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브 엔슬러의 암 섞일雜 끓일湯 (Others)

분노는 병이자 약이다. 반복되는 분노는 오장육부 곳곳에 곰팡이처럼 흡착되어 죽음에 이르는 병이 되지만, 때로 분노는 삶을 지탱하는 약이 되기도 한다. 치열하고 전투적인 삶일수록 분노가 힘이 된다. <인빅터스>에서 럭비팀 주장 프랑수아가 내일의 경기를 앞두고 '앵그리한 상태'가 무뎌지지 않도록 스스로를 다그칠 때, 분노는 약이자 힘이다.

누구보다 세상을 치열하고 전투적으로 살아 온 이브 엔슬러에게도 분노는 삶을 추동해 온 힘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이브 엔슬러. 연극 <버자이너 모놀로그>를 통해 여성성에 대한 인식을 한 단계 높인 극작가. 책상 앞에 앉아서 글만 쓰지 않고, 세상을 뛰어다니며 여성에 대한 폭력에 맞서는 사회 활동을 전개하면서 '앵그리한 상태'를 유지해 왔다.

그녀가 초석을 놓은 V-데이 운동은 한 사람의 분노가 세상을 얼마나 바꿀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좋은 사례일 것이다. 1996년에 뉴욕 오프 브로드웨이의 한 극장에서 처음 공연한 <버자이너 모놀로그>에서 비롯된 V-데이 운동은 현재 130개 나라로 확산되었으며, 2009년 한 해에 세계 1천500여 곳에서 5천 개 이상의 행사가 열려 8천만 달러에 가까운 기금을 조성했다.

"암은 제멋대로이지만 폭력은 시스템이다"

엔슬러는 지금 암과 싸우고 있다. 자궁암이다. 암에 걸렸다는 것은 올 6월 <더 가디언>에 그런 사실이 포함된 에세이를 쓰면서 널리 알려졌다. 어느 정도 상태인지는 분명하지 않지만, 수술을 받았고 몇 달째 약물 치료를 하고 있다고 썼다. 그리고 지금 그녀는 분노하고 있다. 분노? 엘리자베스 퀴블러-로스의 '5단계'가 생각나실 것이다. 말기 중증 환자들에서 나타나는 다섯 가지 단계, 부정-분노-협상-우울-수용. 엔슬러는 두 번째 단계에 있는 것인가.

그녀의 분노는 좀 다르다. 자신에게 암이 찾아왔다는 사실에 대한 분노가 아니기 때문이다. 물론 성인(聖人)이 아닌 이상, 죽음을 예약한 것이나 다름 없는 병을 무던히 초극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병을 대하는 자세로만 보자면, 엔슬러는 상황을 좀더 담담하고 냉정하게 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렇게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암은 무섭고 고통스럽다. 암은 개인의 삶을 통째로 뒤흔들고, 모든 것을 확신할 수 없게 만들며, 죽음이라는 막다른 골목에 직면하도록 몰아 간다. "왜! 왜 나에게! 왜 하필이면 지금!" 하는 비명을 지르며 신을 원망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결국 우리는 이러한 질문이 바보같고 공허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암이란 언제나 존재해 왔다. 내가 나쁜 사람이어서 암이 들이닥친 것은 아니다. 암이 어떤 허약한 신체를 공격할지 결정하는 것은 종종 제멋대로이다. 이게 인생이다."

그런데 엔슬러는 왜 분노하는가. 암과 투병중인 엔슬러의 분노는 자기 몸 안의 암세포에서 나오는 게 아니라, 멀리 떨어진 아프리카의 한 나라에서 비롯된다.

엔슬러가 아프리카의 콩고민주공화국을 찾은 것은 3년 전이다. 내전으로 얼룩진 무법천지인 이 나라에서 여성이란 그저 성폭행의 대상으로만 존재하고 있을 뿐이었다. 엔슬러가 찾아 간 콩고의 한 병원은 여성 환자 200여 명을 수용하고 있었는데, 대부분이 집단 성폭행과 고문으로 참혹한 후유증을 겪는 상태였다. 생식기가 손상되어 통째로 제거해야 하는 경우도 있었고, 질과 항문, 혹은 요도 사이에 구멍이 뚫려 소변이나 대변을 통제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다. 9개월 된 영아에서부터 80 노인네에 이르는 여성들이 무차별적으로 집단 성폭행을 당했다. 엔슬러는 말할 수 없는 충격을 받았다.

엔슬러와 V-데이 활동가들은 즉시 이러한 상황에 대처하는 운동을 조직했다. 상처 받은 여성들을 치료하는 데 나선 것은 물론이고, 대규모 캠페인을 벌여 여성에 대한 폭력에 저항하고 대중을 교육시켰다. 콩고 여성의 비극을 세계 곳곳에 알리며, 여러 나라의 정부와 의회, 유엔의 지지를 이끌어 내었다. V-데이 운동의 모태인 연극 <버자이너 모놀로그>를 콩고 곳곳에서 열심히 공연하는 일도 빠지지 않았다.

아침마다 힘을 주는 분노들

이것은 큰 성과였으나, 이런 운동만으로 콩고 여성의 참혹한 상황이 일거에 끝나지는 않았다. 내전의 혼란 속에서 여성들은 여전히 성폭행당하였고 칼에 찔려 죽거나 사지가 잘려 나갔다. 인권 활동가들조차 당연한 듯 살해되었다. 내전이 벌어진 지 10년도 더 됐다. 그 동안에 6백만 명 이상이 목숨을 잃었으며, 50만 명 이상의 여성이 성폭행의 대상이 되었다. 그리고 이런 일은 지금 바로 이 순간에도 여전히 진행중이다.

엔슬러가 칼럼을 쓰기 2주 전인 5월 말에도 콩고의 저명한 인권 운동가가 끔찍하게 살해되었고, 폭력 피해자 여성들을 주로 치료하는 판지(Panzi) 병원 의료진의 가족인 열 살, 열두 살 남매가 집 앞에서 총격을 받아 '처형'되었다. 7월 말에는 르완다와 콩고 반군들이 한 마을을 점령한 뒤 여성 주민 200여 명과 소년 여섯 명을 성폭행했다. 유엔 평화유지군 기지로부터 불과 수 마일 떨어진 곳에서 벌어진 일이었다. 그런데도 제대로 보고조차 되지 않았다. 전쟁이 존재하는 한, 이런 비극을 막을 수 있는 효과적인 방법은 없었다.

암과 싸우며 병상에 누워 있는 엔슬러를 암보다 더 절망시키고 암보다 더 분노하게 만드는 것은 콩고에서 걸려오는 전화들이었다. 암 치료의 부작용은 이겨내기 쉽지 않았으나, 콩고에서 전해지는 끔찍한 소식들은 그와 비교도 할 수 없는 정도의 파괴력으로 엔슬러를 괴롭혔다. 콩고의 상황은 그녀를 물고 할퀴었으며, 이러한 비극에 무관심한 국제 사회, 아무런 힘이 되지 않는 유엔, 여성이 겪는 참극보다 아동 비만에 더 관심이 많은 미셸 오바마조차 엔슬러를 분노케 하고 있다. 이것은 몸 속의 암세포보다 더 괴롭고 더 다루기 어려우며 더 절망적인 암세포들이었다.

하지만, 병은 곧 약이기도 하다. 분노가 사람을 무너뜨리는 병이라면 삶을 치열하게 밀고 갈 약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지난 9월 초의 한 인터뷰 자리에 엔슬러는 스카프를 하고 나타났다고 한다. 항암 치료를 받느라 머리가 빠졌기 때문이었다. 이 자리에서 엔슬러는 "콩고의 여성이 나를 살리고 있다"라고 말한다. 신체적 고통과 절망 속에서 아침마다 잠이 깰 때, 엔슬러는 콩고 여성을 떠올리며 삶을 살아갈 힘을 얻는다.

"아침마다 나는 내가 괜찮다고 다짐합니다. 내장이 다 빠져 나온 콩고 여성이 아침에 일어날 수 있는데, 내가 그러지 못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됩니다. 그리고 그들이 추던 춤을 떠올립니다. 세상 아무도 기억하지 않고 돌아보지 않는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춤추고 노래하던 그들 모습을 생각하면, 나는 하루빨리 건강해져야 한다는 의지를 버릴 수 없습니다. 나는 콩고 여성이 폭력으로부터 자유를 누리는 모습을 내 눈으로 볼 그 날까지 살아 남아야 합니다. 콩고 여성이 자유를 누린다면, 세상의 모든 여성이 자유를 누린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덧글

  • xmaskid 2010/10/06 02:53 # 답글

    저는 DVD를 통해서 그녀를 접했는데 매우 공감했던 기억이 납니다. 콩고에서 일어나는 일은 여러매체에서 접할 수 있어서 그 참혹함을 알고는 있지만 그 문제의 거대함에 무력감을 느낄수 밖에 없었어요.
  • deulpul 2010/10/07 19:39 #

    그래서 엔슬러 자신도 전쟁이라는 상황을 극복하지 않으면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하고 국제 여론, 특히 강대국의 마음을 움직이려고 애쓰는 것 같습니다. 그렇게 보자면 이 문제가 얼마나 해결하기 어려운 것인지 실감이 납니다.
  • 우유차 2010/10/06 09:23 # 답글

    저는 오늘 처음 알긴 했지만 콩고의 문제는 한국에선 꼼꼼하게 국제 정세를 챙겨보는 사람이 아니라면 알기 어려운 이야기가 아닐까 싶어집니다. 물론 제 문제가 더 크긴 하지만 신문 쪼가리 어디에서도 잘 안 보이는 뉴스라는 사실 그 자체만으로도 오늘은 뭔가 씁쓸하군요.
  • deulpul 2010/10/07 19:42 #

    근접성으로 보자니 멀기도 하고, 희귀성으로 보자니 흔하기도 하고... 사건은 엄청나고 비극을 겪는 개인들의 고통은 더할 나위 없이 끔찍하지만, 뉴스 가치로서는 점점 떨어져 가는 것이겠지요. 그래서 이렇게 계속 주의를 환기하는 사람이 더욱 가치있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 소리 2010/10/06 09:45 # 삭제 답글

    페미니스트들은 일찍이 분노가 일상속에 스며든 여성억압 특히 가정폭력이나 성폭려에 에 대해 소리 지르고, 고발하고 투쟁하게 하는 에너지가 될 수 있음을 발견했죠. 그리고 분노하는 것조차 허용되지 않았던 가부장적 사회의 여성들에게 분노하는 법을 가르쳤던 것이죠. 하지만 분노는 계속되는 억압의 상태에서 튀쳐나오게 하는 힘, 두려움에 맞서서 투쟁을 할 수 있는 힘을 주지만, 이미 상처 받은 몸과 영혼을 치료하지는 못하는 한계가 있죠. 분노로 암을 이길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슬픕니다. 하지마 마지막까지 무기력하지 않는 그녀는 아름답게 느껴집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 deulpul 2010/10/07 19:46 #

    정말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분노는 힘이 되지만, 힘 내는 동력으로서는 참 피곤한 거에요. 자기를 조금씩 깎아 먹으면서 힘을 내는 것이랄까요. 엔슬러의 경우는 이제 분노보다는 진보한 현대 의학이 암과 싸우는 데 좋은 효과를 내 주었으면 하는 생각입니다.
  • 소리 2010/10/10 03:04 # 삭제 답글

    들풀님, 전 과연 "진보한" "현대의학"이 얼마나 도움을 줄수 있을지 전 회의스럽습니다.
    사람의 생명을 다루는 드라마에 희열을 느껴서 ER 을 비롯하여 그레이스 아나토미등을 즐겨보았지만, 드라마를 통해서 느끼는 것도 "현대의학"의 한계 뿐입니다. 저희가족을 비롯하여 주위의 많은 사람들이 "진보한" 현대의학이라는 이름으로 자행되는 온기없는 치료로 인해 오히려 더 큰 고통을 받다가 떠나거나 의학이란 우상에게 질질끌려 다니면서 사는 경우도 많이 봤구요.

    어차피 떠나야 하는 인생이라면, 남은 시간동안, 상처받은 자신의 몸과 영혼을 잘 위로하고 주위사람들과 이별의 잔치를 벌이고 자연으로 돌아갈 준비를 하는 것이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 deulpul 2010/10/12 00:21 #

    무슨 말씀인지 잘 알겠고, 저도 비슷한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죽음을 대하는 자세에 대한 것은 써 둔 게 있으니 언젠가 말씀드릴 기회가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의학이 모든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지도 않고, 생명의 인위적 연장이 오로지 바람직한 것인가는 검토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저 개인적으로는, 인간답게 살 권리가 중요한 것처럼 인간답게 죽을 권리 역시 중요하고 그런 점에서 존엄사를 인정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엔슬러에 대한 본문, 그리고 위의 답글은 다음과 같은 점을 말씀드린 것이라고 보시면 어떨까요: 저와 가장 가까운 두 분이 암 진단을 받으셨습니다. 한 분은 이로 인해 돌아가셨고, 다른 한 분은 수술을 받고 치료를 하여, 상당한 기간이 지났는데 재발을 하지 않아 이제 완치된 것으로 평가되었습니다. 완치된 분이 처음 진단을 받았을 때 현대 의학의 도움을 받지 않았다면, 큰 고통을 겪다가 불행한 일을 당하셨을 겁니다. 엔슬러는 전자가 아니라 후자의 경우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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