연구원 옮김)
이런 기라성 같은 선현들도 허름한 송덕비 하나 세우는 것을 크나큰 수치로 생각했다. 송덕비를 세울 만큼 진정 덕이 있고 선정을 베풀었던 구청장이라면, 저 으리으리한 옻빛 돌에 새긴 자기 이름 석자와, 함께 더렵혀진 부모의 이름과, 자기의 생애와 자기 얼굴을 치욕스럽게 생각해야 마땅할 것이다. 수치스럽지도 않은가.
목민도 아닌 내가 아끼고 아끼는 정약용의 <목민심서> 마지막인 해관육조(解官六條)편에는 다음과 같은 말이 나온다.
수령이 죽은 뒤에 백성들이 그를 생각하여 사당을 세워 제사를 지낸다면, 수령이 남긴 사랑이 얼마나 큰지를 짐작할 수 있다. 살아 있을 때 사당을 세우는 것은 예가 아니다. 어리석은 백성들이 이런 짓을 해서 서로서로 모방하며 풍속이 되어버렸다. 덕을 돌에 새겨 칭송함으로써 영원히 본보기가 되게 하는 것을 선정비라고 한다. 스스로 마음으로 반성한다면 부끄럽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은혜를 칭송하고자 하여 만든 나무 비는 찬양하는 것도 있고 아첨하기 위한 것도 있으니 서는 족족 뽀개 버리고 그 같은 짓을 엄히 금해서 치욕을 당하는 일을 스스로 막아야 한다.
(旣沒而思 廟而詞之則其遺愛 可知矣 生而詞之 非禮也 愚民爲之 相沿而爲俗也 刻石頌德 以示悠遠 則所謂善政碑也 內省不愧 斯爲難矣 木碑頌惠 有誦有諂 隨卽去之卽行嚴禁 則毋低乎恥辱矣)
정치든 인생이든, 야구든 바둑이든, 마무리를 잘 해야 한다. '선공후사'라는 좋은 좌우명을 갖고 계시고 송덕비를 받을 만큼 덕이 있으신 분이라면 마무리까지 잘 하시리라 믿는다. 잘못하면 돌에 새긴 치욕이 천 년을 간다.
※ 사진: 경향닷컴 (본문에 링크)
덧글
지나 2010/07/07 09:33 # 삭제 답글
지역민이 존경하는데 그게 왜 문제가 되죠?
혹시 경상도 분이신가?
덴노 2010/07/07 11:42 # 삭제
사이먼 2010/07/07 09:35 # 삭제 답글
박통 시체 운구차량도 국가에서 보존해주는 우리가 남이가 정신만하겠습니까 하하하..
푸른마음 2010/07/07 10:19 # 답글
....이 기사대로라면 정말이지 어이가 안드로메다 저편으로 날아감을 느낍니다.
와 2010/07/07 13:20 # 삭제
미스트 2010/07/07 11:40 # 답글
근데 지역을 빛낸 인물이라는건 좀... ....누군지도 모르겠는데 말입니다.
유일한 박사와는 차이가 좀 있지 않으려나 -_-;;;
700만원 2010/07/07 12:59 # 삭제 답글
예산도 쓰지 않고, 굳이 3선 임기 끝날 때까지 기다렸다가 만들었다니까...
남 보기 민망하기는 해도 좀 봐줘도 될 것 같습니다.
아마 몇 년 지나서 원장이랑 직원들 물갈이 되면 알아서 치울 듯.
제라늄 2010/07/07 13:02 # 답글
11111 2010/07/07 13:50 # 삭제 답글
신문보고 얼마나 식겁했는데.....
222222 2010/07/07 14:19 # 삭제 답글
신문보고 얼마나 식겁했는데.....
백범 2010/07/15 12:42 #
http://www.google.co.kr/search?hl=ko&newwindow=1&complete=1&q=%EA%B9%80%EB%8C%80%EC%A4%91+%EC%9D%B4%EC%83%81%ED%98%B8+%EC%9B%90%EC%A1%B0&btnG=%EA%B2%80%EC%83%89&lr=&aq=f&aqi=&aql=&oq=&gs_rfai=
까지... 경악 그 자체입니다.
김대중대교, 김대중공항, 후광광장, 광주시내 어디엔 김대중컨벤션 외에도 김대중기념관, 어디 김대중 강당하고 김대중관 도 있더라능... 인간을 우상화하는게 민주화???
과연 누구를 위한 민주화 운동이었던가...
우유차 2010/07/07 14:48 # 답글
ㅋㅋㅋㅋ 2010/07/07 15:01 # 삭제 답글
봉하의 노라미드 어쩔;;
거기에 비하면 아주 작은 비석임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