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은 여전히 독서의 계절인가 중매媒 몸體 (Media)

e북 리더기의 대표격인 아마존 킨들. 지난 8월에 3세대 기기를 출시한 뒤 순항중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새 킨들은 화면 크기는 그대로인 채 전체의 크기를 줄였고 무게도 가벼워졌다. 무선 인터넷 연결 기능이 들어갔으며, 저장 용량도 늘었다. 전체적으로 크게 개선되었지만, 책을 읽는 도구라는 단순명료한 본성은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 화면은 여전히 모노톤이며, 한둘 쯤 집어 넣었을 수도 있는 심심풀이 게임 같은 것은 전혀 없다.



e북을 읽을 수 있는 채널은 갈수록 다양해지고 있다. 지금은 킨들 같은 전문 리더기는 물론이고 일반 컴퓨터, 넷북, 스마트폰에서도 전자책을 읽을 수 있다. 이런 시장 상황에서 킨들 같은 전문 기기가 살아남을 수 있을까. 예컨대, 킨들 소프트웨어를 아이패드에 설치하여 아마존에서 산 전자책을 읽을 수도 있다. 폭넓게 쓸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한 가지 기능밖에 못 하는 킨들보다는 리더기 기능은 물론이고 컴퓨터의 일반 기능을 다 수행할 수 있는 아이패드 같은 태블릿 컴퓨터에 투자하는 편이 더 나을 듯하다. 이런 생각은 누구나 하지 않을까. 아이패드가 나왔을 때 '킨들 킬러'라는 평가도 받지 않았던가.

아마존닷컴의 CEO 제프 베조스의 생각은 다르다. 새 킨들이 나온 뒤 찰리 로즈와 가진 인터뷰에서 베조스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며칠 전에 내가 봤더니, 아이패드용으로 가장 많이 쓰이고 있는 앱(애플리케이션)은 '분노의 새들(Angry Birds)'이었다. 이것은 돼지들에게 새를 던져 터뜨리는 게임이다. 반면 킨들에서 가장 많이 다운되어 이용된 것은 스티그 라르손이었다. 사용자층이 전혀 다른 것이다. 킨들은 독서를 원하는 사람들을 위해 만들어진 기기다." (스티그 라르손은 <밀레니엄> 3부작을 쓴 스웨덴 작가다.)

그래서, 독자가 책을 읽는 과정에서 집중을 흩뜨릴 수 있는 모든 가능성을 배제하려고 했단다. 책이란 단순히 종이에 풀칠을 해서 엮은 물건이 아니라, 작가의 정신 세계를 독자에게 전달하는 하나의 시스템이다. 전자책에서도 이러한 시스템이 그대로 유지되어야 한다는 게 베조스의 생각이다. 따라서 독서를, 그리고 오직 독서만을 위한 기기를 지향한다는 것이다.

아마존 킨들은 21세기에 인류가 겪고 있는 곤경의 하나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듯하다. 독서가 지식과 지혜를 추구할 수 있는 최적의 길 중 하나라는 사실은 과거나 현재나 마찬가지다. 책의 재료가 파피루스이든 목간이든 종이든 바이트와 액정 스크린이든, 이러한 사실은 변함이 없다. 그러나 갈수록 책을 읽기가 힘들다. 지나치게 재미있는 것들이 지나치게 가까운 곳에 지나치게 많이 있다. 이들이 한정된 시간 자원을 빼앗아 간다. 진지한 독서(deep reading, 혹은 ludic reading)가 실종되어 간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갈수록 높아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전통적인 독서로 돌아가기 위해 애를 쓴 것처럼 보이는 킨들조차 이러한 상황에서 완전히 벗어나지는 못했다. 아마존의 킨들 스토어에는 텍스트 기반의 무료 게임들이 몇 개 등록되어 있으며, 각 게임마다 수십 명에서 1백여 명이 리뷰를 달았다. 최근에는 킨들 최초의 유료 게임 '단어 맞추기(스크래블)'가 4.99달러에 등장하기도 했다.

조금 과장되게 말한다면, 이것은 현재 우리가 맞닥뜨리고 있는 문화사적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책은 종이를 넘어 디지털로 진화하고 있지만, 사람들은 책을 읽을 시간이 없다. 취미로서의 독서가 방해 받은 지는 이미 오래다. 요즘도 취미란에 독서라고 써 넣는 사람이 있는가. 없진 않겠지만 과거보다 훨씬 줄었을 것이다. 심지어, 꼭 필요한 독서조차 방해를 받고 있음을 부정하기 어렵다.

생각해 보니, 가을은 독서의 계절이라는 말이 사라진 지도 꽤 되었다.


※ 아마존 킨들 이미지: 아마존

 

덧글

  • 2010/10/12 21:35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deulpul 2010/10/15 11:48 #

    네, 정보의 내용과 표시 형식이 매우 다양해진 것은 좋은 변화라고 생각합니다. 일단 눈이 즐겁고, 새로운 정보를 좀더 효과적으로 배울 수 있게 된 측면은 부정할 수 없죠. 하지만 그렇게 편하고 즐겁게 되는 과정에서 희생되는 것은 없는가 하는 조바심이 생기는 것은 어쩔 수가 없습니다. 정보량과 사유력의 반비례 관계라고나 할까요... 저도 제 생각이 기우였으면 좋겠습니다.
  • deca 2010/10/13 05:36 # 삭제 답글

    킨들이 배송되어 손에 들어오던 날, 3세대 킨들 출시가 발표되어 다시 리턴하고 한 달 여를 기다려서 위 사진의 킨들을 받았었죠. -_-a;;

    정말 요새는 인터넷, 특히 SNS 들로 인해서 끊임없이 한 눈을 팔게 되지 싶습니다. 스마트폰 없이 사는 것이 감사할 정도니까요.
    킨들에도 게임이 있었군요. ^^ 3세대 킨들이 2세대와 비교해서 인터넷 사용이 더 편해진 것은 사실이지만, 기계 자체의 특성[불편한 키보드 '단추'와 터치스크린이 아니라는 점] 때문에라도, '딴 짓'하는 것 자체가 귀찮아서도^^, 독서에 더 집중하게 되더군요.

    아쉬운 점이라면, LP에서 CD, mp3로 넘어오면서 느꼈던 것처럼, 종이책이 주는 아날로그적 감성이 사라졌다는 것, 킨들이 있어도 종이책으로 사고 싶은 것들이 여전히 있기는 하다는 점이랄까요?
  • deulpul 2010/10/15 11:53 #

    확실히 킨들은 게임하기에는 불편한 장치가 틀림없다고 생각합니다. 하긴 책으로도 게임을 하긴 했네요. 페이지 번호로 끗수 따져 간식값 갹출하기, 모퉁이에 그림 그려서 동영상 만들기, 찢어내서 딱지 만들기... 전자책이 점점 확산되면 '읽고 싶은 책'과 '갖고 싶은 책'이 점차 구분되는 상황이 오지 않을까 싶습니다.
  • 2010/10/13 15:21 # 삭제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deulpul 2010/10/15 11:54 #

    좋은 경험 하셨기를 바랍니다.
  • 새알밭 2010/10/14 23:56 # 삭제 답글

    "지나치게 재미있는 것들이 지나치게 가까운 곳에 지나치게 많이 있다." 아이팻을 볼 때마다 드는 생각이 바로 그것입니다. 아이팻으로 책 읽기가 얼마나 힘든지 모릅니다. 유튜브 봐야지, 넷플릭스 봐야지, ESPN 스포츠 뉴스 봐야지, MLB At Bat으로 MLB 플레이오프 봐야지, ABC뉴스 앱에 뜬 센세이셔널한 뉴스 봐야지...킨들 훠 아이팻, 코보 훠 아이팻 같은 독서용 앱은 저 지하 3층 하고도 골방 하고도 어디 구석에 처박혀 먼지만 모아가고 있는 헌책 같습니다.

    가을은 여전히 독서의 계절인가? 그렇다, 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다만 독서의 '서'가 다른 재료와 형식으로 바뀐 것이기만 하다면 좋겠는데, 킨들과 아이팻을 들고 왔다갔다 하면서 거듭 자문하게 되는 것은, 이 글에서 쓰신 대로 깊은 독서, 한 권을 들고 몇 시간씩 파고 드는 단선적 독서가 이제는 아예 사라져버리고 만 것 아닌가 하는 점입니다.

    글 잘 읽었습니다.
  • deulpul 2010/10/15 12:01 #

    그렇지 않아도 이거 올리기 전에, 새알밭님께 실사용자 처지에서 경험하신 것을 근거로 하여 감수를 받으면 좋을텐데 하는 생각이 굴뚝 같았습니다. 아이패드는 리더기라기보다 컴퓨터니까 책 읽는 용도의 비중이 낮은 것은 이해가 됩니다만, 인터넷을 찾아보면 '무거워서 남에게 보여줄 때만 들고 나간다'라든가 '고가의 트위터기'로 쓰고 있다거나 하는 이야기들이 자주 보여서 흥미롭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한국도 곧 시판한다는 소식이 있는데...
  • 2010/10/15 15:18 # 삭제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deulpul 2010/10/15 15:23 #

    아니 이런 바보 같은 실수를 했네요. 진작 좀 알려주시지 않고요, 하하-. 고맙습니다.
  • mike 2011/01/27 02:15 # 삭제 답글

    매우 동의하면서도 개인적으로 가슴아픈 글입니다. 아이패드용 동화책앱 개발을 준비중이거든요. 저희 프로젝트팀도 개발될 앱이 진정 주고자 하는 value를 고려할때 아이패드가 적합한 플랫폼일까 고민하는 처지에 왔습니다. 출처를 밝히고 링크를 제 페이스북에 포스팅하고 싶습니다....
  • deulpul 2011/01/28 08:47 #

    이렇게 원초적인 문제를 고민하시는 제작자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니 안도가 되고 기분이 좋아집니다. 생각해보니 실제로 꽤 문제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읽기만 해야 하는 책과는 달리 수많은 일을 할 수 있는 아이팻이라는 특성은 앱의 생명력하고도 관계가 있지 않을까 싶고요... 좋은 말씀 잘 들었습니다. 링크는 상관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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