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랑소년사 12: 나체 구보 사건 연결連 이을續 (Series)



"와... 쟤들 봐라!"

창 쪽 분단에 앉아있던 한 녀석이 소리를 쳤다. 자습 시간이라 담임 선생님은 없었다. 시간을 아껴가며 친구랑 장난을 치거나 동화책을 보던 아이들이 우르르 창가로 모였다.

아직 쌀쌀한 4월의 운동장에서 아이들 한 떼가 달리기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희한한 일이다. 모두 윗도리를 벗었다. 일부는 바지도 벗었다. 반나체로 운동장을 달리는 아이들은 자세히 보니 옆반 아이들이었다. 남녀 모두 상의는 없었고, 남자애들은 바지까지 없었다.

4학년 2반 담임 선생님은 악독했다. 항상 얼굴에 두텁게 분을 바르고 다니던 30대 중반 여선생이었다. 이 선생님은 아이들을 무자비하게 패는 것으로 유명했다. 4학년으로 올라가며 새로 반이 편성될 때, 이 선생님의 반이 된 아이들은 모두 한숨이나 탄식을 토해냈다.

소년의 학교 초등학생들은 선생님에게 자주 맞았다. 선생님들은 살살도 때리고 우악스럽게도 때렸다. 맨손으로 때리기도 하고 몽둥이로 때리기도 했다. 자기 손을 대기가 귀찮으면 아이들끼리 맞따귀를 때리도록 했다. 때리고 맞는 것은 학교 일상 중 하나였고 교육 문화 중 일부였다.

소년도 예외는 아니었다. 무슨 잘못을 저질러, 이를테면 수업시간에 짝꿍과 말을 나누다 선생님의 눈에 띄어 매를 맞을 때도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조심하고 근신해도 빠져나갈 수 없는 매타작도 있었다. 성적이 떨어졌다고 때리거나(성적이 영원히 계속 오를 수는 없다) 무슨 일로 반 전체를 대상으로 집단 구타를 할 때는 학급의 그 누구도 피할 도리가 없었다.

그 중에서도 2반 담임 선생님은 유명했다. 오죽하면 별명이 마녀였다. 초등학생들이 좀더 영악했다면 그보다 더 흉칙한 별명을 생각해 내었겠지만, 그래도 이 별명은 초딩들 나름대로 극단적인 혐오와 불만을 담은 것이었다.

이 마녀는 빗자루를 타고 다니지 않고 대신 아이들에게 휘둘렀다.

초등학생들도 어리긴 하지만 여전히 사람이다. 눈과 코가 있는 것처럼 눈치도 있고 코치도 있다. 매를 맞는 것은 늘 두렵고 끔찍한 일이지만, 마녀한테 맞는 것은 특히 더 그랬다. 아이들을 구타할 때의 그녀는 진심으로 아이들을 미워하고 더러워하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막대기로 때리기보다 따귀 때리기를 더 자주 한다는 점도 그랬다. 따귀를 맞는 것은 손바닥을 맞는 것보다 훨씬 더 아팠고 수치스러웠다. 잔뜩 인상을 찌푸리며 따귀를 날리는 양을 보면 분명 선생님도 좋아서 하는 일은 아니었다. 그런데도 그녀가 왜 그렇게 애들 때리기를 즐겨하는지 소년과 친구들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4학년이 된 지 얼마 안 되어 소년도 마녀에게 얻어맞은 적이 있었다. 역시 자습 시간이었는데, 아이들이 좀 떠들었는지 옆반에서 마녀가 드르륵! 하고 문을 열고 들어온 것이다.

"반장 나와!"

웬일인가 싶어 나갔더니 갑자기 눈앞에 불이 번쩍 한다. 소년의 통통한 볼에 예의 그 싸대기가 사정없이 날아온 것이다.

"반장놈이 애들도 조용히 못 시키고 뭐하는 거야!"

효과는 있었다. 얼떨결에 따귀를 맞고 볼을 만지던 소년도 조용했고, 학급 친구들도 조용했다.


--- ** --- ** ---


아이들이 반 나체로 운동장을 달리던 그 시간이 끝났다. 쉬는 시간에 2반 친구들이 사연을 전해주었다. 마녀는 수업 시간에 떠든 아이들을 7, 8명 모아서 볼때기를 잡고 따귀를 때리려다가 갑자기 귀찮다는 듯이 옷을 벗도록 명령했다는 것이다. 잡혀 나온 아이들도, 자리에 앉아 숨을 죽이고 있던 아이들도 모두 무슨 말인지 영문을 몰랐다. 마녀는 재차 옷을 벗으라고 날카롭고 싸늘하게 명령했다.

"너희도 벗어!"

어떻게 해야 하나 몰라 엉거주춤하던 두세 여학생들에게도 명령이 날아왔다. 남자애들은 바지까지 벗겼다. 남루한 속옷이 드러났다. 아이들은 웃을 수 없었다.

"이제부터 그대로 나가서 운동장을 다섯 바퀴 뛰고 온다!"

4학년 초딩들은 어린 돼지들처럼 팬티만 입고 우르르 몰려나가 운동장을 뛰었다. 여학생들은 울면서 뛰었다.


--- ** --- ** ---


마녀를 존경하고 좋아한 아이는 별로 없었다. 모두 뿌득뿌득 이를 갈았지만, 초딩들이 할 수 있는 복수는 별로 없었다. 학부모가 뻔질나게 마녀를 찾아다녔다면 매를 좀 덜 맞았을지 모르지만, 다들 뻔한 살림이고 생활이라 애들을 그렇게 공들여 보살필 부모도 많지 않았다. 매를 맞은 아이들은 마녀가 노처녀라서 그런다고 뒤에서 욕이나 실컷 하는 수밖엔 없었다.

마녀가 아이들을 학대한 것 때문에 교장 선생님에게 불려갔다거나 경고를 받았다는 이야기는 들려오지 않았다. 그랬다면 그 뒤로도 구타와 학대가 계속되는 일은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마녀의 악행 중에도 남녀 아이들 옷을 벗겨 운동장을 돌린 것은 전설적인 일이 되었다.

이 사건은 당사자들에게도 끔찍한 기억이었겠지만 소년에게도 트라우마를 남겼다. 음산한 운동장에서 남루한 속옷을 입고 고개를 푹 숙이고 종종걸음을 치던 아이들의 불우한 모습은 소년의 뇌리에 생생히 박혔다. 그 뒤로, 장래 선생님이 되겠다고 말하는 아이들은 죄다 이상하게 보였다.

게다가 웃통을 벗기운 채 운동장을 달리던 아이들 중에는 소년이 좋아하던 여학생도 있었다. 그 애도 팔짱을 끼고 울면서 뛰었다. 소년은 두고두고 마음이 아팠다. 영문도 모르고 마녀의 따귀를 맞을 때보다 더 아팠고 마녀가 더 미웠다.

이 학교를 떠날 때까지 마녀의 반에 들지 않은 것은 행운이었다. 하긴 마녀뿐 아니라 다른 선생님들도 늘 때리긴 했다. 소년을 비롯한 초등학생들은 그 여린 손과 뺨, 가느다란 종아리로 선생님들의 구타를 받아내었다. 이들이 작은 사람들이었다는 점은 때리는 선생님들한테나 맞는 아이들한테 모두 불행한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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